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2.1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마17.변화산의JC변형=영광스러운왕의대관식.아버지와하나이신JC_Q믿음_그무한능력.기도와금식_그능력
첨부파일 :

##진실로(하나님의 진리말씀과 하나되어...assuredly and, most solemnly)...영(심령, 내적 자아로)과 진리로(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대로) ...really and truely 

##전파된 복음, 곧 믿음의 말씀<the word of faith :: 그리스도께서 구주시며(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으로서의 권능, 주권, 위엄을 가지신 분임을 깨달아 인식하고 시인함) 하나님이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선포된 말씀>을 귀기울여 들음으로써(hear) 바로 그대로 마음에 믿고(believe and trust in : ) <그리스도 예수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되심과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곧 마음에 믿고 구주로 영접한 바 입으로 고백하여 시인하면> 구원을<영생에 이르는 구원> 받으리라.

---------------

::: 신자의 믿음의 상승, 증강 단계 :: 1>[도우시는] 주님을 신뢰, 앙망, 의지하는 믿음 :: belief [ :: believe (trust) in, rely on, cling(adhere) to God]...하나님을 앙망하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주 이름 불러 하나됨 그 안으로 믿어들어감의 신뢰/앙망하는 믿음 ==>2>[산을 옮기는, 발휘되는] 하나님의 전능한 믿음 :: faith, 내주하시는 하나님이 친히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믿음(하나님의 전능한 믿음 = Faith....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신자안에서 찾으시는 믿음이요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산을 옮기는 믿음 faith이다) :: 이를 위해 기도와 금식 통해 <전존재, 목숨 걸고> 주님을 추구하라 하심!!

-----------[관련 성구..개역개정/AMP]-------

[마17:20]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 20 He answered, “Because of your little faith [your lack of trust and confidence in the power of God]; for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c]if you have [living] faith the size of a mustard seed, you will say to this mountain, ‘Move from here to there,’ and [if it is God’s will] it will move; and nothing will be impossible for you. 

[요4:23-24]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3. But a time is coming and is already her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from the heart, the inner self] and in truth; for the Father seeks such people to be His worshipers. *24.  God is spirit [the Source of life, yet invisible to mankind], and those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in spirit and truth.” 

[요5:24, 25]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4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the person who hears My word [the one who heeds My message], and believes and trusts in Him who sent Me, has (possesses now) eternal life [that is, eternal life actually begins—the believer is transformed], and does not come into judgment and condemnation, but has passed [over] from death into life.  *25.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a time is coming and is [here] now, when the dead wi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ose who hear it will live.

[롬10:8-15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8 But what does it say? “The word is near you,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that is, the word [the message, the basis] of faith which we preach—  *9.  because if you acknowledge and confess with your mouth that Jesus is Lord [recognizing His power, authority, and majesty as God], and believe in your hear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you will be saved. *10.  For with the heart a person believes [in Christ as Savior] resulting in his justification [that is, being made righteous—being freed of the guilt of sin and made acceptable to God]; and with the mouth he acknowledges and confesses [his faith openly], resulting in and confirming [his] salvation. *11.  For the Scripture says, “Whoever believes in Him [whoever adheres to, trusts in, and relies on Him] will not be disappointed [in his expectations].” *12. For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Jew and Gentile; for the same Lord is Lord over all [of us], and [He is] abounding in riches (blessings) for all who call on Him [in faith and prayer]. *13.  For “whoever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in prayer] will be saved.” *14.  But how will people call on Him in whom they have not believed? And how will they believe in Him of whom they have not heard? And how will they hear without a preacher (messenger)? *15. And how will they preach unless they are commissioned and sent [for that purpose]? Just as it is written and forever remains written, “How beautiful are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 of good things!”



개역개정]마17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시다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다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  (없음)

===죽음과 부활을 다시 이르시다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성전세를 내시다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17장 (개요)

내용별로 살펴보면,

Ⅰ. 화려하고 영광스럽게 변형되신 그리스도(1-13).

Ⅱ. 능력과 은총으로 어린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어쫓으신 그리스도(14-21).

Ⅲ. 가난하시고 겸손하신 그리스도.

1. 자신의 고난을 예고하심(22, 23).

2. 세금을 지불하심(24-27).

여기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의 빛을 갚아 주시고 사망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멸하여 파괴시키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다. 이와 같이 본 장에는 놀라우리 만큼 잘 짜여진 그리스도의 은혜스러우신 의도가 몇 가지로 언급되어 있다.

=========

그리스도께서 변형되심(마 17:1-13)

여기에는 그리스도께서 변형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머지않아 "인자가 왕권을 가지고 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공관복음의 세 저자들은 모두 이 변형의 사건을 그 약속의 말씀과 연결을 짓고 있다. 

마치 그리스도의 변형은 그리스도의 나라의 특별한 사람과 열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요, 또한 그의 나라의 광채와 사랑도 그의 택함 받은 거룩한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 

베드로는 이 변형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벧후 1:16)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변형은 이러한 서언(전제)에 의해 적절히 소개된 그의 능력의 발산이요, 그의 오심에 대한 귀중한 암시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비천하신 가운데 계셨을 때, 비록 그의 신분은 주로 굴욕과 고통의 신분이었지만, 그의 영광의 신분이 그 속에서조차 조금씩 드러났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고난 가운데서도 더욱 용기를 얻을 수 있게 하였고 또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실족하지 않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탄생과 세례 받으심, 시험, 그리고 그의 죽으심은 그의 겸손(비천)하심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실례들이었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각각 어떤 영광의 신호와 천국의 미소를 동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겸손하신 그의 일련(series)의 공적인 사역은 바로 이곳 변화산, 그 공적인 사역의 한가운데에서 그의 영광을 발견하는 데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가 하늘에 계셨을 때 지금과 같이 내려오신 것과 같이, 그가 지상에 계셨을 때도 [하늘에] 올라가실 수가 있었다.

이제 그리스도의 변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Ⅰ. 여기에 제시된 그의 변형의 배경(1절).

1. 때.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과 엄숙한 대화를 나누신지(마 16:21). "엿새 후"이다. 

누가는 "이 말씀하신 후 8일쯤 되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만 6일을 말하며, 7일째 밤이 되면 8일을 말한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변형되시기 전 6일 동안 무엇을 말씀하시고 행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이와 같이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하늘이 반 시 동안 고요하였다"(계 8:1)는 것이다. [기억하라!!]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위하여 아무 일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때에조차" 머지않아 특별한 일을 행하시리라는 것을 기대해야만 한다.

2. 장소. "따로 떨어진 어떤 높은 산"이었다. [갈릴리호수 남서편 저지대 16km위치,588m높이 다볼산으로 생각함] 그리스도께서 산을 택하신 이유는,

(1) 은밀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는 따로 산에 가셨다. 

왜냐하면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기우지 못하지만, 산 위에 있는 두 세 사람은 쉽게 발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도처는 대개 산에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변형되시기 위하여 한적한 장소를 택하신 것은 그의 모습이 영광 중에 공개적으로 나타나시는 것은 그의 현재의 신분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심으로써 그는 그의 겸손을 나타내려고 하셨으며, 또한 우리들에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 있어서 은밀함을 가지는 것이 더욱 합당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교통을 가지려는 자들은 이 세상과의 교제나 사업에 종종 물러나야만 한다. 

그들은 혼자 있을 때 보다 덜 외로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2) 아래에 있는 저속한 것들보다 높은 곳에 있는 고상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하나님과 더불어 변형되는 교제를 맺으려고 하는 자는 세상에서 물러나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마음을 들어 올려서 "위에 것을 찾아야만"한다. 그는 "이리로 올라 오라"고 부르신다(계 4:1).

3. 그 변형의 증인들. 그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갔다.

(1) 그는 세 사람, 즉 그들이 본 것을 증거 하는 데 필요한 완전수의 사람을 데리고 가셨다. 

왜냐하면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할 수"있기 때문이다.(역주:마 18:16).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모습을 분명히 나타내셨지만 너무 대중적으로 나타내지는 않으셨다. 

"모든 백성에게 나타내시지 않고 미리 택하신 증인들에게 나타내신(행 10:41) 것은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로 하여금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역주:요 20:29).

(2) 그가 이 세 사람을 택하신 것은 그들이 제자들 중에서 가장 주요한 제자들이었고, 또한 다윗의 자손이 되기에 가장 합당한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은사와 은혜 면에서 뛰어났던 것 같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었으며, 그의 은밀한 생활의 증인들이 되도록 선택함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도 그와 함께 있었다(막 5:37). 

그들은 후에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그의 고민에 대해 증인이 되어야만 했으며, 또한 이 변형의 사건은 그들로 하여금 그 일을 준비케 하도록 하기 위해 행해졌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은 그와 함께 당하는 고난을 위한 좋은 준비가 된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것(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들은 저 세상에서 그의 영광을 보기 위한 준비가 된다. 

바울은 많은 괴로움을 당하였지만 동시에 많은 계시를 받았다.

Ⅱ. 그 변형의 방법(2절). "저희 앞에서 변형 되사" 

그의 육신의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그의 외형과 겉모습은 크게 달라지셨다. 

그는 영(a spirit)으로 변화되시지는 않으셨다. 다만 연약하고 수치스럽게 나타나셨던 그의 육신이 지금은 능력과 영광 속에 나타나신 것뿐이다. 

그는 "변형되셨다"(metamorfovw). 즉 "그의 모양이 달라지신 것이다." 

세속적인 시인들은 변형에 대한 이야기, 특히 그들의 잡신들의 변형에 대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세상을 즐겁게 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들의 잡신들을 모욕하고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들로써 모두가 거짓되고 어리석은 것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변형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쫓은 것이 아니요, 우리가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고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시다. 그러나 그가 육신 가운데 계셨을 때는 "종의 형상"(morfh;n douvlou) 을 취하셨다(빌 2:7). 

그는 그의 신격의 영광을 감추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그의 변형 가운데서 그 베일을 벗기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morfh'/ qeou')나타나셨으며(빌 2:6), 또한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조금이나마 보여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형체를 바꾸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가 선포하는 위대한 진리는 바로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요일 1:5), "빛에 거하시며"(딤전 6:16), "빛을 입으신다(시 104:2)"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내시려 할 때에 그는 "빛"으로 나타내셨다. 

그 빛은 모든 보이는 것들 중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요, 창조사역 중 첫 번째 피조물이요, 영원하신 성부를 가장 비슷하게 닮고 있다. 

그리스도는 "빛"이시다. 그가 세상에 계셨을 때 그는 "어두움 속에서 빛을 발견하셨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요 1:5, 10). 

그러나 이때에 그 빛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였다.

그의 변형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1. "그의 얼굴은 해같이 빛났다." 

얼굴은 몸의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얼굴로 사람을 알 수 있다(또한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얼굴을 보고 누구인지 알게 된다-역주). 

그러한 광채가 그의 얼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에 자신의 얼굴을 "수치와 침 뱉음에서 숨기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능력을 행하실 때, 그의 얼굴은 해와 같이 선명하고 찬란하게 빛났다. 왜냐하면 그는 의의 태양이시요, 세상의 빛이시기 때문이다. 

모세의 얼굴은 되받아 비추는 달빛과 같이 빛났지만, 그리스도의 얼굴은 본래적인 고유의 빛인 해와 같이 빛났다. 그런데 그 빛이 보다 더 영광스럽게 느껴진 것은 그 빛이 말하자면 검은 구름 뒤에서부터 갑자기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2.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의 모든 몸은 그의 얼굴과 같이 변하였다. 따라서 그의 옷의 구석구석에서 흘러나오는 광채들은 그를 더욱 희고 빛나게 해 주었다. 

모세의 얼굴의 광채는 매우 희미한 것이었기 때문에 얇은 수건으로도 쉽게 가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의 광채는 너무도 강하였기 때문에 그의 옷들도 빛나게 되었던 것이다.

Ⅲ. 변형의 동반자.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수천만의 그의 성도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그 강림의 모형으로써 지금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나타난 것이다"(3절).

여기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1. 영화롭게 된 성도들이 그를 수종들고 있는데,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등 세 사람이 "지상에서 증거하기"위해 있었던 것처럼 하늘에서부터 증거할 사람이 있어야만 했다. 

따라서 여기에 그리스도의 나라의 생생한 유사점이 있는데, "완전케 된 의로운 자들의 영혼들"이 이 나라에 소속된다.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은 멸망 받지 않고 다만 분리된 상태로 머물러 있다가 때가 이르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2. 여기 있는 두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인데, 그들은 그 당시에 가장 뛰어났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이 사십 주야를 금식했었으며, 그 밖의 이적들을 행하였고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떠날 때에도 유별했던 자들이었다. 

엘리야는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여 죽지 않았으며 또한 모세의 몸은 결코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몸은 썩지 않도록 잘 보존되었다가 지금의 모양으로 나타나게 되었는지 모른다. 유대인들은 모세와 엘리야를 기억하면서 존경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에 대하여 증거 하러 왔으며 또한 그에 관한 소식들을 천상 세계에 전하기 위하여 왔다. 그들로 말미암아 율법과 선지자들은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여겼으며, 그에 대하여 증거를 하였다.

모세와 엘리야는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제자들은 그들을 보았으며 또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제자들은 그들의 대화나 혹은 그리스도께서 알려 주신 교시에 의하여 그들이 모세와 엘리야임을 알게 되었다. 

영화롭게 된 성도들은 천국에서 서로를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께서는 축복 받은 성도들과 교제를 가지시며, 영화롭게 된 천국의 시민과는 누구와도 생소하게 대하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그의 선지자의 임무를 인침 받으셨기 때문에 이 두 위대한 선지자들이 그에게 자신들의 모든 영예와 인기를 양도함으로써 그를 수종 드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기"(히 1:2) 때문이다.

Ⅳ.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얻은 큰 기쁨과 만족. 

베드로는 평상시와 같이 나머지 제자들을 대표하여 말하였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베드로가 여기에서 나타내려고 한 것은,

1. 그들이 이 대화에서 얻은 즐거움이었다. 

"주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옵니다." 거칠고 불편하며, 황량하고 싸늘한 높은 산이라 할지라도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옵니다." 그는 자기 동료 제자들의 감정까지 말하고 있다. 여기 있는 것은 "나"에게만 좋을 뿐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좋사옵니다 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이 은총을 혼자만 독점하려고 욕심을 내지 않았으며, 기꺼이 그들도 이에 참석시키려 하였다. 그는 이것을 그리스도에게 말씀드렸다. 

경건하고 열심 있는 애정은 그 자체를 주 예수님 앞에 쏟아 놓기를 좋아한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영혼은 그에게 가서 이와 같이 말하기를 좋아한다. 즉, "주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이 말은 그들에게 이러한 은총을 허락하시는 그의 자비하심에 대한 감사의 뜻이 암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와 교제를 가지는 것은 기독자들의 큰 기쁨이 된다는 사실이다. 

주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은 그들이 거룩한 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좋게 여겨야만 한다. 그리스도가 계시는 이곳, 우리를 임명하여 데리고 온 "여기에"있는 것이 좋사옵니다. 조용히 물러나서 홀로 그리스도와 함께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시 27:4)여기에 있는 것이 좋사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세와 선지자와 더불어 의견을 교환하시는 것에 대해 듣거나 또는 율법의 모든 제도들과 선지자들의 모든 예언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가르쳐 주고 있으며, 또 어떻게 그 안에서 성취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유익한 일이다.

2. 거기에 계속적으로 머물러 있고 싶어하는 그들의 소원(4절). 

"여기에 초막 셋을 짓게 하소서." 여기에는 베드로가 다른 곳에서 많이 말했던 것처럼 그의 연약성과 선의(善意)가 섞여져 있으며, 신중함은 결여되어 있으나 간절히 소원하는 열심히 잘 나타나 있다.

(1) 그들은 천적(天的)인 일들과의 이러한 대화에 열심 하였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크게 만족하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믿음으로 "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자는 평생토록 주의 전에 거하기"를 소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성전에 박힌 못"(스 9:8)과 같이 항상 거기에 거주하는 것이 좋다. 여행하는 사람보다는 집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되어 거룩한 규칙 속에 거하는 것이 좋다. 

베드로는 이 산이 천막을 짓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거기에 천막을 지으려고 하였다. 

이는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세키나"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초막을 지었던 것과 같다. 

베드로가 그리스도와 모세, 엘리야를 위하여는 각각 초막을 짓겠다고 하였으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은 그가 지신과 자기 동료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만 그의 주님과 천국의 손님들만을 크게 존경하였음을 나타내어 준다.

그는 이러한 좋은 분들과 더불어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차가운 땅에 그냥 누워 자도 만족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주님의 머리 둘 곳만 있다고 하면, 그 자신은 아무렇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 그렇지만 이러한 열심은 그 자신의 연약함과 무지함을 크게 노출시켰다. 

모세와 엘리야에게 무슨 천막이 필요하겠는가? 그들은 축복 받은 세상에 속한 자들이었다. 그곳은 '굶주림도 없고 햇빛도 필요 없는 곳"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최근에 자신의 고난에 대해 예고하셨으며, 그의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것을 받으리라는 각오를 하도록 명령하셨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이러한 말씀을 잊고 있든지, 아니면 그것을 미리 막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벗어나 영광의 산에 초막을 짓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는 "주여, 그리마옵소서"라고 말을 함으로써 바로 며칠 전에 책망을 듣고서도 여전히 그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십자가 없는 면류관을 기대하는 경향이 선한 사람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이다. 

베드로는 아직 그가 싸워야 할 싸움을 다 싸우지도 않고,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마 20:21) 자기가 달려가야 할 길도 다 달려가지 않았으면서도 이것을 상급으로 꼭 붙잡으려고 했다. 

우리가 만일 이곳 지상에서 천국을 찾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목표에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그네나 순례자(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환경 가운데 있는 나그네요 순례자들이다)들이 집 짓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지속적인 도시를 기대하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

그렇지만 베드로의 합당치 못한 제안에는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즉 "그는 자기가 말하는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을"(눅 9:33) 뿐만 아니라 그는 그의 제안을 그리스도께서 지혜롭게 처리해 주시도록 전폭적으로 일임하였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위해 초막을 지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만 한다.

베드로가 말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그 영광이 사라지는 것이 그것에 대한 즉각적인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큰 일들을 약속한 자는 그들 자신의 경험에 의해 곧 잘못을 깨닫게 될 것이다.

Ⅴ.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님에게 주셨던 영광스러운 증거.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났을 때 그는 존귀와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로 받으셨다"(벧후 1:17). 

이는 마치 왕이 대관식 때에 왕의 제복을 입고 나타날 때 영광의 존칭이나 왕적인 칭호를 선포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큰 위로를 주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왕적인 칭호는 그의 중보직을 통하여 주어진다. 

따라서 그는 환상 가운데서 그의 보좌를 둘러싼 언약의 표인 무지개를 동반하고 나타나셨다(계 4:3). 

왜냐하면 그가 우리의 구속주가 되는 것이 그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늘로부터 온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그것은 어떻게 전달되었으며, 또한 어떤 방법으로 소개되었는가?

(1) 구름이 있었다. 

우리는 종종 구약에서 구름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visible)인 표적인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서 시내산에 강림하셨다(출 19:9). 또한 구름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다(출 34:5; 민 11:25). 

그는 구름 가운데 회막에 임재하셨고 후에는 성전에 임재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광중에 계신 곳에 성전이 있었으며, 또한 하나님은 거기에서 그 자신이 임재하고 계심을 나타내 보이셨다. 

우리는 구름의 신비로운 조화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하늘과 땅 사이의 많은 교제와 전달이 구름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구름에 의하여 수증기는 올라가며, 또한 비는 내려온다. 따라서 하나님은 "구름으로 그의 수레를 삼으신다"고 말해진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구름을 타시고 산에 내려 오셨다.

(2) 그것은 빛나는 구름이었다. 

율법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의 임재의 표적을 삼으신 것은 대개 두텁고 어둑컴컴한 구름이었다. 

그는 짙은 구름 가운데서 시내산에 강림하셨다(출 19:16). 그는 "먹물처럼 캄캄한 데 계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열왕기상 8장 12절을 보라. 

그러나 "우리가 이른 곳은 흑운과 흑암으로 덮인 산"이 아니라(히 12:18), 빛나는 구름으로 덮인 산이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는 둘 다 하나님의 임재의 표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구약 시대는 흑암과 공포와 속박의 시대인 반면에 신약 시대는 빛과 사랑과 자유의 시대였다.

(3) 구름은 그들을 가리웠다. 

이 구름은 그리스도의 눈부신 빛의 광채를 제자들을 위하여 막아 주었다. 구름이 아니었더라면 제자들은 도저히 그 빛의 위력을 감당해 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구름은 마치 모세가 그의 얼굴이 빛날 때 그의 얼굴을 가리워 준 수건과도 같았다. 

하나님은 자신을 그의 백성들에게 나타내실 때 그들의 신체적인 구조를 고려하신다. 이 구름과 그들의 눈과의 관계는 비유와 그들의 이해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비유는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것들에 의하여 영적인 일들을 전달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이러한 것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4)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그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구름 기둥 가운데서 말씀하셨다"(시 99:7). 

그런데 여기에서는 모세에 의해 율법이 전달될 때 있었던 것과 같은 뇌성이나 번개, 또는 나팔소리가 없었으며 다만 조용하고 작은 음성만이 들려왔다. 또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을 때와 같이 강한 바람이나 지진도 없었다(왕상 19:11, 12). 모세와 엘리야는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마지막 날에 그의 아들에 의해 우리들에게 말씀하셨던" 증인들이었다. 

이 음성은 이전의 영광보다는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들려왔다(벧후 1:17). 그 지극히 큰 영광은 비록 구름으로 가리웠지만, 거기에서 음성이 흘러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다(롬 10:17).

2. 하늘로부터 들려온 증거는 어떤 것이었는가? 

즉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1) 위대한 복음의 비밀이 계시됨.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말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과 똑 같은 것이었다(마 3:17). 또한 이 음성은 사람이 죄를 범하여 타락한 이래로 하늘로부터 지상에 전해졌던 소식들 중에서 최고의 소식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니"(고후 5:19)라고 위대한 교리와 취지를 함께 하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위대한 사람들이요 천구의 대표적인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은 단지 종들에 불과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 종들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는 않으셨다. 왜냐하면 모세는 경솔하게 말을 한 일이 있고, 엘리야는 감정에 이끌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은 언제나 그를 기뻐하셨다.

 모세와 엘리야는 종종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화목케 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모세는 위대한 대언자였고, 엘리야는 우대한 개혁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하시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대언은 모세의 것보다 훨씬 우세하며, 그의 개혁은 엘리야의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그리스도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난 음성과 동일한 내용을 반복한 이 음성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 왕에게 동일한 꿈을 꾸게 한 것이 곧 사실의 확실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던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하나님께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처럼 반복하여 말씀하신 것은 그가 틀림없이 그것을 이행하시겠다는 다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그 사실에 유의할 것을 고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세례 받으실 때 이러한 음성이 들려진 것은 그 때가 바로 그가 시험을 받으러 가시지 직전이었으며 또한 그의 공적인 사역이 시작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 말씀이 반복된 것은 그가 고난을 받으려는 바로 직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로부터 공관복음서는 그의 고난의 날 수를 계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지금부터는 비로소 전에 하지 않았던 말씀을 제자들에게 미리 들려주기 시작하셨다. 또한 그가 변형사건 기록 직후부터 바로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라고 기록되어 있다(눅 9:51). 

그러므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말씀이 그때 반복된 까닭은 그로 하여금 십자가의 두려움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또한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십자가의 거침돌에 대해 무장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고난이 넘치기 시작할 때 위로는 더욱 풍성하게 주어진다(고후 1:5).

(2) 복음이 요구하는 큰 의무. 

즉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유익을 얻는데 필요한 조건.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만을 좋아한다. 단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피상적으로 귀로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소용이없다!!....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너의 전존재의 중심인 영으로 그 말씀속의 성령, 곧 참생명을 영접하고 너의 모든 것 삼고 그로 인해 조성되며 영원한 일치됨 이루도록 하라 ). 

우리는 그를 경청하며, 그를 위대한 선지자요 선생으로 믿어야만 한다. 즉 위대한 왕이시요 입법가이신 그의 말씀을 듣고 또 그에 의하여 지배를 받아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그를 경청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뜻과 심정]을 알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들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날에 아들로만(아들에 의해서만)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들려온 이 음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이 구름 속에서 말씀되어진 것 같이 권위 있게 해 주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계시를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다만 그리스도 앙망함과 신뢰로 주와 연합하여 하나된 영으로 맏음으로 JC께 나아가라, JC를 신뢰함가운데 그의 이름 부르며 깨달음 얻기를 추구하는 자마다 말씀안의 성령께서 열어 알게 하여주신 그대로 행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이 선지자를 일으켜 세우리라"(신 18:18)는 예언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그리스도는 지금 영광 중에 나타나셨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우리는 그를 경청해야 할 이유를 더욱 깨닫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그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를 바라보지만 말고 그를 경청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던 그들의 시야는 즉시 구름에 의해 가리워져 버렸고 그들의 해야할 일은 오직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다. 

진정 JC를 믿는자들이란 진실로 그러하다, "우리는 들은 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하노라"(고후 5:7).

모세와 엘리야는 지금 그와 함께 있었다. 그들은 율법과 선지자들이다. 지금까지는 "그들에게 들을지어다"(눅 16:29)로 말해지고 있다. 

제자들은 주님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하여 초막을 지으려고 함으로써 그들과 그리스도를 동등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며, 아마도 제자들은 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며, 아마도 제자들은 그들이 말한 내용에 대해 알고 또 그것을 듣기를 몹시 갈망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보다 그들에게서 무엇인가를 더 듣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안 된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그것이면 족하다"고 말씀하셨다. 

즉, 모세나 엘리야가 아닌, 그리스도의 말을 들으라. 모세와 엘리야는 그곳에 있었지만, 이 말에 동의하는 듯 잠잠히 있었다. 그들은 반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세상에서 선지자로서의 인기를 아무리 얻었었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에게 전가되는 것을 기쁨으로 바라보았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일들 중에 뛰어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모세와 엘리야가 너희와 잠시동안만 머무른 것은 섭섭히 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말을 들으라. 그러면 너희는 그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Ⅵ. 이 음성을 듣고 제자들이 당한 두려움과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신 격려.

1. 제자들은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였다"(6절). 

너무도 강한 빛이 갑작스럽게 비추이면, 사람들은 그것에 놀라 제정신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에서 그를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이후로 인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현현을 대하게 될 때 이를 매우 두려워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에게 아무런 선한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으로 어떤 것을 듣기를 매우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은밀한 곳에서 맑은 날씨가 생겨날 때,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다"(욥 37:22)는 사실이다. 

주님의 음성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는가에 대하여 살펴 보라(시 29:4).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들을(말씀사역자들)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위협은 우리를 두렵게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는 풍성한 자비를 베풀어 그들을 일으켜 세우셨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영광과 영달을 얻으셨다고 해서 연약함으로 둘러싸인 자기 백성들에 대한 관심을 누그러뜨리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존귀의 신분을 가지고 계실 때에도 가장 비천한 참된 신자들을 동정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크게 위로를 주는 일이다. 

여기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1) 그는 어떤 일을 하셨는가?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셨다." 

그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두려움은 곧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붙잡아 주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의 마음은 곧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그와 같은 경우에 [직접] 그의 오른손을 요한과 다니엘에게 얹으셨었다.(계 1:17; 단 8:18; 10:18). 

그리스도께서 손을 대시면 흔히 병이 치료되었으나 여기에서는 힘을 북돋아 주고 용기를 주고 있다.

(2) 그는 어떤 것을 말씀하셨는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7절). 

여기에서 유의할 것...,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때 경외로 인한 두려움은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지만, 놀라움으로 인한 두려움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합당치 않은, 쓸데없는]두려움은 없애버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씀과 또한 이에 뒤따르는 그의 은혜의 능력으로 선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시며, 그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히신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도, 그 어느누구도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이 말은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이유 없는 두려움은 [이미 주께서 믿늦이들마다에게 주신 바 된 말씀을 기억하고 주님이름부르면서 의지하여!!] 우리가 거기에 굴복하여 엎드리지 말고 일어서서, 그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만 한다면 곧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제자들이 보고들은 것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그들은 두려워하기보다는 기뻐할 이유가 더 많았지만 아직도 그들에게는 이러한 경고가 필요하였던 것 같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는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오히려 힘을 내고 기뻐해야 할 때 놀라게 되는 일이 흔히 있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을 들으라"는 하늘로부터의 명령을 받고 난 후, 그리스도에게서 들은 첫 번째 말씀은 "두려워 말라"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심부름을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함이었는데, 이는 그들이 원수의 손에서 구출을 받음으로써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도록"하기 위한 것이다(눅 1:74, 75).

Ⅶ. 환상이 사라짐(8절). 

제자들은 몸을 일으켜 머리를 쳐들었다. 

그때 "제자들이 눈을 들어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 하더라."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져 버렸고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들은 없어지거나 감추어져 버렸다. 그들은 이 변형의 사건이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는 날이 되기를 바랐으며 또한 그들이 꿈에서 본 그의 외적인 화려함을 가지고 공적으로 나타나는 날이 외기를 고대하였다. 그들은 얼마나 실망하였는가를 살펴 보라. 

여기에서 유의할 것..., 이 세상에서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가지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가장 귀한 영광이나 기쁨은 이 세상에서 덧없이 사라지게 마련이요, 하나님과의 은밀하고 깊은 교제의 영광과 기쁨도 잠시동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항상 계속되는 잔치가 아니라 순간적인 연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신적인 은혜의 현현과 장래의 영광에 대한 약속을 확실히 볼 수 있는 은혜를 받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즉시로 사라지고 만다. 하나의 천국도 기대할 수 없는 자들이 [이 땅과 하늘, 곧]두 개의 천국을 기대한다는 것은 분수에 지나친 일이다. 지금 "그들은 예수 이외에는 아무도 보지를 못하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들은 예수 이외에는 아무도 보지를 못하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질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함께 머무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선지자들은 영원히 살지를 못한다"(슥 1:5). 우리는 목사들의 설교도 끝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히 13:8).

Ⅷ. 산을 내려왔을 때 그리스도와 제자들 간의 대화들(9-13). 

여기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1.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9절).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는 거룩한 산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를 가지고 또한 그 교제를 인하여 만족을 얻어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을 하게 되지만, 그곳은 우리가 항상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도성은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은, 우리 앞에는 [약속하신 바] 우리가 다시는 내려오지 않아도 될 영광과 기쁨의 산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제자들이 산을 내려올 때에 예수님도 함께 내려오셨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특히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가 예배를 마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때에 우리는 반드시 [떠나지도 버리지도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모시고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HS의 임재-내주하심으로써] 우리와 함께 계실 바로 그때에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난, 무시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2. 그들은 내려오면서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는 거룩한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우리가 종사하는 일에 합당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는 사실이다. 

덕을 세우는 데((EDIFICATION:: 사랑=자비, 곧 체휼-친절-온유함으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서 나오는 상호 위로와 격려는 주앞에 선 단독자로서 진리말씀안에서 참된 능력과 힘의 원천이신 JC를 바라보고 믿음을 발휘하여 동행하도록 서로서로 위로-격려하며, 일깨워 고양시킴으로써 모본이신 JC를 빼어닮도록,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까지 자라가도록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 필수적인 유익한 대화는 특별히 좋은 것이지만, 반대로 지저분한 대화는 다른 때보다 더욱 나쁜 것이 된다. ((모든 제자마다 그리스도께로 안내하는 표지판이요 작은 목자됨을 잊지말라!!))

(1)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이 환상을 당분간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고 분부하심(9절).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만일 그들이 그 변형의 사실을 널리 전파했다면, 그 신빙성은 지금 박두해 오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의해 곧 부서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변형에 대한 전파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 연기되면 그 사건과 그의 부활에 따르는 영광이 그것을 더욱 확실하게 뒷받침해 줄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는 자신을 현현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의 사역들이 충분한 설득력과 확실한 증거로써 나타나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역들을 짜임새 있게 배열하심으로써 서로가 보완하고 설명할 수 있게 하셨다. 매사는 적절한 때를 만나야 아름답게 되는 법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복음 왕국의 적절한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그 이전의 모든 사건은 예비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서론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변형의 사건이 부활보다 앞서 일어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부활 때까지는 증거로써 소개될 수 없는 것이다(그것은 벧후 1:16-18 에 의하여 많이 주장된 것처럼 보인다). 

부활로 말미암아 기독교 신앙은 확실한 것이 되었으며, 완전한 진리로 입증되었다. 그리스도의 때는 그 자신을 현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최상의 때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 때에 유의를 해야만 한다.

(2)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제자들이 이의를 제기함(10절).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엘리야가 그렇게 잠깐 머물다가 홀연히 가버린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율법은 우리들에게 메시야가 왕국을 세우기 바로 직전에 엘리야가 세상에 공공연하게 오리라고 가르치나이까? 모든 사람들이 고대하는 엘리야의 도래는 은밀해야만 합니까?"라고 그들은 주님께 말하였다. 

또한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즉 "메시야의 부활과 또한 그것과 더불어 있게 될 그의 왕국의 시작이 가까이 이르렀다고 한다면, 엘리야가 올 때에 우리가 기대하는 바 그 영광스런 서론과 서막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라고.

율법의 공적인 해석자들이었던 서기관들은, "보라,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말 4:5)의 성경 말씀을 따라 이러한 말을 하였다. 제자들이 한 말은 그 당시 서기관들의 말을 성경 말씀으로 여겼던 유대인들의 통상적인 말이었다. 

한편 오늘날 우리들도 교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들에게 전하여 준 말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교역자가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사람의 말로'(살전 2:13)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것...,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구약에서 들은 말씀과 조화시킬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에게 그것을 설명해 주시기를 고대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또한 유의할 것..., 우리가 성경의 난제들로 말미암아 고심을 하게 될 때 성령께서 우리의 이해력을 열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진리들을 잘 깨달아 알 수 있도록 그리스도에게 기도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3) 이 반대 질문에 대한 답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가르침을 구하라, 그러면 가르침을 주실 것이다.

① 그리스도께서 예언의 말씀을 인정하고 계시다(11절).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이 점에 있어서는 너희들의 말이 옳다." 

그리스도는 구약에 이미 예언된 말씀들을 변경하거나 무효로 만들기 위하여 오시지 않았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성경의 존엄과 권위를 훼손하거나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주께 여쭙는 자마다]  충분하고도 넉넉하게 오염과 오해의 화장을 제거하거나 벗겨낼 수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신약의 예언들은 참되고 선하며, 또한 우리는 그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지만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그것들을 그릇되게 해석하며, 그것에서 잘못된 추리를 하기도 한다.

엘리야는 장차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할 것이다. 이는 그가 와서 모든 일을 그 [타락]이전 상태로 회복시킨다는 말이 아니라(세례 요한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일을 성취시키리라는 뜻이다(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모든 일이란 그에 대해 기록된 모든 것과 엘리야가 올 것에 대한 모든 예언을 가리킨다. 세례 요한은 모든 것을 영적으로 회복하러 왔다. 즉 타락한 신앙을 부흥시키고 "아비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이키게 하려고"왔다. 이것이 곧 모든 일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요한은 모든 일들을 회복하기 위하여 회개를 전파하였다.

② 그리스도는 그 사실이 성취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오리라"고 말한 것은 참되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서기관들이 말할 수 없는 "엘리야가 이미 와있다"(12절)고 말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종종 성취되며, 그것이 이미 성취되었음에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감지하거나] 깨닫지 못하고 "그 약속이 어떻게 되었는가?"라고 묻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엘리야는 이미 와 있으되, 그들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약속된 엘리야요, 메시야의 선구자[선두주자,forerunner]인 것을 알지 못하였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비평하는 데만 분주하였기에, 시대의 징조를 [꿰뚫어 통찰하여]봄, 곧 성경이 성취되었음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설명하는 것은 그것을 적용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사실이다. 

태양(the SUN itself) 그 자체이신 그분이 "세상에 왔으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계명성(새벽별.morning star..역주:세례 요한)을 세상이 알아보지 못한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임의로 그를 대우하였다." 만일 그들이 알았더라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거나 요한을 목베지 않았을 것이다(고전 2:8). 그들은 세례 요한을 조롱하고 핍박했으며, 마침내는 그를 죽였다. 요한을 죽인 것은 헤롯의 소행이었지만, 본문에 보면 믿음 없는 유대인 전체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다. 특히 서기관들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이 요한을 처형할 수는 없었지만, 헤롯의 소행을 기쁘게 여겼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하여 말씀하시기를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고 하셨다. 엘리야(여기서는 세례 요한)가 그를 경건되게 기다리는 척하던 사람들에 의해 욕을 보고 죽임을 당하였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메시야 자신이 그와 같은 대우를 받게 되리라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못된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의 고난은 다른 모든 고난의 생소함을 완전히 제거해 버린다는 사실이다(요 15:8). 

그들은 세례 요한의 피로 자신들의 손을 물들였을 때, 이미 그리스도에게도 똑 같은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종들을 대우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자신을 대우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순교자들의 피로 취한 그들은 여전히 "피를 달라, 피를 달라"고 울부짖고 있다(행 12:1-3).

(4) 궁금하여 이의를 제기하였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상세한 답변을 듣고 이에 만족하게 됨(13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그리스도는 요한의 이름을 들어 말씀하시지는 않고 그에 대해서만 말해 줌으로써 그가 그들에게 이전에 말한 "이 사람이 엘리야라"는 말씀을 기억해 낼 수 있도록 하셨다. 

이것은 유익한 교수법이다. 그러한 방법은 선생이 없다고 하더라도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단편적 지식들을 서로 관련짓게 하여 스스로 배우고 기억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배우는 자들은 지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식의 수단들을 부지런히 사용할 때에 의심의 구름은 사라지고 그릇된 생각들은 시정될 것이다.

----------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심(마 17:14-20)

여기에는 그리스도께서 간질병과 귀신에 들린 아이를 이적적으로 치유하신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Ⅰ. 고통에 잠긴 아버지가 자기 아이의 처지에 대해 그리스도께 침울하게 말씀 드림. 

이 일은 그리스도께서 변형되신 산에서 내려오신 바로 직후에 일어났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영광을 받으셨다고 해서 우리의 궁핍과 불행을 무관심하게 방치하시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는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이야기하셨던 그 산에서 내려 오셨을 때 위엄을 나타내려고 하시지 않았으며, 또한 그 누구도 쉽게 그에게 접근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무리들을 친절히 대하셨다.

이 불쌍한 아버지의 요구는 매우 절박하고도 끈질긴 것이었기에, 그리스도에게로 와서 무릎을 끓게 되었다.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깨닫는 자들은 매우 진지하게 그에게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와 같이 결사적으로 씨름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어린아이의 아버지는 두 가지를 호소하고 있다.

1. 자기 아이의 고통(15절).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온유한 아버지는 자녀들의 고통을 쓰라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자신들의 분신(分身)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이 고통을 당하게 될 때는 신실하고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만 한다. 아마도 이 아이는 병 때문에 스스로 기도를 드릴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즉,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해야할 두 가지 이유는 때때로 그들은 연약하여 기도할 수 없으며, 또한 때로는 무엇보다도 사악하여 스스로가 기도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경우에도 주님은 들으신다는 것을..

(1) 이 아이의 병세는 매우 처참하였다.

 "그는 간질로 심히 고생하였다." 

간질병은 원래 달(moon)이 바뀔 때마다 일어난다(역주:간질병은 달과 관계가 있다하여 lunatic라고 부른다). [이 병증에 대한 고대적 이해... 마귀는 신적인 허락을 받아 간질병을 일으키며, 적어도 그것을 더욱 악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 아이는 사탄의 손아귀에 잡혀서 자주 물과 불에 넘어졌다. 그럴 때마다 이 아이는 매우 고통을 느꼈으며, 평상시보다 더 괴로워했다. 사탄에게 사로잡힌 자는 마음을 괴롭게 하는 육신의 질병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왜냐하면 마귀가 해치려고 목표하는 것은 바로 영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병의 증상만을 보고 "그는 간질병에 걸렸습니다"라고 애원하면서 말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근본적] 치료를 하기 위하여 마귀를 꾸짖으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원인을 치유하셨다. 

이와 같이 주님은 영적인 치유를 하신다.

(2) 그 질병의 증상은 너무도 심하였다.

 "저가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그 질병으로 인하여 그가 넘어지게 되었다면, 악한 마귀는 그를 물과 불에 넘어지게 하였다. 이와 같이 마귀의 소유가 되고 마귀의 힘에 사로잡힌 자는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다. "마귀가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2. 제자들에게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한 것을 하소연함(16절).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귀신들을 내어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다(마 10:1, 8). 그때에 그들은 성공을 거두었다(눅 10:17). 

그런데, 지금은 아홉 명의 제자들이 함께 있었지만 많은 군중들 앞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실패를 허용하신 것은,

(1) 그들을 겸손하게 하고 그만을 의지하게 하며, 그가 없이는 그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2) 그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조력자들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때 그리스도의 존귀만이 막 다른 골목에서 도움을 줄 수가 있다. 

게하시의 손에 있는 엘리사의 지팡이는 어린아이를 살리지 못할 것이다. 그 자신이 와야만 된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은총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는 종종 원천 되신 그에게 오도록 하기 위하여 저수지를 메마르게 하실 때가 있다. 도구들(여기서는 제자들-역주)이 실패한다고 해서 그의 은혜가 작용을 못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은혜는 그들에 "의해서"가 아닐지라도, 그들 "없이도" 역사 하게 될 것이다.

Ⅱ. 그리스도께서 먼저 사람들을 책망하셨고 그 후에 마귀를 책망하심.

1. 그는 자기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을 꾸짖으셨다(17절). 

"믿음이 없고[아피스토스 : JC영접-절대신뢰/절대의지/절대기쁨-추구하여 전심전력기울여 따름의 결단적 믿음(신실함)이 없는] 패역한[(히)타푸카.(마음-눈-입)고집불통: 괴팍-사악-심술궂은 + 왜곡/혼미-타락/배역한: (히)아카쉬..미3:9) (헬)디아스트레포] 세대여!"라고.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셨다. 

아마도 특별히 마가복음 9장 14절에 언급된 것과 같이 서기관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 같다. 그 서기관들은 제자들이 힘겨운 일을 당하여 속수무책인 것을 보고 제자들을 비난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스도 자신도 믿음이 없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실 수 없으셨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과 자유케하심의 구원과 복음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신앙을 가졌더라면) 그들은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제자들도 믿음이 적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는 그러한 사역들을 행할 수가 없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능히 이 일을 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믿음이 없고 패역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믿음이 없는 자들은 패역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패역함은 가장 악한 죄이다. 믿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지만,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대하는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은 패역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믿음이 없고(시 95:9), 패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신실함이 없었기 때문이다(신 32:20).

이전글 : 마16.히.시대의표적.오도왜곡된교훈분별.JC-Q아들고백.고난죽음부활예고시작.*고난거쳐JC빼어닮음=영광/영화=구원완성.근본동기
다음글 : 마18.JC의소자_진정한 거듭남_ 이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