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8.2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63.Q경험체득누림.광야성전평생침상의영성
첨부파일 :

==시63.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


목마른내영혼309 나의생명되신주380 나어느곳에있든지408 겸손히주를섬길때212.내영혼이은총입어.내구주예수를더욱사랑...주는우리의기쁨.내주님없이는못살아.임마누엘.주님여내손을꼭잡고.완전하신나의주.주님과함께하는.예수의이름으로.너는내아들이라.하나님이시여.왜나만겪는고난이냐고.주님여내손을.


@@애3:22, 히13:6, 롬5:3-6, 벧전4:12-19. 빌3:7-21.고전10:12-13을 암송-묵상-기억하라!!...변덕스럽고 예측불가능한 자기 신뢰-자기 확신-자기 의-자기 애착-자기 자랑-자기 기만을 멈추라!!..유일한 소망과 격려는 Q의 인자하심!!

@@압살롬의 축출로 유대광야에 있을 때.(삼하15:23, 28)..헤렛수풀 또는 십황무지수풀에서...압살롬의 반역사건의 뿌리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바 곧, 비록 회개함으로써 용서 받았지먼 우리야의 처 밧세바 간음-우리야 암살사건의 행정적 징계로 인한 것.(삼하12:10)...죄 용서와 징계 고난은 또 다른 문제임에 주의히라!!

**광야의 영성(광야에서...아직 말씀JC경험 통한 구주Q발견, 언약말씀 성취나 주품안의 안식 경험이 없는 상태 :: 절대절명의 심정으로  참생명-만족이신 주님 갈망)

**성전의 영성(연인의 심정으로 주님을 참되게 극도로 알고 경험하여 합당하게 예배하기 위해 더할나위없는 큰 기대로 수척하고 야윌만큼 전심으로 열망하며 기대하며 기다림/앙망하여 바라봄)

**평생의 영성(평생 바로 그 주하나님을 합당하게 사랑하고 섬기며 송축함)

**침상의 영성(침상에서 선하심-인자하심-진실하심의 주를 기억함)...화체설의 임재현존설과 이적과 기사의 주되신바 천지에 충만하심의 초월성을 혼동말라.


*1.하나님(엘로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오직 극심한 고난을 통해 경험-체득한 확신과 인식: 나를 사랑하시는/나의 사랑하올 하나님, 내사랑이시여)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샤하르..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림 :잠11:27) 물이 없어 마르고(치야..건조하고 메마른) 황폐한(아예프..기진맥진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차메..목이 바짝 마름)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카마흐..열망함으로 수척해지다/야위다)

*2.내가 주의 권능(오즈..힘/세력/능력)과 영광(카보드...영예/영광/풍성/풍부)을 보기 위하여(라아..참된 지식위해 조사하다/바라보다) 이와 같이 성소에서(코데쉬..거룩/신성한/분리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하자..참된 앎/참된 지각위해 연인이 응시하듯 보고 기대하며 바라다)

*3.주의 인자하심이(헤세드...인자/친절/자비/자애) 생명(하이..살아있음)보다 나으므로(토브..좋고 선하며 유쾌하고 즐거운)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샤바흐..찬양/칭찬하다..마음을 달래다/진정시키다)

*4.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바라크..예배하다..경배/무릎꿇어 기도/찬송-축복하다)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나사..들어올리다..요제와 거제 의미)

*5.골수(헬레브..콩팥과 내장을 둘러싼 지방..희생제물로 태워드렸음)와 기름진 것(데센...기름짐 : 헬레브, 데센은 가장 맛있고 가장 좋은 것의 비유)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네페쉬..살아숨쉬며 생동하는 산혼..감정-갈망-사랑-기쁨의 좌소)이 만족할 것이라(사바..포식한 것처럼 만족하다) 나의 입이 기쁜(레나나..존재중심에서 나오는 기쁨 환호)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할랄..밝게 비추다/찬양-자랑하다)

*6.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자카르...기억/상기하다)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하가...묵상/명상/숙고하다..속삭이다/중얼거리다..신음하다/으르렁거리다)

*7.주는 나의 도움이(에즈라...돕는자..도움.원조)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라난...기뻐 환호하다)

*8.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다바크...달라붙다/굳게 결합하다..친밀/밀접,mingled)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타마크... 붙잡고 쳐들어 올리고 떠받쳐 지지하며 지키다)

*9.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쇼...파멸/황폐케 하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10.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슈알...재칼/여우)의 먹이가 되리이다

*11.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샤마흐...기뻐하고 즐거워하다/극락의 기쁨으로 맛보며 누리다) 주께 맹세한(샤바..맹세/엄명하다 = 참되게 JC믿음)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할랄)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

O God, You are my God; I shall seek You earnestly; My soul thirsts for You, my flesh yearns for You, In a dry and weary land where there is no water.

Thus I have seen You in the sanctuary, To see Your power and Your glory.

Because Your lovingkindness is better than life, My lips will praise You.

So I will bless You as long as I live; I will lift up my hands in Your name.

My soul is satisfied as with marrow and fatness, And my mouth offers praises with joyful lips.

When I remember You on my bed, I meditate on You in the night watches,

For You have been my help, And in the shadow of Your wings I sing for joy.

My soul clings to You; Your right hand upholds me.

But those who seek my life to destroy it, Will go into the depths of the earth.

They will be delivered over to the power of the sword; They will be a prey for foxes.

But the king will rejoice in God; Everyone who swears by Him will glory, For the mouths of those who speak lies will be stopped.

---------------------

The Thirsting Soul Satisfied in God.

A Psalm of David; when he was in the wilderness of Judah.63 

1 O God, You are my God; with deepest longing I will seek You; My [a]soul [my life, my very self] thirsts for You, my flesh longs and sighs for You, In a dry and weary land where there is no water.

2 So I have gazed upon You in the sanctuary, To see Your power and Your glory.

3 Because Your lovingkindness is better than life, My lips shall praise You.

4 So will I bless You as long as I live; I will lift up my hands in Your name.

5 My [b]soul [my life, my very self] is satisfied as with marrow and fatness, And my mouth offers praises [to You] with joyful lips.

6 When I remember You on my bed, I meditate and thoughtfully focus on You in the night watches,

7 For You have been my help, And in the shadow of Your wings [where I am always protected] I sing for joy.

8 My [c]soul [my life, my very self] clings to You; Your right hand upholds me.

9 But those who seek my life to destroy it Will [be destroyed and] go into the depths of the earth [into the underworld].

10 They will be given over to the power of the sword; They will be a prey for foxes.

11 But the king will rejoice in God; Everyone who swears by Him [honoring the true God, acknowledging His authority and majesty] will glory, For the mouths of those who speak lies will be stopped.

=================

이 시편은 얼마 안 되는 분량 속에 다윗의 어느 시편 못지 않게 그 속에 따스함과 생기있는 신앙심을 많이 함축하고 있다. 

가장 감미로운 바울의 서신이 감옥에서 씌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장 감미로운 다윗의 시 몇 편은 이 시편과 같이 광야에서 씌어졌다. 

추방 중 그를 가장 슬프게 한 일은 공중예배에 잘 참예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이에 대한 즐거움이 회복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이같은 현재의 결핍은 오히려 그의 갈구를 자극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은 그 규례가 아니고, 그 규례 중에 있는 하나님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1. 하나님께 대한 그의 열망(1-2).

2. 하나님께 대한 그의 존경심(3-4).

3. 하나님께 대한 만족감(5).

4. 하나님과의 그의 은밀한 교제(6).

5. 하나님께 그가 기쁘게 의지함(7-8).

6.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그 자신의 안전함을 확신하는 가운데 그의 대적들에 대한 그의 거룩한 승리(9-11).

---헌신적이고 경건한 영혼은 이 시편을 노래하는 방법을 거의 지도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 진심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성별케 되지 않은, 즉 거룩한 것과 친숙해지지 않고 그것에 감동되지도 않은 자들이 이 시편을 총명하게 노래할 능력은 거의 없다.

==================

믿음이 깊은 감정(시 63:1-2)

이 시편에 붙어 있는 표제는 그 지어진 때를, 즉 다윗이 “유다 광야”에 있었을 때를 알려주고 있다. 즉, 그것은 “헤렛 수풀”이었거나(삼상 22:5) “십 황무지 수풀”이었다(삼상 23:15).

Ⅰ. 가나안에는 비록 비옥하고 백성들이 많은 땅이었을지라도, 다른 장소보다 덜 비옥하며 사람들의 수가 더 적은 광야가 있었다. 

이 세상에서는, 교회에서는 그렇게 될 수도 있으나, 천국에서는 그렇지 아니하다. 거기서는 모두 성읍이며 모두 낙원이고, 황무지는 없다. 거기서는 “광야에 화초가 필 것이다.”

Ⅱ. 하나님의 성도들과 종들 중 가장 훌륭하고 귀한 자들도 때로는 광야에 던져지는 운명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에게 외로움과 고독, 적막함과 고통스러움, 궁핍, 방황, 불안정, 그리고 스스로 무엇을 해야 좋을지 매우 당황한 상태를 말해 주고 있다.

Ⅲ. 광야의 모든 역경과 어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신성한 노래를 중지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때에도 하나님과의 즐거운 교제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권리다. 광야에 합당한 시편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죄의 광야에 있지 않고, 유대 광야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할 필요가 있다.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자기를 격려”하고 있다.

Ⅳ. 생동하는 믿음에 의해 그렇게 하고 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께 우리가 아뢰는 모든 일 속에서 우리는 그를 하나님으로서, 우리 하나님으로서 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광야에 사는 우리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우리는 Q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하나님이여” 하는 진지한 단어를 말할 때 실존하사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Q께 이야기하고 있음을 깊이 인정해야 한다. (이 말이 때로는 농담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딱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 대한 그의 권위, 우리에 대한 그의 주권,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창조에 의해서 나의 하나님이시라. 그러므로 주는 나의 정당한 주인이시며, 지배자이시고, 언약과 나의 동의에 의해 나의 하나님이시로다.” 

우리는 그것을 묵묵히 따르기를 결심한 자로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매우 즐겁게 그리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매우 감사하게 그렇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이시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Ⅴ. 그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과 또 그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선택한 것에 따라 오는 경건한 신앙심으로 격려하고 있다.

1. 그는 하나님을 구하고, 그의 은총과 은혜를 구하기로 결심하고 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그러므로 “내가 주를 찾으리이다.” 왜냐하면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옵니까?”(사 8:19) 

우리는 그를 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주된 유익으로서 그의 은총을 갈망해야 하며, 우리의 최고 목적으로서 그의 영광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말씀을 통해 그와의 사귐을 구해야 하며, 기도에 의해 그로부터 긍휼을 구해야 한다.

(1) 우리는 일찍이 그를 구해야 한다. 

그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로서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날을 그와 함께 시작해야 한다. 날마다 그와 함께 시작해야 한다. 

“내가 일찍이 주를 찾으리이다.”

(2) 간절히 구해야 한다.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즉, 내 온 사람이 이것을 추구하기에 열심입니다).

다음을 주시하라.

①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가 결여된 것을 원망하고 있다. 그는 마르고 곤핍한 땅에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그렇게 간주한다. 그 이유는 자기가 광야에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법궤에서, 즉 말씀과 성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단어 그대로) “피곤한 땅”이다. 

그 속에 자기들의 분깃을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자들에게는 그러하다. 즉, 세상은 그들에게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것을 통해 지나가는 경건한 자들에게도 그러하다. 즉, 그들에게 세상은 바카 골짜기다. 그들은 거기에서 자신들에게 아무런 보장도 할 수 없다.

②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끈질기게 구하고 있다.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앙모하나이다.” 

그의 빈곤은 그의 열망을 조장했으므로, 그의 열망은 매우 격렬했다. 그는 시냇물을 찾는 어린 사슴처럼 갈급했다. 

그는 주의 임재가 결핍된 상태에서는 어느 것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열망들은 거의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그가 하나님의 규례에 대한 자유를 회복하게 될 때까지 열망했고 번민했다. 

은혜로운 영혼은 거룩한 경멸감으로써 세상을 내려다보며, 거룩한 열망으로써 하나님을 우러러본다.

2. 그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열렬히 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탄원은 무엇이며, 그의 요청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는” 일이었다(2절). 즉,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장막에서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았던 것처럼 이 광야에서도 그를 보는 것, 내가 그 엄숙한 집회에서 보았던 것처럼 여기서 은밀히 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공중예배의 혜택을 박탈당할 때에는, 큰 회중 속에서 하나님과 나누었던 그러한 교제를 우리의 은거지에서도 지키기를 원하고,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골방이 작은 성소로 변할 수도 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전능자의 이상을 보았고, 요한은 밧모섬에서 그것을 보았다. 

우리가 홀로 있을 때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가질 수 있고, 그것으로 족하다.

(2) “내가 이전에 성소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거기에서 다시 그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광야에서 나오기를 바람, 그 이유는 그가 다시 친구들을 보고 궁중의 환락을 다시 누릴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소에 나아갈 수 있기 위해서였다. 

거기에 있는 제사장들을 그리고 예배의식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의 권능과 영광을(즉, 하나님의 모든 특성과 완전함을 제시하는 주의 영광스러운 권능, 주의 강력한 영광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내가 더욱더 그러한 특성과 완전함에 친숙하게 되고, 또 내 마음에 그에 대한 유쾌한 인상을 남기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그리하여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기 위한 것입니다(고후 3:18). “그것은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함입니다.”

그는 내가 그것들을 보았나이다고 말하지 않고, “내가 주를 바라보았나이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실체를 볼 수는 없으나, 믿음에 의해 그의 속성과 완전함을 바라봄으로써 그를 본다. 

이러한 광경을 기억하는 것으로써 다윗은 스스로 즐거워하고 있다. 그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 보낸 시간들은 귀중했다. 

그는 그 시간들을 거듭 생각해 보기를 좋아했다. 따라서 이러한 손실을 그는 탄식했고, 그것이 회복되기를 열망했다. 

정식예배에 참예함은 은혜로운 영혼의 즐거움이 되어왔고 또 소망이 되는 것은 바로 그 속에 있는 하나님, 그리고 그의 권능과 영광을 보는 것임을 기억하자.

---------------------

기쁜 찬양(시 63:3-6)

얼마나 빨리 다윗의 원망과 기도가 찬양과 감사로 바뀌고 있는가? 

하나님을 구하려는 그의 열망을 표현한 두 구절 후에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발견함으로써 얻은 그의 기쁨과 만족을 몇 구절로 표현해 놓고 있다. 

성실한 기도는, 거기에 우리 자신의 과오가 없다면, 기쁜 찬미로 곧 변할 수 있다.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105:3). 

그리고 그들 안에 그러한 열망을 역사하신 것에 대해, 그가 그들을 만족케 하시리라는 확신을 주신 것에 대해 그를 찬미하라. 

다윗은 지금 광야에 있으나,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송축하는 일로 크게 넓혀졌다. 

환난 속에서도 우리가 마음을 찬미에 기울이기만 한다면 그 소재는 부족하지 않다.

Ⅰ. 다윗은 무엇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려는가?(3절)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생명들보다”, 즉, 생명과 생명의 모든 즐거움, 최선의 상태에 있는 생명, 오랜 생명과 형통함보다 “나으므로”, 내가 주를 찬양하리라. 그것이 우리의 영적 생명이며, 그것은 현세적인 생명보다 낫다(30:5).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죽는 것이 그의 분노 아래서 사는 것보다 수 천 배나 낫다. 

광야에서의 다윗은 훌륭한 체험을 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생명보다 낫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라”고 그는 말한다. 

하나님 은총의 징표에 의해서 마음이 새롭게 된 자들은 찬양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을 송축해야 하는 큰 이유는, 이 세상 재물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식량과 더 나은 소유를 우리는 가졌고, 하나님께 봉사하고 그와 교제하는 중에 우리는 이 세상 일과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일과 더 나은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Ⅱ. 그는 어떻게 얼마나, 오래 하나님을 찬양하려 하는가?(4절)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를 의지하며 살기로 결심하고 있다. 다음을 주시하라.

1. 하나님을 송축하는 그의 태도. 

“이러므로” 내가 지금 시작했던 것처럼 “주를 송축하리라.” 

현재의 이 열렬한 감정은 아침 구름처럼 사라지지 않고, 아침 해처럼 더욱더 빛나리라. 

또는 “내가 주께 기도했던 것과 같은 진지함을 가지고 주를 송축하리이다.”

2.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하려 함.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리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 온 생애의 과업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가 이전에 은총을 베푸심에 대해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에 대한 감사를 되풀이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매일 얻는 혜택에 대해 날마다 그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우리는 매사에 감사드려야 하며, 현재의 어떤 고통이 있다고 해서 이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아서 어떤 날을 보든지, 얼마나 어둡고 흐리든지, 또 우리가 “우리의 날은 즐거움이 없구나” 하고 말할 날들이 올지라도, 여전히 매일매일은 감사의 날이어야 하며, 우리의 죽는 날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하면서 축복된 영원을 보내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로 우리의 시간은 보내야 한다.

3. 모든 경우에서 하나님께 대한 그의 꾸준한 관심.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기도와 찬미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주목해야 한다(그는 그의 이름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스스로를 알리셨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와 찬미 속에서 “주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로 시작하고, 그리고 “영광이 아버지께 있사옵니다”로 끝맺으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사업과 직무 속에서 항상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해, 즉 그의 성령의 힘과 은혜로 인해, 우리의 의무를 향해서 그리고 우리의 특별한 원수들을 대적해 우리의 손을 들어야 한다(71:16; 슥 10:12).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서원을 해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 그의 은혜를 의지해 약속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위로와 기쁨 속에서 축 늘어졌던 손을 들 때, 그 손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들려야 한다. 

그로부터 우리의 위로가 나와야 하며, 그에게 그것이 바쳐져야 한다. 

“주 안에서 우리가 온종일 자랑하나이다.”

Ⅲ. 다윗은 어떤 즐거움과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려 했는가? (5절)

1. 내적인 만족감을 가졌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영양을 주는 빵을 먹을 뿐만 아니라, 기분 좋고 감미로운 골수를 먹는 것같이(사 25:6)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다윗은 그가 하나님 예배를 다시 즐겁게 행할 수 있게 되고, 그때에 그가 이처럼 만족케 되기를, 그리고 그가 이처럼 한동안 제지 아래 있었으므로 더욱 그런 만족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 속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속에서 그가 이처럼 만족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은혜로운 하나님 안에는, 그리고 그와의 교제 안에는 은혜로운 영혼에게 줄 풍성한 만족이 있다(36:8, 65:4). 

하나님에게서, 그리고 그와의 교제에서 풍성한 만족을 취하는 은혜로운 영혼 속에는 풍족한 만족이 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만족히 여긴다. 그들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의 은총 이외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초월적인 만족감을 맛보고 있으며, 그것과 비교해 볼 때 모든 감각적인 즐거움은 시들하고 풍미가 없다. 

즉, 이 위안을 주는 포도주와 비교해 볼 때 흙탕물과도 같다.

2. 이 만족감을 외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기쁜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즉, 그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대한다.

(1) 공개적으로 찬송한다. 

그의 입과 입술이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마음으로써 사람이 믿고 감사할 때, 입으로써 이 두 가지를 자백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입의 동작이 마음 없이도 수락된다는 것이 아니라(마 15:8), 우리 자신의 경건한 감정을 자극시키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마음에서 말이 넘쳐야 한다(45:1).

(2) 즐겁게 찬송한다. 

우리는 기쁜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매우 즐겁게 그것과 다른 종교적 의무에 착수해야 하며, 거룩한 기쁨의 원리에서 하나님께 대한 찬송을 나타내야 한다. 찬송하는 입술은 기쁜 입술이 되어야 한다.

Ⅳ. 다윗은 그가 매우 피곤했을 때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그 자신을 즐겁게 했는가?(6절) 

“내가 침상에서 주를 기억할 때에 주를 찬송하오리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할 때마다 그를 찬송해야 한다. 이제 다윗이 공중예배에 못 들어오게 되자, 그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 속에서 더욱 풍성한 찬송을 드렸고, 그렇게 하여 그의 손실은 어느 정도 보충된다. 여기에서 다음을 주목하라.

1. 어떻게 다윗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그의 모든 생각 안에 계셨다. 그런데 이는 악인의 성격과 상반되는 것이다(10:4). 하나님께 대한 생각은 그에게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주를 기억하나이다. 즉, 내가 생각하고자 할 때, 나는 주께서 내 우편에 계신 것을, 내 마음에 임재하신 것을 발견합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잊거나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서 제일 먼저 나타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그 안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내가 주를 묵상하나이다.” 

하나님께 대한 생각은 마음을 스쳐지나가는 초월적인 생각이 아니라, 마음속에 거하는 영구적인 생각이어야 한다.

2. 다윗이 이처럼 그 자신을 몰두시켰던 때는 “침상에서” 잠 못 이루는 때였다. 

다윗은 당시 정착하지 못한 상태로 유리하고 있었지만, 어디로 가든지 항상 신앙을 지녔다.

나의 “침상들”에서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울에 의해 쫓김을 당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이틀밤도 한침상에 누울 수 없었다. 

그러나 어디에 그가 누웠든, 야곱처럼 차가운 땅에 돌베개를 베고 누웠을 때에도 하나님께 대한 선한 생각은 그와 함께 있었다. 

다윗은 하루 종일 일로 분주하면서 그 자신의 안전을 위해 이동해야 했으므로 엄숙히 신앙적인 일에 몰두할 여유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그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원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필요한 잠을 줄였다. 그는 당시 끊임없는 생명의 위기 속에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근심과 두려움이 여러 번이나 그의 눈을 붙이지 못하게 했고, 그에게 지루한 밤을 주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 그는 하나님께 대한 선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즐기고 위로했다. 

때로 우리는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눈물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6:6). 그러나 이처럼 그는 그의 눈물을 닦았다. 

잠이(고통이나 몸의 병 또는 마음의 불안으로 인해) 우리 눈에서 떠날 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기억함으로써 편히 쉴 수 있다. 

아마도 한 시간의 묵상이 한 시간의 잠보다 우리에게 더 유익할 것이다(16:7, 17:3, 4:4, 119:62 참조).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밤에 장막에 서 있는 자들이 있었는데(134:1), 아마도 다윗은 자유로운 몸이었을 때 그 레위인들과 함께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그가 그들과 함께할 수 없게 되자 그들과 함께 시간을 지켰고 또 그 자신이 그들 가운데 있기를 원했다.

---------------------

하나님께 대한 확신(시 63:7-11)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그리고 그를 찬송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표현한 후, 여기에서 그에 대한 확신과 기쁜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7절).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이것은 언약궤 위에 펼쳐져 있는 그룹의 날개, 꼭 하나님이 그 사이에 거하신다고 일컬어지는(“내가 주의 명령 속에서 그리고 주와의 언약 과 교제 속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그 날개를 말하는 것이거나,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독수리의 어린 새끼나(출 17:4; 신 32:11) 하나님의 자비심을 나타내고 있는 암탉의 어린 새끼들처럼(마 23:37) 돌보아줄 사람이 없는 어린아이들이 그 밑에 은신처를 만드는 새의 날개를 말한다. 

이 표현은 시편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으며(17:8, 36:7, 57:1, 61:4, 91:4), 이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은 시편 외에는 룻기 2장 12절밖에 없다. 

거기에서 룻은 개종했을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하나님의 날개의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데, 이는 병아리들이 춥거나 놀랐을 때 본능적으로 암탉의 날개 아래로 뛰어드는 것처럼, 자연적으로 믿음과 기도로써 우리가 그에게 의지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그의 관심과 보호로써 우리를 도울 능력, 우리의 원기와 만족감을 도울 능력이 있으며, 도울 준비가 되어 있는 자로서 의뢰함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한 후 우리는 편안하고 즐거워야 하며, 환난의 두려움에서 떠나 평온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더 상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Ⅰ. 하나님께 대한 다윗의 확신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그 소망의 지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 소망의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1. 그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과거의 경험. 

“주는 모든 도움과 돕는 자들이 내게서 끊어졌을 때에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주의 구원을 여전히 즐거워할 것이며, 앞으로도 주를 의지하고, 즐거움과 거룩한 기쁨을 갖고 그것을 행하리라. 주는 나의 돕는 자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도울 수 없고, 어떤 피조물들도 하나님에 의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에벤에셀을 세우면서, “지금까지 주께서 우리를 도우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기에, 결코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을, 결코 그를 불신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며, 뿐만 아니라 결코 그와 함께 동행하는 데에 위축되지 않을 것을 결심해야 한다.

2. 이러한 일을 수행하도록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의 현재의 깨달음(8절).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나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간직하려는 매우 진지한 열망과 신중하고 열성적인 노력을 말한다. 

우리가 항상 우리의 가슴에 하나님을 모실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상급이신 그를 향해 달려가면서 항상 그를 주목해야 한다(빌 3:14). 

하나님을 열심히 추구함은, 그의 모습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어 그를 가까이 쫓는 것이다. 

그와 함께 있기를 바라는 자가 되어 그를 빨리 쫓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다윗은 행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나이다” 하고 그를 시인하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를 붙드신다.

(1) 그의 환난 중에도 붙들어주셨다. 그리하여 그가 환난에 쓰러지지 않게 하셨다. “그 밑에 영원한 팔이 있다.”

(2) 그의 신앙 속에서 붙들어주셨다.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열망과 추구 속에서 그를 붙드시어 그가 선행을 하는 데 지치지 않도록 해주었다. 

하나님을 열심히 쫓는 자들도 하나님의 오른손이 그들을 붙들지 않으신다면 곧 쓰러져 활기를 잃을 것이다. 

그를 쫓는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우리의 선한 감정을 장려하시며,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직 얻지 못했을 때에도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떨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그것은 그의 오른손이다)에 의한다.

시편 저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합당한 때에 그가 간절히 바랐던 것을 주시리라는 소망이 큰 격려가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은혜로써 그 안에 이러한 열망들이 일어나도록 역사하셨고, 그 열망이 지속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Ⅱ. 다윗은 어떤 희망 속에서 개가를 부르고 있는가?

1. 그의 대적들은 멸망할 것이라는 희망(9-10절). 

“그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는” 자들, 즉 그의 생명(그들은 그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그의 지혜와 경건과 유용함을 시기하고 미워했으므로 그의 생명을 노렸다)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까지 멸하려 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영혼의 양식과 힘이 되는 하나님 예배에서 그를 추방함으로써(그렇게 하여 그들은 영혼이 굶어죽게 하려 했다), 그리고 그를 보내어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함으로써(그렇게 하여 그들은 영혼에 독을 묻힐 수가 있다. 삼상 26:19) 그의 영혼을 멸하려 했다. 

그러나 다윗은 다음과 같은 것을 예견하고 있으며 예고하고 있다.

(1) 그들은 “땅 깊은 곳”, 음부에,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다윗에 대한 그들의 적의는 그들의 사망원인이 될 것이며, 그들의 저주, 그들의 파멸, 그들의 영원한 파멸을 초래할 것이다,

(2) 그들은 칼에 의해, 하나님의 분노와 그의 의의 칼에 의해, 사람의 칼에 의해 쓰러질 것이다(욥 19:28-29). 

그들은 횡사할 것이다(계 13:10). 이는 칼에 의해, 자기 자신의 칼에 의해 쓰러진 사울에게서 이루어졌다. 

다윗은 이를 예고했으나, 두 번씩이나 그 기회가 왔어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언이 아니라, 계율이 우리 법도이기 때문이다.

(3) “저희는 여우의 밥이 될 것이다.” 

그들의 시체가 굶주린 짐승들의 먹이가 되거나(사울은 상당한 기간 동안 매장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집과 재산이 들짐승들의 거처가 될 것이다(사 34:14). 이러한 자들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왕국과 그의 세력에 대항하는 그의 원수들의 운명이 될 것이다.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눅 19:27).

2. 그 자신은 마침내 그가 뜻한 바를 얻을 것이라는 희망(11절). 

즉, 그는 기름부음 받았던 그 보좌에 오르게 될 것이다.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로다.”

(1) 그는 자신을 왕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가 하나님의 뜻과 지명에 의해 그렇게 되리라 함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울도 갈등 속에 있으면서도 그 자신이 “넉넉히 이긴다”고 쓰고 있다(롬 8:37). 

믿는 자들은 비록 부활의 아침이 되기 전에는 주권을 갖지 못할지라도 왕이 된다.

(2) 그는 그가 지금 눈물로 씨 뿌리고 있지만, 기쁨으로 거두리라는 것만큼은 의심하지 않고 있다. “왕은 즐거워하리로다.”

(3) 그는 “하나님을 그의 모든 즐거움의 알파와 오메가로 만들 결심을 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이다. 

이 말은 높이 들리신 구속주의 영광과 즐거움에 적용될 수 있다. 메시야, 그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이다. 

그는 이미 그 앞에 놓인 즐거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영광은 그의 재림 때에 완성될 것이다. 

다윗의 승진으로 인한 좋은 결과는 다음 두 가지가 된다.

① 그것은 그의 친구들의 위안이 된다. 

“그로(다윗으로) 맹세한 자마다”, 

즉 그의 세력 안으로 들어오고 그와 동맹하기로 서약한 자마다 그의 성공으로 “자랑하리로다.” 또는 “주로(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된 이름으로, 신 6:13) 맹세한 자마다” 자랑하리로다. 

이렇게 해석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진실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모든 선한 백성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랑할 것이다. 그들은 다윗의 발탁을 자랑할 것이다.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받았으면 그와 함께 다스리게 되리라.”

② 그것은 그의 대적들을 논박하게 될 것이다. 

“거짓말하는 자의 입”, 즉 사울과 도엑의 입, 그리고 마치 다윗의 경우가 절망적인 것처럼 그를 오도하고 모욕하는 자의 입은 완전히 “막히리로다.” 

그들은 더이상 그를 대적하는 말을 하지 못하고, 영원히 침묵케 되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이를 그리스도의 대적들에게, 모든 위선자들이 행하는 것처럼 그에게 거짓말하는 자들에게, 마음은 그와 함께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사랑한다고 그에게 말하는 자들에게 적용시켜 보자. 

그들의 입은,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는 그 말에 막힐 것이다. 즉, 그들의 입은 영원히 유구무언일 것이다(마 22:22). 

그에 대해 거짓말하는, 즉 “주의 옳은 도를 그르치고”, 그의 거룩한 종교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불경건한 죄인들의 입이 그에 대해 한 심한 말들을 모두 문책하시기 위해 주께서 오실 그날에 막힐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의 성실한 친구들과 추종자들 모두의 영원한 승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믿는 소망 속에서 지금 개가를 부를 수 있다.

========

[애3:20-23]

*19.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히13:5-8]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롬5:3-6]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롬 8:;28]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고전 10:12-13]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빌3:10-12]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7.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벧전 4:12-19] 

*1.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6.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7.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12.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이전글 : 시62.임마누엘반석요새피난처.구원영광권능말씀Q인자함.소유됨.소망신뢰확고부동.동행
다음글 : 시64.변장한축복고난_영광에의참여,보혜사Q행사.악인의결국.아이테오>에로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