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역개정]제90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피난처있으니70...옛부터도움되시고71...내눈을들어두루살피니73...오만세반석이신74...어려운일당할때543...이눈에아무증거545. 오신실하신주393..울어도못하네544..이눈에아무증거545..어려운일당할때543...구주예수의지함이542..꽃이피는봄날에만541..내주여뜻대로549
[벧전2 : 9,10]*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9.그러나 여러분은 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국민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0. 여러분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그분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하늘은 주님의 보좌, 땅은 발등상)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엘올람)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경점=야간의 4시간마다 돌아오는 파수꾼 교대시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죄성따른 허물/부지중 범죄까지도..토설하라]를 주의 얼굴[임재]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각인의 연수는 주를 경외함의 정도_사명/소명과 연관) 10. [인생광야<미드바르> 지나는]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하나님의 노와 분노의 능력을 주님 받으시기에 합당한 경외감과 연결시키라)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주를 합당하게 [사랑/존숭]경외함/경건을 가르치소서..허락하신 하루 주로 인해 살기!)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슈브..회복하다 : 죄에서 떠나 선하신Q께로 돌아옴..<회개, 씻음, 돌이켜 떠남, 기경하고 거함> : 이 때Q도 그리하심)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나함..위로하다..느헤미야-나훔-므나헴 : 후회/위로)...(만족-기쁨과 즐거움이신 임마누엘 주님 없이는 전적인 무/공허뿐, 수고와 슬픔뿐!!)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헤세드..친절,인자, 자비, 자애)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샤마흐..기뻐하고즐거워하다..전존재<마음, 영혼으로부터>)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노앙..기쁨과즐거움, 유쾌함,사랑스러움 : 주님과 하나됨 통한)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그 임마누엘의은총을 합당하게 따름으로]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 NIV]Psalm 90 A prayer of Moses the man of God. 1 Lord, you have been our dwelling place throughout all generations. 2. Before the mountains were born or you brought forth the earth and the world, 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 you are God. 3. You turn men back to dust, saying, "Return to dust, O sons of men." 4. For a thousand years in your sight are like a day that has just gone by, or like a watch in the night. 5. You sweep men away in the sleep of death; they are like the new grass of the morning -- 6. though in the morning it springs up new, by evening it is dry and withered. 7. We are consumed by your anger and terrified by your indignation. 8. You have set our iniquities before you, our secret sins in the light of your presence. 9. All our days pass away under your wrath; we finish our years with a moan. 10. The length of our days is seventy years -- or eighty, if we have the strength; yet their span is but trouble and sorrow, for they quickly pass, and we fly away. 11. Who knows the power of your anger? For your wrath is as great as the fear that is due you. 12. Teach us to number our days aright,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 13. Relent, O LORD! How long will it be? Have compassion on your servants. 14. Satisfy us in the morning with your unfailing love, that we may sing for joy and be glad all our days. 15. Make us glad for as many days as you have afflicted us, for as many years as we have seen trouble. 16. May your deeds be shown to your servants, your splendor to their children. 17. May the favor of the Lord our God rest upon us; establish the work of our hands for us -- yes, establish the work of our hands. =========== God’s Eternity and Man’s Transitoriness. A Prayer of Moses the man of God 90 1 Lord, You have been our dwelling place [our refuge, our sanctuary, our stability] in all generations. 2 Before the mountains were born Or before You had given birth to the earth and the world, Even 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 You are [the eternal] God. 3 You turn man back to dust, And say, “Return [to the earth], O children of [mortal] men!” 4 For a [a]thousand years in Your sight Are like yesterday when it is past, Or as a watch in the night. 5 You have swept them away like a flood, they fall asleep [forgotten as soon as they are gone]; In the morning they are like grass which grows anew— 6 In the morning it flourishes and springs up; In the evening it wilts and withers away. 7 For we have been consumed by Your anger And by Your wrath we have been terrified. 8 You have placed our wickedness before you, Our secret sins [which we tried to conceal, You have placed] in the [revealing] light of Your presence. 9 For all our days pass away in Your wrath; We have finished our years like a whispered sigh. 10 The days of our life are [b]seventy years—Or even, if because of strength, eighty years; Yet their pride [in additional years] is only labor and sorrow, For it is soon gone and we fly away. 11 Who understands the power of Your anger? [Who connects this brevity of life among us with Your judgment of sin?] And Your wrath, [who connects it] with the [reverent] fear that is due You? 12 So teach us to number our days, That we may cultivate and bring to You a heart of wisdom. 13 Turn, O Lord [from Your fierce anger]; how long will it be? Be compassionate toward Your servants—revoke Your sentence. 14 O satisfy us with Your lovingkindness in the morning [now, before we grow older], That we may rejoice and be glad all our days. 15 Make us glad in proportion to the days You have afflicted us, And the years we have suffered evil. 16 Let Your work [the signs of Your power] be revealed to Your servants And Your [glorious] majesty to their children. 17 And let the [gracious] favor of the Lord our God be on us; Confirm for us the work of our hands—Yes, confirm the work of our hands. Footnotes Psalm 90:4 This was understood by the ancient rabbis to mean that a “thousand years” are literally only one day in God’s reckoning, and Peter seems to confirm the idea in 2 Pet 3:8. Psalm 90:10 This psalm is credited to Moses, who is interceding with God to remove the curse which made it necessary for every Israelite over twenty years of age (when they rebelled against God at Kadesh-barnea) to die before reaching the promised land of Canaan (Num 14:26-35). Moses himself lived to be 120 years old, Aaron 123, Miriam several years older, and Joshua 110 years of age; but it is conceivable that Moses considered such longevity the exception. The ancient rabbis taught that by the time of David, 70 was the age of death for an old man and 80 for a vigorous old man. ======[시90개요]======== 이 시편은 출애굽 시절에 저작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이 시편은 이 성가집 속에 함께 편집되어 있다. 이 시편은(표제에 나타나 있는 대로) 모세가 쓴 것으로, 모세는 성문서의 저자 중 가장 고대 사람이다. 우리는 기록상으로, 모세가 지은 찬양의 노래를 알고 있으며(출 15장, 이는 계시록 15장 3절에 언급되어 있음), 또 그가 한 교훈의 노래(신 32장)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 양자와는 다른 류의 것으로, 이 시편은 기도라고 호칭되고 있다. 이 시편이 저작된 시기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신앙과 불평과 반역으로 인해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널릴 것이며, 38년에 걸쳐 그들이 일련의 재난에 의해 황폐케 될 것이고, 그 시대의 이스라엘인은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지 못한다는 벌의 선고를 받았던 때였으리라고 생각된다. 모세의 또 다른 노래(신 31:19, 21)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을 지목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이 노래는 그들의 광야 방랑을 계산한 노래였다. 우리는 이 시편이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기사를 민수기 14장에서 찾을 수 있다. 모세가 이 기도문을 저작한 목적은 아마 지루하고도 피곤한 광야 생활 중 백성들이 천막 속에서 매일 사용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제사장들이 장막예배에서 매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시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모세는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그 하나님 안에서 갖는 저희의 이득을 들어 자기 자신과 백성들을 위로한다(1-2). 2. 그는 인간의 취약성을 생각해 스스로 겸손하며 자기 백성들도 겸비하게 한다(3-6). 3.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내리신 의로운 판결에 승복하며, 자기 백성들도 그에 복종하도록 한다(7-11). 4. 그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바라서, 또 하나님의 은총이 다시 돌아올 것을 바라서, 기도로 자신과 자기 백성을 하나님께 위탁한다(12-17). ---비록 이 시편이 그와 같은 특수 사정으로 기록되었다고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연약한 인간 생명에 적용할 만하며, 우리는 이 시편을 노래할 때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온 세월에 이 시편을 결부시킬 수 있다. 이 시편은 엄숙한 장례식에 잘 어울리는 명상과 기도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 모세의 기도(시 90:1-6) 이 시편에는 모세의 기도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모세 때부터 시편 수집이 시작되기까지 이 시편이 어디에 또 몇 권에 보존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신적인 영감에 의해 이 시편은 특별한 보호 아래서 현존하게 되었다. 아마 야셀의 책이나 여호와의 전쟁서에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쳤고, 그들이 여호와께로 향할 때에 사용할 수 있는 말들을 저희 입에 넣어주었다. 모세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는데, 그가 선지자였고, 또 선지자의 조상이었으며, 위대한 선지자의 걸출한 모형이었던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받는다. Ⅰ. 언제 어느 때라도 자기의 백성을 돌보아주시고, 오늘날도 우리를 돌보아주시는 하나님께 찬양드리라는 것(1절). “여호와여, 주께서는 대대로 우리에게 주거나 거처 또 피난처나 도움이 되어주셨나이다.”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팽개치겠다고 분명히 위협하신 이상, 그들은 자기들의 조상에게 보여주신 그의 이전 친절을 강력히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나안은 역시 장막 속에서 거처하였던 그들의 조상, 나그네였던 족장들에게는 순례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하나님은 그 족장들의 거처가 되셨으니, 그들이 어디를 가든 하나님 안에 있는 그들에게는 그곳이 집에 있는 것같이 편안했다. 이후 애굽은 400여년의 많은 세월 동안 그들에게 속박의 땅이었으나, 그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피난처였다. 저 불쌍한 피압박 민족이 생명을 보존해 존재를 유지했던 것도 바로 하나님 안에서였다. 진정한 신자들은 하나님 안에서 [주님 임재하심, 그 품안의 평강과 화평안에 안전히] 평안히(편안함이 결코 아니다!!) 지내는 법이며, 또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수고와 시련을 무마해 주는 그들의 위로가 된다. 우리는 그 안에서 평안히 쉴 수 있으며, 우리의 거처에 숨듯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몸을 맡겨드림으로써 보호받을 수 있다. Ⅱ. 하나님의 영원성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2절). “산들이 나오기 전, 하나님께서 세상 진토 중 가장 높은 부분을 만들기 전”(잠언 8장 26절에 표현된 대로), “땅이 진통을 겪기 전”, 혹은 우리가 해독하는 대로,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즉, 시간이 시작되기 전), 주께서는 존재하셨다.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는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존재는 시작도 없고 마치는 시간도 없으며, 시간의 계속이나 운행으로도 측량할 수 없고, 날의 시작이나 생명의 종말이나 시간의 변화도 없이 “어제와 오늘과 내일” 그리고 “영구히 똑같으신” 분이시다. 우리 자신도 언제인가는 [영혼은 주께로 올라가고 몸은 죽어 신체가 분해되어 흐트러짐의]사멸해야 하는 존재이며, 우리 친구들도 똑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생기는 불평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불멸성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실지로 날마다]우리는 죽어가는 피조물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위안물도 죽으면 없어질 위로이지만,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그가 영원하신 분임을 알게 될 것이다. Ⅲ. 인간을 지배하시고 자기 마음대로 처분하실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다(3절). “주께서는” 원하시기만 하면 흙으로 된 집, 육체를 말씀 한마디로 “티끌이 되게 하시나이다.” 그리고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나이다.” 1. 하나님이 질병이나 기타의 고난을 통해 인간을 파멸케 하실 때에는, 그가 인생을 자기에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즉,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생명을 받으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저버렸던 내게로 돌아오라”(렘 4:1). 2.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파멸을”, 곧 죽음에로 몰아넣으시겠다고 경고하실 때에는, 인생들은 이미 죽음의 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은 [주님의 주권적 뜻을 따라, 회개하고 주께로 참되게 돌이키는 바]인생의 생명을 다시금 회복하시고, 옛 번역대로, “다시금 생명과 건강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무덤으로 내려보내기도 하시고 다시 거기서 올라오게도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이 인생을 티끌로 만들어버리신다면, 그것은 저 일반적 선고에 따른 것이다. 즉, “누구나 돌아오라. 인생들아, 너희 처음 원리로 돌아오라. 즉, 애초의 모습대로 몸은 땅으로 돌아가라(“티끌은, 티끌로.” 창 3:19). 그리고 혼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라”(전 12:7)는 것이다 4. 하나님은 모든 인생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지만, “너희 인생들아,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저 총괄적 부활 때 있을 일이다. 그때에는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때 너희가 나를 부르라. 그러면 내가 응답하리라”(욥 14:14-15). “너희는 나를 돌아오라고 간청하리라. 그러면 내가 돌아가리라.” 그때 몸과 혼이 다시 돌아와 연합될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하나님은 흩어진 바 성도들 각자의 몸의 구성성분들을 재조립하시며, 성도들의 영혼과 재결합하시며, 주 영으로 영화롭게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시다!!] Ⅳ.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불균형을 시인하고 있다(4절). 어떤 족장들은 근 1천 년이나 살았다. 모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회상해 냈다. 그러나 그들의 장수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비한다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에게 천 년이란 긴 기간이다. 우리는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살 기대를 가질 수 없다. 또 만일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동안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수 없다. 그러한 긴 기간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제와 같으며, 하루같이 새롭다. 아니 그것은 밤의 한 경점 같다”─한 경점이란 3시간을 가리킨다. 1. 1천 년이란 기간도 하나님의 영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1시간이 1천 년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그 이상으로, 하루 시간도 안 되는 것이다. 족장들의 장수도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니다. 마치 아기의 생명(이것은 나자마자 죽는다)이 족장들의 장수에 비교됨과 같다. 2. 과거든 미래든 1천 년 동안의 모든 사건은 바로 어제 있었던 일, 아니 1시간 전에 있었던 일처럼 영원한 정신의 소유자에게는 늘 새롭다. 하나님은 저 큰 날(심판날)에 “티끌(파멸)로 돌아갔던” 자들에게 “돌아오라─너희 죽은 자여, 일어나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이런 기대를 가진 지 오래 되었으나, 아직도 실현되지 못했다고 하며 주께서 보이신 참된 부활이 있음에 대해 자의적인 어떤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기독자가 믿는 바,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천만 년이 하루 같으므로, 그로 인해 궁구하거나 골치를 앓지는 말자. “왕에게는 모든 기간이 동일하다” 이런 뜻으로 베드로후서 3장 8절이 이 말씀을 인용했다. Ⅴ. 인생의 무상을 보았다(5-6절). 인생을 바라보라. 그러면 우리는 이런 것을 알 수 있느니라. 1. 인생은 죽어가고 있는 목숨이다. “주께서는 인생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즉, 인생들은 끊임없이 영원의 대양의 물줄기로 흘러내리고 있다. 그 물줄기는 끊임이 없다. 인생들은 그 물줄기와 함께 옮겨간다. 우리는 나자마자 죽기 시작한다. 매일의 생명이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홍수가 났을 때처럼, 불가항력적으로 순식간에 쓸려가기도 한다. 홍수는 그 앞에 닥치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아니면 마치 저 옛 세상이 노아의 홍수와 함께 씻겨버린 것과 같이 되리라. 하나님이 비록 세상을 그런 식으로 다시 멸망시키지는 않겠다고 하셨지만, 죽음이란 것이 바로 끊임없이 닥쳐오는 대홍수인 셈이다. 2. 인생은 마치 꿈속의 생과 같다. 사람들은 홍수처럼 쓸려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저희가 자는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무상함을 제대로 모른다. 무서운 영원이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자는 사람처럼, 인생은 자기들에게 중대한 것을 약속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음이 그들의 잠을 깨우게 되면, 그들의 쾌락은 비로소 끝장이 나고 만다. 잠자는 사람에게처럼, 세월의 흐름은 인간들에게 실감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세월이 다 지나간 다음에는 꿈처럼 인생은 허무해지고 만다. 3.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풀의 생명처럼, 잠시 동안에 지나가는 생명이다. 아침에 피었던 풀도 저녁이면 잘려서 색깔이 바래고,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만다. 죽음이란 조만간 우리들을 바꾸어놓는다. 아마 순식간에 올 것이다. 죽음이 잠시 동안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그 변화는 정말로 엄청나다. 인생은 그 최절정에 달했을 때에라도, 풀과 같다. 풀은 약하고 천하고 상하기 쉽다. 노년이란 겨울이 오면, 인생도 곧 시들어버린다. 그러나 풀이 한여름에도 상할 수 있듯이, 인생도 때로는 질병이나 재난으로 인해 때없이 쓰러질 수 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 -------------------- 주께 복종하라(시 90:7-11) 앞에서 모세는 덧없는 인생의 모습을 일반적으로 말했다. “인생은 잠과 같으며” “풀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치고 있다. 가르치고 있는 것은, 그들이 특별한 의미에서 선고받은 그 죽음의 정당성─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에게 내려진 것이었다─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죽어야 할 운명의 일반성을 지닌다는 사실만으로는 불충분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특정한 표징을 지니고 살다가 죽어야 했다. “우리” 이스라엘인들은 “소멸되며 놀라나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날이 이미 지나갔나이다.” Ⅰ. 그들이 불행에 빠진 원인은 하나님의 진노하심 때문임을 인정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소멸되며, 놀라나이다.” 그런데 그것은 “주의 분내심,” “주의 분노 때문(7절)이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은 주의 분노 속에 다 지나갔나이다”(9절). 때로 성도들의 환난은 단순히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는 수도 있다. 욥과 같이 말이다. 그러나 죄인이든 선인이든 죄 때문에 오는 책망은 하나님의 분노에서 오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잘 알고 계시며, 어느 누구의 죄보다 더욱 노하신다. 우리는 흔히 죽음이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이라고 해 무시하기 일쑤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적인 순결과 정직을 지속했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빚이요, 율법에 대한 빚이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죽음은 죄 때문에 생겨났다.” 우리 역시도 본성의 타락, 연륜의 질병, 혹은 어떤 괴로운 질병 때문에 소멸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분노 때문이라고 여겨야 한다. 우리는 놀라지 않는가? 죽음의 공격이 너무나 갑작스럽기 때문에!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분노의 산물이다. 하나님의 분노는 하늘에서 “불경스럽고 불의한 인간들”에게 내린다. Ⅱ.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바로 그 죄가 하나님을 격분케 했던 것이다(8절). “주는 우리의 죄악, 우리의 은밀한 죄악까지도 주 앞에 두고 계시나이다.” 하나님은 그런 이유가 없었더라면 그들에게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격분케 하지 말아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상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격분케 했고, 이러한 중한 선고가 내렸어도 하나님이 옳다고 시인해야만 한다. 1. 그들이 하나님을 공공연히 경멸하고 도전했기 때문이다. “주는 우리의 죄악을 주 앞에 놓아두셨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불신앙과 원망, 하나님의 힘에 대한 불신과 그 좋은 땅에 대한 경멸을 목격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형을 선고하기 전에 미리 이 사실을 그들에게 통고하셨다. 이 죄가 그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타오르게 만들었고, 그들이 받았던 축복을 잃어버리게 했다. 2. 그들의 보다 은밀한 죄가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주는 우리의 은밀한 죄를 아셨나이다(이런 죄는 마음보다 더 멀리 가지 않으며, 그런 죄가 모든 악행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주의 목전에 두셨나이다. 즉, 주께서 이 죄를 발견하셨나이다. 그리고 이것을 헤아리시고 그 죄를 무시하고 있던 우리에게 그것을 알리셨나이다.” 그 어떤 은밀한 죄라도 하나님께는 알려지며, 심판을 받게 된다. 마음으로 애굽에 돌아간 자들, 마음속에다 우상을 세워둔 자들은 배신자들이나 우상 숭배자들로 취급될 것이다. 자기들의 죄악을 은폐하려는 자들은 어리석으니, 그들이 자기들의 죄를 은폐할 수 없음이로다. Ⅲ. 그들에게 자신들은 죽어가고 있는, 사라져가는 존재임을 의식하며, 자기들의 생이 영원하거나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지 말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에게 이미 선고된 그 선언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8절). “우리의 모든 날들은” 마치 “주의 분노 속에서”, 곧 “주의 징계”의 표징 속에서 “사라짐”과 같다. 우리가 우리의 연수(年數)를 몽땅 빼앗긴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평생이 일순간에” 지나간다. 그들이 광야에서 보낸, 그후의 38년 기간은 거룩한 역사의 소재는 되지 못했다. 광야 제2년부터 40년까지의 기간에 있었던 일들은 조금밖에, 또는 조금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그 세월은 완전히 덧없이 지나갔고, 역사의 소재가 될 가치가 조금도 없었다. 그것은 단지 “들은 이야기처럼”(KJV) “일순간에”(한글 개역) 지나갔다. 그 어간의 세월은 마치 이야기처럼 덧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소멸되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한 세대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당시에는, “지파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105:37). 그러더니 이제는 그들 모두가 연약해졌다. 가나안 땅에서 번영의 영광을 누리리라 했던 그 즐거운 전망은 이제 광야에서 권태롭고 비참하게 죽고 말리라는 우울한 전망으로 대치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일생은 겨울 이야기처럼 부적절한 것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말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일생 중, 매해를, 그리고 온 생애를 마치 이야기처럼 일순간에 다 써버리고 말았도다─즉(어떤 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겨울철 우리의 입김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도다. (또 어떤 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일단 말하고 나면 즉시 허공에 사라지는 말과 같이 사라졌도다”는 말이다. 한 해를 보내는 것이 마치 한 토막의 이야기를 하는 것같이 지나간다. 지나가버리면 그 한 해는 말로 되어버린 이야기 한 토막과 같다. 우리의 생애 중 어떤 해는 유쾌한 이야기 같으나, 또 어떤 해는 가장 혼란된 비극의 이야기와 같다. 그러나 다 해 보았자 그것은 짧고 덧없다. 많은 시간이 걸린 사건이라도 말로 하려면 잠깐인 것과 같다. 지껄인 말을 다시 생각해 내지 못하듯이, 우리의 생애도 지나놓고 보면 더이상 기억되지 않는다. 우리의 잘못과 우행으로 잃어버리고 낭비해 버린 시간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한탄을 사게 된다. 우리는 급히 업무를 수행하되 조심스럽고 부지런히 해야 하듯, 그렇게 우리의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그러나, 오호라! 우리들은 우리들이 시간을 마치 이야기를 하듯 안일하고 무심하게, 부주의하게 보내버렸다. 우리의 일생이 “마치 이야기처럼”(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나 그 연한은 얼마란 말인가? 그 내용이 헛되듯, 그 수효(연한)도 보잘것없다(10절). 기껏해야 7, 80이다. 이 7, 80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1. 광야에서 살던 이스라엘인들의 수명이다. 애굽에서 나온 자들을 20세 이상으로 계수했는데, 그때 계수된 자들은 그후 38년이 못 되어 모두 죽어버렸다. 그들은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자들만을 계수했는데, 그것은 그들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 20 내지 40세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모두 80이 되기 전에 죽은 셈이다. 대다수가 60이 못 되어 죽었고, 아마 더 일찍 죽은 자도 많았으리라. 이러한 수명은 그들 조상들의 연수에는 크게 모자랐다. 그리고 70 내지 80세까지 살았던 자들에게도 멸망이 선고되었으므로 광야를 지나는 동안 그들의 처지는 항상 우울에 가득 찬 절망뿐이었고, 그들의 정력이나 목숨은 “수고와 슬픔”뿐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가나안의 기쁨을 생각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죄란 것이 무슨 짓을 하는가 보라. 2. 아니면 모세 시대 이후의 인간 일반의 수명으로 볼 수 있다. 모세 이전에는 사람이 100년 내지 근 150년 살았던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7, 80이 일반적인 연한이 된 이래로는, 그 나이를 넘는 자가 거의 없었으며, 대다수는 그 나이도 되기 전에 죽었다. 70까지 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땅히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만큼의 인생을 살다가 간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영원과 비교해 본다면 얼마나 짧은 기간인가!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가 구전되어 오던 것을 처음으로 기록한 사람이다. 이제는 세상에나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므로, 과거처럼 인간이 그렇게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만일 어떤 사람의 체질이 강해 80까지 살았다 하면, 그의 생애는 별로 큰 즐거움이 못된다. 단지 그들의 불행이 더 연장된 것뿐이요, 죽음이 더욱 더디 온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애는 수고와 근심뿐이다. 오래 살았다 해 즐거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또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의 연수는 70이요, 어떤 자의 연수는 그 강한 체력 때문에 80이다. 그러나 우리 연한의 폭(힘을 말한 단어는 원래 폭을 뜻하기 때문이다)은, 곧 생애의 길이는─유아기부터 노년까지의 길이는─ 단지 수고와 근심이라.” 우리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밥을 먹는다. 우리의 일생은 수고롭고 고생스럽다.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최전성기에도 “그 연한은 곧 잘려지고 우리는 사라진다.” 반나절도 더 살지 못한다. Ⅳ.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분노 때문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11절). “누가 주의 분노하심의 권능을 알리요?” 1. 아무도 그것을 완전히 깨달을 자는 없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분노를 두려워하면서 말하고 있으며, 그 권능의 광대하심에 놀라고 있다. 하나님의 분노의 권능이 얼마나 광대하고 심대하게 미치는지 뉘 알리요? 타락한 천사들은 자기들의 경험으로써 하나님의 분노의 권능을 알고 있었다. 지옥의 저주받은 죄인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 중 누가 그것을 알며, 말할 수 있으리요? 2. 하나님의 분노의 권능을 중히 여기는 자도 거의 없다. “누가” 하나님의 분노에 대한 지식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잘 “알고 있으리요?” 죄를 비웃고 그리스도를 경히 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이 얼마나 되는지 필경 모르고 있다. “주의 무서움에 의하면, 주의 분노하심도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분노는 가장 사려깊은 자들이라야 파악할 수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분노에 대해서 두려워하게 하자. 그에 대한 공포는 아무리 커도 지나치게 커질 수는 없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자기의 분노를 실제 이상으로 과장해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다. 아니, 저 세상에 가서 느끼는 것은 이 세상에서 느끼는 것에 비하면 무한히 더 나쁘다. “우리 중에 누가 저 불사르는 불과 함께 거할 수 있으리요?” -------------- 자비를 구하는 기도(시 90:12-17) 이것은 앞에 나온 묵상과 시인(감사)에 근거한 간구의 기도다. “환난을 당한 자 있는가?” 그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 여기에는 네 가지를 기도하라는 지시가 있다. Ⅰ. 저들이 지금 처해 있는 고통스런 경륜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다. 우리의 날수를 짧게 명했사오니, “여호와여, 우리에게 우리의 날수를 셀 줄 알게 가르치소서(12절). 여호와여, 은혜를 베푸사, 우리가 세상에 사는 날이 얼마나 짧은가를 올바로 생각할 수 있게 하옵소서”.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자기의 영혼이 언제 떠날지, 그 밤을 알지 못하는 자는 계산을 잘못한다. 그러한 계산착오가 없도록 “자기의 날수를 셀 줄” 안다는 것은 정말로 훌륭한 기술이다. 우리는 우리 생의 단명과 불확실성, 그리고 거기에 항상 죽음과 영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업무와 날수를 비교해 보아서, 이제는 소비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몇 배로 부지런히 업무를 수행해 나가야 한다. 2. 이러한 산술을 배우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교훈을 간구해야 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하셔서 바로 깨닫고 생각할 수 있도록 가르쳐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3. 우리의 날수를 세어봄으로써, 마음이 참된 지혜로, 곧 진정한 경건의 훈련을 쌓을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날수를 올바로 계산한 것이 된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곧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하고, 또 그래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이 세상에 유하며,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살고 있음을 종종 생각해 보는 일이 크게 도움 될 것이다. Ⅱ. 그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분노를 제거해 달라는 기도다. 이미 선고가 내려졌고,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며, 거기에 무슨 구제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오직 광야에서 죽어야만 했다. “그러나, 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주께서 우리와 화해해 주시고, 주의 종들에게 긍휼을 베푸소서(13절). 이 비극의 소식이 끝난 다음에는 다시 우리를 위로하리라는 평화의 소식을 보내주소서. 언제까지 우리가 주의 진노를 받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리이까? 언제 주의 은총의 표징이 우리에게 다시 나타나게 되리이까! 우리는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옵니다(사 64:9). 언제 주께서 우리에 대한 주의 분노를 변경하시리이까?” 이 기도와 저들의 회개에 대한 응답(민 14:39-40)으로써 (그 다음 민수기 15장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희생제사에 대한 율법을 계속 말씀해 주셨다(민 15:1 이하).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종들에게 긍휼을 베푸셨다는 증거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여버리고 싶었더라면, 저들에게 이같은 일을 보여주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Ⅲ. 하나님의 은총이 그들에게 다시 돌아오는 위안과 기쁨을 달라는 기도다(14-15절).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기도했다. 그들은 감히 자기들의 어떤 공로를 내세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 하나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는 것은 우리가 언제나 “아멘” 해야 할 기도다. 우리는 일찍부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자. 때맞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자. 그러면 하나님의 “너그러운 자비는 새벽에”, 곧 우리 인생의 황금기에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다”(6절).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비로소 찾을 수 있는 그런 참된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자(4:6-7).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만족을 누리는 은혜로운 자가 있다면, 그는 그런 만족을 풍족히 누릴 것이며, 그로 만족해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이 기도에는 두 가지가 호소되고 있다. 1. 하나님의 자비는 장래 기쁨의 완전한 샘물이 될 것을 호소했다. “주의 은혜로 우리를 만족케 하소서. 우리가 스스로 편히 쉴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주의 분노 아래 있는 동안은 한 번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광야에서 보내야 할 우리의 모든 날 동안에도 평안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자기들의 최고의 기쁨으로 삼는 자들은 그 기쁨이 충만케 될 것이다(요일 1:4). 또한 이 눈물 골짜기에서도 그 기쁨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기쁨이 없어졌다면, 그것은 본인들의 잘못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고난 속에서도 그들에게 지극한 기쁨을 선사해 주려 하고 있으며, 다른 아무것도 그것을 그들에게서 빼앗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그 기쁨이 자기들이 이전에 겪은 슬픔을 상쇄할 수 있기를 호소했다. “주께서 우리로 고통하게 하신 그 날수에 따라서(그만큼) 우리로 즐겁게 하소서. 주의 은총으로 인한 우리의 기쁨의 날수가 주께서 보이신 주의 분노를 당한 우리의 날수만큼 많게 하소서. 그리고 그때 우리가 슬퍼했던 것만큼 이제 우리도 기뻐하게 하소서. 주여, 주는 하나로 다른 하나를 대신하게 하시나이다(전 7:14). 우리의 처지가 바로 그러하게 하소서. 그 기쁨이 이제까지 우리가 마신 그 고통의 잔을 능가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에 소원의 잔을 주소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자기들이 겪은 온갖 환난을 능히 보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Ⅳ.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자기들 속에 현저하게 계속되기를 기도한 것이다(16-17절). 1. 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계속하심으로써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주시기를 바랐다.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보이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사, 우리를 주께로 이끄시고, 주에게 알맞은 자들로 삼으셨다는 것을 나타내소서.”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작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나 있는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섭리의 작용이 우리에게 명백해지기를 바랄 수 있다. “주의 역사(행사)를 밝히소서. 그리고 그 속에서 주의 영광이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에게 보이소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에서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도 생각해야 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형상으로 변화되기를 염원해야 한다. 아마 이 기도 속에서 그들은 자기들과 자기 후손들을 구별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준 최근의 전갈에서 그들과 후손들을 구별하셨기 때문이다(민 14:31. “너희의 시체는 광야에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자녀들은 내가 가나안으로 인도하리라”).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여, 주의 행사를 우리에게 보이사, 우리로 개심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더 좋은 성질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주의 영광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보이소서. 우리는 그 은택을 잃고 말았으나, 그들에 대한 주의 약속을 실행하심으로써 그리하소서.” 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힘을 주사, 그 일에 대한 그들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고 있다. (1) 주의 행사를 보이심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에게 호의를 보이시기를 바라고 있다. “주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한글 성경은 난외에 있음─역주)이 우리에게 임하소서.”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신다는 것을 나타내소서. 우리로 주의 규례를 지키게 하옵시고, 주의 규례와 더불어 주의 현존의 표징이 늘 우리와 함께 있게 하옵소서(혹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우리 자신의 만족이나 또 우리의 위안을 위한 기원으로 적용할 수 있다. 성결은 곧,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아름다움”이다. “우리의 모든 언행이 성결에 깃들어 있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의 선행이 비추는 빛이 우리의 얼굴에 빛이 나게 하옵소서(이것이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움을 지닌 자들은 진실로 아름다운 자들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을 주시며, 우리의 얼굴에 광택이 넘치게 하옵소서. 그리하면 우리 하나님같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옵니다.” (2) 그리함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을 번영하게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에게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우리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일(16절)은 결코 우리 자신이 그를 위해 일하고, 또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일을 결코 면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일을 다했을 때에도, 우리는 그 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손의 일을 번영케(견고케) 해주시기”를 기도하며, 우리가 그의 영광을 위해 한 일을 우리 자신이 완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감히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으며,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또 아무 일도 완성시킬 수 없는 존재이므로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 간청을 반복해야 한다. “주여,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그 일을 통해서 견고해지겠나이다. 아멘! ======== ===하나님의 지고지선, 완전한 아가페사랑의 3가지 측면=== @@은혜( 십자가로 이루신 구속/회복의 사랑)를 통하여 주님과 화목함(하나됨)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자신의 모든 것을 (믿음을 통해) 누리도록 하심으로 평강안으로 이끄심..... @@긍휼을 통하여 체휼하시는 사랑(환난과 고난, 역경 중, 특히 죄인괴수의 자각가운데 전적으로 무력한 피조물로서 도움없이 살 수 없음 호소할 때, 불쌍히 여겨 친히 아파하며 동감/동정/공감하사 동행/인도하며 일으켜 세우심)으로 평강안으로 이끄심..... @@평강(임마누엘하나님이 반석-방패-산성/요새-목자 되심 믿고 붙듦으로 인해 조성된 생명의 번성번영창대케 됨, 그것을 통해 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의 근원이신 주님 발견하고 그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여 동행하며, 주뜻 안에 하나되어 살아감)....이 평강으로 인해 참된 형통, 곧 하나님의 지고지선의 진복의 실제의 어떠함이 나타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