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1.05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14.상호소유거함누림기업.유리바다.말씀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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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시114...


만유의주재...[영광을받으신만유의주여331].. 기뻐하며승리의노래.


[고후12:9-10]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

...부지런하라,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JC의 영, 곧 성령님은 친히 교통하시는 분, 임마누엘 구주 하나님이시라, 그분은 참생명하나님의 말씀이시며, 동행하는 반석-요새-피난처-구름기둥과 불기둥이요, 동시에 깨뜨려진 반석으로서 생명수를 한량없이 내어주시며 하늘의 만나로 임하신다.

...그안에서 형제사랑, 서로 사랑 이루라.

...결코, 태만-방만-자기기만(자만)-교만-오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육신-고난-죽음-부활-승천- 도우시는 HS으로 내주하심의 겸비한 사랑과 진실하심의 모든 은혜와 친절/온유/순종으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주 하나님 아버지와 JC의 선하심을 빼어닮아가라.

...바로 그분의 사랑으로 인쳐진 그분의 누리기에 합당한 기업으로 그분의 마음과 심정을 알아드리라..

**하나님나라의  모본 : 

유다<믿음, 찬송, 사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의 지성소가 있는 성도들, 이 때 그들의 단체적 몸은 참된, 영적 이스라엘<하나님의 왕자>가 이루며, 이들의 특성은 애굽(사탄적 체계인 세상)에서 따로 두신 바 되어 떨어져 구별된 삶을 살며, 하나님의 임재권능으로 인해 바다와 요단은 도망하고 물러나며 큰 산과 작은 산 들은 놀라 진동하며 갈팡질팡 뛰어 피할 수 밖에 없음..

...<제한 받지 아니하시는 참생명 근원, 이스라엘의 근원이요 하나님의 말씀이신>주님 자신이 이스라엘에게 친히 떡과 [동행하는 반석이자 거기에서 나오는 신령한 음료로서 자신을 주시며, 또한 그들의 옛자아의 죽음-새로운 영적 참자아로 재창조하심의 믿음을 통해 십자가[깨뜨려진 반석] 를 통해 죽음-부활을 거쳐 당신을 빼어닮은 자녀-백성 만드신다. ==>모든 육체<땅>은 야곱안에 함께 계시사 살아가시며 일하심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경이와 놀라운 감사로 인정하게 됨..

...1>하나님의 재창조(단체적 그리스도의 몸, 교회/성도, 백성, 양자된 자녀 각자를 창세전에 선택, 예정하신대로 부르시고 때가 차매 그리스도의 사역<성육신-고난-십자가죽음-부활-승천-성령 보내심을 통해 구속하심....이것이 이스라엘...이스라엘은 이땅에서 <고난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그리스도를 빼어닮음, 그 성숙함 이루시려 동행-인도하시는HS따라 [옛자아을 처리함 받는] 야곱임.)...

...2>복음으로 사는 신약의 기독교회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보혈과 말씀으로 사는 복음전파사명을 받은,  생명과권능의 HS으로 보냄받은 단체적 그리스도의 유기적 공동체 

...3>이는 극진한 사랑과 기쁨으로 열납받는 <보좌에 계신 JC와 함께 앉게 하셨음 = 좌>그리스도의 단체적 신부들인 바, 각 성도들마다 하나님 영광 +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어떠하심>드러냄/반사와 반영/공급하도록 보냄받음 <=행>, 하나님께 영광<아들을 사랑하신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쳐진 그 마음따라 하나님을 알며 사랑하며 섬김으로써 지고지선의 진복됨 진정한 삶의 복됨의 어떠함을 찬송 드림 + 복음전파 증인의 사명을 감당 = 참..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의 몸처럼 주께 합당한 신부, 그분의 누릴 바 기업됨 이룸>


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야차...죄/세상/마귀로부터 분리되어 속량받은 자유자로서 떠나오다)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주께서 섬김직분들을 통해 [오늘도, 하나님나라안으로, 하나님나라 향해, 일편단심으로>인도하신다!!
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코데쉬..카다쉬 : 구별-분리-거룩-신성함)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멤샬라...관할직영의 영지) 되었도다
3.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누스..도망하다) 요단은 물러갔으니(사바브..퇴거하다/뒤로 돌아가다)...홍해와 요단 도하
4.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라카드..공포로 흩어지다/뛰놀다)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YHWH.시내산강림
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물들(곧 사탄의 체계와 도구인 주를 알지못하는 세인들)의 속성은 엄몰하려함인데..
6.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7.  땅이여(에레츠..땅...창조된 모든 백성들)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훌...생명산출의 산고 겪듯 고통과 번민으로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다)
8.  그가 반석을(추르...반석) 쳐서 못물이(아감..늪)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마얀...끊임없이 솟아 늘 새로운 용출샘의 생수)  되게 하셨도다.....친히 자기자신의 모든 것을 주심으로 새 생명 낳으시고 먹이고 산출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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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시114
1.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야곱의 집안이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에게서 떠나올 때에,
2.  유다는 주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3.  바다는 그들을 보고 도망 쳤고, 요단 강은 뒤로 물러났으며,
4.  산들은 숫양처럼 뛰놀고 언덕들도 새끼양처럼 뛰놀았다.
5.  바다야, 너는 어찌하여 도망을 치고, 요단 강아, 너는 어찌하여 뒤로 물러났느냐?
6.  산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숫양처럼 뛰놀며, 언덕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새끼양처럼 뛰놀았느냐?
7.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어라.
8.  주님은 반석을 물웅덩이가 되게 하시며, 바위를 샘이 되게 하신다.
---KJV]시114
1.  When Israel went out of Egypt, the house of Jacob from a people of strange language;
2.  Judah was his sanctuary, and Israel his dominion.
3.  The sea saw it, and fled: Jordan was driven back.
4.  The mountains skipped like rams, and the little hills like lambs.
5.  What ailed thee, O thou sea, that thou fleddest? thou Jordan, that thou wast driven back?
6.  Ye mountains, that ye skipped like rams; and ye little hills, like lambs?
7.  Tremble, thou earth, at the presence of the Lord, at the presence of the God of Jacob;
8.  Which turned the rock into a standing water, the flint into a fountain of waters
====시114 개요===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들이 교회를 이룩하게 하고, 국가를 형성하게 하는 태동이었다. 

그 기적의 업적은 영원한 기념으로 간직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셨다. 십계명 서문과 호세아 11장 1절에는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시편에서는 그것이 찬양의 생생한 선율로 송축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유대인들이 유월절 만찬을 마감할 때에 불렀던 커다란 할렐루야 또는 찬양의 노래의 일부라고 하는 것이 적합하리라. 

다음의 사실은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된다.

1. 그들이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1).
2. 하나님께서 그의 성소를 그들 가운데 세우셨다는 사실(2).
3. 바다와 요단 강이 그들 앞에서 나뉘었다는 사실(3, 5).
4. 땅이 율법을 받을 때 진동했으며, 하나님이 시내 산에 강림했다는 사실 (4, 6-7).
5.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반석에서 물을 주셨다는 사실(8).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행하실 때 나타났던 권능과 인자하심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을 그보다 더 큰 기사와 이적,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의 구속에 적용시켜야 한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선율로써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우리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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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구원을 송축함(시 114:1-8)
시편 저자는 여기에서 “옛 시대”, 즉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를 기억하면서, 저희의 조상들이 그들에게 말해 준 기적들을 회상하고 있다(삿 6:13). 

죄책감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자비에 대한 의식도 없어져서는 안 된다. 

다음 사실들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
Ⅰ. 하나님께서 높은 손과 내뻗치는 팔로 속박된 집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셨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다”(1절). 

그들은 은밀하게 빠져나오지 않았으며, 쫓겨나지도 않았다. 공명정대하게 나왔으며, 모든 영광의 표지들을 가지고서 행진해 나왔다. 

그들은 저희를 야만스럽게 부리던 야만적인 민족으로부터 나왔고, “알지 못하던 말씀”(81:5)을 사용하던 민족으로부터 나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희 자신들의 언어를 순수하게 보존한 것으로 보이며, 그들의 압제자의 언어를 배우려는 관심은 기울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구별을 나타냄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구원의 징조를 간직했다.
Ⅱ. 그가 스스로 저희의 세속적인 제도와 거룩한 제도를 조직하셨다는 사실이다(2절).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하나님이 그들을 저희 압제자의 손에서 구출해 내셨을 때, “그들이 그를 섬기게 하려 함이요, 거룩함과 의로움에서”, 경건한 예배의 의무에서, 도덕적 율법에 복종하는 데서, 그들의 모든 생활에서 그를 섬기게 하려 하신 것이다. 

“내 백성을 가게 하라. 그들로 하여금 나를 섬기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하셨다.
1.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 그의 성소를 두셨으며, 거기에서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특별한 표징들을 보여주셨고, 그들의 경의와 예물을 받기로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성소를 모시고 있는 자들은 행복하다(출 25:8; 겔 37:26 참조). 

더우기 여기 나타난 유다와 같이 그 “성소”가 되며, 하나님이 사시는 성전이 될 때 더욱더 행복하며, 그들 위에 “여호와께 거룩”이라고 기록된다.
2.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그의 나라를 세우시며, 그 자신이 저희의 율법 수여자요, 심판자가 되셨으며, 따라서 저희의 나라는 신정(神政)이 되었다. 

“여호와가 저희들의 왕이 되셨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토지만, 이스라엘은 특별히 그러하다. 하나님의 성소라는 것은 그의 영토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단지 그 율법에 따르는 그의 집의 특권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로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우리를 하나님의 예배에로 인도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거기에 참여케 하신다.
Ⅲ.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 앞에서 홍해가 나누어져, 그들에게는 구원이 되고 그들의 적에게는 파멸을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요단강이 나누어져, 그들에게는 영광이 되고 그들의 적에게는 공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3절). 

“바다는 이를 보았다.” 즉, 거기에서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가 되는 것을” 보았고, 결국 “도망하였다.” 

“요단은 물러갔으며”, 그의 물결에는 대적할 수 없는 제방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의 머리였으며, 따라서 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길을 내어주고, 그들을 위한 자리를 제공하고 물러나야 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물은 그 본성과는 달리 퇴거해야만 한다.
시편 저자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시적인 음률로 묻는다(5절).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찜인고?” 그리고 바다는 대답한다(7절). 그것은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표현하려고 한다.
1. 기적의 사실. 

즉, 그 기적은 자연의 힘이나 어떤 자연적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말씀을 주시는 “주 앞에서” 되었다.
2. 기적의 자비. 

“네가 도망함은 어찜인고?” 희롱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단지 사람들을 놀리기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다!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된 것이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친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이같이 “강에서 노여워하시며”, 예언자가 말한 바대로 “바다를 대하여 성내셨다”(58:11; 합 3:8-13; 사 51:10).
3. 기적의 경이와 놀라움. 

누가 그러한 일에 관해 생각할 수 있었는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위해 자연 과정이 변화되며, 그 기본적인 법칙이 폐지될 수 있는가? 물론이다. 

“에돔 방백은 놀라고, 모압 영웅은 떨림에 잡힌다”(출 15:15).
4. 그리하여 이스라엘에게 영광이 주어졌다. 

이스라엘은 바다를 능가하도록 가르침을 받았으며, 요단은 그 앞에 설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때가 그의 백성의 구속을 위해 임하시면, 바다도 요단도 깊지 못하며 넓지 못하다. 그때에는 바다가 자체를 고집한다고 하더라도 둘로 나누어지며, 뒤로 물러선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 두 가지 사실에 적용된다.
(1) 세상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성장에 적용된다. 

사단과 어둠의 권세가 떨고, 진동하며, 굴종하는 것은 무엇인가?(막 1:34) 

이방 선지자들이 떨고 침묵하며, 귀머거리가 되어 죽은 자처럼 떨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저희의 우상 숭배자들과 마술사들이 떨며, 복음 앞에서 사라지며, 햇볕을 받은 눈과 같이 녹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복음의 박해자들과 압제자들이 떨며, 그들이 저희의 의도를 단념하고 죄책감으로 머리를 감추며, 은둔처를 위한 반석과 산을 찾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계 6:15) 

복음과 함께 수반하는 권능은 “주 앞에” 있다.
(2) 마음에 나타나는 은총의 역사에 적용된다. 

어떤 흐름이 거듭난 영혼에서 나타나는가? 

탐욕에 빠진 자와 부패한 자가 떨며 뒤로 숨고, 편견이 없어지며, 전 인격이 새롭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공상이 “파해지는 것”(고후 10:5)은 하나님의 성령 앞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Ⅳ.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기 위해 시내 산에 내려오셨을 때, 땅이 흔들렸고 떨었다는 사실이다(4절). 

“산들은 숫양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양같이 뛰놀았다.” 

그때에 그들은 놀랐거나 즐겁게 뛰었다. 흐르는 물을 고정시키며 멈추게 하는 바로 그 권세가 똑같이 굳건한 산들을 흔들며 떨게 한다. 

자연의 모든 권세가 자연의 하나님의 감시 아래 있기 때문이다. 

산들과 작은 산들은 하나님 앞에서 숫양과 어린양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크며 높은 산맥일지라도 “그들이” 목자에 의해 움직이는 것같이, 그에 의해 지배된다.
여호와 앞에서 산들이 떠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고서도 요동치 않는 인간 자녀들의 어리석음과 고함을 부끄럽게 한다. 

시편 저자는 산들과 작은 산들에게 무엇이 그들을 이같이 뛰며 떨게 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는 바다를 향한 것과 같이 그들에게 답한다. 

산들뿐만 아니라 땅 자체도 “주 앞에서” 떨 수밖에 없었다(7절)고 한다. 왜냐하면 땅도 인간의 죄에 대한 저주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104:32; 사 64:3-4 참조). 

이와 같이 작은 산들과 산들을 뛸 수 있게 하신 자는, 원하실 경우, 그의 적대자들 중 가장 교만한 자의 힘과 영혼을 소산시키며 그들을 떨게 하실 수 있다.
Ⅴ. 하나님께서 반석으로부터 물을 공급하시며, 메마르고 모래뿐인 사막을 통해 그 백성을 인도하셨다는 사실이다. 

땅과 그 모든 거민들이 “반석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는”(8절) 하나님 앞에서 떠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이 행할 수 없는 것을 누가 그렇게 이루었을까? 

전능한 권세가 물을 변해 이스라엘에게 벽과 같은 바위가 되게 하시며(출 14:22), 바위를 이스라엘에게는 우물이 되도록 변화시킨다. 

기적에 의해 그들이 보호받은 것과 같이 그들은 또한 공급받았으며, 기적 앞에 서게 되었다. 높이 선 물이 그러했고, 물의 샘이 바위로, 차돌 바위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다”(고전 10:4). 

그는 그의 이스라엘에게 생명수의 원천이며, 그로부터 이스라엘은 은혜 위에 은혜를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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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앞 유리바다** : 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반영하기에 수정과 같다...보좌 앞에 위치한다..성도의 눈, 네 생물들의 눈들(계4:6), (불심판진행을 지켜 보면 감사하는) 유리바다가에서 있는 성도들의 눈....바로 이렇게 강조되는 것은 진행상황의 하나님의 말씀이 [언약하신 바로 그대로]정의를 따라 신실함 바로 그대로 이루심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또한 그 말씀의 뜻은 참되게 하나님을 누리며, [날마다 보혈과 말씀, 성령따름으로 ]하나님의 누리시기에 합당한, 곧 그분의 누림이 되는 친 백성들 됨이 그 무엇조다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함 아닐까..
[구약 회막에서는 제단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수족을 씻는 물이 담긴다....말씀의 씻는 물, 거룩하게 하는 물이 담긴 대야이다..솔로몬 성전에는 몸까지 씻을 수 있게 크게 만들기도 했다!!]....유리바다의 그 위치는 보좌 앞이다, .. 유리바다의 특성은 본래 하늘, 곧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그대로 닮아  투명한 수정과 같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세상에 임한  불심판 진행을 유리바닷가에 서서 목격하게 되며, 하나님의 뜻하신 바, 기록해 두신 말씀로 그대로 전개됨, 그분의 신실하심을 감사하게 되며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전심, 전존재로 드리는 사랑의 경배] 감사찬송하며 영광돌린다....그분의 말씀하심 안에서 그분의 주권적 뜻 그대로 진행됨을 드러내 증거한다...곧 진실하신 하나님의 어떠하심따라 그분의 다스리심의 주권적 통치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바,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비밀한 뜻-계획-경륜-섭리의 말씀하신 대로 진행되는 신실하신 약속 말씀 진행의 증거창이라 할 수 있을 것..
[계4:6 :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계15:2].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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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거울 앞에서(약10:22~25)
요즘은 좀 뜸한데 얼마 전에 비상배낭(생존배낭)이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지진이 발생하고 북핵 문제로 전쟁 위기설까지 퍼지면서 국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확산된 탓이었습니다. 지금도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보면 여러 종류의 비상배낭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그 안에 어떤 물건들이 들어 있나 봤더니 대개 이런 것들입니다. 침낭, 담요, 비상식량, 휴지, 라이터, 세면도구, 방한복, 나침반, 호루라기, 휴대폰 보조배터리, 손전등, 미니 라디오, 비상약 등입니다. 정말로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 아니 생존필수품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뭐 빠진 거 없나요? 네, 성경이 빠져 있습니다. 성경을 통째로 암송하는 분들은 제외해놓고 우리에게 성경이야말로 생활필수품이요 생존필수품입니다.
여러분, 왜 그럴까요? 성경은 인생 지침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삶에 대해 세세하게 안내해 주는 인생 매뉴얼입니다. 육신적인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아무리 잘 챙겨도 성경을 챙기지 않으면 영혼이 피폐해지고 결국은 삶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성경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부디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성경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성경을 늘 가까이 함으로 큰 유익을 얻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1] 성경 :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먼저 성경은 과연 어떤 책인지 살펴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죽은 책이 아닙니다. 살아 있어 역동적인 힘을 발휘하는 ‘산 책’(Living Book)입니다. 그 기원을 알아보면 수긍할 수 있습니다. 
딤후3:16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NIV-God-breathed, KJV-by inspiration of God) … ” 여기서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성령으로 감동된 책이란 뜻입니다. 감동되었다는 말은 영감(靈感, Inspiration)이 되었다는 뜻인데, 영어 동사 ‘inspire’를 사용하는데, 본래 숨을 불어넣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기록할 때 성령님이 숨을 불어넣어주셨다는 겁니다.
1차적으로 성경의 기록자는 인간입니다. 
성경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합쳐서 66권으로 구성되어 있죠. BC 15세기~AD 1세기에 걸쳐 40여 명이 기록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5권의 기록자는 모세입니다. 그래서 이를 통틀어 모세오경이라 부릅니다. 마태복음은 마태, 사도행전은 누가, 로마서는 바울 …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인간 기록자가 성경을 기록할 때 독자적으로 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기록할 때 성령 하나님이 함께해 주신 겁니다. 그들 각자의 지식과 경험, 개성 등을 사용하시되 성령님이 유기적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바른 뜻을 기록하게 하신 겁니다. 결국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오롯이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충분한 설명은 못 되겠지만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대통령 연설문을 누가 쓰죠? 비서관들이 씁니다. 한두 명이 아니고 여러 명입니다. 분야별로 경우에 따라 각각의 비서관이 기록합니다. 각자의 재주를 발휘해서 씁니다.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니죠. 대통령과 충분히 교감을 하면서 씁니다. 최종적으로 대통령 자신이 확인하고 다듬은 후에 완성합니다. 그러면 그 연설문은 누구의 것이 됩니까? 대통령의 것이 됩니다.
성경의 기록 과정에서 성령의 영감이 마치 그런 겁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성경의 원저자는 성령님입니다. 
그러니까 긴 세월에 걸쳐서 여러 사람들에 의해 기록됐지만 ‘통일성’과 ‘정확무오성’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신비로운 책입니다.
이 66권으로 성경은 완성됐습니다. 가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66권 전권을 가리켜 흔히 정경(正經, Canon)이라 부릅니다. 영어 단어 ‘Canon’은 헬라어 ‘카논’(κανων)에서 유래했는데 본래 ‘갈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대에는 표준 자가 없어서 갈대를 꺾어 대충 길이를 측정했습니다. 그래서 ‘카논’(κανων)이란 단어가 ‘갈대’라는 의미 외에 ‘척도’ ‘표준’ 등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 66권이 한 권이 되었고 진리의 표준이란 의미로 정경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이 오늘도 이 정경을 통해 우리에게 생생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그가 가능할까요? 옛날 성경 기록자들에게 영감을 주셨던 동일하신 성령님이 오늘날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조명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리켜 성령의 ‘조명’(照明, Illumination)이라고 합니다(요14:26, 고전2:10~13).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을 통달하고 있으므로 그 뜻을 밝히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진리의 교사인 셈입니다.
정리해서 다시 말씀드리면 이런 겁니다. 성경을 기록할 당시에는 성령의 영감으로, 성경을 읽는 당시에는 성령의 조명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기록된 성경은 우리에게 일단 일반적인 메시지(general message)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성령의 깨우쳐주심으로 나를 향한 개인적인 메시지(personal message)로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이 이런 책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마치 하나님을 대하듯이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책 자체를 우상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기대하고 대하라는 말입니다. 그럴 때 성경은 정말 우리 각자에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는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고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부디 성경을 하나님 대하듯 대하심으로 인생에서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성경 말씀을 여러 가지로 비유해서 설명합니다. 
예들 들면 길로 비유합니다. 한자로 보면 말씀 도(道) 자와 길 도(道) 자가 같죠.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안내해 주시는 인생의 길이라는 겁니다. 혹은 등불로 비유합니다. 인생을 빛으로 인도하는 등불이라는 겁니다. 이런 비유들이 많은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 중의 한 가지가 나옵니다. 거울 비유입니다.
[2] 성경 : 말씀의 거울
약1:23에 보면 성경 말씀을 거울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의 거울이란 겁니다. 한자로 말하면 성경(聖經, Holy Bible)은 성경(聖鏡, Holy Mirror)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의 모습이 생긴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할지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어떻게 아름답게 단장하면 좋을지 판단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보면 자기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달라져야 될지 알 수 있고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인생을 점점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을 이렇게 정의해 봅니다. 매일 말씀의 거울 앞에서 사는 삶!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말씀의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면 좋겠습니까? 네 가지로 소개해 드립니다.
[3] 말씀의 거울 앞에서 : 성찰, 회개, 실천, 기도
첫째는 성찰, 둘째는 회개, 셋째는 실천, 그리고 넷째는 기도입니다. 이런 과정을 본문에서 암시해 줍니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마리아와 요셉 사이에 태어난 동생)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신앙의 실천에 관해 증거한 서신서입니다. 그 중에 본문을 보면 성경 말씀을 거울에 비유하면서 증거합니다. 약1:23~24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발견합니다. 그러고 나서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게 당연합니다. 예를 들어 거울을 보니까 얼굴에 더러운 얼룩이 있으면 그것을 보고 나서 깨끗이 씻어내고 단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거울을 보고 나서 곧 잊어버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보나 마나입니다. 그래서 야보고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약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그러니까 말씀을 보고 자신을 성찰하고 발견한 대로 고치고 단장하듯이 말씀대로 변화되고 행하고 살아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 과정을 네 가지로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① 성찰 :
첫째, 성찰입니다. 성찰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잘 모릅니다. 외모도 거울을 보지 않으면 스스로 알 수 없습니다. 거울이 없을 때는 자신의 모습이 더럽고 추해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거울을 보면 그냥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옛날 아프리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에야 아프리카도 도시화되어서 이런 일이 없겠지만 옛날에는 이랬습니다. 거울을 처음 보고서 무척 신기해했습니다. 여자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이게 나야? 내 입이 왜 이렇게 크지? 내 볼이 좀 더 올라가면 더 예쁠 텐데 … ”하며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남자들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더러 더러운 사내라고 말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게 누구지? 너무 못 생겼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그게 바로 당신이야!”라고 알려 주자 화를 내며 거울을 내동댕이쳤다고 합니다.
이처럼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외모가 어떠한지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면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직 말씀을 통해 자신의 영혼과 인격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히4:12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마치 예리한 수술 칼로 인체를 샅샅이 해부를 하듯이 성경 말씀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감찰하며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래야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두 손 들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도가 된 후에도 법적으로는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됐지만 실제적으로는 여전히 죄성이 남아 여기저기 죄인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계속됩니다.
이런 말이 있죠. 국어를 잘 하라면 주제 파악을 잘 해야 되고 수학을 잘 하려면 분수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동일한 원리입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기 자신의 부족하고 추한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게 신앙의 기본입니다.
여러분, 바리새인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없는 겁니다. 성경 말씀을 남을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했을 뿐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마치 완전한 줄로 착각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자기 의에 갇혀서 남에게는 정죄의 칼을 들이대고 정작 자신은 부족한 모습으로 방치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말씀의 거울 앞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② 회개 :
둘째, 회개입니다. 성찰 이후에는 회개해야 합니다. 거울을 보고 얼굴에 더러운 게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도 방치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즉시 닦아내죠. 요즘 보면 외모에 관심이 많아서 더러운 게 아니라 작은 잡티만 생겨도 이를 제거하려고 애를 씁니다. 주름도 펴고 점도 빼려고 애를 씁니다. 거울을 보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겁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의 거울을 보고 자신의 부족하고 잘못한 모습을 발견하면 즉시 회개해야 됩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성령 강림 직후 사도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구주이심을 담대히 증거합니다. 그 말씀을 전해들은 군중들의 반응이 어떠했나요?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장본인들입니다. 행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이렇게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바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된 겁니다.
여러분, 영화「벤허(Ben-Hur)」를 아시죠. 1959년에 제작된 영화인데 그 후에도 여러 번 개봉되고 개작되기도 한 명화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단체로 극장에 가서 본 기억이 납니다. 그 영화의 원작인 소실 벤허의 저자는 류 월리스(Lew Wallace, Lewis Wallace 1827~1905)입니다. 그는 본래 장군 출신으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독한 반기독교적 인사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기독교를 증오했는지 이런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성경의 모순을 파헤쳐 기독교를 말살할 수 있는 명저를 지술하자! 이런 목적으로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지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결국 회개하게 됩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증거하는 명저를 저술하게 됩니다. 그 책은 19세기 최고위 기독교 서적이 되었고, 그 후에 지금까지 소설과 영화로 예수님을 증거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회개했고 예수님을 믿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성도가 된 후에도 여전히 부족한 나의 모습을 회개하면서 계속 변화되고 성화되고 있습니다. 부디 말씀의 거울 앞에서 이런 성화의 과정을 성실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③ 실천 :
셋째는 실천입니다. 말씀의 얼굴을 보고 깨달았으면 실천하는 게 마땅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자기기만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약1:22을 다시 보시죠.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NIV-Do what it says)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이럴 거면 왜 성경을 보느냐 이겁니다. 차라리 보지 말지. 보나 마나라는 겁니다.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믿음은 마음속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진짜라면 사언행을 통해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마치 나무에 열매가 열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야고보는 2장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약2:20~22 “21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행함과 믿음의 관계는 하나로 연합된 겁니다. 마치 동전의 겉과 속의 관계와 같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 중 심각한 하나는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 노래하듯이 외치면서 구원받은 줄로 착각하는 겁니다. 그런 건 마치 구원파 이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구원받았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정죄 받지 않는다는 식입니다. 종교개혁이 중세 가톨릭 공로 사상 즉 복음에 기초하지 않은 행위를 강조하는 데 반발해서 “오직 믿음!” 이라 외친 것이지 행위를 부정한 게 아닙니다.
야고보는 단호히 증거합니다.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디도는 더 나아가 이렇게까지 증거합니다. 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이런 사람은 이름뿐인 명목상의 그리스도인(nominal Christian)입니다. 결국은 실제적인 불신자(practical atheist)인 셈입니다.
예수님도 잘라서 말씀하셨습니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행함이 없으면 가짜 믿음이고, 그런 정도의 믿음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사과나무라면서 사과 열매가 열리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라는 겁니다. 이처럼 믿음과 행위가 일치되어야 하는데 이를 가리며 신행일치(信行一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고 이런 사람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요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축복해 주십니다. 약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NIV-he will be blessed in what he does)”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말씀 순종(실천)은 의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이번 시험 90점 이상 받으면 상금 줄게.” 이 말은 의무입니까? 특권입니까? 특권이죠. 옆집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내 아들이니까 말씀대로 살도록 권면하고 그 결과에 대해 상을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감상용이 아니고 실천용입니다. 19세기 복음전도자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는 하나하나 실천해 보고 하나님이 그대로 성취하시고 축복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시카고 무디신학교 캠퍼스 구내 기념관에 가 보면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헌성경책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의 여백에 T, P 등의 표시가 많이 나옵니다. 그 문자들은 T 는 Tried(실천해 보았다)이고, P는 Proved(검증되었다)입니다. 무디는 그저 말씀만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살아보고 그 축복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도 말씀의 거울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실천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④ 기도 :
넷째, 기도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기에 성경 말씀을 잘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경 말씀에 들어 있는 약속들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를 위해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함으로 승리를 체험하고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프로 골퍼 최경주 선수는 부인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회심한 분입니다. 그는 늘 경기를 치러야 한기 때문에 항상 긴장합니다. 별명이 탱크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분필로 줄을 그어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코스가 보이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 때마다 붙잡은 말씀이 바로 사41:10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또 한 번이 이런 경험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도시에서 경기가 있었는데, 그 전날 밤 호텔에서 부인이 그에게 성경구절을 적은 쪽지를 건네주며 외우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요15:16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암송하고 경기에 임했는데 우승하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영국의 정치가로 노예제도 폐지에 앞장섰던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
~1833)가 있습니다. 그는 노예제도 폐지 법안을 발의했지만 번번이 반대 세력들로부터 방해가 있어서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그래도 그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었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갈6:9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병상에서 마침내 법안 통과 사실을 전해 듣고 소천했습니다.
여러분, 하루에 거울을 몇 번이나 보시나요? 거울을 보고 싫증을 내는 사람이 있을까요?
매일 보고 또 봅니다. 우리 영혼과 삶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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