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역개정]시113...[JC보혈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종-백성-그리스도의 신부/어린양의 아내/형제인 교회-성도들...예배하는 왕적 제사장, 복음의 직분자, 세상영혼들 구원함의 중보기도자,
구주예수의지함이542..[내주예수주신은혜315]..[예수나를오라하네324].빈들에마른풀같이183..***은혜아니면살아갈수가없네..은혜로만들어가네..보혈을지나..오직주의사랑에매여..주님께서주시는그사랑놀라워라..어찌하여야그크신은혜..완전하신나의주..하늘에나는새도..오귀한주이름..내손을들고내입을열어..너는마음에노래가있느냐..allThroughTheDay.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2.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3.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4.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5.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6.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엘올람)) 7.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8.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이새의아들다윗.JC)) 9.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한나)) 할렐루야 -------- 표준새번역]시113 1. 할렐루야. 주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2. 지금부터 영원까지, 주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 것이다. 3.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주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 것이다. 4. 주님은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다. 5. 주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어디에 있으랴? 높은 곳에 계시지만 6. 스스로 낮추셔서, 하늘과 땅을 두루 살피시고, 7.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리셔서, 8.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백성의 귀한 이들과 함께 앉게 하시고, 9. 아이를 낳지 못하는 그 여인에게도 한 집에서 떳떳하게 살게 하시며, 많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즐거워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 할렐루야 ----- KJV]시113 1. Praise ye the LORD. Praise, O ye servants of the LORD, praise the name of the LORD. 2. Blessed be the name of the LORD from this time forth and for evermore. 3. From the rising of the sun unto the going down of the same the LORD's name is to be praised. 4. The LORD is high above all nations, and his glory above the heavens. 5. Who is like unto the LORD our God, who dwelleth on high, 6. Who humbleth himself to behold the things that are in heaven, and in the earth! 7. He raiseth up the poor out of the dust, and lifteth the needy out of the dunghill; 8. That he may set him with princes, even with the princes of his people. 9. He maketh the barren woman to keep house, and to be a joyful mother of children. Praise ye the LORD. -------------- The Lord Exalts the Humble. 113 1.[a]Praise the Lord! ([b]Hallelujah!) Praise, O servants of the Lord, Praise the name of the Lord. 2.Blessed be the name of the Lord From this time forth and forever. 3.From the rising of the sun to its setting The name of the Lord is to be praised [with awe-inspired reverence]. 4.The Lord is high above all nations, And His glory above the heavens. 5.Who is like the Lord our God, Who is enthroned on high, 6.Who humbles Himself to regard The heavens and the earth? 7.He raises the poor out of the dust And lifts the needy from the ash heap, 8.That He may seat them with princes, With the princes of His people. 9.He makes the barren woman live in the house As a joyful mother of children. Praise the Lord! (Hallelujah!)
====시113 개요===== 이 시편은 “할렐루야”라는 말로 시작하고 끝맺는다. 이 시편은 다른 여러 시편과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위대하고 선한 과업을 촉진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1.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 받고 있으며, 촉구되고 있다(1-3). 2. 찬양을 위한 소재들을 공급받고 있으며, 경외와 사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노래의 내용이 우리의 입에 주어진다. (1) 그의 영광과 위대하심의 높이(4-5). (2) 그의 은총과 인자하심(6-9). ---이 둘은 서로를 잘 설명하고 있으며, 당연히 서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겸비(시 113:1-9) 이 시편에서는 다음을 볼 수 있다. 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되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라는 권고다. 1. 그 초대는 매우 절실하다.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그리고 반복해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왜냐하면 그는 찬양을 받으실 분이기 때문이다(1-3절).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을 크게 기뻐함은 필연적이며, 가장 고상한 의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신앙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2) 우리가 열심히 해야 할 의무임을 나타낸다. 우리는 자주 찬양해야 하며, 크게 선양해야 한다. (3) 우리가 소홀히 했던 일이다.(자칫 소홀히 할 수 있다. 넘어질 위험이 있다!.. 찬양-기도안에 머무르자) 우리는 말씀을 따라서, 법도를 따라서 참여해야 하며, 자극을 받아야 한다. (4)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은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권한다. 그 일의 중대성을 알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끌어올 수 있는 모든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마음을 다하고 열심을 기울여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기쁨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희의 모든 동료들과 함께 그 모든 기쁨을 나누기를 원한다. 2. 그 초청은 매우 광범위하다. (1) 하나님께 찬양 드리는 자들, 즉 그의 백성을 관찰해 보라.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으며, 그 소명에 응답해야 한다.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그들은 그를 찬양해야 할 가장 큰 이유를 가지고 있다. 종으로서 그에게 수종드는 자는 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고, 또 그의 총애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찬양하는 것이 그들의 과제다. 그것은 그의 종에게 요청되는 일이다. 주인에 대해 찬송하는 것과 그에게 명예를 돌리는 것은 쉽고도 즐거운 일이다. 그들이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레위인이 그것을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다. 그리하여 “저희를 불러내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천사들은 여호와의 종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요청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으며, 그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잘 찬양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하나의 위로가 된다. (2) 그를 찬양해야 할 자들을 관찰해 보라. ① 모든 세대들(2절). “이제부터 영원까지.” 이 일은 우리와 함께 사라질 것이 아니다. 더 좋은 세상에서도 행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뒤에 오는 모든 자들도 이 일에 전념해야 한다. 우리의 후손으로 하여금 퇴보하게끔 하지 말고, 모든 세대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찬양 올리도록 해야 한다. 단지 현세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시편 저자와 같이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하고 말함으로써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② 모든 곳으로부터.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모든 거주가 가능한 세계에 걸쳐서다. 해 돋는 은택을 기뻐하는 모든 자는(그리고 또한 해가 질 것이라고 생각해 기뻐하는 모든 자는) 빛의 아버지에게 빛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그 이름은 열방에서도 찬양을 받아야 한다. 모든 곳에, 동으로부터 서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혜와 권능과 인자하심의 명백한 증거와 결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류의 대다수가 그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슬퍼해야 할 일이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합당한 찬양을 다른 것들에게 돌리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거기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으리라. 앞의 구절들이 우리의 하나님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로다”라고 가르치면서 영광의 나라의 섬광을 보여주었듯이, 이 시편 구절들은 그에 대한 복음의 섭리 가운데서 은혜의 나라의 섬광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유대 나라에만 한정되지 않고, 스스로 전 세계에 퍼질 것이다. “각처에서 우리의 하나님께 영적인 분향이 제물로 드려질 때”(말 1:11)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Ⅱ. 우리는 여기에서 그에게 영광 돌리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 1. 우리가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의 영광이 천상 세계에서 얼마나 높은가를 보게 되며, 그 높은 영광을 말하게 된다(4-5절). 우리는 찬양할 때 그의 이름을 높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높으시며, 그의 영광 또한 높으시기 때문이다. (1)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저들의 왕들이 아무리 창대하다고 할지라도, 저희의 백성이 아무리 창대하다고 할지라도 그들보다 높으시다. 지상의 왕이 “개인들보다는 크며”(major singulis), “전체보다는 작다”(minor universis)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다. 우리는 지상의 왕이 왕 중의 왕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 열방을 모두 함께 모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들은 그 앞에서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과 같다”(사 40:15, 17). 모든 열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높으시다고 생각하며 말하게 하라. 그는 그들의 모든 것 위에 높이 계시기 때문이다. (2) 주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 그의 영광의 보좌는 가장 높은 하늘에 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그를 찬양하도록 일으켜준다(애 3:41).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 즉, 천사들 위에 높으시다. 그는 그들보다 높으시다. 그들의 광명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그들이 행하는 것 위에 계신다. 그들은 그의 명령 아래에 있고, 그의 뜻을 행한다. 그리고 그는 그들이 말할 수 있는 그 경지를 초월해 계신다. 그는 모든 송축과 찬양 위에 높으시며, 우리 모두뿐만 아니라, 그들 모두 위에 초월해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감탄으로 말해야 한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세상의 열왕과 모든 주권자 중 누가 그와 같으리요? " 세상에서 영리하고 축복 받은 영혼 중 누가 그보다 높으리요? 아무도 그와 동등시될 수 없으며, 아무도 그와 비교될 수 없다. 하나님은 초월적으로, 비교될 수 없이, 무한하게 위대한 분으로서 찬양 받으실 것이다. 그는 “높은 위에 앉으셔서”,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보시며, 만물을 다스리시고, 올바르게 그를 찬양하도록 모든 것을 이끄시기 때문이다. 2. 우리가 주위를 돌아본다면 그의 인자하심이 지상세계에서 얼마나 폭넓은가를 보게 되며, 그에게 찬양을 발하게 된다. 그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천지에서 스스로 낮추신” 하나님이시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문장이 전환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그는 하늘에 높이 거하시며, 땅을 살피려 낮아지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 의미는 우리가 이해한 것과 같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스스로 높이시고, 스스로 낮추신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일은 그분 자신의 행위이다. 그가 자존하신 것과 같이 그는 그의 명예의 원천이며, 그의 은총의 근원이 되신다. 하나님의 겸손한 인자가 다음과 같은 데서 나타난다. (1) 그가 그 아래에 있는 세상을 용납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다. 그의 영광은 “모든 나라 위에, 모든 하늘 위에” 있지만, 아무것도 그에 의해 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치 아니하신다”(욥 36:5). 그는 그의 모든 피조물과 방백들을 “살피시기 위해 스스로 낮아지신다.” ((=체휼하시는 하나님, 엘로이, 임마누엘)) 그러나 그는 그들보다 무한히 높이 계신다. 하나님 본성의 무한한 완전함과 충만함과 미묘함을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한 섭리의 생각과 그의 우주적인 섭리의 활동으로 하늘의 군사와 땅의 거민을 취하시기 기뻐하신다는 사실은 놀라운 겸비의 행위로 인정되어야 한다(단 4:35). 그는 이러한 통치에서도 스스로 낮아지신다. ① 하늘에서 만물을 살피며, 생명을 보존하고, 움직임을 지휘하며, 천사들의 찬양과 예배를 받으시는 것은 그에게는 [무궁하신 사랑과 인자요]겸비다. 그에게는 그들이 필요하지 않고, 그는 그들에 의해 은혜를 입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② “땅에 있는 만물을 살피고”, 인자(人子)를 찾으며, 그들을 보호하고, 저희의 문제를 지배하며 다스리시고, 그들이 말하고 행하는 것을 감찰하심은 그에게 크나큰 겸비다. 그는 그의 인자하심으로 땅을 충만케 하며, 인내로써 선을 행하는 모범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우리의 열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보살피시며 관심을 가지신다.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살피시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겸비라면, 하나님의 아들이 “잃은 자를 찾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본성을 취해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오신 것은 놀라운 겸비다. 실로 여기에서 그는 스스로 낮아지셨다. (2) 그가 때때로 이 비천하고 낮은 세상의 거민 중 가장 작고 낮은 자들에게 보이시는 특별한 은총에서다. 그는 세상에 있는 큰 것들을 보실 뿐 아니라, 가장 비천한 것과 또 위대한 자들이 대개 간과하는 것들을 보신다. 그는 단지 그들을 굽어보실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시며, 섭리의 일반으로부터 매우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다. 세상이 우연한 자연적 과정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자연의 과정이란 변화무쌍하나 결국 쇠하며, 항상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우리가 기대할 수 없기에 기대하지 않는 것을 행하기를 기뻐하시는, 자연을 다스리며 돌보시는 자연의 하나님에 의해 진실로 세상이 지배됨을 보여준다. ① 오랫동안 경멸의 대상이 되어온 자들이 때때로 갑자기 명예롭게 된다(7-8절).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방백들과 함께 세우신다.” a. 하나님은 이와 같이 때때로 자신을 강하게 하시며, 그의 지혜와 권능과 주권을 확대하신다. 그가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려고 하실 때, 보시기에 가장 비천한 것을 그 일에 사용하기 위해 택하시며, 저희들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에 의해 가장 비천하다고 생각되는 자들을 가장 높은 영광의 자리까지 이르게 하신다. 기드온은 타작마당에서 나왔고, 사울은 당나귀를 찾는 일에서 불려왔으며, 다윗은 양을 지키는 곳에서 진출했다. 그리고 사도들은 고기를 낚는 데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보내심을 받았다. 복음의 보화가 세상에 있는 인간에게 주어졌으며, 세상에 속한 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복음의 설교자로 선택되고, “지혜 있는 자들과 강한 것들이”(고전 1:27-28) 부끄럽게 되었다. 그리하여 권세의 우월성이 하나님께 속한 것을 드러내고, 모든 자의 발단이 그에게서 나옴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b. 하나님은 때때로 이와 같이 빈곤과 수치의 무거운 짐 아래 오랫동안 신음해 온 그의 백성의 뛰어난 경건과 인내에 보응하신다. 요셉의 덕망이 증명되었을 때, 그는 감옥의 진토에서 일어나 “방백들과 함께” 세워졌다. 지혜 있는 자들은 그와 같은 섭리의 응답을 관찰해야 하며, 그로 인해 “여호와의 사랑과 인자하심”을 깨달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의 사업에 적용한다. 그것은 결코 부적당하다고 할 수 없다. 그를 통해 가난에 떨어진 자들이 진토로부터 일어나고(유대 랍비들 중 한 사람은 그것을 죽은 자의 부활에 적용한다), 더우기 죄의 더러운 무더기에서 일으킴을 받아 “방백들과 함께 세워지며”, 천사들 가운데서 그 백성의 방백으로 세워지기 때문이다. 한나는 이러한 의미로 노래했다(삼상 2:6-8). ② 오랫동안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들이 때때로 갑자기 잉태하게 된다(9절). 이것은 사라, 리브가, 라헬, 한나, 삼손의 모친을 회상케 하며, 엘리사벳을 예상하게 한다. 그러한 예는 많다. 하나님은 그의 하녀의 괴로움을 감찰하시고 저희의 불명예를 씻어주셨다.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가정을 형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가장들이 해야 할 일을 찾게 하신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다. 가정의 안식을 취하는 자들은 가정을 돌보아야 한다.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는 일”은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딤전 5:14). 하나님께서 “자녀를 잉태케 하실 때” 그는 여자가 “그 집안을 보살피기를”(잠 31:27) 기대하신다. 그 여인은 “자녀의 즐거운 어미”라고 했다. 대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그 기쁨 때문에”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무자(無子)한 자들에게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특별한 기쁨도 있다(눅 1:14와 같이). 그러므로 특별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는 “떨며 기뻐해야 한다.” 슬픔의 어머니는 기뻐하게 될 수 있지만, 기쁨의 어머니는 그 자녀가 자기 품을 떠나거나 분노케 하면 다시 슬픔에 빠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방 가운데에 있는 복음의 교회에 적용되어야 한다(그 정초가 이와 유사하게 표현되어 있다.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자는 노래할지어다!”, 사 54:1; 갈 4:27). 그러므로 이방의 죄인들이며, 황폐하게 된 자들의 자손인 우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는 말을 들어야 할 이유를 갖는다.
===오늘이라는 날에 경험케 하실 하나님을 기대함!!=== [[바알브라심, 격파하시는 하나님 [사무엘하 5:17-25]]] 여러분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어떤 하나님을 연상하십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다윗은 블레셋과의 싸움을 통해서, 물을 흩음같이 대적을 흩으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을 기념하면서 그 싸움터의 이름을 ‘바알 브라심”이라고 부릅니다. 바알은 ‘주’라는 의미가 있고, ‘브라심’은 ‘격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알 브라심은 ‘주께서 격파하셨다.’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블레셋이라는 강한 대적들을 돌파해 나가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바알 브라심’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얼마 안돼서 일입니다. 다윗이 처음부터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것은 아닙니다. 먼저 자신의 지파인 유다지파의 추대를 받아 헤브론에서 유다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이 죽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이 헤브론으로 올라와서 다윗에게 와서 왕이 되어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리고 다윗은 수도를 옮길 필요성을 느낍니다. 유다를 통치할 때는 유다진영에 있는 헤브론이라는 지역이 좋았는데, 전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좀 더 북쪽으로 수도를 옮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헤브론에서 북쪽으로 30km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기고자 합니다. 예루살렘에는 여부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을 쳐서 점령하고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의 이러한 움직임에 위협을 느낀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블레셋 자신들의 강력한 장군 골리앗을 죽인 다윗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위협적인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고, 수도까지 옮겼으니 그 통치가 강력해 질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은 다윗을 찾아 싸우러 옵니다. 그것도 적당히 오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다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다윗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들과 맞서기 위해 요새로 갔는데, 이미 블레셋 사람들이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했습니다. 마치 골짜기에 흐르는 물과 같이 블레셋 군사들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정면전이 벌어 졌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이스라엘군사가 골짜기에 가득 찬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손으로 물을 흩어 버리듯이, 이스라엘 군사들이 공격할 때에 그들이 맥없이 무너지고 흩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윗은 ‘바알 브라심’의 하나님, 물을 흩으시듯이, 블레셋의 강한 군대를 격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강한 나라로 성장하기 위해서 블레셋은 꼭 격파하고 넘어가야 할 세력이었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치고 넘어가지 못해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사사시대 때에 블레셋과의 싸움도 버거웠습니다. 엘리제사장 시절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번번이 지니까,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가면 이기겠다고 생각하고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서 싸웠지만 그 언약궤까지 빼앗겼습니다. 사울왕이 전사한 것도 블레셋 사람들을 상대로 길보아산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더 성장하고 번영을 해야 하는데 블레셋이라는 세력이 가로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 블레셋과 맞서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물을 흩듯이 블레셋을 격파하셔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로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다윗이 다른 사람들보다 위대한 신앙의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닥친 여러가지 장애물들을 돌파해 나갔을 때입니다. 목동시절에 양들을 해치려는 맹수와 맞서서 돌파해 나갔습니다. 골리앗을 만났을 때도 그랬고, 사울과 같은 모진 사람을 만났을 때에도 그는 그 모든 장애물들을 돌파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돌파의 중심에는 ‘바알 브라심’의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성도들의 삶속에서 그 믿음이 성장하고 견고하게 설 수 있는 비결도 믿음생활 중에 만나는 여러가지 위기들을 믿음으로 잘 돌파하고 나갈 때입니다. 그럴 때에 성도들의 신앙이 더욱 성장하고 든든하게 서가게 됩니다. 오늘 다윗이 경험한 ‘바알 브라심’의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에게 닥치는 믿음의 장애물이 어떠한 의미가 있고, 어떻게 그러한 도전들을 이겨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백성들의 믿음이 성장하며 견고하게 서기를 원하시는데, 그러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믿음의 장애물을 그 앞에 놓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출애굽 초기부터 있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해서 광야생활을 할 때부터 그들을 견고한 믿음의 백성으로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평안하게 두시지 않고, 광야생활 동안 여러가지 믿음의 장애물들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라고 하는 위험한 곳으로 이끄셨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지고 마실 물이 없는 상황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가나안에 사는 강력한 적들을 보여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러한 장애물들을 맞주할 때에 그것을 돌파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앞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물이 없으면 여전이 목마르다고 불평하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져 버렸습니다.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을 봤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적들에 손에 죽이게 하신다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결국 자신앞에 놓인 믿음의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견고한 믿음으로 도약하고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성도들 앞에 장애물들을 설치하고 마주하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격파하며 뛰어 넘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들에게 먹고 마시는 경제적인 장애물과 맞서도록 만드십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몸의 건강의 문제를 대면하게 하시고, 어떤 분둘에게는 사람과의 관계적인 어려움을 대면하도록 하십니다. 자녀나 가족의 문제를 두시기도 하십니다. 교회안에서도 장애물을 주시어서 주춤하게 만드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장애물들을 주실 때에는, 더 이상 넘어오지 말고 그곳에 머무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돌파하고 넘어와서 더 크고 견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도약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경제적인 장애물을 주시어서 그것을 돌파하여 경제적인 상황과 상관없는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육신의 어려움을 주셔서 더 이상 육신의 상태와 상관없이 강건한 믿음으로 서기를 원하십니다. 사람과의 관계의 어려움을 주셔서 앞으로는 사람들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욱 집중하며 견고한 믿음으로 서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믿음의 장애물들은 그것을 통해서 더욱 견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2.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러가지 장애물들을 아주 많이 직면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러한 장애물들을 잘 돌파하며 왔기에, 주변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러한 믿음의 장애물을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만한 비결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았을 때에 다윗은 블레셋과 같은 장애물들을 만났을 때에, 먼저 하나님께 여쭤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여쭙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믿음의 행위입니다. 어떤 장애물을 직면했을 때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뜻을 묻기 위해서 갑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전능하심을 믿는 자들만이 하나님을 향해서 간구하고 여쭙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지혜와 능력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 여쭙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견고하게 서는 사람을 보면, 내 지혜와 능력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은 도리어 그 신앙의 성장이 머무르고 후퇴하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개미지옥’이라 것이 있습니다. 모래밭에 깔때기 모양으로 파진 웅덩이를 일컫는 말인데, 이것은 개미를 잡아 먹는 명주잠자리의 애벌레인 개미귀신(antlion)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개미가 일단 개미지옥에 빠지게 되면 그곳에서 나오려고 경사진 모래를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올라 오려고 해도 밟은 모래가 밑으로 굴러 떨어져서 개미도 자꾸 구덩이로 밀려 납니다.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는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죽을 힘을 다해 애를 쓰다가 결국 개미귀신에게 잡혀 먹힙니다. 그런데 개미가 개미지옥에서 탈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나가던 사람이 그 개미를 끄집어 내주면 됩니다. 개미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 앞에 놓인 장애물을 넘어설 수 없지만, 더 강력한 힘이 도와 준다면 그 지옥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어떠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 여쭌다는 것은,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인간적인 교만을 내려 놓는 일이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그 장애물을 격파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으로 도와 주십니다. 다윗은 자신앞에 닥친 장애물들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 아룀으로 ‘바알브라심’의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과는 반대로 하나님께 여쭙지 않음으로 그 앞에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고 망한 왕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왕입니다. 사울왕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는데, 그것 또한 블레셋과의 싸움에 있습니다.. 사울이 블레셋과 싸울 길보아 전투를 앞뒀을 때, 사울은 블레셋의 군대를 보고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왕이 했던 일은 변장을 하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사울왕을 죽게 하는 결정적인 범죄가 됩니다. 역대상10:13-14에 보면,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사울은 하나님께 묻기보다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신접한 여인에게 죽은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고 부탁을 합니다. 사울왕은 신접한 여인을 찾고, 죽은 사무엘을 불러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물으려고 했지만, 정작 하나님께는 아뢰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고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 죄가 되어 사울은 죽음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다고 사울을 죽이시는 것이 너무 잔인하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그것은 사울의 불신앙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그의 불신앙의 자세가 죄가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늘 아뢰는 삶을 살았고, 그것이 ‘바알 브라심’의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던 비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는 방법은 여러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다윗은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질문을 하고 답을 얻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그렇게 손쉬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시편 18:6절에 보면 다윗이 그를 쫓던 모든 원수에서 구원함을 받은 이후에 과거를 돌아보면서 하는 고백입니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라고 했습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께 목놓아서 부르짖으면서 자신의 형편을 아뢰었습니다. 하나님께 아뢰는 형태가 조용한 중에 아뢰던지, 아니면 세상이 떠나가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던지, 아니면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 가운데 답을 얻던지 간에 그 방법과는 상관없이, 믿음의 장애물과 도전을 직면했을 때에 성도가 할 일은 하나님께 아뢰고 그 뜻을 구하는 일입니다. 3. 그리고 ‘바알 브라심’의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묻고 그 뜻을 아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말씀대로 담대하게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보다 앞서서 도와 주실 것을 믿고 장애물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블레셋이 일차 싸움에서 대패를 한 다음에 그대로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싸움이 같은 장소에서 일어납니다. 그 때에도 르바딤 골짜기에 가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말씀은 “하나님이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는 말씀입니다(24절).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 다윗과 이스라엘 군대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들보다 앞서서 나가시는 분이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다윗과 이스라엘 군사들은 여호와를 믿고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닥치는 여러가지 위기들과 문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으며, 그 뜻을 알았다고 한다면 이제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서 담대하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는 믿음의 장벽을 부수고 넘을 수 있도록, 앞서 가서 도와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것들이 여러분들의 믿음의 성장과 도약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물질적인 것입니까? 육신의 연약함이나 관계적인 어려움입니까? 가정의 문제로 인해서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한층 도약하기 위해서 맞서야 할 방해물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러한 장애물들을 주실 때에는 각자에게 믿음의 도약을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장애물과 문제를 격파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분에게 아뢰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여러가지 믿음의 장애물들과 위기가 올 때에 위축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믿음의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며 도약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수시로 장애물과 도전을 주시면서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신앙적인 장애물과 도전을 만날 때에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께 아뢰지 않는 것도 죄가 됩니다. 하나님 없어도 내 지혜와 능력으로 할 수 있다는 교만이 그 믿음을 병들게 하며, 망하게 합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구하고 간구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믿음이 성장하고 견고하게 섭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 앞에 놓인 믿음의 장애물과 도전들이 있습니까? 사울과 같이 나 자신에게 자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뢰는 것이 아니라,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아뢰고 믿음으로 행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도우시는 장애물을 격파하시는 ‘바알 브라심’의 하나님을 만나시고, 우리의 삶의 장애물을 격파하고, 더욱 견고한 믿음으로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 [[브라가 골짜기 축복(대하 20:1-30)]]. ...브라가(베라카..모든 이김/영광/영복 누림-감사/축복/찬양/경배/예배=송축) 기적의 축복은 합심기도, 말씀의 신뢰와 순종, 행동적 결단으로 이뤄진 일입니다. 기적은 주신 말씀에 전적 순종하여 행동적 결단할 때 맺히는 값진 열매입니다. 브라가 골짜기는 ‘송축의 골짜기’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유대 7대 왕인 여호사밧 때, 주변 연합국가의 침공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으로 놀라운 대승을 거두고 하나님을 송축하게 됩니다. 1. 브라가 골짜기 축복은 합심 기도의 산물입니다. 모압, 암몬, 마온 군대 등 연합군 침공의 비보를 들은 여호사밧 왕은 위기 상황에 직면했습니다(1-3). 여호사밧은 연합군을 대적할만한 군사적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오직 주만 바라보는 기도를 드렸습니다(12). 여호사밧 중심으로 유대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바라보고 전적 기도에 힘을 쏟았습니다. 하나님은 위기극복, 난국타개를 위해 오직 주만 바라보고 겸손히 금식하며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백성들에게 브라가 골짜기 축복을 하락하십니다. “사람이 일하면 사람이 일해야 되지만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라는 명언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톰슨(Francse Thompson)의 “기도는 성도의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무기이다”는 말처럼, 유대 민족은 힘써 기도함을 브라가 골짜기의 축복을 체험하였습니다. 특별히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마음과 몸이 하나된 거룩한 백성의 합심기도는 그 무엇도 대항할 수 없는 영광스런 힘이 존재한다”는 값진 말씀을 기억합시다. 2. 브라가 골짜기 축복은 말씀 신뢰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하나님의 사람 레위 지파 야하시엘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는 감동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왕과 백성들에게 남김없이 선포하였습니다. 왕과 백성은 그 말씀이 떨어질 때, 오직 그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였고, 그 말씀대로 전적 순종하였습니다. 레위 사람이 증거한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두려워 말라(15). 둘째,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15-17). 셋째, 나가 싸워라(16) 입니다. 침공한 연합군에게 맞대응할 능력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전적 신뢰하여 순복하였습니다. 그들은 상황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나 경험적 판단을 뛰어넘어 오직 말씀을 신뢰하고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받는 자세를 성경은 상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얼굴을 땅에 대하면서 말씀을 받았습니다(17).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말씀을 받았습니다(18). 찬송하면서 말씀을 받았습니다(19). 이처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는 위기를 극복하고 축복의 기적을 잉태하게 됩니다. 기적은 불가능한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신뢰의 문제입니다. 말씀에 신뢰할 때, 기적의 역사는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천상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대한 신뢰는 곧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입니다. 말씀에 대한 신뢰는 행복과 성공의 비결입니다. 또한 말씀에 대한 신뢰는 승리와 부요의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는 말씀처럼, 유대 백성은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므로 위기가 오히려 브라가 골짜기의 축복을 얻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3. 브라가 골짜기 축복은 행동 결단의 열매입니다. 브라가 골짜기 축복은 유대 백성들의 행동 신앙, 행동 결단의 산물입니다. 단지 기도하고 말씀 신뢰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도한 것을 믿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신뢰한 대로 전쟁에 임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받은 말씀을 믿고 담대히 전쟁에 나갔기에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전쟁에 임하는 자세는 탄복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임전자세를 참으로 대단하였습니다. 첫째,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났습니다(20). 둘째, 왕은 철저히 백성들을 격려하였습니다(20). 셋째로, 찬송하며 전진하였습니다(21-23). 이상한 전쟁입니다. 전쟁터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군대 앞에 찬양대가 서서 찬양하며 돌격합니다. 하나님의 용병술은 상식 범주를 넘어설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에는 인생 경험을 초월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도 십자가 지시기 전에 찬송하며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여리고 도성도 나팔소리와 고함소리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의 수금소리에 사울의 악신이 떠났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찬송소리에 옥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찬송 자체에 위력이 있습니다. 또한 찬송하며 적진으로 전진하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 기적을 창출하였습니다. 바운즈(E.M. Bounds)는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적 신뢰하고 순종하여 행동 개시를 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대 백성의 행동적 결단은 하나님의 대승을 보장받았습니다. 불가능한 정황을 의심치 않고 말씀에 순종한 행동적 결단으로 생각 밖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패망의 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적군을 완전히 섬멸하였습니다. 더욱이 사흘 동안 취할 만큼의 전리품을 얻는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모든 기적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의 산물입니다. 모든 축복은 행동하는 자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위기 시대에 성도들의 합심기도, 말씀 신뢰, 결단케 하신 바를 행동으로 옮김 통해 브라가 골짜기의 기적과 축복을 체험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