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8.2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61.언약.영원한상호소유기업거함누림JC.경외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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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61.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어려운일당할때543 주날개밑내가419 나의믿음약할때에374 나는갈길모르니375.너근심걱정말아라382 나이제주님의새생명436 YouRaiseMeUp.내모습이대로.주님큰영광받으소서.마음이지쳐서기도할수없고.


****선지자-제사장-왕의 기름부음으로 살아가신 JC는 먼저 [Q말씀으로 복음전파-가르침-고치심의]왕적 선지자의 직무를 마치신 후 [자신을 대속제물로 드리심의] 왕적 제사장의 직무를 완성하신 다음, [부활승천하사] 왕적 중보자의 직무로 들어가신다!! ****


@@[오늘, 매순간, 모든 만남에서]

내맘, 내눈과 귀를 열어주소서, 앙망하오니, 하나되신 주여

나아온 이들 위해 무엇을 주시리이까, 지고지선의 진복, 오직 주님자신! 복음진리생명말씀!

구하오니 성령이시여, 오늘 매순간마다 일깨우사 영혼몸 늘 새로이 채우소서 

주님마음, 오직 사랑의 감동, 충만한 기쁨, 합치되어 하나된 주님평강, 바로 그 말씀 JC!

나아오는 사람마다 눈 들어 바라볼 때 모든 몸짓마다 친히 만나주소서, 감싸 주소서  

새롭게 JC를 발견하고, 믿어 영접함과 전적으로 의지함, 동행함, 그 구원누림, 영생안으로 이끄소서 @@


@@허물[말씀안의 생명과 성령, 사랑의 뜻을 벗어나 자행자제-치우침]--.죄[말씀안의 주뜻에부합하지 못함 = 말씀안의 참생명과 성령 순종-연합-누림 없음]--악[주님의 말씀을 거부/거절하기에 말씀이 없음]@@


**[[누가 하나님괴 같으랴!! ..하나님은 믿는, 절대긍정-절대신뢰-절대기쁨으로 하나됨을 사는 내게 절대 만족-절대진리-절대진복이요 영생이심 ]] 

^^피상적인 허망한 색성향미촉의 오감 중독/상대적 일시적 만족감을 초월한 근원적 절대만족(무한 풍성-부요-충만-능력) * 열납하시며 열어주사 누리게 하시는 바 절대기쁨/절대긍정/절대신뢰의 유일무이한 초월적 근원적 진리 샘(길-진리-생명) * 지고지선의 진복=요동없는 초월적 절대 평강의 하나됨/거함/누림/의지-빼어닮음/행복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일시적/파괴적/자멸의 허망함으로 귀결됨  ::: Q불신/배역함의 미혹 도구 :=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 5욕(식성수물명)추구 + 5감만족중독(색성향미촉) << Q 말씀안에는 원하는 바, 이 모든 것에 대한 근원적 만족-기쁨-누림의 무한 풍성충만-영원한 공급, 더 나아가 영생이 있음


^^[아히도벨의 책략따라 일으킨] 압살롬의 반역으로 골육상쟁 전쟁을 피하여 피난길에 올라 도달한 요단동편 길르앗산지 마하나임에 체류할 때인듯(삼하17:27-29).[바로 이곳에서, 임마누엘 약속대로 행하신 JC, 자신의 행로 앞뒤에 진친 바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Q의 군대 두 무리를 발견하고 깨달는 야곱 회상함.  : 다윗을 찾아와 위로하는, 길르앗의 토후 바르실래를 여기에서 만남...새로운 터닝포인트!!]....다윗언약 기억/묵상함!!..

[[다윗언약]]삼하 7;8-16...Q의 백성 돌봄위한 나라의 주권자[작은목자]..동행하시는 임마누엘[목자장]의 약속, 그 은혜
*8.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9.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0.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울부짖음-절규-호소)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2.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착각-혼돈-교만/거짓된 안정감의 수건 걷히고, 자기신뢰 무너짐-눌림) 땅 끝에서부터 주께(인생-십자가-부활 거치신JC)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압도되어 완전히 탈진/낙심/공황상태...최종 공격 준비소식 듣고..사람이 근접못할 바위, 주님보좌, 영원한 반석)

*3.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4.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셀라)..신32:11, 마23:37

*5.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네데르..맹세::주님의 소유/기업으로서 주님만 경외함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허락하신 땅..그러나 실은 주님 자신의 모든 것)을 내게 주셨나이다

*6.주께서 (이미 언약하신 그대로) 왕에게(왕-구주JC-위대하신 목자장)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7.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헤세드, 에메트

*8.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주가 들으신 그대로) 이행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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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 my cry, O God; Give heed to my prayer.

From the end of the earth I call to You when my heart is faint; Lead me to the rock that is higher than I.

For You have been a refuge for me, A tower of strength against the enemy.

Let me dwell in Your tent forever; Let me take refuge in the shelter of Your wings. Selah.

For You have heard my vows, O God; You have given me the inheritance of those who fear Your name.

You will prolong the king's life; His years will be as many generations.

He will abide before God forever; Appoint lovingkindness and truth that they may preserve him.

So I will sing praise to Your name forever, That I may pay my vows day b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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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ce in God’s Protection.

To the Chief Musician; on stringed instruments. A Psalm of David.61 

1 Hear my cry, O God; Listen to my prayer.

2 From the end of the earth I call to You, when my heart is overwhelmed and weak; Lead me to the rock that is higher than I [a rock that is too high to reach without Your help].

3 For You have been a shelter and a refuge for me, A strong tower against the enemy.

4 Let me dwell in Your tent forever; Let me take refuge in the shelter of Your wings. Selah.

5 For You have heard my vows, O God; You have given me the inheritance of those who fear Your name [with reverence].

6 You will prolong the king’s life [adding days upon days]; His years will be like many generations.

7 He will sit enthroned forever before [the face of] God; Appoint lovingkindness and truth to watch over and preserve him.

8 So I will sing praise to Your name forever, Paying my vows day b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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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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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55:1 (다윗의 마스길. 영장으로 현악에 맞춘 노래)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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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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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77:3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셀라

시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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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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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4: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잠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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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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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5:1 (다윗의 시)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시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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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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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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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63:11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로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 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시21:4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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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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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40:11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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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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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50: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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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슬픈 마음으로 시작하고 있으나, 유쾌한 기분으로 끝맺고 있다. 

즉, 기도와 눈물로 시작하고 있으나, 찬미의 노래로 끝맺고 있다. 이처럼 영혼은 하나님께 들어올려짐으로써 그 자체의 기쁨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윗이 이 시편을 지을 때는 축출되어 추방당한 것 같으나, 그것이 사울에 의해서인지 압살롬에 의해서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떤 사람은 그가 자신을 “왕”이라고 부르고 있으나(6), 메시야 왕을 언급한 것으로 여겨 압살롬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윗은 이 시편에서 그의 의무를 지키려는 결심을 하고 있으며, 게다가 이를 그의 경험과 기대로써 격려하고 있다.

1.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셨으므로 하나님께 요청할 것이다(1-3).

2.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필요한 것을 잘 마련해 주셨으므로 하나님께 요청할 것이다(4-5).

3. 그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이 지속되리라 함을 확신했으므로 하나님을 찬미할 것이다(6-8).

---그러므로 이 시편을 노래하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 믿음과 우리 소망에 대한, 우리 기도와 우리 찬미에 대한 매우 의미심장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편의 어떤 구절들은 매우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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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음(시 61:1-4)

이 구절들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Ⅰ. 다윗은 환난과 고통의 날에 기도로써 하나님께 힘껏 붙어 있고자 하며,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 

“어떠한 일이 생기든지,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리다(2절)─다른 신들에게가 아니고 오직 주께 부르짖으오리다

주께서 나를 괴롭히셨다고 하여 주와 사이가 나빠지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주를 바라보고 섬기리다

냉담하고 소홀한, 의혹과 의심, 불신앙의 태도로 주께 말하지 않고, 주께서 나를 축복해 주시지 않는다면 결코 보내드리려 하지 않았던 자, 바로 야곱처럼 극히 끈질기고 열렬한 마음으로 주께 부르짖으오리이다.”

여기에서 다윗은 다음과 같이 행한다.

1. 그가 청원하는 법정에 가듯이 드나들었던 그 성소, 기도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행할 것이다. 

“땅 곧 세상 끝에서부터, 가장 멀고 가장 어두운 구석, 낭떠러지 절벽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이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JC이름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만나뵙는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은혜의 보좌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천국은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로 접근하기 쉽도록 만들어 주셨다. 

---“아니, 내가 여기 땅 끝에서 슬픔과 고독 속에 있으므로, 지금 오히려 주께 부르짖으오리이다.” 

다른 어떤 위로에서 벗어나게 되었을지라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온갖 즐거움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함을 기억하자.

2. 그의 심령이 낙담과 실의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행할 것이다. 

“비록, 내 마음이 눌릴지라도, 그 마음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위해 들려질 수 없을 정도로 침잠되거나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이처럼 일으켜질 수가 없다면, 분명 매우 심한 좌절 속에 빠질 것입니다. 

아니, 내 마음이 곧 눌리게 되었으므로,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리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은 힘을 믿고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울음의 때에, 바로 그 울음은 기도를 재촉해야 하며, 기도를 죽게 해서는 안 된다.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지니라”(102 표제; 약 5:13).

Ⅱ. 그는 자기의 마음이 눌려 곧 영혼이 침체되어 잠잠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특별한 청원을 올리고 있다.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즉,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주께서 나를 돕지 않으신다면 내가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주여, 내 안에 이러한 믿음을 역사하는 주의 특별한 은혜에 의하지 않고서는 내가 얻을 수 없는 그러한 내 안전에 대한 확신과 만족을 내게 주소서.”

2. “내가 나의 능력이나 지혜로써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멀리 환난을 피할 수 있고, 또 더 가까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지역에 있을 수 있는 그 바위로 나를 인도하소서.”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은 우리보다 더 높은 바위다. 이 반석이 곧 그리스도다. 따라서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안전하다.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반석에 오를 수 없다.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리라”(출 33:22).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기도로써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섭리 아래 두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우리가 들어가 있도록 해야 한다.

Ⅲ. 그는 화평의 응답을 원하고 있으며, 기대하고 있다. 그는 믿음으로 청하고 있다(1절).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즉, 나로 하여금 현재 내 기도가 청종되었음을 알게 하는 위로를 얻게 하시고(20:6), 때가 되면 내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얻게 하소서.”

Ⅳ. 그의 간구를 강력하게 하기 위해 그가 이용하는 이러한 기대와 간청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3절). 

“주는 나의 피난처이시라. 즉, 내가 나보다 높은 바위가 주의 안에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께서 아직도 그 반석으로 나를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유익을 얻은 과거의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그를 꼭 붙들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그런 일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소망을 갖도록 격려해야 한다. 

“주께서는 내게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방패가 되어왔습니다. 

그리고 주는 이전처럼 강하시며, 주의 이름은 예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의인의 피난처입니다”(잠 18:10).

Ⅴ. 그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무와 의존을 계속하려고 결심한다(4절).

1.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그의 꾸준한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피난처와 견고한 성이 되심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모든 자들은 그렇게 해야 한다. 

그의 천한 종들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의 보호의 혜택을 입을 수 없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리이다.” 

---다윗은 지금 그 장막으로부터 추방되었고, 그것은 그의 가장 큰 슬픔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로써 자기를 그의 장막으로 이끌어오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성전을 영원한 거처로 만들 결심을 하게 할 만큼 성전에 대해 호감을 갖도록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27:4)

---그 성전은 천국의 모형이며 상징이었으므로(히 11:8-9, 24), 다윗은“영원히” 그 속에 거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땅 위에 짧은 “순간” 동안 하나님의 장막─그것은 의무의 집이다─에,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은 끝없는 “순간” 동안 영광의 집인 그 장막에 거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은혜와 은혜의 언약은 그의 끊임없는 위로가 될 것이다. 

---병아리가 암탉의 날개 아래에서 따뜻함과 안전함을 구하듯이,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하나님이 자기들의 피난처라는 것을 발견한 자들은, 온갖 역경 속에서도 여전히 그를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는 자들은 환난 때에도 그가 자기들을 숨기시리라는 보장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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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을 회상함(시 61:5-8)

이 구절들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다.

Ⅰ. 다윗은 어떤 즐거움을 갖고 하나님께서 이전에 그를 위해 행하신 것을 되돌아보고 있는가?(5절) 

“하나님이여, 내 서원을 들으셨나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했던 서원, 내 영혼을 속박했던 그 서원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그것을 주목하셨나이다. 성실로 행해진 것이었으므로 주께서 용납하셨고 즐거워하셨나이다. 

주께서 그것을 유념하셨고, 나로 마음에 두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의 서원을 기억하도록 하셨다(창 31:13, 35:1).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서원, 모든 선한 목적, 그리고 새로운 복종에 대한 모든 엄숙한 약속에 증인이심을 유의하자. 

하나님은 그것들을 모두 기억하시는데, 이는 여기에서의 다윗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서원을 이행해야 할 좋은 이유가 된다(8절). 

왜냐하면 우리가 한 서원을 들으시는 그가, 그 서원이 이행되지 않을 때에는 우리로 하여금 주의해 듣도록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 “그 서원과 함께한 기도를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은혜롭게 들으시고 응답하셨나이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이제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하고 기도하도록 격려했다. 

---야곱의 후손들에게는 “결코 너희가 나를 구함은 헛되도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없는 그가, 지금 다시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주께서 내 서원을 들으셨고, 그것에 정말 응답하셨나이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1) 다음 사실들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손들에게 그 자신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하는 모든 발견들을 거룩한 경외감으로 받아들이고, 그것들에 스스로 적응시키는 특별한 백성들이 이 세상에 있다.

(2) 특별한 백성들에게는 특별한 기업, 현재의 위로, 그리고 미래의 축복에 대한 전조가 있다.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 영원한 그들의 소득이다. 

.....하나님을 자기의 기업으로 얻은 레위 사람들은, 그와 교제해야 하며, 그들의 형제들과 같은 분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안에 충분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 세상에서 소유한 것이 거의 없다 하더라도 불평해서는 안 된다.

(3)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기업보다 더 나은 것을 바랄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을 다루시는 것처럼 우리를 다루신다면, 우리는 더 나은 대우를 바랄 필요가 없다.

Ⅱ. 다윗은 어떠한 확신을 가지고 그의 생명이 지속되기를 기대하고 있는가?(6절) 

“주께서 왕으로 장수케 하시리이다.” 이는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그 자신에 대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시편이 그가 면류관을 쓰기 전에 지어졌다 할지라도, 그는 이미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지금은 법률의 보호를 박탈당한 자라 하더라도 믿음으로 그 자신을 “왕”이라 칭할 수 있었다. 

---또는 아마도, 이 시편은 압살롬이 그를 폐위하고 추방할 기회를 노렸을 때에 지어졌을 것이다. 

비록 그의 생명을 단축시키고자 했던 자들이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장수케 하실 것을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 의해 정해진 사람의 나이(즉, 70세)대로 그를 살게 하셨는데, 그는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었으므로(행 13:36), 그것은 “여러 대로” 간주될 수 있다. 왜냐하면 여러 대는 그에게 더 유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결심은 영원히 하나님의 장막에, 의무의 길에 거하려는 것이었다(4절). 

그리고 이제 그의 소망은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위로의 길에 거하리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거하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하는 자들은 선한 목적을 따른다. 

그는 그 자신을 제삼자로 말하고 있는데, 이 시편이 교회가 사용하도록 악장에게 넘겨졌고, 그는 이 시편을 노래하는 가운데 백성들로 하여금, 그의 대적들의 악의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원하는 바처럼 그들의 왕이 오래 살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 격려받게 하려는 때문이었다.

2. 메시야에 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바로 메시야이신 왕의 예표였다. 

다윗에게는 자기 자신이야 어찌되든,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연수는 여러 대에 미칠 것이며, “그의 통치에서 평강의 증가는 끝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중보자는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할 것이다. 

그는 항상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존전에 나타나시며, 언제나 살아 계셔서 중재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살아 계시므로 우리도 또한 살 것이다.

Ⅲ. 어떠한 끈질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를 취하시어 언제나 그의 보호 아래 두시기를 간청하고 있는가?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저를 보호하소서.” 

---하나님의 약속과 그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기도를 빼앗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재촉하고 격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장구케 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므로, 그가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자기에게 강한 생명의 파수꾼이나 견고한 성을 예비해 주시기를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를 보호하실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 약속대로 그의 안전함을 마련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의 보호 아래에 있는 것 이상의 안전을 바랄 필요는 없다.

---본문은 메시야에게 적용될 수 있다. 

“때가 충만히 이르렀을 때에, 그를 보내사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소서”(미 7:20; 눅 1:72-73).

Ⅳ. 어떠한 즐거움을 갖고 그는 하나님께 의무의 감사한 보답을 드리기로 서원하고 있는가?(8절)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리이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는 우리에게 그에 대한 찬양을 요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그를 찬양할 수 있기 위해 살기를 원해야 한다.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양하리이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우리 세대의 과업으로 만들어야 한다(우리의 생명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하나님 찬양하기를 지속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찬양은 우리에게 영원의 과업이 될 것이며, 우리는 영원히 그를 찬양할 것이다.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그가 하나님을 찬양함은 그 자체가 그의 서원을 이행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다른 면에서도 그의 서원을 이행하도록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다음을 명심하자.

1. 우리가 한 서원을 우리는 양심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2.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그에게 우리의 서원을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꾸준한 일과가 되어야 한다. 

---날마다 우리는 그를 향해 소정의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과 비교할 때 아주 적은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매일 신선한 긍휼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많이 행했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영원히 행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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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륜(오이코노미아=오이코스[가정, 집] + 노모스[법률] = 하나님의 나라 경영) : 하나님의 경륜의 방향(목적)은, 신자의 섬김과 봉사를 통해 함께, Q이 택하신 사람안에 Q을 분배함으로써 새예루살렘을 완성하는 것
**하나님의 모략 = 주권적 섭리 + 계획/안배
**하나님의 섭리: devine providence..Q의 주권적 초월적 일하심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신뢰하는 신자-섬김이-봉사자의 자세]...항기쉬기범감(살전5:18)의 예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Q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즉, 매사/만사에 거룩함과 사랑으로, 교통과 합일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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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데르(명남)는 나다르(rd'n: , 5087: 서원하다, 맹세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서원, 맹세 vow, 서원제물 votive offering'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0회 나온다.
네데르는 나다르(rd'n: , 5087)의 결과, 즉 서원이나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 드린 것을 나타낸다.
네데르는 화목제물(레 7:16)의 일종으로 희생제사의 목록 중에 나온다(예: 신 12:6, 신 12:11). 보다 더 상세한 서술이 민 30:3, H4에 나오는데, 이 구절에서 '서원하다'라는 말은 '맹세로 하나님께 맹세하다'(히쉬샤바 셰부아, 참조: 시 132:2)와 '아무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아무개 자신의 구속하다'를 뜻한다. 
네데르는 하나님께 구두로 약속 드린 어떤 것이다(민 30:4, H5). 만일 누군가가 그렇게 약속하면 그는 그의 약속을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신 23:22).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서원이란 영어가 암시하는 것과 같이 단순히 행동 과정만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기 위한 약속된 예물을 암시한다는 것을 문맥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성경의 '서원'은 항상 신(하나님)에게 드려지는 것이지 결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약속이 아니다. 경솔한 서원은 피해야 한다(잠 20:25, 참조: 삿 11:30). 성급한 서원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어리석은 짓이다(전 5:4, H3 이하).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과 서원(언약)을 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죄가 아니다(신 23:23, H24). 네데르는 하나님의 은총에 답하여(민 21:1-3) 서원하거나(심지어 이방인들도 서원함, 나 1:15, H2:1). 경건한 열심과 헌신의 표현으로, 그리고 응답 받은 기도에 찬양하며(시 22:25, H26) 서원하는 감사 제물의 일종이다. 기쁨(행복)은 서원을 잘 이행할 때 온다(욥 22:27).
이미 하나님의 것(레 27:26, 십일조 개념의 발전을 주목하라. (창 31:13) 
하나님께 가증한 것(신 23:18, H19-남자나 여자 창기의 소득 같은 것들, 참조: 잠 7:14)이 아닌 거의 어떠한 것들로도 서원할 수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서원할 수 있으며, 또는(타자[예: 부모]에 의해) 서원될 수 있다. 자신을 서원한 자(혹은 서원된 자)는 그의 실질적인 봉사에 맞먹는 동등한 대가를 하나님께 지불함으로써 구속될 수 있다(혹은 자신을 구속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유롭게 되어 자기 자신의 생활에 종사할 수 있는 것이다. 서원을 갚은 정한 짐승은 그 짐승들이 기타 율법에 명시된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면(레 27:9 이하, 참조: 레 22:18이하, 나다브) 서원 제물로 바쳐졌다. 그렇지 못한 경우 드리는 자는 두 번째의 열납될 만한 제물을 드릴 수 있다. 그러나 두 동물 모두 다 거룩하다(레 27:9 이하). 하나는 제물로 바쳐지고 다른 하나는 제사장의 소유가 된다. 부정한 짐승은 값을 치르고 구속할 수 있다(레 27:11이하). 집이나 밭을 서원하는 것에 관한 규정이 레 27장에 나타나 있다. 광야 방랑 기간 중에(KD, 민 15:3) 서원 제물이 될 수 있는 종류의 동물에 수반되는 고운 가루와 전제의 양이 규정되었다.
네데르는 번제물(레 22:18)이나 화목제물이 될 수 있다. 이 때 제물은 첫째 날이나 둘째 날에 먹어야 했다(레 7:16).
남자나 여자 모두 서원할 수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제도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자가 서원하는 것은 다소 제약을 받는다(민 30:4, H5). 그러나 여자도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종교적으로 스스로 책임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민 30:9, H10). 복종(창 2:21이하)은 가족의 화합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 가족 제도를 재가한다. 팔레스틴에 들어간 이후, 네데르는 규정된 다른 제물들과 함께 지정된 중심 성소에서만 드려야 했다(신 12:6, 신 12:11).
서원하는 것은 종교적 의무는 아니었다(신 23:21-23, H22-24). 이러한 서원은 하나님께 용납되었다(시 50: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교도의 사상과 같이 재물을 받거나 시중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시 50:9-13)(참조: A. Leo Oppenheim. Ancient Mesopotamia, University of Chicago, 1964, p. 183 이하). 
서원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전(시 50:14)이나 받은 후(시 116:17-18)에 약정하는 헌신과 사랑의 행위로 직무 이상의 행동이었다. 서원에는 즐거움(나 1:5, H2:1) 및 노래(시 61:8, H9)가 수반되었으며 서원예물 드리는 자의 마음에 악을 품지 않으면 그 서원은 열납되었다(시 66:18, 참조: 잠 7:14).
적어도 두 가지 주목할 만한 특별한 서원이 있다. 나실인 서원(민 6:13, 나자르)과 헤렘(민 21:2). 
압살롬은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 다윗의 궁전을 떠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삼하 15:7-8). 그의 속임수가 얼마나 깊은가는 그의 거짓말한 것과 하나님의 법령에 대하여 거짓말한 것에서 나타난다. 
다른 한편으로 엘가나는 자신의 서원을 성실하게 이행했을 뿐만 아니라(삼상 1:21) 한나의 서원에 동의했다(삼상 1:11, 삼상 1:22-23, 참조: 민 30장). 
인신제사를 드리겠다고 입다의 경솔한 약속은, 비록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그의 지식 수준이 낮았다 하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그 일은 그가 무남독녀를 평생 동안 성막에서 봉사하도록 바치는 것으로 경감되었는데, 이는 최소한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삿 11:30, 삿 11:39, 참조: KD 등).
네데르는 단 한번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을 표현하는데, 이는 심지어 모세 시대에 있어서도 순수한 율법주의가 아닌 사랑이(신 6:4) 참된 경건을 가장 잘 묘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메시야도 역시 서원에 의하여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쳐야만 한다(시 22:25, H26, 참조: 레 27:2 이하). - 메시야는 하나님에게 참으로 "열납될 수 있는" 유일한 인신 제물이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서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올 것이다(시 65:1, H2, 사 19:21).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 자신의 어린양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을 서원제물로 가져올 수 있겠는가?(요 1:29).(참조: THAT, II, pp. 39-42, L. J. COP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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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 마5:33-37 / 2019.6.9
마태복음 5장 33-37절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혹시 여러분은 거짓말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물어보나 마나 다 있겠지요? 우리는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들키지 않게 기술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또 자신의 거짓을 감추기 위해 헛맹세를 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구체적으로 여섯 가지 실제적인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첫째는 살인, 둘째는 간음, 셋째는 이혼, 그리고 넷째가 맹세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를 든 것을 살펴보면, 우리가 행하기 쉬운 것부터 점점 어려운 것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인은 비교적 쉬운 명제입니다. 살인보다 더 어려운 것이 간음과 이혼의 문제이고, 간음과 이혼보다 더 어려운 것이 언어습관, 거짓말과 헛된 맹세에 관한 것입니다. 정직하게 말하고, 헛된 맹세를 하지 않는 것이 결코 쉽지 않는 명제라는 말입니다.
거짓말과 헛된 맹세
   사람들은 1주일에 평균 13번의 거짓말을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거짓말과 헛된 맹세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니 사람이 어떻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어떤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자신의 말을 과장하고, 맹세를 덧붙여 왔습니다. 거짓된 것일수록 맹세를 덧붙여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가 그랬습니다. 자신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당시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사용했던 것이 바로 ‘맹세’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혹은 다른 것들을 걸고 맹세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우리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자기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내가 약속을 어기면 성을 갈겠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다고 실제로 손에 장을 지진 사람을 본적이 없고, 자기 성을 간 사람을 본 적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맹세하는 이유는 자기 말에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보다 더 큰 힘이 있는 존재를 빌어, 자기 말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현종 시인이 쓴 《장난기》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 말보다는 아무래도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라고 해야 먹힐 것 같아 나는 장난기가 동하면 가끔 내 말을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라고 하고 말을 한다 사람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셰익스피오가 안 한 말이 있겠느냐 싶기도 하여) 표정을 고쳐가지고 듣는다” 참 재미있는 시입니다. 시 제목이 ‘장난기’입니다. 시인이 장난으로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빌어서 말하는데 사람들은 진짜 줄 알고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세는 원래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맹세하지 않아도 서로 믿어주고, 과장된 표현, 화려한 말로 포장하지 않고, 단순하고 정직하게 말해도 받아들여지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자 본문 33-3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또 옛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여기에 보면, 주님은 ‘옛 사람에게 말한바’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맹세를 하되, 헛맹세를 하지 말고 맹세한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는 중요한 일을 서로 약속할 때 맹세하는 것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떤 곤란한 일을 해결해야 할 때 맹세를 해왔습니다.
   이런 예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며칠간 집을 비우기 위해서 이웃 사람에게 자기 가축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났는데, 그 사람이 여행을 떠난 후에 이상하게 그 가축 중의 양 몇 마리가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남의 양을 맡았던 그 이웃 사람이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양이 죽어버렸습니다. 자기가 죽인 것도 아닙니다. 이제 주인이 돌아오면,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정말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잘못하면 이웃 간에 분쟁이 생길 수 있고, 한 순간에 좋은 관계가 깨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출애굽기 22장에 보면, 이런 상황을 가정하시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끌려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께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출 22:10-11) 무슨 말입니까? 양을 맡았던 이웃이 그 양을 자기가 죽이지 않은 것이 확실하면, ‘나는 그 양을 죽이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맹세하고, 그 맹세를 듣는 주인은 그 말을 그대로 믿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것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맹세는 이럴 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6장 16-17절에서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명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확정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악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맹세를 하면 사람들이 믿어준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혹은 어떤 일에 대해 사람들이 믿도록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난 다음 그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 두려워지니까,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걸고 맹세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높지 않지만 하나님처럼 커 보이는 것을 끌어다가 맹세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늘을 걸고 맹세하고, 어떤 사람은 땅을 걸고, 또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을 걸고 맹세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머리를 걸고 맹세하기도 했습니다. 왜 당시 사람들이 이렇게 맹세했을까요? 당시 사회가 이렇게 맹세하지 않으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회요, 타락한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너희는 헛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34절에 보면, 주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옛사람에게는 ‘헛맹세를 하지 말라’, ‘맹세한 것은 주께 지키라’고 말했지만 주님은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 하늘로도 하지 말고 땅으로도 하지 말고, 예루살렘 성으로도, 그리고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무엇으로 맹세하든 간에 그것은 다 하나님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하늘이나 땅, 예루살렘, 심지어는 네 머리조차도 다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메 오모사이 호로스(μη ομοσαι ολως)’라고 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맹세하지 말라’는 강한 명령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세기 교회의 엣세네파, 종교개혁당시의 재 침례파, 현대의 퀘이커교도들이 그들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결혼서약이나 법정에서 하는 증인 맹세까지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씀의 본뜻은 그런 말이 아닙니다. ‘맹세 자체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잘못된 맹세, 다시 말한다면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한 맹세,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으로 하는 맹세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찾으러 종을 보낼 때,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창 26:2) 라고 하고는 그 종에게 맹세하게 했고, 야곱도 요셉의 손을 자기 허벅지 아래 넣고, 자기가 죽으면 애굽에 장사하지 않고 조상의 묘실에 장사하겠다고 맹세하게 했습니다.(창 47:29-31) 다윗도 요나단에게 맹세하도록 했습니다(삼상 20:3) 맹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맹세를 오용하고 악용한 것이 나쁜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맹세가 필요 없는 정직한 말을 하고, 맹세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인정할 수 있는 투명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본문 3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찾아서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여기에 보면, 예수님은 맹세 대신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라고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말의 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다른 권위를 기대지 말고, 또한 화려하게 꾸미지도 말고 소박하게, 있는 그대로를 말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꾸 말을 보태고, 과장하게 되면 뭔가 구린내가 나는 말, 악에서 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옳으면 옳은 것이고, 아니면 아니라고’ 하는 단순하고, 정직한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예수 믿는 우리들이 정직하게 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다가 손해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말은 언제나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맹세가 필요 없는 투명한 인격을 갖추어야 되고, 맹세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믿어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말은 쉽고 단순합니까? 복잡한 변명과 미사여구가 없이 진실합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말은 거짓과 과장이 없는 진실한 말이어야 할 것입니다.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라
   그런데 문제는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옳소’라고 대답하는데, 속으로는 ‘아니요’라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충청도 양반들이 그렇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앞에 두고, 대놓고 “아니요”라고 할 수 있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알았슈!’라고 말합니다. 참 묘한 말입니다. ‘예’라는 말도 아니고 ‘아니요’라는 말도 아닙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상사의 호감을 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첨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윤활유라고 부르지만 하나님은 거짓말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칭찬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과장해서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극적효과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말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분에 넘치는 집에서 삽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된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은 목사인 저에겐 많이 부담이 되는 말씀입니다. 목사들은 사람들 앞에서 비교적 말을 많이 하고, 말의 실수도 많은 사람입니다. 설교할 때,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과장법도 많이 사용하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면서 마치 자기 말처럼 할 때도 있습니다. 목사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입니다. 한번은 설교를 하고 내려왔더니 제 아내가 ‘왜 틀리게 말하느냐?’고 따졌습니다. 물론 저는 ‘줄여서 말해야 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변명했지만, 제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그이후부터 저는 예화를 사용하거나 제 자신의 간증을 해야 할 때, 얼마나 주의하는지 모릅니다. 예화의 출처도 확인하여 사용하고 있고,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하는 것도 버리고, 담담하게 설교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화려한 말, 미사여구에 속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하게 말하고 진실을 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필요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다니엘 웹스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진실만큼 강한 것이 없다. 그러나 한편 진실만큼 이상한 것도 없다.” 또 셰익스피어는 그의 희곡 오셀로에서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오 기괴한 세상!, 조심하라 세상 사람들이여! 정말 조심할 지어다 솔직하고 정직하다는 것은 결코 안전한 것이 못 되느니라.” 셰익스피어는 세상이 이상하고 기괴하기 때문에, 솔직하고 정직하다는 것은 안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당하게 거짓을 말하고 아첨하고 과장하면 사람들의 주목도 받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순종하려고 하면, 손해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역시 거짓말과 헛된 맹세를 남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시고, 이 세상을 여전히 통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이랜드 회사를 잘 아실 것입니다. 요즘에는 이랜드가 ‘기독교 정신을 표방하고 있지만 다른 회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라는 책에 보면, 이랜드 박성수 회장은 2004년 올해의 기업인 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IMF때였습니다. 부도가 나기 직전에 다행히 외국인 투자자가 5억 달러를 들고 와 우리에게 10분의 1을 투자해서 어려운 때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외국인 투자자가 1년 동안 나머지 돈을 투자하지 않고 있기에 ‘아니 지금 헐값에 기업들을 사들일 수 있는데 왜 가만히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사고 싶습니다. 하지만 막상 사려고 하면 장부가 두 개입니다. 그래도 이랜드는 장부가 하나여서 투자했습니다.’그때 제가 얻은 결론은 하나입니다. ‘정직하면 언제나 손해 본다. 그러나 결정적일 때는 정직해서 살아난다.’”
   카터 대통령을 아시죠? 1976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닉슨의 거짓말에 실망한 국민들 앞에 민주당 후보로 나선 카터는 “나는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캐치플레이즈를 내걸고 선거에 나섰습니다. 그의 정직성에 많은 미국 사람들이 표를 던져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 그는 약속대로 정직한 도덕정치를 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음모와 술수가 난무한 정치판에서 정직이 내세운 그는 결국 무능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다음 선거에서 레이건에게 져서 재임에는 실패했지만, 대통령직을 그만 두고 난 후에 오히려 미국 사람들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성도는 정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직하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첫째,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3장 9절에 보면 오실 메시야에 대해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라고 말했습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은 강포를 행하거나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은 언제나 정직했고, 진실했습니다. 주님은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요 8:26)라고 하셨고, “나는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한다”(요 8:38)고 하셨습니다. 하늘 아버지께 들은 그대로, 아버지에게서 본 그것을 그대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에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신들도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병든 자를 고치셨고,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 말씀에 위로받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우리 역시 그래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정직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말이 정직하고 과장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를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을 미워하십니다. 대신 정직한 자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점언 14장 11절에서는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고 하셨고, 잠언 15장 8절에서는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똑같이 예배드리고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정직하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예수의 증인으로 이 땅을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할 우리가 거짓으로 부풀린 말을 하고, 거짓을 말한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누가 듣겠습니까? 그러므로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그리스도인의 말은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한 유대인의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백화점에 가서 양복과 외투를 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포장지를 뜯었더니, 아들이 산 양복 주머니 안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양복주머니에 반지가 들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건 어머니의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백화점 주인이 “옷을 사신 분이 반지의 주인이십니다. 반지를 돌려주실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반지를 되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옷을 샀을 뿐입니다. 반지를 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유대인이거든요.” 그때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유대인의 정직을 배웠습니다. 참 멋있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크리스천이거든요.” 그리고 이 말이 정직과 신뢰의 보증수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마가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주님의 제자들에게 오순절날 성령이 임재했습니다. 이 성령의 임재를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래서 강단의 꽃꽂이도 성령의 불을 상징해서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모양으로 꽃꽂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거짓말과 헛된 맹세를 하는 자들, 거짓된 삶을 사는 사람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사도행전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영, 성령님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성령받은 그들은 말과 삶이 일치하는 했고, 또한 그들의 말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들로 인해 세상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산곡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고,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 부부는 반드시 결혼서약을 지키고, 가정을 신실하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사업가들은 정직하게 사업해야 하고, 그리도인 직장인은 주님을 섬기듯이 성실하게 일해야 할 것입니다. 헛된 맹세가 필요 없을 정도로 정직하게 살아가고,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해지고, 세상이 변화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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