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주여!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시옵소서!"...존 낙스 ------------- [[목숨을 건 기도....본문: 렘29: 12- 13]]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스코틀랜드 재산의 절반이 카톨릭 소유일 정도로 교회의 부패가 절정에 달했을 때, 종교개혁의 선두에 나선 사람이 존 녹스였습니다. 섭정을 하던 메리 여왕은 카톨릭 신자로서 존 녹스의 종교개혁을 반대했고, 결국 정부군과 시민 개혁군 사이에 종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한창 전운이 감돌던 어느 날, 존 녹스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늦은 밤이 되자 존 녹스는 집 뒤편의 조용한 곳으로 갔고, 한 친구가 그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잠시 후 그의 기도 소리가 들렸습니다. 온 영혼으로 몸부림치며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오, 주여! 제게 스코틀랜드를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소서," 잠시 잠잠하다가 다시 간구가 터져 나왔습니다. " 오, 주여! 제게 스코틀랜드를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소서," 이렇게 세 번을 기도했습니다. 존 녹스가 목숨을 걸고 기도한 얼마 후 메리 여왕은 중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종교개혁에 성공했고 개신교를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존 녹스 한 사람의 기도가 한 민족을 구해낸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세상이 이 모양이냐고 그 분께 책임을 추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다스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깨어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달라집니다. 창32장24-31절에 보면 야곱의 얍복강가에서의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야곱이 얍복강게서 기도하는 중에 천사와 씨름을 해요. 야곱이 목숨걸고 천사와 씨름하다 날이 새어가는데 놓지 않으니까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칩니다. 이때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이 되었어요.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 가운데서도 야곱은 처사의 발을 잡고 놓지 않고 응답을 달라고 살려달라고 간곡하게 부르짖었습니다. 차라리 내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이때 부정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만 둡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 이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니 차라리 여기서 죽자 그리고 끝가지 싸웁니다. 우리는 잘압니다. 천사는 야곱으로 부터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그만한 능력이 충분히 천사에게는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도 사람보다 높습니다. 천사는 야곱의 붙든 손을 치면 쉽게 빠져 나올수가 있어요. 손을 쳐버리면 야곱은 천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야곱의 손을 치지 않고 환도뼈를 쳤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깊은 은혜가 숨어있습니다. 즉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결단코 기도하는 손은 치지 않으신다는 것을 ..... 목숨 건 기도의 손을 내리지 맙시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15:29) 다니엘은 하루에 3번을 정해 놓고 자기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대로 사명을 하지 못하여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가 왕실에서 총리대신으로 일하고 있었을 때 그를 시기한 다른 고관들이 다니엘을 고발할 틈을 찾았으나 아무 허물을 찾지 못하자 하나님의 율법에서 그 근거를 찾아 흉계를 꾸몄습니다. 그들이 왕에게 가서 “지금부터 30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금령을 정할 것을 구하나이다.” 하였습니다. 왕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금령이 정해졌습니다. 다니엘은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늘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단 6:1-10).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기며 기도하면 죽인다고 했는데도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민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자기 목숨보다 기도를 더 중하게 여기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육신이 죽는 것보다 중합니다. 그만큼 기도는 자신의 육도 살리고, 영도 살리고, 민족을 살립니다. 현재 우리는 기도하면 죽인다고 하는 자들이 없는데도 기도를 잘 안 하고 있습니다. 환난이 오고 벼락을 때려 자기가 다쳐 지체가 없어지고, 바로 옆의 사람들이 죽기 시작해야 기도하려고 합니까? 하나님도 주님도 그런 기도는 원치 않으십니다. 기도하라고 할 때 기도하기 원하십니다. 다니엘은 왕의 어명을 어기면서도 만왕의 왕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니 기도했습니다. 왕의 어명을 어기고 기도했기에 사자 굴에 던짐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자들이 다니엘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어 살았습니다. 이를 본 자들이 전능자 하나님을 인정했고, 다니엘을 인정했고, 다니엘을 죽이려고 모사한 자가 대신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하시도록 하게 합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회개하였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받으시고 형벌 기간 후에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4:16) 에스더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베냐민 사람 아비하일의 딸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사촌 오빠 모르드개 밑에서 양녀처럼 자랐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선한 보살핌 아래 훌륭한 신앙과 민족애를 지닌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바사 왕실은 전에 폐위된 왕후 와스디를 대신하여 바사 왕 아하수에로의 왕후가 될 여인을 간택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용모가 아름다운 에스더도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모든 여인들 중에 왕후로 간택되었습니다. 이때가 아하수에로 즉위 7년째 되던 해로(주전 478년께) 이 시점은 유대인을 몰살하려는 하만의 무서운 음모가 있기 5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치 경제 혈통 등 아무런 배경도 없는 무명의 유다 처녀 에스더가 일약 대제국 바사의 왕후가 된 사실은 신기할 정도로 아주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장차 하만의 간사한 속임수로부터 자기 백성을 지키시려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의 섭리! 이것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바사 제국의 총리대신 하만은 자신에게 감히 무릎 꿇지 않는 모르드개가 유대인임을 알고 그 일을 빌미로 유대인 전체를 몰살하려는 대음모를 꾸밉니다. 그 후 왕의 허락까지 받아냅니다. 바로 그때에 모르드개는 왕궁의 에스더에게 전갈을 보냅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스더 3:14) 하지만 바사 왕실에는 엄한 규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비록 왕후일지라도 왕의 부름 없이 왕 앞에 나아가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규례였습니다. 어찌할 것인가? 밤낮 3일을 목숨을 건 금식 기도한 후에 에스더는 왕실의 규례를 어기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갑니다. 그 결과 에스더는 왕의 은총을 입어 하만의 음모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동족 유대인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에스더가 자신의 지위와 안위만을 생각하여 모르드개의 요청을 거부하여 목숨을 건 기도와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결국 그 자신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담대한 신앙의 용기로 죽고자 결심했을 때 자신도 살고 동족도 살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뢰하는 가운데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 각오로 자신을 희생하고 기도하는 자는 오히려 죽지 않고 사는 것, 곧 ‘죽으면, 살리라’는 것은 영원한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 기도: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우리가 기도 할 때 외식과 허위에 찬 옷을 벗어버리고 진솔하고 목숨 걸고 간절히 주님께 간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보다 제 마음을 앞세우는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늘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기를 구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도 다니엘처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기도하게 하시고,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기도하게 해 주옵소서. 기도의 능력을 맛보아 그 맛을 아는 기도의 사람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런던 **교회 송** 목사의 JESUS MAN 런던 동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난한 곳이고 사람들이 살기 힘든 지역이다. 150년 전에도 가난하고 범죄의 발상지가 런던 동쪽인데 1865년 영국의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와 그의 아내인 캐서린 부스가 창시한 구세군교회가 그곳에서 시작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영국인들은 이 지역을 기피하고, 그곳에 산다고 하면 무슬림 지역에 살고 있다고 여긴다. 주님께서 수년 동안 그곳에 복음을 전하는 마음을 주어서 매주 토요일마다 런던 동쪽 East Ham 역 근처에 있는 광장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때는 메가폰을 가지고 전했는데 소리가 얼마나 큰지 경찰이 소리가 너무 크다고 줄이라고 할 때도 있었다. 하루는 역에서 내려서 광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역 앞에서 무슬림 3명이 테이블을 펴놓고 코란을 팔고 이슬람 전도지를 주고 있었다. 3명이 발목까지 늘어진 디슈다샤 불리는 긴 롱치마에 쿠피야라는 머리덮개를 쓰고 있었고 수염은 길게 늘어져 있고 그냥 빨리 지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나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역 앞에서 3명의 위엄에 사람들이 피해서 그냥 지나기도 하는데 나에게 역 앞에서 복음을 전하라는 감동을 주신다. 분명히 내가 같이 역 앞에서 복음을 전하면 그들과 다툼이 일어 날 것 같은데, 주님은 그런 마음을 주셔서 순종하기로 마음을 결단을 하고 메가폰 볼륨을 제일 큰 10으로 높이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칼과 총만 없었지 완전히 영적 대전쟁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복음을 전하니 그들이 아니다 싶었는지 그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들이 이렇게 말을 했다. “이곳은 우리 땅이기에 당신은 이곳에서 그렇게 설교할 자격이 없다.” 라고 말을 했다. 역 앞에 있는 광장은 누구나 사용할 수가 있는 곳이고 그들이 그렇게 말을 해서 이렇게 말을 했다. “나의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이 땅도 하나님의 땅이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이 땅은 너희들 땅이 아니고 내 아버지의 땅이고 내 땅이다.” 라고 말을 했다. 이렇게 말을 하자 이제 무슬림들이 잘하는 변론으로 들어갔다. 변론을 하니까 구경꾼들이 몰려 왔다. 3명의 무슬림과 크리스천이 서로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니 사람들이 구경을 하는데 주님께서 역사 하셨다. 그들이 갑자기 나와 같이 기도를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내 평생 그런 기도를 하자고 한 것은 처음 들어 보았다. 그들은 이렇게 기도하자고 했다. “알라 하나님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면 너를 지금 죽여 달라고 기도하고, 예수의 하나님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면 자기들을 지금 죽여 달라고 기도하자” 라고 말을 했다. 구경꾼 가운데 영국인들이 그 기도제목을 듣더니 너무나 놀랐는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너희들 그렇게 기도해라, 알라가 나를 지금 죽여 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 예수님의 아버지는 살아계신 하나님이고 너희들을 살려달라고 축복하는 기도를 하겠다.” 그들 3명과 손을 잡고 기도를 하는데 구약에 엘리야와 우상 숭배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기도하는 장면 같았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 역 앞에서 일어난 것이다. 구경꾼 들은 신기하게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죽여 달라고 알라에게 기도하고 나는 그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고 특별히 요한복음 10장 10절을 붙잡고 기도를 했다.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말이다. East Ham 역 앞에서 하나님은 알라신은 죽이는 신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은 살리는 하나님을 만방에 알리는 일을 하신 것이다. 결국에 나를 역 앞에서 설교를 시키신 이유가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이 거룩하며 다른 우상을 타파시키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눈물의 기도로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었다. 수많은 구경꾼들이 알라는 죽이는 악한 하나님이고 이스라엘 하나님은 살리는 하나님을 다 알게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할렐루야. 기도가 끝나자 나는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 있고 나는 그들의 기도처럼 죽이는 기도가 아니고 살려 주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영생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사람들이 쳐다본 눈을 그들이 의식을 했는지 너무 창피했나 보다. 중동 사람들은 얼굴이 가무잡잡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오른 것을 볼 수가 없는데 그들의 얼굴을 보니 얼굴이 빨갛게 수치심을 볼 수가 있었다. 얼마나 창피했는지 서둘러서 코란과 자기들 전도지를 챙겨서 테이블을 가지고 도망을 갔다. 그들이 가버리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들어도 아니 누가 들어도 그들의 기도는 악한 기도임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만방에 알라신은 죽이는 신임을 알리는 일을 한 것이고 주님께서 나를 사용해서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요 축복의 하나님을 알리는 일을 하신 것이다. 이 땅에서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축복을 알리는 복음전파의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돌린다. 매일매일 무슬림들을 만나는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믿음으로 선포하는 일을 한다. “당신은 예수님 잘 믿어서 귀한 크리스천이 될 것이다” 라고 말이다. 이렇게 하면 무슬림들은 크게 화를 내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면 다시 이렇게 선포한다. “나의 하나님이 나의 말대로 응답을 하신다.” 라고 말이다. 무슬림들에게 전도를 할 때에 변론으로 하면 끝이 없다. 그들에게는 능력 전도로 전도를 해야 한다. 즉 성령의 나타냄과 능력으로 말이다. 하나님의 신이 그들을 어루만져야 변화가 된다는 것이다. 영국과 유럽에 가장 큰 문제가 이제는 무슬림들의 테러가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 이슬람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영을 갖고 기독교인을 죽이게 될 것이다. 이슬람의 영을 갖고 있는 무슬림들은 죽이고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을 이기는 길은 성령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길이다. 주님께서 건지실 사람은 건지실 것이다. 그들을 포기하면 안 된다. 인간적으로는 보기도 싫고 만나기 싫은 사람들 이지만 영혼으로 보고 달려가야 한다. 주님께서 이란에 인도네시아에 강한 부흥을 일으키신 것처럼 유럽에 있는 무슬림들이 회심하고 그들이 예수의 군사가 될 것을 믿고 선포한다. 그들은 알라에게 나를 죽여 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나는 그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를 한다. 얼마나 대조적인 종교인가? 크리스천 순교와 무슬림 순교는 완전이 정 반대이다. 크리스천 순교는 나 죽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인데 무슬림 순교는 나 죽고 너 죽고이다. 이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강하고 담대히 전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할 시대가 지금 이때이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복음을 전할 때이다. 주여 이제 영국과 유럽에 있는 무슬림들을 구원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열왕기상 18:36-39 KRV ============= *Q생명의 사람을 낳는 한나처럼...너예수께 조용히나가539...(먼저)내 문제를 말씀드림-->(더나아가)Q의 문제를 인식/공감 ..이 땅의 모든 문제 해결책은 결국 Q의 사명/소명을 자각/수행할 사람들의 HS으로 하나됨과 헌신에 있음 ========== ==좋은 교회(24)- 하나됨(oneness)을 온전히 이루는 교회 ==[[주HS의임재따라 연합과 하나됨의 기도로 하나되어 주께 순종함은 일기당천-이기당만 정복원리를 풀어놓는다!!]]..HS으로 하나된 JC의 증인 12사도를 통해 무려 100조까지 이르는 땅끝까지 확장된 주의나라 내다보시는JC의 비전, 그 예증인 예루살렘교회!! <고전12:12-14; 엡4:2-7> <신32:30> 주님이 꿈꾸고 있고, 우리가 꿈꾸고 있는 ‘좋은 교회’는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점차로 이루어집니다. 또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고, 우리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 좋은 교회에 대한 말씀에 대한 순종과 힘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의 제목은 ‘좋은 교회는 하나 됨을 온전히 이루는 교회’입니다. ----분열된 우리 주변 세상의 모습: 지금 우리는 세계 여러 곳에서 갈라지고, 서로 갈등하고, 싸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크게는 이슬람권과 기독교권 사이에서 분쟁과 테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미국, 영국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러시아, 중국 등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 간 갈등과 경쟁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과 북한이 서로 갈라져 있습니다. 6.25전쟁 때에는 서로 죽이는 전쟁을 하여 수 백 만이 죽었고, 실종되었고, 웬만한 건물은 다 파괴되었습니다. 지금도 서로 심히 갈등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어떤 교회들에서는 내부에 분열과 다툼이 있다는 것이 이 따끔 들려옵니다. 이런 소식이 일반 미디어까지 보도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세상은 나누어지더라도, 우리 믿는 자가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간절한 기도 가운데 하나이었습니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믿는 제자들을 보전하였고, 그렇게 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 되신 것처럼, 믿는 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주십사 기도하셨습니다.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1,22) 라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앞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하나됨을 위하여 간절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 된 모습을 보시면 하나님은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시편133편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one) 되었다. 우리는 이미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신약 교회는 한 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머리(head)요 그의 교회는 전체가 몸(body)이라고 성경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이렇게 한 몸이 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로 믿을 때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13) 여기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라는 표현은 우리가 성령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에게(into) 잠기어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또 ‘성령을 마시게 되었다’는 표현은 우리가 물을 마실 때에 그 물이 우리 안에 들어오듯이, 우리 안에 성령께서 들어오시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몸에 붙어 있게 되었고, 각각의 역할과 은사를 가지고 유기적으로 하나 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을 에베소서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엡4:4-6)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3) 하나 되었지만 하나 됨을 지키는 것에는 힘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힘써 지키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 됨이 파괴될 수도 있기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하나된 것을 힘써 지키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 됨은 매우 유익하다. 하나님은 기쁨을 줍니다. 서로 하나 될 때의 기쁨은 매우 큽니다. 하나 된 사람끼리 만나거나 교제하면 기쁨의 시간을 가집니다. 그래서 ‘우리 모이자’, ‘뭉치자’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서로 만날 때마다 기쁨의 시간이 됩니다. 이 기쁨의 강도가 더해지기를 바랍니다. 두 세 사람이 하나 되면, 심히 어려울 때에 서로 돕고, 넘어졌을 때에 일으켜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9-12) 하나 됨은 큰 힘을 발휘하게 합니다. 하나가 천을 쫓고 둘이면 이 천을 쫓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역사하시면 하나가 천을 쫓고, 둘은 그 열배인 만을 쫓는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어찌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하였으리요”(신32:30) 라고 말씀합니다. [[주의임재는 일천이만정복원리를 풀어놓는다!!]] 우리가 합심하고 합력하면 더 큰 힘과 능력이 발휘되어, 우리들의 영적인 원수들이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전도할 때에도 예수님은 둘씩 짝지어 한 팀으로 보내셨습니다(막6:7, 눅10:1). 전도할 때에 담대함을 가지게 되고, 따르는 표적, 곧 치유와 축사 등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들이 더 많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 나타난 안디옥 교회에서 하나님이 시키는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하여 파송할 때에 합당한 사람 바나바와 바울을 한 팀으로 파송했습니다. 그들은 한 팀으로 나가서 더 힘을 얻고 사역하니, 하나님이 시키는 그 일들을 다 이루게 되었습니다(행13:1-3). 초대 교회 120명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 순종하여 예루살렘의 한 곳에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자, 이 땅에 성령님이 임하여 신약 교회가 탄생하는 매우 중요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4) 우리 교회도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지난 해 매우 어려운 일들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앞으로도 또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면 어려운 문제나 역경, 환난도 이겨나가게 되고, 좋은 일, 하나님의 새 일, 새 역사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찬양도 하나가 되어 서로 화답할 때에 하나님이 더욱 기뻐 받으시게 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5:19) 찬양하는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 찬양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더욱 커지게 됩니다. 또 찬양팀도 하나가 되면, 곧 팀워크(team work)가 좋으면 더욱 좋은 찬양을 하게 됩니다. 봉사와 섬김도 하나가 되어 하면, 힘든 일에 더욱 힘이 나서 쉽게 하고, 신이 나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찬양과 봉사도 함께 하나 되어 하면 고역이 아니라, 기쁨이 됩니다. ----분쟁하고 분열하면 망한다. 그러나 하나 되지 못하고 분쟁하고 분열하게 된다면 황폐해 지고, 분쟁하면 서지 못하고 무너지고 망하게 된다고 예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 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마12:2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분쟁하면서 물고 먹고, 다투고 비난하고, 부딪히면 피차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한 쪽이 이기고 다른 한 쪽이 망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옛날부터 사색당파니 하는 오랜 심한 파벌싸움에 국력이 약해졌다고 합니다. 회사에서도 사장과 사원이 하나가 되고, 사원끼리도 하나가 되면, 잘 되고 잘 나가는 회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갈등과 다툼의 요소를 막고, 하나 됨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하나가 되면, 평안하고 위로와 힘을 얻고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됩니다. 교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면,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하나가 되면, 큰 힘이 발휘되고, 놀라운 일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가 되면 기도의 응답도 더 속히 임하고, 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의 두 세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19-2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 됨을 어그러뜨리고 무너뜨리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하고, 보아도 잘 넘겨야 합니다. 대개 부정적인 말이나 비판이 교회의 하나 됨을 무너뜨립니다. 긍정의 말, 생명의 말, 은혜의 말, 생명의 말을 하면 더 하나가 됩니다. 스스로 교만하여 자신을 높이려 하는 것도 하나 됨을 무너뜨립니다. 헛되고 이기적인 욕심이나 야망을 이루려한다면 이것도 하나 됨을 무너뜨립니다.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함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2)하신 말씀대로 하고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3)는 말씀을 지키면 하나됨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