작성일 : 2021.01.13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요17.대제사장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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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요17장


@@영생(요3:16, 요17:3) = 영원한 생명 = 아이오니오스 조에 = 올람 하이(시133:3)


[요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두어야 하는 것은 생샐하고도 친밀한 교제와 사귐, 내게로 오셔서 내주하여 계시는 주님, 임마누엘 그분의 운행하심-움직이심-일하고 행하심을 알아채고 그분과 하나되어 누리며 살아감이 영생임을 말하는 것이지,....즉,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분에 관한 명제를 동의하고 받아들인다 = 객관적, 피상적 지식을 동의하고 수영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한 삶이 "하나님에 관해"가 아니라 그분 자신을 친밀히 알며 사랑하며 섬겨 ["야하드 = 연합한 하나"]로 생생하게 매순간 동행함에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해 알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닌 사람이 많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관해 압니다. ....우리는 창조자 하나님에 관해 알 수 있으며, 하나님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신학, 모든 명제를 맏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이런 뜻이 아닙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죄를 지었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었으며, 그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영원히 잃었습니다....구원은 단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회복하는 게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하듯이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고 떱니다”(약 2:19). 진실로!!, 구원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지식이, 교감과 교제를, 사귐으로 하나님을 살며 아는 지식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있으며, 인격적인 교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여기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영원한 = 아이오니오스...시작이나 끝이 없는, 영원한, 세세의.

......형용사 아이오니오스는 아이온(aijwvn, 165)에서 유래했으며, '영원한'(orphic. Hymn., 875; Plat., Xen.)을 의미하며, '영원한 하나님'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다.

.....형용사 아이오니오스는  히브리어 올람 어군(영원, 영원히, 항상 긴 시대, 오래된, 고대의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시 24:7; 시 77:5; 창 21:33 등).

,,,,,,형용사 아이오니오스는 신약성경에서 70회 나오며, 3가지 양식으로 '영원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아이오니오스는 롬 16:26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하나님에 관한 아이오니오스는 시작과 끝이 없는 무제한적 시간의 개념 뿐만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성의 개념을 포함한다.

(b)  아이오니오스는 하나님의 소유와 선물에 대해 사용되었다. 고후 4:18에서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과 비교되어 있는데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다.

히브리서에서 동일한 견해가 발전되어 있다. 보기로 히 9:14에서 성령은 신에 속하기 때문에 영원한 영이시다. 동일한 맥락에서 이 단어는 [영원한] 영광(딤후 2:10; 벧전 5:10; 고후 4:17), 영원한 능력(딤전 6:16), 영원한 복음(계 14:6), 영원한 구원(히 5:9),영원한 속죄(히 9:12), 영원한 기업(히 9:15)을 나타낸다.

(c)  "영원한 나라"라는 표현에서 아이오니오스(벧후 1;11)는 종말론적 기대의 목적을 위한 용어로 사용되었다. 같은 의미는 히 1:15의 영원한 기업, 눅 16:9의 영원한 처소, 고후 5:1의 영원한 집이란 표현에도 나타난다. 이러한 표현에서 아이오니오스는 하나님의 영원성이라는 완전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영원한 불(마 18:18; 마 25:41; 유 1:7), 영벌(마 25:46), 영원한 멸망(살후 1:9), 영원한 죄(마 3:29)에서 아이오니오스는 '그치지 않는, 끝없는'이란 의미만을 지닌다....그러나 영원한 심판(히 6:2)과 같은 표현은 여기서도 순전한 일시적 의미를 넘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d)  영원성의 개념은 롬 16:25; 살후 1:9; 딛 1:2; 몬 1:15에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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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life. = (초자연적인) 하나님 생명 = 조에, 사람 생명 = 프쉬케, 몸 생명 = 소마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조에(Homer 이래)는 '생명(life)'을 의미한다.

(a) 조에는 헬라에서 유기적 존재들, 동물, 사람, 식물의 물리적 생명력을 의미한다. 생명은 물건이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을 특징 지우는 생명성(vitality)이다.

각 개개인 뿐만 아니라 전 우주까지도 살아있는 유기체, 또는 영혼을 갖고 있는 세계로 생각되었다.

(b) 헬라인들은 세 번째의 성분, 곧 이성 Reason, 정신 mind, 이해력 understanding(누스..nou'", 3563)이 인간의 생명을 특징 지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마(= 몸 생명 sw'ma, 4983)와 또한 다소간 프쉬케(= 혼 생명 yuchv, 5590)가 자연적 생명을 구성하는 반면 누스(nou'", 3563 = 이해력)는 외부로부터 인간 생명으로 들어가 이 생명을 자연적 생명, 즉 동물의 생명 이상으로 향상시키고 여러 가지 양자택일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의 유형을 생산해내는 신적 요소인 것이다.

(c)  만약 신의 조에가 누스와 관련되어 있다면, 이것은 조에가 자연의 생명력을 포함하면서 동시에 초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최고 가능성은 또한 누스이며, 누스는 육체와 분리될 수는 없지만, 육체와 구별함으로써만이 그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 따라서, 참된 인간의 조에는 사람이 그것을 통해 몸과 혼을 결합함으로 조온이 되는 조에가 아니다. 프쉬케는 물질에 있어서 생명력의 원리이지만, 이것은 또한 물질과 대조되는 것인 인간의 자아(selfhood)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조에는 자연의 현상으로서의 생명이지만 또한 특별히 인간의 생명이기도 하다. 이 인간의 생명의 가능성은 유기적인 본질에서 성취되지 않으며 이것은 종(species)의 영속화를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생명은 그 자체의 운명을 가지며, 행복과 불행을 알고, 그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그것에 고유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2. 70인역본의 용법 

조에는 70인역본에서 약 260회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하이('살아있는' 것)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조에는 무엇보다도 생명의 길이나 질병, 죽음과 구별되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때리시고 치료하시는 생명과 역사의 주인이시다. 후에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참조: 마카베오사서 18:18). 고대의 비문들은 지상의 생명에 대해 언급을 한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조에는 신약성경에서 13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조에는 자연적 생명을 나타낸다.

① 조에는 자연적 죽음과 구별되는 자연적 생명을 가리킨다.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고전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② 눅 16:25에서 '살아있는 동안'을 묘사한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눅 12:15; 행 8:33에서도 마찬가지이다.

③ 고전 15:19에서 이 세상에서 '삶을' 표현한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딤전 4:8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지며, "내 생"과 대조되어 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④ 약 4:14에서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생명을 묘사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⑤ 히 7:3에서 '생'의 끝을 묘사한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⑥ 계 11:11에서 '생'기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참조: 창 6:17; 창7:15).

(b)  조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초자연적 생명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 생명은 신자들이 미래에 받을 것이지만, 이 땅에서 지금 향유하는 것이다.

① 요일 5:20에서 하나님은 참 생명, 곧 영생이시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 5:26a에서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 12:50에 의하면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이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② 요 5:26b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셨다.

요 1:14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다". 요일 5:11에서도 이를 증거한다. 그는 "생명의 주"이시며(행 3:15), "생명의 말씀"이시다(요 1:1). "이 생명이 인간에게 나타내시게 된 것이다"(요일 1:2). 그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 요 6:48; 요 6:33). 그는 단순히 "생명"이란 말로 표현되었다(요 11:25; 요 14:16). 그는 "우리의 생명"이시다(골 3:4). 그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며(요 1:4b) 따라서 사람들은 그를 따름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빛을 얻는다(요 8:12).

(c)  조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얻는 신자들의 생명을 나타낸다.

① 이 생명은 은혜와 거룩의 생명이다.

롬 6:4에서 우리는 "세례(침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된다.

엡 4:18에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자들을 묘사한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② 이 생명은 구원과 영광의 생명이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며(딤후 1:1), 그의 말씀과 복음의 전도로 말미암아 효력을 발한다, 요 6:68; 요 6:63; 행 5:20; 빌 2:16; 딤후 1:10; 고후 4:12. 사도들은 복음의 전도로, 사람들을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게" 한다(고후 2:16).

③ 성령은 생명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신다, 롬 8:2; 롬 8:6; 롬 8:10; 요 6:63.

④ 그리스도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계명(엔톨레)도 생명에 이르게 한다, 롬 7:10.

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로 간주되었다, 딤후 1:1에서 "썩지 아니할 것"과 함께, 벧후 1:3에서 "경건"과 함께, 롬 8:6에서 "평안"과 함께 나타난다.

⑥ 진실로 생명의 에클레시아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 곧 은혜의 선물의 상속자들이다, 벧전 3:7.

⑦ 이 생명은 그들이 육체로 거하는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다, 골 3:3.

⑧ 그의 생명을 상실 당한 자는 누구든지 영광의 생명에서 제외된다. 행 11:18; 행 13:46; 행 13:48.

⑨ 특별히 요한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의 생명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생명(요일 5:12), 곧 영생을(요 6:40; 요 6:47) 소유하였고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요 5:24; 요일 3:14).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영생은 사랑과(참조: 요 15:17), 기쁨(참조: 요 16:20-요 16:24) 안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요일 3:14에 따르면 형제간의 사랑은 참 생명의 척도가 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에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비록 요한의 생명에 대한 견해에 많은 점들이 영지주의자들의 관점과 일치한다고 할지라도 요한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영생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거의 도달하기 어려운 세계로 옮겨 버린 반면에 요한은 영생을 바로 현재로 가져오며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과 계명과 인격에 굳게 닻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요 17:3). 이 영생을 지금 이곳에서 소유하는 신자들은, 사망과 심판이 더 이상 생각할 요소들이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요 5:24; 요 11:25). 왜냐하면 영생은 그 안에 영원의 씨앗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요 4:14; 요 6:27; 요 12:25).

(d)  조에는 종말의 복된 시대에서 누릴 생명에 대해 사용되었다: 요 3:15.

 

① 내세의 영생, 마 10:30; 눅 18:30; 막 19:29. ..② 영생에 대한 질문, 막 10:17; 눅 18:18; 눅 10:25; 마 19:16이하. ..③ 마지막 심판의 결과, 마 25:46; 롬 2:7; 마 7:14; 마 18:8이하; 막 9:43, 막 9:45; 롬 5:17이하, 롬 5:21; 롬 6:22이하. ..④ 죽은 상태에서 나온 자들의 생명, 롬 11:15; 갈 6:8; 딤전 1:16; 딤전 6:12, 딤전 6:19; 벧전 3:10. ..⑤ 이 생명은 참 생명으로 불리워진다, 딤전 6:19; 딛 1:2; 딛 3:7. ..⑥ 생명 책, 빌 4:3; 계 3:5; 계 13:8; 계 17:8; 계 20:12, 계 20:15; 계 21:27. ..⑦ 생명의 나무, 계 2:7; 계 22:2; 계 22:14; 계 22:19. ..⑧ 생명의 면류관, 계 2:10. ..⑨ 생명수, 계 21:6; 계 22:1; 계 22:17; 계 7:17.


===기도하시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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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17   Amplified Bible

==The High Priestly Prayer

1 When Jesus had spoken these things, He raised His eyes to heaven [in prayer] and said, “Father, the [a]hour has come. Glorify Your Son, so that Your Son may glorify You. 

2 Just as You have given Him power and authority over all mankind, [now glorify Him] so that He may give eternal life [b]to all whom You have given Him [to be His—permanently and forever]. 

3 Now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may know You, the only true [supreme and sovereign] God, and [in the same manner know] Jesus [as the] Christ whom You have sent. 

4 I have glorified You [down here] on the earth by [c]completing the work that You gave Me to do. 

5 Now, Father, glorify Me together with Yourself, with the glory and majesty that I had with You before the world existed.

6 “I have manifested Your name [and revealed Your very self, Your real self] to the people whom You have given Me out of the world; they were Yours and You gave them to Me, and they have kept and obeyed Your word. 

7 Now [at last] they know [with confident assurance] that all You have given Me is from You [it is really and truly Yours]. 

8 For the words which You gave Me I have given them; and they received and accepted them and truly understood [with confident assurance] that I came from You [from Your presence], and they believed [without any doubt] that You sent Me. 

9 I pray for them; I do not pray for the world, but for those You have given Me, because they belong to You; 

10 and all things that are Mine are Yours, and [all things that are] Yours are Mine; and I am glorified in them. 

11 I am no longer in the world; yet they are still in the world, and I am coming to You. Holy Father, keep them in Your name, the name which You have given Me, so that they may be one just as We are. 

12 While I was with them, I was keeping them in Your name which You have given Me; and I guarded them and protected them, and not one of them was lost except [d]the son of destruction, so that the Scripture would be fulfilled.

==The Disciples in the World

13 But now I am coming to You; and I say these things [while I am still] in the world so that they may experience My joy made full and complete and perfect within them [filling their hearts with My delight]. 

14 I have given to them Your word [the message You gave Me]; and the world has hated them because they are not of the world and do not belong to the world, just as I am not of the world and do not belong to it. 

15 I do not ask You to take them out of the world, but that You keep them and protect them from the evil one. 

16 They are not of the world, just as I am not of the world. 

17 Sanctify them in the truth [set them apart for Your purposes, make them holy]; Your word is truth. 

18 Just as You commissioned and sent Me into the world, I also have commissioned and sent them (believers) into the world. 

19 For their sake [e]I sanctify Myself [to do Your will], so that they also may be sanctified [set apart, dedicated, made holy] in [Your] truth.

20 “I do not pray for these alone [it is not for their sake only that I make this request], but also for [all] those who [will ever] believe and trust in Me through their message, 

21 that they all may be one; just as You, Father, are in Me and I in You, that they also may be one in Us, so that the world may believe [without any doubt] that You sent Me.

==Their Future Glory

22 I have given to them the glory and honor which You have given Me, that they may be one, just as We are one; 

23 I in them and You in Me, that they may be perfected and completed into one, so that the world may know [without any doubt] that You sent Me, and [that You] have loved them, just as You have loved Me. 

24 Father, I desire that they also, whom You have given to Me [as Your gift to Me], may be with Me where I am, so that they may see My glory which You have given Me, because You loved Me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25 “O just and righteous Father, although the world has not known You and has never acknowledged You [and the revelation of Your mercy], yet I have always known You; and these [believers] know [without any doubt] that You sent Me; 

26 and I have made Your name known to them, and will continue to make it known, so that the love with which You have loved Me may be in them [overwhelming their heart], and I [may be] in them.”

==Footnotes

John 17:1 I.e. the time of Jesus’ death.

John 17:2 A reference to election or predestination. Also see John 6:39; 17:6, 9, 24; Acts 13:48; Rom 8:29-33; Eph 1:3-6; 2 Thess 2:13; 1 Pet 1:2.

John 17:4 Much of Jesus’ discourse and prayer in John 13-17 is reminiscent of God’s comparison of rain and snow to His word in Is 55:10, 11. Like God’s word, Jesus, who was introduced by John as the Word (John 1:1), comes from God (John 16:28; 17:8), accomplishes God’s desire (John 14:10; 17:4, 8) and then returns to God (John 13:33; 14:4; 17:13).The themes of joy and peace found in Isaiah 55:12 also resonate throughout John 13-17; joy (John 15:11; 16:20-24; 17:13) and peace (John 14:27; 16:33). Isaiah 55; 56 has many points of connection with John’s Gospel as a whole, most notably the invitations to quench thirst (Is 55:1; John 4:13, 14; 7:37) and receive bread (Is 55:2; John 6:26-35, 48-51). Other points of connection between Is 55; 56 and John include the tie between listening and living, appeals to witnesses, calls to obedience, the idea of a special window of God’s nearness, and the inclusion of the Gentiles in salvation.

John 17:12 Hebrew idiom for one destined to perish. The betrayal of Christ by Judas Iscariot was foretold in Ps 41:9; cf John 13:18.

John 17:19 Jesus’ sacrificial death allows Christians to be truly sanctified—set apart for God’s purp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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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 (개요)

본장은 기도문이다. 다른 사람의 기도가 아닌 주님의 기도문, 우리 주 그리스도의 기도문이다. 이 기도문 외에 그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있다. 

그는 자신의 죄의 용서를 위하여 기도하실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죄가 없으시므로 죄의 용서를 위하여 기도할 필요가 없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이 기도문은 중재자로서의 그리스도에게 필요했던 기도문이고 또 오직 그만이 하실 수 있는 기도문이다. 

이같이 이 기도는 그의 중재를 위한 모본이 되는 기도이다. 그럼에도 이 기도문은 우리에게 기도하라는 격려와 교훈으로써도 유익한 것이다.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기도하시게 된 배경(1).

Ⅱ. 기도문의 내용.

1. 그는 먼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신다(1-5).

2. 그는 그에게 속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신다.

(1) 서론적인 간구. 여기서 그는 그들을 위한 기도의 이유를 말씀하신다(6-10).

(2) 그가 그들을 위해서 하신 특별한 간구.

① 저희의 보호를 부탁하심(11-16).

② 그들이 성별될 것을 부탁하심(17-19).

③ 그들이 하나가 되게 하여 달라고 부탁하심(11, 20-23).

④ 저들이 영광을 받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하심(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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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중재를 위한 기도(요 17:1-5)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그의 기도의 배경(1절).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실 때 그리스도는 깊이 있는 기도를 많이 하셨다(때로 그는 밤을 세워 기도하셨다). 그러나 본문의 기도처럼 완전하게 기록된 것은 다른 곳에는 없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그가 이 기도를 하신 시기. 

그가 이 말씀을 마치신 후 즉 앞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송별의 말씀을 하신 후에 그는 그들이 듣는 가운데 기도를 하셨다. 즉 이 기도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1) 이 기도는 설교 후에 하신 기도였다. 

그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실 말씀을 전한 다음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기도하셨다. 우리는 말씀을 전한 후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을 위하여 또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마른 뼈들을 향하여 예언한 에스겔은 "생기야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기도하였다. 설교는 기도로 끝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효과가 증가되는 것이다.

(2) 이 기도는 만찬을 나누신 뒤에 하신 기도였다. 

즉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곧 만찬을 위한 음식을 나누시고 이에 합당한 말씀을 하신 후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 말씀을 지킬 힘을 주시도록 끝으로 이 기도를 하셨던 것이다.

(3) 이 기도는 일종의 가족 기도였다. 

그리스도에게 제자들은 그의 가족이었다. 그는 모든 식구들 앞에서 기도로 본을 보이셨다. 그는 아브라함의 아들의 입장을 띄고 식구들을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창 18:19) 다윗이 아들의 입장에서 그의 식구를 위하여 축복하셨고(삼하 6:20) 그들을 위하여 또 그들과 함께 기도하셨다.

(4) 이 기도는 작별 기도였다. 

우리가 친구들과 작별할 때 기도로 작별하는 것이 좋다(행 20:36).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그들은 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작별은 기도에 의하여 성별되고 아름답게 승화되었던 것이다. 야곱은 죽으면서 12족장에게 축복하였고, 모세는 죽으면서 12지파에게 축복하였다. 여기 본문의 예수는 임종하시면서 12사도들에게 축복하셨다.

(5) 이 기도는 자신의 희생을 위한 준비 기도였다. 

그는 죽음의 대가를 치루심으로 그에게 속한 사람들을 위하여 특별한 가호와 축복을 베풀고자하시었다. 그리스도는 지금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의 입장에서 기도하셨다. 이 기도에 힘입어 우리의 모든 기도도 효력이 발생되는 것이다.

(6) 이 기도는 그의 중재하심의 모본이 되는 기도였다. 

그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휘장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신다(하나님 나라를 의미함). 그리고 영광을 입으신 거기서는 그가 지상에 계셨을 때 하신 것처럼 자신을 낮추사 아버지께 간구하시지는 않는다. 하늘에서 그는 자신의 공로에 의지하여 아버지에게 인간들을 위한 중재를 하신다. 거기서 그는 모든 그의 선택받은 자들을 위하여 은덕을 내리실 것을 간청하시는 것이다.

2. 그의 간절한 희망이기도 하시는 외적인 모습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그는 먼저 번처럼(11:41)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간구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자세를 갖춤으로 정신을 집중하고자 하신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러한 자세를 취하사 기도를 성별하셨고 기도를 조롱하는 자들에 대하여는 기도의 정당성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기도할 때에 영혼이 하나님을 우러러 봄은 의미 있는 일이다(시 25:1). 예전에 하늘을 향해 Sursum corda - 즉 너의 마음을 들라는 말씀은 기도를 위한 부름의 말씀으로 사용되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우리의 소망을 그리로 향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간구한 바 좋은 것들을 받기를 기대해야만 한다.

Ⅱ. 기도의 첫 부분. 여기서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신다. 내용을 고찰하여 보자.

1.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고 기도한다. 

"그는 눈을 들어 아버지여"라고 말씀하신다. 기도는 하나님에게만 해야 하듯이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하고 그를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기억하자. 양자의 영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로마서 8장 15절, 갈라디아서 4장 6절에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도록 가르쳐지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그에게 나아갈 자유가 있으며 그를 믿을 근거가 있는 셈이며 그러므로 그에게 큰 기대를 가져도 좋은 것이다. 

그리스도는 본문에서 하나님을 "거룩한 아버지"로(11절) 또 "의로우신 아버지"(25절)로 부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그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우리를 위하여 대단히 유용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의 지시나 또는 위로를 얻기를 바랄 때 그 소원에 합당한 명칭을 붙여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좋다.

2. 그는 먼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신성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시다. 그렇지만 한편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자신이 기도하셔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셨기 때문이었다"(마 3:15). "구하라. 내가 너에게 주리라"(시 2:8)는 말씀은 주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인 동시에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주신 약속이기도 하였다. 그가 자기 몸을 바쳐 사신 바된 것을 또 간구해야만 하셨다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한 아무 공로도 없이 죄만 지은 우리가 어찌 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만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다. 이 사실은 기도의 가치를 앙양시켜 준다.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통신 수단이다. 그리스도 자신도 이 방법을 이용하여 하늘과 의사를 소통하셨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실은 기도하는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또한 "빈궁한 자의 기도"도 멸시받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가 된다. 

우리를 감싸 주시는 그분에게도 자신을 위하여 간청할 필요가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중재자로서의 그의 명예로운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였다. 그는 우리에게 하라고 명하신 같은 방법 즉"기도와 간구"(히 5:7)를 이용하셨다. 그도 이렇게 간구하셨으므로 그는 우리의 간구하는 마음을 아신다(출 23:9). 그리고 우리가 간구하는 방법도 아신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신 후에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이 자비를 베푸는 것도 먼저 가정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물론 가정에서 끝난다면 안 되지만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바른 순서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 비하여 자신을 위한 기도는 대단히 짧게 하셨다. 우리가 기도할 때 교회를 위한 기도는 잠간 스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함에 있어서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며 결코 인색해서는 안 된다.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하여 하신 두 가지 간청이 있다. 그 간구는 둘다 자기가 영화를 받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라는 간구를 두 번이나 언급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그의 사업을 계속할 수 있기 위하여 하신 청이었다. 그것은 본문에 의하면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란 청으로(1-3절), 그가 지금까지 해오신 것을 앞으로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시라는 요구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가 지금까지 아버지의 사업을 완수하였으니 나를 영화롭게 해 달하시는 청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내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이제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내가 할 일은 하였으니 여호와여 이제는 당신이 하실 차례니이다"라고 하였다(4,5절)(한글 개혁과 다소 틀림:역자 주).

(1) 본문에서 그리스도는 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영화롭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한다(1절). 즉 이런 내용이다. "약속하신 대로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러면 당신의 뜻을 이루어 아버지의 영광을 들리겠나이다."이제 본문을 더 상세히 고찰해 보자.

① 그가 위하여 기도하신 것. 

그것은 그가 이 세상에서 영화를 얻게 해달하는 것이었다. 즉 이러한 뜻이다. "모든 어두움의 세력들이 결속하여 당신의 아들을 중상할 때가 이르렀나이다. 그러니 아버지여 이제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첫째, 아버지는 아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시던 때에도 표적과 기사를 그를 통하여 나타내시므로 아들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를 잡으러 온 자들이 벙어리가 된 듯 한 마디 답변도 못하던 순간, 또 유다가 주님의 무죄를 고백하고 자결로 이 사실을 입증하던 순간, 빌라도의 아내가 꿈에 그의 의로우심을 깨달았고, 빌라도 자신이 입으로 그의 무죄를 선언한 순간, 또 해가 어두워지고 성전 휘장이 찢어지던 순간들에 아버지는 아들을 의롭게 여기셨을 뿐만 아니라 영화롭게 하셨다.

둘째, 아버지는 아들에게 고난을 가하심으로 인하여 땅에서 그를 영화롭게 하셨다. 

그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는 위엄이 있었고 영광을 받으셨다(13:31). 그가 사탄과 죽음을 정복하신 것은 바로 십자가에서였다. 또 가시관은 그에게 면류관이었다. 또한 빌라도는 예수의 십자가 위에 쓴 패에 그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를 적절히 표현했던 것이다.

셋째, 아버지는 아들이 고통을 받으신 후에 땅 위에서 더욱 그를 영화롭게 하셨다. 

즉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심으로 그리고 택하신 증인들에게 공개적으로 그를 나타내시므로 또 아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그를 위하여 변명해 주시는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그의 왕국을 인간 세계 속에 세우심으로 그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셨다. 본문에서 그리스도는 바로 이것을 간구하고 주장하신 것이다.

② 이 요구를 관찰시키기 위하여 그가 아버지에게 내세운 조건들,

첫째, 그는 아버지와 자기와의 관계를 근거로 하여 호소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당신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라고 하였다. 하나님과 동체이시며 중재자로서의 당신의 아들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시편 2편 7,8절에도 "네가 나의 아들이므로 내가 열방을 너에게 유업으로 주리라"하였다. 또한 사탄도 그가 아들됨의 권리를 포기하면 이 세상 나라를 주겠노라고 유혹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러한 제안을 보기 좋게 거절하셨다. 그리고 그의 장래의 영광을 아버지에게 의탁하셨다. 

본문에서도 그리스도는 장래의 영광을 하나님에게 의탁하신다. 마찬가지로 양자로 선택받은 우리도 믿음으로 아들의 유업을 간구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성별되어지면 다음은 영화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아버지여 당신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라 한 것이다.

둘째, 그는 시기가 이르렀다는 사실을 들어 간구한다. 

고로 본문에 "때가 이르렀사오니"라고 하였다. 이제는 구체적인 시간까지 결정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결정됐다는 말이다. 그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노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그 때가 온 것이고 그는 이 사실을 아셨다.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전 9:12) 인자는 아셨다. 그는 이 시기에 대하여 12장 27절에서는 this hour - 즉 이 때라 하셨으나 본문에서는 the hour - 즉 때라고만 하셨다. 마가복음 14장 35절과 요한복음 16장 21절을 비교하여 보라. "때"라고 하신 것은 강조적인 뜻을 띄고 있다. 왜냐하면 구속자의 탄생의 때가 그러하였듯이 그의 죽음의 때도 가장 의미있고 주목할 만한 때였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 시간이야말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중대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간은 전에는 결코 없었다. 이와 같이 기대하던 시간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 그리스도의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에는 다음의 의미가 있다.

a. "내가 겪어야 할 그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이다. 

이제 이 장엄한 사건이 절정에 도달한 시기였다. 수많은 작은 접전이 있은 후 하늘과 지옥 사이의 결정적인 전투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제 하나님 편에는 명예가 또 인간에게는 행복이 좌우되는 중대한 싸움에, 영원히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경각이 달린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윗과 미가엘은 이쪽 진영에, 골리앗과 용은 저쪽 진영에 속하여 있었다. 이제 전쟁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면 어느 쪽이 이기느냐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이쪽 진영에 속한 자들은 다음과 같이 아뢰인다. "이제 당신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소서. 그로 하여금 이 세상의 정사(政事)들과 권력들에 대하여 승리하게 하시고 그의 발뒤꿈치로 독사의 머리를 밟게 하소서. 이제 당신의 아들을 높이시사 패하지 말게 하옵시며 낙담하지 않게 하소서." 여호수아가 나아가 "정복하며 또 정복할 때도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강하게 하시니"라고 말씀되었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그의 승리의 병거로 삼으시는 이때에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셨던 것이다.

b. "내가 관씌움 반기를 고대하던 마지막 순간이 이르렀다"는 말씀이다. 

즉, "내가 영화롭게 되어 당신의 우편에 앉을 때가 이르렀나이다"는 뜻의 말씀이다. 그가 영광을 받으시기까지에는 유혈어린 고난의 막간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고난의 순간은 전혀 안중에 없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는 "내가 영광 받을 때가 이르렀나이다"라고 하였다. 이 순간이 오기 전에 그는 이 영광을 기대하시지는 않았다. 

우리도 만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시련의 시간 특히 임종의 시간을 맞이하여 다음과 같이 간구해야 한다. "때가 이르렀사오니 나를 도우소서. 나를 위하여 나타나소서. 지금이야말로 결정적 순간입니다. 이제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지고 내가 영광을 얻을 순간이 온 것입니다"(고후 5:2).

셋째, 그는 아버지의 이득과 관심을 위해 들어 주실 것을 간청하신다. 

그러므로 본문에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소서"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아버지의 명예를 위하여 지금까지도 일해 오셨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난의 순간을 통과하여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시기를 소망하였다. 그는 다음의 두 가지 방법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다.

a. "십자가에서 죽으심"에 의해서였다. 

그는 이 죽음을 당해야 할 순간에 있었다. 그의 고난은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아버지는 아들의 고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하신다. 이 고난이야말로 사람들로 말미암아 손상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들은 아버지를 만족스럽게 해드렸으므로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이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른 것이다. 고로 본문의 뜻은 "아버지여 고통 중에 있는 나를 주장하사 이 고난을 내가 잘 감당하여 당신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인 것이다.

b. 십자가의 도에 의해서였다. 

이 도리는 그가 죽으신 얼마 후 세상에 공포되었고 이 도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 세상에 다시 세워지게 된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그가 받는 고난에 은혜를 베풀고 그 고난을 영광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즉 십자가의 수치를 제거해 주실 뿐만 아니라 이 십자가가 구원함을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심으로"영광을 얻게 하시지 못하였다면 그의 모든 사업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를 영화롭게 하사 나로 당신을 영화롭게 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신다. 이를 통하여 그가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a) 우리들이 기도를 통하여 또 여러 가지의 계획과 목적을 통하여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주된 목표가 되어야 하고 다른 모든 것들은 주님에게 종속되어서 또 주님의 유익을 위해서만이 존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당신의 종을 위하여 이와 같은 문제를 처리해 주시옵소서. 이는 당신의 종이 당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게 건강을 주옵소서. 그러면 내가 나의 건강한 몸을 드려 당신을 영화롭게 하겠나이다. 나로 성공하게 하옵소서. 그러면 내가 내게 주신 것으로 당신을 영화롭게 하겠나이다." 즉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란 기도가 우리의 첫 번째 간구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다른 모든 목적을 이룸에 있어서 필연적인 조건이다(벧전 4:11).

(b) 그는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바랄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일에 드린다면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게 이루어 주실 것이며 충분한 은혜와 적절한 기회를 허락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영광보다는 은밀히 자기를 명예롭게 하는 데 노력을 한다면 그는 우리를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게 내버려 두실 것이며 그 결과 우리는 명예를 얻는 대신에 스스로 수치를 당하고 말 것이다.

넷째,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든 것을 위임한 사실을 들어 간구하신다(2,3절). 

그는 아버지께서 그에게 위임하신 내용과 일치하게 그리고 그 위임을 철저히 수행하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신다. 즉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권세를 위임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이 영화로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아들에게 위임하신 권세를 집행하므로 아들이 그를 영화롭게 하게 해달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위임하신 사실은 그리스도의 간청의 근거가 된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아들에게 위임하신 권력을 의지하여 당신의 아들이 당신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란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아들에게 권세를 위임하심이 또 아들을 영화롭게 하셔야 한다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제 본문을 통하여 중재자로서의 주님의 권세를 살펴 보자.

a. 그의 권세의 기원. 그 기원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권세를 주신 데서"찾을 수 있다. 

그는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으셨다. 타락한 상태 아래서의 인간이 본래의 자기가 되기 위하여서는 새로운 형태의 나라(하나님의 나라)의 휘하에 속해야 한다. 이 나라는 하늘이 인치신 특별 위임에 의하지 않고서는 세워질 수 없는 것이며 이 영광된 사업의 착수자이신 주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주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현저한 격차를 중재하시는 분이시며 또 한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게 될 웅대한 결속을 보증해 주시는 유일하신 분이시다. 이 직능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그는 권세를 받으셨다. 이러한 중재자로서의 권세는 창조주로서의 그의 권세와 통치와의 명백히 다른 경로를 거쳐 집행되는 것이다. 

교회의 왕이신 주님은 이 세상의 군주들이 그러하듯이 폭군은 아니시다. 그리스도의 다스리시는 권세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분명한 것이다.

b. 그의 권세의 범위. 그는 모든 육체에 대하여 권세를 가지셨다.

(a) 이 말은 전 인류에 대한 권세를 지니셨음을 의미한다. 

그는 영들의 세계에 대하여도 권세를 가지셨으며 천상의 볼 수 없는 세계의 권세들도 그에게 예속되어 있다(벧전 3:22).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가 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에 호소하신다. 

그들은 그가 항복케 하여 구원시킬 사람들이었고 이들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자를 가지고 계셨다. 그러므로 전 인류는 그의 발 아래 굴복되어 있는 것이다.

(b) 이 말은 부패하고 타락된 만민에 대하여 권세를 가지셨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타락하였으므로 육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창 6:3).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인간이 육체가 되지 않았다면 구속자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죄를 지었으므로 주 예수는 이 죄를 지은 인류에 대하여 전권을 소유하고 계시는 것이다. 또한 그들에 대한 심판권이 그에게 위임되었다. 즉 속박할 수도 있고 또는 석방할 수도 있으며 사면하거나 정죄할 수 있는 권세가 그에게 있었고 지상에서 용서할 권한과 처벌하는 권한이 그에게 있었다. 

중재자로서의 그리스도는 전 세계의 통치권을 마음대로 장악하신다. 그는 열방의 왕이시며 그를 알지 못하거나 그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도 권세를 가지신다. 그는 세상 왕들처럼 그들을 직접 다스리지 않지만 그들을 총지휘하신다(시 22:28; 72:8; 마 28:18; 요 3:35).

c. 이 권세의 거대한 취지와 계획. 그것은 본문에 의하면"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는" 것이다. 여기 우리의 구원의 신비가 공개되고 있다.

(a) 본문에 보면 택함 받은 자들을 구속자에게 넘겨 주시고 그들을 그의 몫으로 또 그가 믿을 수 있는 자들로 주신 분은 아버지이시다. 

즉 그들을 그의 사업에 대한 공로와 보상으로 주셨다는 말씀이다. 그는 모든 타락된 인류에 대하여 통치권을 가지고 계시지만 특히 선택된 소수의 무리에 대하여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케 하셨다." 그러나 택함 받은 자들은 그에게 맡겨진 것이다.

(b) 본문에 보면 아들에게 주어진 자들의 행복을 관장하는 일을 하시는 분은 아들이시다. 그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신다. 이제 구속자의 권위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살펴 보자. 그에게 생명과 면류관을 주는 권세가 그에게 있으시다. 이제 상급을 베푸시는 데 있어 이러한 우선권이 있으신 주 예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가를 살펴 보자. 그리고 구원하기로 작정한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주님이 얼마나 은혜스러운가를 다음에 생각해 보자.

[a] 그는 이 세상에서 구원받을 자들을 성별하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꽃봉오리와 같은 상태에 있는 영적인 생명을 주신다(4:14). 인간의 심령에 부어진 이러한 은혜는 곧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b] 그는 저 세상에서 그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그 계획의 성취에 의하여 그들의 행복은 완성될 것이다. 본문에는 이 사실만이 기록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다른 모든 사업들 즉 그들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만족감을 주며 그들을 성별하며 그들로 영생을 준비하게 하는 것은 저 세상에서 영화를 얻게 하려는 최종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다른 모든 것은 이것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나라요 영광이며 유업을 상속받을 자"로 칭하여지고 있다. 저 세상에서 그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최종 단계에 실현될 것이지만 실상 모든 계획은 이를 위하여 처음부터 세워진 것이다.

[c] 본문에는 구속자가 이 세상에 대한 전권적인 통치를 하심으로 우리에게 안겨지는 혜택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가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지니신 것은 선택된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인간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다스림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고린도 후서 4장 15절에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함이라"기록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그리스도가 정하신 율례와 규례와 약속들은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모든 사람들의 영적 생활을 지속시키고 영생을 보장하기 위하여 효율적으로 계획된 것들이다. 그는 교회의 소속된 모든 일의 우두머리이시다. 섭리에 의해 다스려지는 세상과 은혜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들에 대한 지배권이 같은 한 분의 손에 맡겨진 것은 모든 일이 부믈 받은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일치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d. 이 장대한 계획이 본문에 계속 설명되고 있다(3절). 

3절의 내용을 부연하면 다음과 같은 뜻이다. "내게 주라는 권한이 위임되어 주기 시작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본 뜻이며 또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이것은 일반 종교가 발견하고자 하는 원리들이기도 합니다. 또 영생은 당신이 중재자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 예수는 타락된 상태에서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이 거룩한 신앙(기독교)의 가르침과 규례를 베푼 자입니다." 이 말씀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다.

(a)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제일 큰 목적. 

그것은 곧 영생이요, 불사의 인간이 누릴 행복이다. 이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성취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이 영생의 행복을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셨고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보증하신다. 

영생은 복음에 의하여 비로소 확실해진 것이요, 또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었다. 이 생명은 세상에서의 우리의 생명에 비해 시간적으로 탁월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수하다.

(b) 이 축복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앎으로 주어진다. 그러므로 본문에 "당신을 아는 것이 곧 영생이니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a]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길은 믿음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저 세상에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직접 대하여 알게 된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사귀는 삶을 사는 자들은 어느 정도 영생이 무엇인지를 경험함으로 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것이 하늘나라이라면 하늘나라는 그 얼마나 좋은 곳이겠는가"라고 말한다(시 17:15 을 참조).

[b]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앎이 영생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를 부르신 그 분을 알 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벧후 1:3). 그리고 이 방법이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는 방법이다. 기독교 신앙은 다음과 같은 방법에 의하여 우리에게 하늘 가는 길을 보여 준다.

첫째, 우리 존재의 창조자요 복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에게 우리를 인도하심으로써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하여 죽으셨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우리의 창조자로 아는 것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그를 우리의 소유자요, 통치자요, 은혜를 베푸는 자로 신뢰하는 것, 그를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으로 알고 그에게 우리 자신을 드리며 우리를 가장 아끼는 분으로 그에게 의지하며 우리의 최고의 목표로써 그를 찬양하는 것, "이것이 곧 영생이다." 

본문에서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가짜요 사기꾼인 이방이 거짓 신들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들의 품격으로부터까지 그를 구별하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들에 대해서는 "참 하나님이요 영생이시라"(요일 5:2)고 강조적으로 말씀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동등한 신앙적인 대상으로 제시되고 있다. 확실한 사실은 살아계신 마치하나님은 한 분 뿐이시며 우리가 숭배하는 신은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단순한 이름이나 개념에 불과한 분은 아니시다. 그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그와 경쟁자로 세워진 모든 것들은 허사요 거짓에 불과하다. 그에게 예배하는 것만이 오직 참된 종교이다.

둘째,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지시해 줌으로써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라 하였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해 그들이 알므로 영생이 그들에게 주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인간은 타락하였으므로 인간에게 다른 어떤 것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죄 아래 있으므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그를 의로우신 재판관으로 안다는 뜻이 되며, 우리가 그의 저주 아래 있는 것을 안다는 말밖에는 안 된다. 이러한 앎은 차라리 모르는 것보다 더 해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나아가 구속자로서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를 통해서만이 우리는 지금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영생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그에게 주어진 모든 자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다(6:39, 40 을 참조). 하나님과 또는 그리스도와 사귀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영생의 문턱에 이르는 것과 같다.

(2) 본문에서 그리스도는 지금까지 그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드린 것을 기억해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시라고 기도한다(4,5절). 

앞의 간구의 뜻은 이 세상에서 나를 영화롭게 하시라는 것이었고 본문(4,5절)의 뜻은 저 세상에서 나를 영화롭게 하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내가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이제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 보자.

①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서의 그의 생활을 회고하면서 무엇이 그의 위로가 되었는지를 말씀하신다. 그것은 "내가 당신을 영화롭게 하였고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었다"는 말씀 속에 나타나 있다(일을 완성시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한글개역과 다소 틀림:역자 주).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겪으신 가난과 수치를 불평하지 않으셨다. 실상 그의 지상에서의 삶은 그 어느 불행한 사람 이상으로 피곤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 사실을 무시하고 그가 그의 아버지를 위하여 하신 사업과 그 사업의 놀라운 진전을 회고함으로 그는 위로를 삼으신다. 그의 지상에서의 삶을 본문에 기록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가 이 땅에서 사업을 이루시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에게도 명예가 되는 일이었다. 그의 지상에서의 삶은 어느 모로 보나 그가 세상에 오신 목적에 완전 일치되었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a. 우리 주 예수는 그를 보내신 분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안락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선한 일을 하시며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해야 할 일을 주셨다. 그것은 포도원과 같은 세상에서의 일이었다. 그의 아버지께서 그를 이 일에 임명하셨고 또 그 일을 하는 데 도우셨다.

b. "그에게 주어진 일을" 그가 완성하셨다는 사실이다. 

현재로써는 그가 그의 사업의 최종 단계에까지 도달하지는 않으셨지만 지금까지 겪은 고난을 통하여 거의 완전에까지 이른 상태였으므로 "내가 이 일을 이루었노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일을 완성시킨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그는 이제 그의 일에 마지막 추진과정에 계셨고 그러므로 ‘텔레이오사스’또는 ‘에텔레이오사’(TR) - 즉 내가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그가 그의 사업의 구체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가장 완벽하고도 완전한 방법으로 수행하셨음을 의미한다.

c. 이 일을 완수함으로 그는 그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렸고 그를 찬양하였다. "그의 하신 일이 완전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인 동시에 구속자의 영광이다. 일을 시작하신 분은 아버지요 그 일을 이루신 분은 아들이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포기하였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이 일은 그에게 멸시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실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도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리이다"라고 말하실 수 있었다.

둘째, 그가 이 땅에서 사업을 이루시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다는 사실이 기록된 것은 "우리로 그의 본을 받아 뒤를 따르게 하려고" 모든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 주시려는 뜻이 있었다.

a.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정해 주신 일을 우리의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 

이 일을 우리의 능력에 따라 또 활동범위 안에서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각자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b.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아야만 한다. 

그가 인간들에게 주시고 그 대가를 바라시는 이 세상, 또한 우리에게 허용된 영원을 위한 준비 과정이요 시험 기간이기도 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만 한다.

c. 우리는 각자의 인생의 끝날까지 이 세상에서 견디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완성할 때까지 또 우리의 주인을 위한 고용기간이 끝날 때까지 결코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

셋째, 위의 사실이 기록된 것은 주님을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일 주님께서 그에게 하라고 주어진 일을 이루시었다면 그는 명실공히 구세주이신 것이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일을 중간에서 중단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의 일을 완성하신 그 분은 그리스도의 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안에서 그의 일을 이루실 것이다.

② 그가 어떠한 믿음으로 그의 앞에 있을 기쁨을 바라셨는가를 살펴 보자. 

이러한 믿음이 있었으므로 그는 "아버지여 지금도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5절). 이 기쁨에 그는 소망을 두었고 그에게 이 소망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첫째, 그가 본문에서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자. 

그는 1절에서처럼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을 헛수고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도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셨다"(마 26:44). 그러나 같은 기도였으나 "더욱 열심히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그에게 약속하셨고 주님도 확실히 믿고 있었지만 그를 위하여 기도하셔야만 했던 것이다. 

약속은 기도를 하지 말라고 주어진 것은 아니다. 약속은 우리가 무엇을 바라야 되는지를 지시해 주며 또 우리의 소망의 근거가 된다. 그가 올리움을 받으사 누리신 모든 영예, 권세, 기쁨, 이 모든 것을 포함하여 본문에서는 그리스도가 영화롭게 되셨다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영화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a.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영광이다. 

주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로 끝나지 않는다. 나아가 "당신 자신의 영화로써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신다. 그의 아버지와 함께 있으시겠다는 말은 곧 낙원에 거하겠다는 말씀이요 하늘나라를 칭하는 것이다(잠 8:30; 단 7:13; 히 8:1 참조). 높임을 받으신 구속자의  영광은 아버지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곳인 휘장 안에서 드러나리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천상 세계에서의 찬양은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에게" 함께 드리워지며(계 5:13)지상 세계에서 은혜와 평화를 간구하는 기도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동시에 드려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는 아들을 자신의 영화로 영화롭게 하셨다.

b. 이 영화는 그가 "창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영화"이다. 이 말씀에 의하여 다음의 사실이 분명하여진다.

(a) 하나님과 동격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있으셨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신앙하는 대상은 "만물이 있기 전에 계셨고 또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비롯된"분에 대한 것이다.

(b)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그의 영화는 그가 아버지와 함께 존재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 전부터였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부터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이셨기 때문이다(히 1:3). 

하나님의 세계 창조가 그의 영광에 새로운 것을 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영광을 확인한 데 불과하였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업을 착수하신 것은 자신이 영광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영화로우셨기 때문이다. 그가 구속 사업을 하신 것은 오직 우리가 영광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c)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한 육신을 입으신 상태에서는 스스로 이 영광을 포기하시고 그것을 휘장으로 덮어 버리시었다. 

아직 그는 하나님이셨지만 그는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었다. 그가 일시적으로 이 영광을 내놓으신 것은 그의 아버지가 정하신 대로 그의 사업을 철저히 이루겠다고 하신 맹세 때문이었다.

(d) 그는 높임을 받으신 상태에 이르시자 이 영광을 되찾으시고 전에 입으시던 빛의 옷을 다시 입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는 사업을 끝마치신 후 하나님에게 하신 reposcere plgnus - 즉 맹세에서 자유로와지셨다. 그러므로 그는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 요구하신다. 그는 그의 인간적인 본성까지도 최고의 영예로운 상태에 이르게 하시라고 기도하신다. 그의 몸은 영광된 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신격에만 있었던 영광이 중재자요 임마누엘이며 신인(神人 God-man)이신 분의 인격에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주님은 이 세상의 군왕들과 귀인들과 더불어 영화롭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모두 아시며 그에게 좋으신 것을 택할 수 있었다. 그랬으므로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을 합치더라도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저 세상의 영광을 택하셨다. 그는 사탄이 그에게 "이 세상 나라와 이 세상 나라의 영광을 제공하려 하였을 때" 그것을 경멸하였다. 오히려 그는 저 세상의 영광을 더욱 담대하게 선포하였다. "우리도 이 마음을 품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는 이렇게 기도하신다. "여호와여 이 세상의 영광은 당신이 주고자 하시는 자들에게 주소서. 그러나 장차 온 세상에서 내가 찾이해야 할 몫의 영광은 내게 주소서. 내가 인간들에게 멸시를 당하오나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아닙니다. 다만 아버지여 아버지의 영화로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둘째, 그가 무엇을 근거로 간구하셨는가 본문에서 살펴 보자. 그것은 "내가 당신을 영화롭게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생각하여 "나를 영화롭게 해달라"고 하신다.

a. 그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으니 그를 영화롭게 하셔야 한다는 말씀은 공평성과 정당성을 띤 주장이다. 

예수께서 13장32절에서 옳게 보신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다면 하나님이 주님을 영광되게 하셔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높이움을 받은 때에 있을 온갖 영광을 바르게 평가하셨다. 이러한 무한한 가치를 볼 수 있었으므로 그리스도는 서슴없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실 수 있었다. 

아들이 입은 치욕으로 인하여 아버지가 영광을 입으셨다면 아들도 거시안적 입장에서 볼 때 그가 받으셨던 치욕으로 인하여 그의 영광에 손상을 입을 수 없으시리란 것은 당연한 일이다.

b. 위의 사실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예약에 의한 것이었다. 만일 아들이 "자기를 죄를 위한 제물로 드리신다면" 그가 강한 자와 전리품을 나누고"(사 53:10, 12) "나라가 그의 것이 된다는 것이 계약되어 있었다. 

그는 고통 가운데서도 이 사실을 볼 눈이 있었고 그러므로 여기에 자신을 의지하였다. "그가 십자가를 견디신 것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높임을 받으신 상태에 지금 그는 있으시면서도 아직도 그의 높임이 완성되기를 기다리신다. 그가 이렇게 바라실 수 있는 것은 그가 그의 사업을 이루셨기 때문이다(히 10:13).

c. 위의 사실은 아버지께서 그가 이루신 일을 기꺼이 받으셨고 시인하셨다는 가장 뛰어난 증거였다. 그리스도가 영광 받으심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만족하셨음을 알게 되었고, 또 만족을 느낀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예수를 사랑하는 아들로 기꺼이 받으셨다는 참된 증거라 하겠다.

d. 우리는 위의 사실을 통하여 다음의 사실을 배우게 된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라고 명하신 일을 끝까지 해내는 자들만이 그들이 저 세상에 이르게 되면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영광을 바로 본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우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은 우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요구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영생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물로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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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중재 기도(1)(요 17:6-10)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신 후 그리스도는 다음 그에게 속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신다. 본문에서 그는 일일이 그들의 이름을 열거하시지는 않았으나 그들 하나 하나의 이름까지 그는 아시고 계셨다(시공을 초월하여 그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의미하고 있음:역자 주). 이제 본문의 내용을 고찰해 보자.

Ⅰ. 그가 위하여 기도하시지 않은 것(9절). 

그는 본문에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JC의 것으로 선택된 자들을 대적하는 바, 무가치한 영적 쭉정이더미에 속한 자들] 위함이 아니라"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기도하시지 않으셨던 무리들에게 속한 세상이 있음을 기억하자. 여기서 세상이라 함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인류가 거하는 세계는 아니었다(21절에 보면 그는 바로 인류의 거처로써의 세계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이르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말이로소이다" 하시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유대인들과 구별한 이방인들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선택받은 자들을 대적하는 무리의 세상을 말한다. 

세상을 타작 마당에 있는 아직 바람에 불리지 않은 곡식 더미로 간주하사 하나님은 이를 사랑하시며 이 세상에도 축복된 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속한 자들을 완전히 아시며" 세상에서 그에게 주어진 자들을 특별히 살피시고 그들을 추려내신다. 그 다음 남은 것, 곧 제외되고 무가치한 쭉정이 더미를 여기서 세상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지도 않으시며 또 이들을 위해 죽으신 것도 아니다. 그는 이들을 포기하신다. "이들은 바람에 불려 가버릴 것들이다." 이들을 본문에서 세상이라 칭하셨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 세상의 영에 의하여 지배를 받으며 이 세상에서 그들의 몫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하여 그리스도는 기도하시지 않는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용서하시라는 과원지기의 청이 있듯이 그들 대신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그가 중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가 없을 때 그는 위하여 기도하시지 않는다. 그가 본문의 기도에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지 않는 것은 그들이 축복에 대한 분깃이나 기업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저주하였듯이 내가 세상을 저주하노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다만 그들을 위하여 내가 기도하지 않노라고만 하신다. 내가 그들을 제 마음대로 살게 내버려 두시겠다고 하신다. 그들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위대한 대제사장의 마음판에도 제외된 것이다. 

어린 양에게 인식되지 못한 자들은 예레미야 7장 16절에서 예언자가 위하여 기도해 주기를 거절한 사람들의 경우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비참한 것이다. 누가 선택 받았는지 또 제외 당하였는지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는 것이다"(딤전 2:1, 4). 생명이 있는 한 소망도 있고 기도할 여지는 남아 있는 것이다(삼상 12:23 참조).

Ⅱ. 그가 위하여 기도한 사람들. 그는 천사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것이 아니고 바로 인간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1.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이들은 우선적으로 그와 함께 중생에 들어간 제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의 범위가 더 넓게 적용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는, 같은 주님 아래 모여든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6, 8절).

2. 그는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신다(20절). 

이들은 현재 그를 믿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미 전에 그의 오심을 믿고 기다리다 죽은 사람들 즉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 모두에게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Ⅲ. 그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그가 그들을 아버지에게 부탁하고 추천할 수 있었던 근거. 이것은 다음의 다섯 가지를 들 수 있겠다.

1. 그가 그들에 관하여 맡으신 책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다"(6절) 하였고 9절에 다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의 뜻은 이러하다. "아버지여 내가 지금 위하여 기도하는 자들은 당신이 내게 맡기신 사람들이요, 내가 그들을 위해 간구한 것은 당신이 그들을 내게 맡기신 책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1)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자들은 먼저 당시의 제자들을 의미하고 있다. 

제자들은 주님이 세상에 있는 동안 그에게 교육받도록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생도들이며 그가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에는 그 대신 활약을 할 대행자들이다. 그들은 그의 가르침을 배울 자들로 그에게 주어졌고 그의 생애와 기적의 증인이 되며 그의 은혜와 사랑의 증거자로 주어진 자들이었다. 또 이들은 그의 복음의 반포자로 그의 교회의 설립자로 되기 위하여 그에게 주어진 자들이었다. 그들이 그를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숨은 결단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실상 그들이 그를 따른 것은 자신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사 그에게 주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한 선물로 주신 사도직과 목사직은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선물이었던 것이다. 율법 시대에 레위 제사직이 먼저 레위 자손이 아닌 아론에게 주어졌듯이(민 3:9)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대제사장이신) 주님에게는 처음에 사도직, 다음에는 모든 시대에 존재하게 된 목사직을 주셨던 것이다. 이들은 주님의 직책을 대신하며 모든 회중을 책임지고 성막(곧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하여 선택된 것이었다(엡 4:8; 시 68:18 참조).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선물을 받으셨다. 즉 그것을 사람들에게 주시기 위해서였다. 이 사실은 복음 사역을 명예롭게 해 주며 경시당해 온 복음 사역직을 권위있게 하여 준다. 또한 이 사실은 복음 사역자들이 주님이 그의 직책을 완수하셨듯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자기 자신들을 드릴 강력한 책임을 부여한다.

(2) 그러나 이 말씀은 모든 선택된 자들에게 확대 적용된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 이르기를 그들도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자라고 하였기 때문이다.(6:37, 39). 그는 자주 그가 구원한 자들은 그의 몫으로 그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그의 보호를 받도록 의탁되어졌고 그들은 그에게 기대를 걸었다. 또한 그들에 관하여 그는 계명을 받으셨다. 그는 본문에서 다음 사실을 보여 주신다.

①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주실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주시지 않았다. 선택된 자 곧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자들은 세 가지 점에서 하나님의 것이다.

첫째, 그들은 피조물이요 그들의 생명과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영광된 그릇들로 주어지기 전 그들은 토기장이의 손에 들린 진흙덩이와 같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로움에 의해서 그의 영광을 위하여 가장 적합한 것으로 여겨져 구분된 것이다.

둘째, 그들은 죄인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명과 삶이 그에게 저당당하고 말았다. 구원하라고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자들은 타락한 인류 가운데 남은 자들이었다. 그들이 자비를 입어 건짐을 받기 전에 그들은 정의에 의해 희생당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또한 그들이 구세주에게 의탁되기 전에 형리에게 넘겨지도록 정해져 있었다.

셋째, 그들은 선택된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과 삶은 그를 위하여 계획된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대리자이신 그리스도에게 이양된 것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다시 주장하신다. 즉 "당신이 내게 주신 것은 사람은 누구나 다 당신에게 속한 것이니이다"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중재자로서의 그의 직능에 관계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본문에서는 특별히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사람들만 뜻하고 있다. 즉 다음과 같은 뜻의 말씀이다. "그들은 당신의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는 자연의 하나님이신 당신께 속하여 있으며 그들의 안녕은 은혜의 하나님이신 당신께 속하여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여 그들 모두가 당신을 섬기도록 그들을 당신에게로 인도하나이다."

② 아버지께서는 주실 권리를 가지고 있으시므로 그들을 아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양을 보호하기 위하여 목자에게 맡기듯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의사에게 맡기듯이, 어린이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교사에게 맡기듯이, "당신이 그들을 내게 주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아들에게 그의 몫을 넘겨주셨다. 고로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였다(히 2:13).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넘져졌다.

첫째, 은총에 의하여 선택된 자가 파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한 명의 어린 소자 하나일지라도 멸망당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을 맡길 수 있는 분은 충분한 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능력이있는 분이어야 했다. 즉 선택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둘째, 그리스도의 사업이 열매 없는 결과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씨앗으로 그에게 주어졌다. 그는 씨앗 곧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결과를 보고 만족히 여기셨다"(사 53:10, 11). 그 씨앗은 그가 "헛되이 또 무익하게 함을 다하였고 피를 흘린 것이 아님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사 49:4).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주여 내게 주신 은총을 거두지 마시고 내게 주신 위로로 늘 머물게 하소서. 왜냐하면 이 은총과 위로는 당신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간구해야 한다.

2. 그가 그들을 취하여 가르치시려는 관심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에(6절)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나타내었나이다"라고 하였고, 또(8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다"고 하셨다. 좀 더 상세하게 고찰하자.

(1)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숨은 위대한 계획.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타나내고 그를 선포하려는 것이었다(1:18). 또한 무지한 자를 깨우치며 하나님에 관하여 무지몽매한 오판자들을 교정해 주시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더욱 사랑을 받으시며 숭배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2) 이 사업에 대한 그리스도의 성실한 수행. 

그러므로 그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그의 충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나타난다.

① 그의 교훈의 진실성에서. 

그가 전한 교훈은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훈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구속 사건을 인간의 삶에 있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말씀"도 주셨다. 이 말씀은 아버지로부터 그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메시지를 전함에 있어서 교역자들은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② 그의 가르침의 경향에서. 

그의 교훈은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 주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구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행위와 말씀을 통하여 그의 아버지를 높이는 것을 목적하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인간들의 영혼에 나타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특권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아버지를 아는 자는 한 사람도 없으나 다만 아들이 그에게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다"고 하였다(마 11:27) (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역자 주). 그만이 아버지를 사귀어 아시며 따라서 그만이 아버지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만이 인간들의 영혼에 접하실 수 있고 그러기에 그만이 인간들의 마음을 열어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이다(모세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신 32:2)교역자는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할 수는 있으나" 그 이름을 나타내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시된다. 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해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자신을 나타내신다. 교역자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어 음식이나 보화처럼 우리 속에 간직하게 하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이시다.

둘째, 조만간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주어진 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낼 것이요, 그들에게 그의 말씀을 주사 그들의 새로운 출생의 씨앗이 되게 하시며 그들의 영역 생활을 지탱시키시며 영원한 축복의 예표가 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3. 그들에 대한 그의 보살핌의 좋은 결과와 또한 그가 그들과 함께 맛본 고통을 들어 호소하신다. 

그러므로 본문에(6절)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하였고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7절) 하였고 "저희가 아버지의 말씀을 받았나이다"(8절)라고 하셨다.

또한 제자들은 말씀을 받아 간직하고 그 말씀을 수긍하였으며 거기에 만족하였고 "내가 아버지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라고 하셨다. 이제 그 내용을 고찰해 보자.

(1)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그에게 주어진 자"들 가운데서 이루어논 성과. 그것은 다음 몇 가지 점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① "땅이 그 씨앗을 받아들이고 흙이 비를 흡수하듯이 그들이 내가 전한 말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경청하였고 그 말씀의 의미를 어느 정도까지는 깨달았으며 또 그 말씀에 감화를 받았다. 그들은 그 말씀에서 받은 기억을 깊이 간직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말씀은 "인상 깊이 남아 있을 말씀"이었다.

②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고 계속 말씀 안에 거하며 말씀대로 수행하였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계명은 복종하는 자만이 간직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계명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스스로 말씀의 준행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위임된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 의하여 말씀은 모든 시대에 걸쳐 각처에 전달되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③ "저희는 그 말씀을 이해하였고 무슨 이유 때문에 그들이 그 말씀을 받아 간직해야 하는지를 잘 깨달았습니다. 또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가 와서 이루려고 한 거룩한 신앙의 참 창시자이심을 깨달았으며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모든 임무와 권능, 성령의 모든 은사, 모든 성령의 은사와 위로, 하나님이 한 량 없이 그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고 그의 지혜에 의하여 고안되었으며 그의 뜻에 의하여 약속되었고 그의 은총에 의하여 설계된 것이었다. 

이는 인간을 구원하시므로 자신이 영광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함에 있어서 그리스도 자신, 그의 존재의 모든 것과 그가 지니신 모든 것, 그가 말씀했고 행하셨던 모든 것, 또 지금 그가 행하시며 앞으로 하고자 하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만족을 주는 사실임을 기억하자(고전 1:3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중재하심에 우리의 영혼을 의탁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에서 비롯되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의롭게 하심을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만족해야 할 것이요, 또 그가 베푸시는 은혜라면 우리는 그 은혜에 의하여 성별될 수 있는 것이다.

④ 그들은 그 말씀에 대하여 충성의 서명을 하였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저희가 참으로 알기 때문이었다"(8절).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자.

첫째, 그들이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말씀이 진리에 속한 줄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지식적인 면으로는 무식하고 결함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그들을 잘 아시고 계시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믿을 수 있도록 말씀을 잘 납득시키셨다.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는 완전히 알 수 없는 것도 그리스도께서 도와 주시면 확실히 알 수 있으리라는 것을 기억하자. 

또한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도 그 속성을 상세하게 묘사하지는 못할지라도 그것의 존재를 확실히 알 수는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면 비록 보지는 못한 것이라 할지라도 확실히 또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믿음의 내용.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으며 그 인격에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하나님이 그를 보내셨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는 직능으로는 영원하신 왕의 대사이시다. 

즉, 기독교 신앙도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동등한 권위에서 출발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은 하나님의 진리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그의 모든 계명을 하나님의 규례로 여겨 복종해야 하며 그가 하신 모든 약속은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의 이러한 모습을 어떻게 보시고 계시는가를 살펴 보자.

①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제자들에게 좋은 성과를 끼치게 된 사실을 기쁨으로 여기시고 말씀하신다. 

그의 제자들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이 그를 수 없이 괴롭혔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변함없는 그에 대한 추종과 점진적인 향상 및 결국 이루어 놓은 위대한 성취가 그의 기쁨이 되었다. 

그리스도는 그의 생도들이 가르침에 숙달되는 것을 기뻐하시는 스승이시다. 그는 그들의 신앙의 진실성을 높이 평가하셨고 그들의 약점을 너그러이 용납하셨다. 

우리는 그가 우리로 만족스러운 성장이 있게 하시며 그도 그 성장의 결과를 대단히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까닭에 그는 자기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격려하며 서로 우애를 가지도록 가르치시는 것이다.

② 그는 제자들에게 좋은 성과를 끼친 사실을 들어 아버지께 그들을 위해 간청하신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으며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을 아버지에게 드렸다는 것을 들어 간청한다. 은혜를 받아 거기에 부응하는 개선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더 큰 은혜를 간청하는데 좋은 이유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가진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주라"는 것이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고 그를 믿는 자들이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추천하게 하되 그들을 그의 아버지에게 의뢰하도록 간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4. 그는 그들에 대해 아버지 자신의 관심에 호소한다(9절). 

그러므로 본문에서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는 것은 저희가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신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 쌍방의 공동 관심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내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요 당신의 것이 나의 것이라"는 말씀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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