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8.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53.무신론자의어리석음_해악_쇠망_수치_결말.감찰자보혜사Q은기독자의온전한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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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53.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마할랏에 맞춘 노래==시14.[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참조

[오신실하신주내아버지여393.].내영혼의그윽히깊은데서412..내너를위하여311.예수가우리를부르는소리528.내죄속해주신주께215.. 주의주실화평327....얼마나아프실까.수고하고무거운.너예수께조용히나가.주님보좌앞에나아가참된.주님의시간에.나를알라잠잠한중에..내영혼의그윽히깊은데서.주내소망은주더알기.주님과같이내마음.사랑하는자들아.주예수사랑기쁨내마음속에.눈을들어영광의왕을보라.


*1.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4.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

*6.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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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4.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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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너희 모두는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한 자냐? 그들이 밥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나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구나.

하나님이 경건하지 못한 자들의 뼈를 흩으셨기에, 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도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물리치셨으니, 그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보내실 때에, 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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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ly and Wickedness of Men. To the Chief Musician; in a mournful strain. A skillful song, or didactic or reflective poem of David.53 

1 The [empty-headed] fool has said in his heart, “There is no God.” They are corrupt and evil, and have committed repulsive injustice; There is no one who does good.

2 God has looked down from heaven upon the children of men To see if there is anyone who understands, Who seeks after God [who requires Him, who longs for Him as essential to life].

3 Every one of them has turned aside and fallen away; Together they have become filthy and corrupt; There is no one who does good, no, not even one.

4 Have workers of wickedness no knowledge or no understanding? They eat up My people as though they ate bread And have not called upon God.

5 There they were, in great terror and dread, where there had been no terror or dread; For God scattered the bones of him who besieged you; You have put them to shame, because God has rejected them.

6 Oh, that the salvation of Israel would come out of Zion! When God restores [the  fortunes of] His people, Let Jacob rejoice, let Israel be gl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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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ol has said in his heart, "There is no God," They are corrupt, and have committed abominable injustice; There is no one who does good.

God has looked down from heaven upon the sons of men To see if there is anyone who understands, Who seeks after God.

Every one of them has turned aside; together they have become corrupt; There is no one who does good, not even one.

Have the workers of wickedness no knowledge, Who eat up My people as though they ate bread And have not called upon God?

There they were in great fear where no fear had been; For God scattered the bones of him who encamped against you; You put them to shame, because God had rejected them.

Oh, that the salvation of Israel would come out of Zion! When God restores His captive people, Let Jacob rejoice, let Israel be glad

==[시53.개요]==

하나님은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하고 계시는데, 사람이 이때 깨닫는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은 이 시편에서 두 번째 말씀하고 계시다. 왜냐하면 이 시편은 제14편과 거의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 의도는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얼굴을 붉히고 떨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깨닫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구절구절마다 이 요지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말씀은 설득력 있는 말씀으로서, 망치, 곧 자주 반복해 쳐야 하는 망치에 비유된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시편 저자에 의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하게 하고 있다.

1. 우리가 얼마나 악한가를 보여주고 있다(1).

2. 하나님 자신의 명백한 지식에 의해서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2-3).

3. 그는 핍박자들, 가장 악한 죄인들에게 위협적인 말을 하고 있다(4-5).

4. 그는 하나님의 핍박받는 백성들에게 격려를 말해 주고 있다(6).

시편 14편 5-6절과 이 시편의 5절 이외에는 다른 점이 거의 없으나, 그 어느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악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에 대해 거기에서 사용되었던 어떤 표현이 여기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대신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부끄럽게 하시리라는 것이 예고되어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다윗이 이 시편을 두 번째로 악장에게 넘겨주었을 때,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된 것이라고 어떤 자는 해석한다. 이 시편을 노래함에 우리는 인간성의 타락,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비참하게 더러워진 것을 탄식해야 하며, 또 한편으로는 큰 구원의 소망을 즐거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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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타락(시 53:1-6)

이 시편은 앞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대한 우리의 슬픔과 증오심을 증가시키기 위해 여기에서는 단지 죄에 관한 몇 가지만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Ⅰ. 죄의 사실. 그것이 증명되는가? 그것에 대한 문책이 입증될 수 있는가? 그렇다. 하나님이 그것에 대한 증인, 더할 나위 없는 증인이시다. 하나님은 자기의 지성소에서 인생들을 굽어보시며, 사람들 가운데 어떤 작은 선이라도 있는가를 살피신다(2절). 인생들의 마음과 생활의 모든 죄악이 하나님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Ⅱ. 죄의 과실. 그 속에 어떤 해가 있는가? 그렇다. 악이 있다(1, 4절). 바로 불의한 것이다. 그 속에는 선이 없다(1, 3절). 그것은 흉악하다. 그것은 이 세상을 지금처럼 악하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물러가게 한다(3절).

Ⅲ. 죄의 근원.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이처럼 나쁘게 되었는가? 분명히 그것은 “저희 목전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에 이르기를 우리를 불러 문책할 하나님이 아주 없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사람의 나쁜 행실은 그들의 나쁜 원칙에서 흘러나온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했을지라도, 그들의 생각이 그러하기 때문에 행실로는 그를 부인한다.

Ⅳ. 죄의 어리석음. 이처럼 타락한 생각 속에서 머뭇거리는 자는(우리가 올바른 심판을 내리신다고 확신하는 그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다. 무신론자들은 이론에서나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은 깨닫지도 못한다. 그들은 지각이 없는 짐승들과도 같다. 왜냐하면 사람이 짐승과 구별되는 것은, 이성의 힘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신앙의 역량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그들이 아무리 가장하더라도, “무지하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진실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일컬어질 수 있다 (4절).

Ⅴ. 죄의 더러움. 죄인들은 부패한다(1절). 그들의 성품은 더럽혀지고 망쳐진다. 그리고 귀한 성품일수록 그것이 부패될 때는, 천사들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더욱 나쁘게 된다. “가장 훌륭한 것이 부패하면 가장 나쁜 것이 된다?Corruptio optimi est pessima). 그들의 죄악은 가증스럽다. 그 죄악은 거룩한 하나님께 혐오스러운 것으로서 또한 그러한 근성을 나타낸다. 그러한 것 이외에는,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것을 미워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사람을 모두 불결하게 만든다. 완악한 죄인들은 하늘과 거룩한 천사들의 하나님 콧구멍을 건드린다. 교만한 죄인들이 아무리 고상한 척하더라도 사악함이 세상을 가장 더럽게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Ⅵ. 죄의 열매. 그것이 결국 어느 정도로 사람을 잔인하게 만드는가를 보라. 사람들의 마음이 죄의 기만성으로 인해 완고해졌을 때, 그들의 뼈 중의 뼈인 그 형제들에 대한 잔인성을 보라─그들은 저희들처럼 “그러한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않으며, 그들이 “떡 먹듯이 저희를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짐승같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늑탈하는 짐승과 같다. 그리고 그들은 그와 동시에 하나님을 멸시한다. “저희는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고”, 그에게 은혜 입는 것도 비웃는다.

Ⅶ. 죄에 따르는 두려움과 수치(5절). 하나님을 대적하는 “저희가 크게 두려워하였도다.” 그들 자신의 죄책감이 그들을 놀라게 했고, 비록 두려워할 외적인 이유가 없었을지라도 그들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이는 이전에 그의 백성들을 “대하여 진 친 저희의 뼈를 하나님께서 흩으셨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능력을 꺾고 그들의 힘을 흩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죽이셨고, “음부의 문에 흩어진” 자들처럼(141:7) 그들의 몸이 앙상한 뼈가 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포위하는 자들이 당할 운명이다(계 20:9).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을 삼키는 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계 20:9). 그 처녀, 시온의 딸이 그들을 수치스럽게 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고”로, 그들이 비웃음당하게 내버려둔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자가 저희를 비웃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경멸스럽게 여기시는 자들을 두렵게 여길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그들을 멸시하신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도 된다.

Ⅷ. 성도들의 믿음, 그리고 큰 불행을 치료하는 그들의 소망과 능력(6절). 죄에서 구원해 주실 큰 구원, 곧 구주가 오실 것이다. 어서 빨리 오기를! 왜냐하면 그것은 영광스럽고 기쁜 날을 이끌고 오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도 이 구속을 바라고 기대하던, 기도하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1. 하나님은 합당한 때가 되면 그 사악한 대적으로부터 그의 교회를 구원해 주실 것이며, 오랫동안 슬프고 우울한 상태에 있던 야곱과 이스라엘에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러한 구원들은 자주 일어났고, 그 모든 것은 영광스러운 교회의 영원한 승리의 표상이었다.

2. 그는 모든 믿는 자들을 그들의 죄악에서 구원하시어 그들이 죄악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하실 것이며, 이는 그들에게 영원한 기쁨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이 일 때문에 구속주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이시기 때문이다(마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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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D;(1875, 다라쉬) 자주가다, 찾다, 구하다, 문의하다, 노력하다[[찾다]]

다라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자주 가다(드나들다), 찾다, 탐구하다, 탐사(조사)하다, 구하다, 요구하다, 문의하다, (~하려고)노력하다, 시도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6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다라쉬는 '조심하여 구하다'의 의미(인식의 의미)는 레 10:6에서 나오는데, 여기에서 모세는 속죄물에 어떤 것이 발생하였는가를 상세하게 발견하려고 추구하였으며, 삼하 11:3에서 다윗은 밧세바가 누구인가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신 23:6, 렘 29:7).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장소(신 12:5)와 공의(사 1:17, 사 16:5!)를 조심스럽게 구하도록 명령받았다. 종말에 예루살렘, 즉 어느 누구도 찾지 않는 장소(렘 30:17)는 "찾은 바된" 장소가 될 것이다(사 62:12, 혹은 "권고하시는", 신 11:12). 메시야 왕을 찾는 자들은 이방인들이다(사 11:10). 그분의 안식 장소(민 10:33, 신 12:9)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다라쉬의 '염려하다, 돌보다'라는 의미는 앞에 언급한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편 기자는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라고 반박하였다(시 142:4). 이스라엘은 잡혀간 도시의 안녕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렘 29:7). 아마도 대상 15:13과 대하 1:5은 법궤와 놋제단을 "돌보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 같다.

다른 신학적 주제는 신 4:29에서 발전되고 있는데(참조: 바카쉬),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미래의 변절에 대하여 경고받고 있으며 전심으로 경배할 것을 권고받고 있다(신 6:6, 마 22:37). 역대기 기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구하느냐(대하 22:19, 대하 28:9, 대하 31:21 등) 아니면 우상을 구하느냐에 의하여 이스라엘 역사를 평가하고 있다(대하 25:15). 이사야는 하나님의 징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구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알리고 있다(사 9:13, 참조: 렘 10:2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옛적의 약속을 상기시키고 있다(사 55:6, 렘 29:13, 호 10:12).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계속하여 범죄하는 동안에도 그들에게 자신을 "찾으라"고 타이르시면서(사 58:2) 종말 때에 진실로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축복하리라고 약속하신다(사 65:10). 흥미롭게도 하나님을 찾지 않던 자들도 하나님을 찾을 것이다(사 65:1, 사 11:10, 롬 10:20).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또한 지식, 충고, 통찰력을 추구하여 어떤 특별한 문제에 관해 문의하는 것을 의미한다(창 25:22). 이러한 문의는 선지자 곧 하나님의 대변자를 통하여 이루어지거나(출 7:1, 출 18:15이하, 삼상 9:9, 렘 21:2 등) 혹은 "제비뽑기"를 이용하는 제사장을 통하여 이루어진다(샤알, 신 17:9). 거짓 신의 말을 좇는 것은 간혹 복합적인 의식을 포함하였다(신 12:30, 대하 25:15(?), 삼하 11:3, 겔 21:21).

이와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는 본 동사의 법적 사용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 있는 "판단"에 문의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재판을 구한다는 것이다(출 18:15, 신 17:4, 신 17:9, 참조: 마 18:5-20, 고전 6장, 딤전 3장).

끝으로 이 단어 어근은 생명을 취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에 대해 사용된다.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하게 생명에 대한 생명의 보상을 요구하실 것이다(창 9:5, 참조: 바카쉬). 최소한 한 실례에서 이러한 약속이 제기되며, 거룩하게 시행되었다(대하 24:22, 대하 24:24, 시 9:12, 시 10:4).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아니하는 목자는 자신을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아래 두는 것이다(겔 33:6). 하나님의 사자들(선지자)에게서 나온 모든 선포는 그것이 부연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이전의 계시와 일치되기만 하면 기적적으로 입증되든지 혹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인간의 용인과 순종을 요구한다(신 18:22, 욘 7:40, 행 3:22 이하).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자애 그리고 겸손한 자세를 요구하신다(미 6:8, 참조: 겔 20:40).

(참조: Coppes;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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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k'c;(7919, 사칼) 지혜롭다, 총명하다, 지혜롭게 행하다, 교차하여 두다[[지각이 있다=총명하여 이해하며 지혜의 감각으로 행하다]]

사칼(동사)은 기본어근이며, (a) '지혜롭다, 총명하다, 이해하다', 지혜롭게(통찰력 있게, 신중히) 행하다, (b) '교차하여 (십자로) 두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80회 나오며, 칼, 히필, 피엘형으로 사용되었다.

(a)  많은 용례에서 사칼은 빈과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미묘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빈은 '양자를 분별한다'는 의미가 있는 반면 사칼은 이성의 지적 앎과 관계가 있다. 사고의 복합적 배합을 통한 사유 과정에 의해 훌륭한 실제적 상식을 지혜롭게 처리하고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이를 통한 또 하나의 결과로서 성공적인 것에 역점이 주어진다.

사칼은 또한 어떤 대상을 숙고한다. 거기에 주의를 집중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가련하고 빈핍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분이 누구인가를 깊이 숙고하게 된다(사 41:20). 의로운 자는 악인의 집을 헤아린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지혜로운 행위는 한 사물 즉 악한 거처를 향하고 있다(잠 21:12, '의로운 자'로 해석되는 난해 구절이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율법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에스라 앞에 모였다(느 8:13).

이 동사의 또 하나의 의미는 '통찰하다', '이해하다'이다. 무언가를 자랑하고자 하는 자는 자신이 여호와를 통찰하며 그를 안다는 사실에 대해 자랑해야 한다(렘 9:23). 히필 부정사 하스켈은 '통찰력' insight이라는 실명사의 의미를 지니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통치자들과 교사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준 선물로 묘사되었다(렘 3:15). 이 단어는 잠 1:3에서도 등장하는데 그 구절에서는 잠언서가 젊은 자에게 지혜로운 행동에 대한 '통찰력' insight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예레미야에서 보듯 지혜로운 행동이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성품에 순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또 하나의 용법이 있는데 숙고하게 하다, 통찰(력)을 주다, 가르침을 주다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로하여금 성전 기구의 상세한 식양(한 사물을 가리키는 직접 목적어로 사용됨)을 알게 하였다고 지적한다(대상 28:19).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통찰력 혹은 교묘한 솜씨를 주었다(단 9:22).

한편 이 단어에는 신중하고 사려깊게 행동한다는 의미도 있다. 악한 때에 사려깊은 자는 침묵을 지킬 줄을 안다(암 5:13). 하나님께서는 인생 중 지혜롭게 행동하여 그를 찾는 자가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시 14:2). 사려깊게 행동하는 아내란 여호와께로부터 말미암는다고 묘사되었다(잠 19:14). 마찬가지로 고난의 종도 사려깊게 행하여 자기에게 부과된 사역을 성취하였다(사 52:13).

이 동사는 또한 번영하다, 성공하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 사울은 다윗이 그의 삶 속에서 인도하시는 성령의 임재의 결과로 크게 번영하였기 때문에 그를 두려워하였다. 사실상 다윗은 이러한 성공적 행위에 의하여 사울을 그의 권좌로부터 물러나게 하였다(삼상 18:14, 삼상 18:15). 예레미야는 특별한 은혜를 받은 국가의 목자인 지도자들에게 심판이 선언되었음을 강조한다. 지도자들은 여호와를 찾지 않았으므로 어리석은 자들로 간주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번영하지 못할 것이며(한글개역 "형통치 못하며", 난외주,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며') 그들의 양떼는 흩어질 것이라고 말한다(렘 10:21).(H. Wolf)

(b)  사칼은 '교사하여(십자가로) 두다'를 의미한다.

창 48:14에서 사칼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어떤 학자들의 의견과 같이 이 단어가 사칼의 변형으로보면 '어떤 통찰력으로(사려깊게 혹은 신중하게) 행동했다'란 의미를 지닌다. NIV, NASB, NRSV는 '교차하여 두다'란 의미를 따랐으며, KJV는 '사칼(a)'의 의미를 따라 '고의로(혹은 알고서) ... 지도했다'는 의미로 번역했다.

야곱은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을 우대한다. 야곱은 예언의 영에 영감되어 영적 통찰력으로 신중하게 그의 오른손을 차자 에브라임 위에 얹었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으로 축도의 의식으로 안수하는 장면을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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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c;[;(6213, 아사) 일하다, 행하다, 만들다, 형성하다, 이루다 [[행하다]]

아사(동사)는 기본 어근이며, '일하다, 행하다, 만들다, 형성하다, 이루다'를 뜻하며, 그 기본 의미는 '행하다, 만들다'이다. 이 단어는 많은 표현에서 항상 동일한 기본 개념을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630회 나오며, 칼형, 니팔형, 푸알형으로 사용되었다.

(a)  아사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서 매우 자주 나타나며, 이는 중요하고도 매우 흥미롭다.

....바라(ar:B: , 1254)는 칼형에서 (1) 관련된 대상의 개시, (2)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 (3) 창조된 대상의 완전한 새로움, (4) 무에서 창조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아사는 의미의 영역이 훨씬 넓으며, 어떤 특수한 어감을 거의 지니지 않은 채 대상의 형성을 주로 나타낸다. 아사는 자주 바라와 상호 교대로 사용되어 단순히 창조 과정에서 관련된 대상들을 조성하거나 만드는 행동을 나타내는 반면에 바라는 그 물체에 대한 창시를 강조한다(참조: 창 1:1).

창 1:7에서 하나님께서 '창공(궁창)이 있으라'고 명령하셨으면 창공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공을 만드셨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창공이 있으라는 명령이 창공이 실존하기에 불충분함으로 보충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진 이후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계속적으로 발휘되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성령의 역사를 감지할 수 있다.

....아사는 하나님께 사용되면 흔히 역사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활동을 강조한다. 이러한 문맥들은 구약성경 신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 즉 하나님은 초월적이실 뿐만 아니라 역사 안에 내재하셔서 그의 주권적인 목적을 이루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모세는 애굽에서의 하나님의 크신 행사들을 회상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백성들에게 상기시킬 수 있었다(신 29:1).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들에게 행사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심을 증거해 준다(수 23:3). 

....솔로몬은 봉헌 기도에서 하나님께서 "행동하실" 것을 간청한다(왕상 8:39). 아사는 종종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대해 사용되어(수 24:17, 시 98:1, 사 25:1)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내재하심에 관하여 크게 강조함을 다시 증명한다.

아사는 구약성경의 그 밖의 곳에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여러 측면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시 86:9, 시 95:5, 시 96:5).

(b)  아사는 윤리적인 의무의 개념으로 종종 사용된다. 

....언약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행하라'는 명령을 자주 받는다(출 23:22, 레 19:37, 신 6:18, 등). 이 개념이 나타나는 무수한 문장은 하나님께 윤리적으로 응답하는 것의 중요성을 입증해 준다. 여기에서 응답은 단순한 정신적인 추상적 개념을 넘어선 것이며, 논증할 수 있는 행동에서 분명이 증거되는 순종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아사는 선악간에 행하는 것(창 3:14, 창 20:10, 왕하 12:3, 왕하 14:13, 왕하 8:18, 왕하 8:27, 신 16:12, 신 30:8, 민 15:39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사는 죄, 잘못에 대해 사용될 때 '저지르다, 범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며(호 6:9), '~에 대하여 행동하다'(슥 1:6), 그리고 충고를 따른다는 의미에서 '따르다'(삼하 17:23)를 뜻한다.

(c)  아사는 어떤 것을 만들다(출 20:4, 신 9:12, 창 3:21), 전쟁하다(창 14:2, 수 11:8, 신 20:12, 신 20:20), 친절하게 대하다(삿 1:24), 신실함을 보여주다(창 32:10), 제물을 드리다(출 10:25), 어리석게 행동하다(신 22:21), 희생제물을 드리다(출 10:25), 유월절을 지키다(출 12:48), 복수하다(삿 11:3), 식물이 열매를 맺다(창 1:11), 음식을 준비하다(창 18:7 이하), 직무를 행하다(왕하 17:32), 화해하다(사 27:5), 제사장들을 세우다(왕상 12:31, 왕상 13:33), 사용하다(삼상 8:16), 보내다(전 6:12) 등을 의미하거나 그런 의미를 구성한다.

(참조: T. E. Mccomiskey; BDB;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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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3045, 야다) 알다, 이해하다 [[산 경험 통해 알고 그것을 통해 더욱 친밀히 인격적으로 알아가다]]

야다(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알다 know, 이해하다 understand'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944회 나오며, 모든 어간에서 사물이나 사람 또는 상황등을 감각 기관으로 얻은 겉치레 지식과는 달리 더 깊고 은밀하며 약간씩 차이 나는 여러 가지 지식을 나타낸다. 

이미 알려진 것은 감각으로 나타나야 하며 그 자체는 그렇게 알려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듣는 것(듣다)과 보는 것(보다)에 관한 동사가 아는 것에 관한 동사와 병행되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예: 출 16:6 이하, 신 33:9, 삼상 14:38, 사 41:20). 

야다는 인간(창 18:19, 신 34:10)과 그의 길(사 48:8, 시 1:6, 시 37:18)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에 사용되었으며, 여기에서 지식은 심지어 탄생 이전에 시작된다(렘 1:5). 하나님은 또한 들새도 아신다(시 50:11).

야다는 또한 인간의 지식과 짐승의 지식에도 사용되었다(시 1:3).

야다는 구약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야다는 '알아채다, 인지하다, 경험하다, 관찰하다'를 의미한다(예: 창 3:7, 창 41:31, 삿 16:20, 전 8:5, 사 47:8, 호 5:3).

(b)  야다는 '구별하다' distinguish를 의미한다. 

....'선악을 아는 것'(창 3:5, 창 3:22)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이다. 좋고 흉한 것을 구별하는 것은 필요하다(삼상 19:36). 어린 아이는 왼손과 오른손을 구별하지 못하며(욘 4:11) 또 선과 악도 구별하지 못한다(사 7:15). 후자의 구절의 문맥과 사 8:4에 나오는 이와 비슷한 언명은 이 언급이, 어린 아이는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을 구별할 줄 모른다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주는 것 같다.

좋고 흉한 것, 좌우와 같은 것에 대해 관찰하는 것은 결국 그것들을 구별하는 것이 된다.

(c)  야다는 '배워서 알다' know by learning라는 의미를 지닌다(잠 30:3).

(d)  이 분사는 사냥(창 25:27), 학문(사 29:11-13), 애곡(암 5:16), 바다를 항해하는 일(대하 8:18),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일(삼상 16:16)에 기술적 능숙함을 묘사하는 어구에 나온다.

(e)  야다는 어떤 사람을 '아는 것'을 표현한다. 

....어떤 사람을 아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창 29:5, 출 1:8, 삼하 3:25). 푸알 분사형은 '친척'(왕하 10:11 등)과 '아는 사람'(욥 19:14, 룻 2:1 등)을 지칭한다.

(f)  야다는 '관계하다, 관심을 가지다'(시 1:6, 시 37:18, 시 119:79), 

....'~와 관계를 맺고 싶다'(예: 신 33:9). 신학적인 문맥에서 자주 이 단어가 적절한 지식을 얻지 못해서 결국 관심의 결여를 초래하고 마는 것에 대한 문제로 나온다(예: 렘 8:7, 시 95:10).

(g)  야다는 '성적 관계를 가지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알았다"고 하는 유명한 완곡 어법과 그 병행구들(창 4:1, 창 19:8, 민 31:17, 민 31:35, 삿 11:39, 삿 21:11, 왕상 1:4, 삼상 1:19)에서 남녀 쌍방의 성적인 관계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남색(창 19:5, 삿 19:22)이나 강간(삿 19:25)과 같은 성적 도착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h)  야다는 '다른 사람과 인격적이며 친숙한 관계를 맺다'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대면하여 모세를 아신다(출 33:17, 신 34:10).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이나(렘 1:5) 어떤 민족을(암 3:2) 아실 때 하나님께서 먼저 그를 선정하시거나 선택하신다(참조: 민 16:5 70인역본). 선택으로 이해되는 이 지식은 은혜롭고 자애로운 것이지만 이것은 인격적인 응답을 요구한다.

(i)  야다는 일반적인 문제에 대한 지식 외에도, 다른 신들을 아는 것이든(신 13:3, 신 13:7, 신 13:14) 여호와를 아는 것이든(삼상 2:12, 삼상 3:7) 간에, 신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렘 10:25) 선지자들에 의하면,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렘 4:22). 

....애굽의 재앙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애굽인들이 알도록 하기 위해 보내졌다(출 10:2 등). 

....그는 그가 하나님이심을 이스라엘인들이 알도록 하기 위해(사 60:16) 그들을 파멸시키시고(겔 6:7) 회복시키실 것이다. 특히 선지자 에스겔은 위협할 때,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는 어구를 사용한다(겔 6:7, 겔 6:10, 겔 6:13, 겔 6:14, 겔 7:4, 겔 7:9, 겔 7:27 등). 

(j)  요약하면 희랍인들이 초연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또한 사물의 형이상학적 본질에 사변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반해, 구약성경은 지식을 끊임없이 인격적인 만남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구약성경이 하나님과 창조에 관해서 언급한 것을 보고서, 우리가 이 언급들을 존재론적 추론으로 여겨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계시에 응답하는 믿음의 선포로 간주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역사적 과거와 약속된 미래 즉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존재하고 있는 이 지상의 영역 속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찾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예배와 행동 가운데서 하나님의 목적과 요구를 식별할 수 있었던 것이다.(참조: E. D. Schmitz; Bult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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