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20장
1차 전도여행(행13:1-14:28). 안디옥--셀루기아--살라미--바보--비시디아안디옥--이고니온--더베--루스드라/이고니온/비시디아안디옥--버가--앗달리아--안디옥..안디옥 : 이방 선교의 시발점, 바울과 바나바 파송. 마가 요한 동행 ==> 구브로(키프러스) : 바나바의 고향.살라미와 바보에서 복음 전함, 박수 엘라미를 얼마간 눈멀게 하고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을 개종 ==>버가 : 마가 요한 예루살렘로 귀환 ==>비시디아 안디옥 :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함. 유대인들의 박해로 이고니온으로 감. ==>이고니온 :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이 믿게되자 유대인들이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치려 하여 도망침 ==>루스드라 : 태어나면서 앉은 뱅이 된 사람을 고침으로 두 사도가 신으로 대접받음.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돌로 쳐서 성 밖에 버림 ==>더베 : 바울이 일어나 바나바와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을 제자 삼음 ==> 귀로 : 루스드라,이고니온,비시디아 안디옥에 다시 들려 위로와 격려. ==>버가 : 버가에서 전도 ==>앗달리아(안딸라) : 배를 타고 안디옥 교회로 귀환 ==>안디옥 : 도착 후 선교보고
2차전도여행(행15:36-18:22) 안디옥--다소--더베--루스드라--이고니온--비시디아안디옥--드로아--네압볼리--빌립보--데살로니가--베뢰아--아덴--겐그레아--에베소--가이사랴--예루살렘: (마가를 데리고 가자는 바나바와 의견이 엇갈려, 실라와 함께 팀을 이뤄) 안디옥-->더베-->루스드라(디모데 합류)-->드로아(누가 합류)-->빌립보-->데살로니가-->베뢰아-->아덴, 아덴에서의 실패를 거쳐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서 생업 함께하며 회당에서 강론, 마게도냐에서 내려온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1년6개월을 머물면서 (회당 옆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 강론하고서 갈리오 총독 부임시점에 유대인들의 소동으로 에베소로 이동하여 잠깐 머문 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서 함께 머물게 하고서는 선편으로 가이사랴-->예루살렘 방문-->안디옥으로 복귀 3차전도여행(행18:23-21:17) 안디옥--갈라디아/브루기아--에베소--마게도니아/헬라--드로아--밀레도--두로/가이사랴/예루살렘 : 브루기아 갈라디아를 거쳐 에베소에 도착, [요한의 세례만 아볼로에게서 배운]성도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세례 베풀고 + 안수할 때 성령 강림의 역사를 경험케 됨...3개월간 유대인 회당-->2년간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말씀 강론 : 에베소에서의 소동으로 마게도냐와 헬라로 이동..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와 헬라(그리스)의 지역 교회를 방문하면서 저들의 신앙을 격려하며 석달 동안 있었다. 이후 바울은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고 다시 아시아로 가고자 했다. 이때 소바너, 아리스다고, 가이오, 디모데, 두기고, 드로비모 등 바울의 동역자들이 더 늘었다. 바울은 저들에게 먼저 아시아의 드로아로 건너가게 했고 바울은 실라와 누가와 함께 무교절 후에 드로아로 배를 타고 가서 (역풍으로 5일간 걸려 드로아에 도착), 저들과 합류하였다.(7일간 머물러 여독 추스림....그 와중에 드로아에서 유두고의 소생 기적이 일어남) -->앗소-->밀레도에 이르러 에베소의 장로들을 오게하여 고별설교, 두로--->가이사랴-->예루살렘에 도착.
4차 전도여행 (행21장~28장) : 예루살렘--가이사랴--시돈--미라--니도스--살모네--미항--멜리데--수라쿠사--레기온--보디올--로마
[바울 서신, 저작 연대 및 순서] 1살전//2살후 ---50년---고린도---데살로니가 교회 --- 고린도 체류기간(약1년반, 행18) 3 고전---55년---에베소---고린도교회---에베소 체류 말기 4 고후---55년 ---마게도냐 ---고린도 교회---전서 보낸 후 수개월만에. 5.로마서--57, 58년 ---고린도 ---로마 교회 ---3차 전도여행 중 6.갈라디아--56년 ---마게도냐 --갈라디아 교회 --상동 7.골-8엡-9빌-10몬 --62년 ---로마 옥중 --골로새/에베소/빌립보교회, 빌레몬 : 1차 투옥 중 11 딤전 --63년 --마게도냐 --디모데--1차 석방후 2차 투옥 전 12 디도--66년 --마게도냐, 니가볼리(?) --디도 --2차 투옥 기간 중 13 딤후 --66년 --로마 옥중 --디모데 --2차 투옥 기간 중
===바울이 마게도냐와 헬라를 다니다 제자:: 부르신 분께 그분 뜻에 자발적으로 묶여 하나되어 붙어 있는자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파라칼레오: 상호간에 성령-파라클레토스(함께 하나 되신 Q)- 인해 각자를 옆에 불러 마음 눈 마주보며 손잡고 경청-위로-격려-안아주심으로써 서게함, 이로써 함께 난관 돌파/파쇄/통과함)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누가 합류] 행16:10, 2차전도여행때, 루스드라에서는 디모데가, 드로아에서부터는 누가가 바울과 합류한 다음, 누가는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낫게 한 사건 직후 헤어졌다가 3차 여행때 마게도냐(빌립보)에서 다시 합류했다고 여겨지는 서술임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역풍 인한 풍랑 심했음!!...예전에 드로아-->빌립보는 이틀만에 도착했었음)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여독 풀기 위해!!]이레를 머무니라 ===유두고를 살리다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홰)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노예/품팔이꾼으로서 하루 하루 살아가되 말씀 사모하여 창틀에 앉아 졸다가 떨어져 죽은 그 유두고를!! (유두고보다 더 비천한 죄인 괴수인 자기를 껴안고 살리신) 주님의 공감/동감하는 마음으로 꼭 껴안아 하나됨 통해 넘치는 주님 생명 불어넣어줌으로써!!(**피투성이라도 주 안에서 살아만 있으라!! 주 이름으로 명령함으로써!!. 엘리야의 사르밧과부 아들 살릴때,, 엘리사의 수넴여인 아들 살릴 때처럼!!)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아가게 함!!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 항해하다 13. ○[동역자된]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드로아에서 앗소까지.32km거리.1-2일..오직 주님과 함께 독대하며!! 성령의 작정하심을 여쭈며 환난과 결박 알려주심에도 그렇게 순종하기로 결단하여 맡겨드리며 끝까지 걷기]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스토아 철학자, 클레안데의 고향)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7대현자중 1인 피타코스 고향)로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호머의 고향)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이솝/피타고라스 고향)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탈레스 고향)에 이르니라..하루씩 방문, 총 5일 걸렸음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주 성령의 심정따라)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다 [435.나의영원하신기업]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밀레도 북쪽40km 지점)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프레스뷔테로스) ..손위의 order, 장로 elder, presbyter.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프레스뷔테로스는 프레스뷔테스의 비교급이며 호머 시대에 나타난다. (a) 이 단어(군)는 처음에는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더 늙은, 손위의'(older)란 뜻을 나타내었다. 예를 들면 '손위의 아들', '젊은 세대에 비해 늙은 세대'이다. 그렇지만 비교급의 의미가 약화되어 단순히 '늙은, 노인'이란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그 후에 '보다 크게 중요한' of greater importance(참조: '인간적인 것들'과 비교되는 '신의 것' things divine, Hdt. 5, 63)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결국 이 단어는 '더 존경 받는'(more honoured)이란 의미가 되었다. 사회 질서에 있어서 노인들은 그들의 경험과 지혜 때문에 존경과 권위를 부여 받았다(참조: Arist., Ethica Eudemia. 1251a 23, '현명한 노인들'). 힘없고, 약하며 또는 구태의연하다고 하여 업신여기는 기록은 전혀 없다. (b) 또한 프레스뷔테로스는 국가 관리나 종교 지도자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스파르타에서 프레스뷔테로스는 집정관들의 협의회 의장에게 주어진 명칭이다. 그렇지만 애굽에서는 복수 프레스뷔테로이가 여러 종류의 위원회나 협의의 위원들에 대하여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조합(P.Teb. 13, 5)이나 상인 단체 또한 종교 조직체의 구성원들에 대하여 적용되었다. 지방 평의회에서 프레스뷔테로스는 매해 지방 평의회에서 선발되어 사법과 행정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대표자들의 호칭으로 나타난다. 그 수는 2, 3명, 10명 등 다양하고 임기는 일년이다. 주요한 것은 프레스뷔테로이는 '큰 신' Socnopaios의 제사장들의 실행위원들(5, 6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에서 이 단어는 제도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고 젊은이와 대조되는 의미로서의 연장자라는 의미를 유지하였다(참조: C. Bornkamm; L. Coenen). 2. 70인역본의 용법. 프레스뷔테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30회 나오며, 주로 자켄 등 8개의 히브리 단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a) 프레스뷔테로스는 '손위의, 연장자, 늙은, 나이 많은'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자켄(원래 '수염난'이란 뜻으로 법적 성년에 도달한 사람이란 뜻이었다가 후에 노인이란 뜻이 되었다)의 역어로 창 18:11과 그 밖의 곳에서 '나이 든' 것이나 '늙은' 것, '노인'(신 28:50)을 나타내며(창 18:11; 창 19:4 이하 등), 베키라(큰 딸, 창 19:31 이하), 베코르(맏이의, 욥 1:13; 욥 1:18), 야쉬쉬(늙은, 나이 많은, 욥 32:6), 야셰쉬(나이 든, 대하 36:17)의 역어로 사용되어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 (b) 프레스뷔테로스는 한 부족, 가문, 백성 또는 이주민 사회 내에 속한 남자들의 한 집단으로서의 장로, 장들(대부분 복수로 나오나 단수로도 드물게 나온다)을 의미한다. 이 경우 주로 히브리어 자켄, 에스라서에는 시브(장로)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옛 역사에 있어서 성읍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장로로 불리웠다. 이러한 장로들은 이스라엘 민족 이외의 민족들 사이에도 있었다(창 50:7; 참조: 민 22:7). ① 장로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에 나타난다. 그들은 대가족들 혹은 씨족들의 우두머리들로서 백성이라는 큰 단위들의 지도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본래의 관계성을 상실하고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인물과 더불어, 또는 그 휘하에서 국가 전체의 대표자들로 나타난다. 모세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결심을 장로들에게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장로들은 모세의 바로 궁전에서의 탄원에 대한 증인이 된 것이다(출 3:16; 출 3:18; 출 4:29; 게루시아). 장로들은 유월절을 지도하였다(출 12:21; 게루시아). 그들은 호렙산에서 샘물의 기적을 보았다(출 17:5). 그들은 여리고의 잔치에도 참여했다(출 18:13). 하나님의 시내산 언약은 그들과 맺어졌다("백성" 출 19:7 이하). 그들은 다단과 아비람의 처벌에 대한 증인이었다(민 16:25). 이 "장로"라는 호칭은 모세가 대표자들의 대표단을 구성하기 위해 두번씩 "이스라엘의 장로들" 중에서 70인을 뽑은 사실에서 명백하게 나타나는 바와 같이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이 장로들은 시내에서 언약이 비준된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며(출 24:1), 모세의 짐을 나눠지도록 하나님에 의해 임명되었다(민 11:16-17; 민 11:24-25). 그들은 부분적으로 모세의 명령을 받음으로써 권위를 인정 받았다. 랍비들은 후에 출 24장과 민 11장을 크게 강조했다. 후자의 구절들이 산헤드린을 위한 표본을 형성했다. ② 사사들과 군주 시대에 장로들은 정치적, 군사적, 법적 문제들에 있어서 결정을 내리던 지방 자치 기구들의 지도급 인사들이었다(수 20:4; 삼상 16:4; 삿 11:5 이하; 룻 4:2 이하). 전승에 의하면 지역 내에서의 사법과 정치적 군사적인 결정을 하는 장로들의 책임은 이스라엘 지역에서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기브온(수 9:11), 숙곳(삿 8:14; 삿 8:16)과 같은 지방 지역들에서까지도 적용되었다. 이 모든 지역들에서는 귀족적이며 족장적이며 사회적인 조직이 똑같이 발견된다. 한편 "장로"라는 칭호는 계속 개별적인 부족들(삼하 19:11)과 온 이스라엘의 통치 계급에 적용된다. 장로들은 지방 또는 부족에서 공통된 결정들을 위해 모였다(삼상 30:26 등). 장로들은 블레셋을 대적하여 법궤를 보낼 것을 결정한다(삼상 4:3). 군주정치의 도입을 요구한 자들도 바로 그들이었다(삼상 8:4 이하). 왕들이 장로들의 뜻에 얼마나 의존했는가 하는 것은 사무엘에 대한 사울의 애원(삼상 15:30)과 다윗의 즉위(삼하 3:17; 삼하 5:3), 이에 대한 압살롬의 도전(삼하 17:4; 삼하 17:15; 삼하 19:12), 르호보암 시대에 왕의 옹립자로서 장로들의 역할(왕상 12:6 이하; 대하 10:6 이하), 아합의 위기 때에 장로들과의 협의와 그들을 조종하려고 하는 아합의 시도(왕상 20:7 이하; 왕상 21:8; 왕상 21:11) 등에서 증명된다. 마침내 장로들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에 부족과 지파들의 우두머리들과 함께 모든 백성을 대표하는 자로 나타난다(왕상 8장; 대하 5장). 군주 정치에 대한 종종 음모적인 성향까지 나타내는 그들의 비판적인 태도는 의심할 바 없이 왕 중심의 행정권 형성과 왕가의 권력 성장으로 인하여 제기되는 자신들의 영향력에 대한 위협 때문이었다. (c) 포로 상태에서(렘 29:1)와 모국에서(겔 8:1 이하) 모든 유대인 사회의 수호자이며 대표자로 다시 한번 나타나는 자들이 바로 장로들이었다. 렘 26:17에서 지방의 장로들은 예레미야를 위하여 변호했지만 예루살렘의 대표적 장로들은 우상 숭배에 참예하고 있었다(겔 6:1). 포로 시대에 장로들은 제한적 자치 기구 내에서 주요한 지도자들로서 다시 나타난다. 이제는 가문들이 더 중요하며 귀족 정치도 발전했다. 장로들은 그들이 속한 가문들의 특별한 지위를 힘입어 권세를 누렸다. 따라서 새로운 용어들, 예를 들면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느헤미야 같은 통치자들은 이 신흥 귀족들에게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가문의 우두머리들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시브(참조: 스 6:14, 한글개역 "장로")는 70인역본에서 역시 프레스뷔테로스로 번역되었다. 스10:14을 볼 때 신명기에 나오는 장로 계급의 계승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이곳의 강조점은 귀족적 상위 계급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느 5:17에 의하면 통치자 느헤미야의 식탁에는 매일 150명의 명사들이 모여 있었다. 이런 추세는 예루살렘에서 주요한 가문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되고 중앙 집권적 회합으로 활동하는 일종의 의회의 확립을 향한 것이었다. (d) 주전 3세기 말경 또는 2세기 초엽, 셀루키드 왕 안티오쿠스 3세의 통치 시에 70인(또는 71인)으로 이루어가는 장로 회의, 곧 산헤드린이 존재하였다는 증거가 있다(참조: Josephus, Ant., 12, 2, 5 이하). 헬라어 게루시아(gerousia)와 로마어 세나투스(senatus)에서 유추해 보면, 처음에 이 산헤드린의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프레스뷔테로이로 불리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점점 예루살렘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을 평회원들을 제사장 가문 출신 및 서기관 계급 출신(주전 70년 이후)들과 구별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e) 예루살렘의 멸망 후(주후 70년)에는 장로들의 회의는 얌니아(Jamnia)의 산헤드린이 장악했는데 정치적 권세는 없고 오직 사법적 권세에만 제한되었다. 그것은 오직 서기관들로 구성되었다. 결과적으로 "장로"라는 술어는 뛰어난 신학자를 나타내는 존칭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 술어는 평의회의 회원 자격은 아니지만 적어도 성직을 수임하였음을 암시한다(참조: San. 11:1-4). 이 때에 지역의 공동 사회의 오래된 조직으로 존속하였던 유대 회당의 회당장들도 역시 프레스뷔테로이로 불리웠다(참조: 베둘리아[Bethulis]의 장로들, Jud. 6:16, 21). 그들은 징계의 권력을 수반하여 전통 질서를 고수하는 지도권과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눅 7:3에 추가하여 이에 대한 비문의 증거가 있다. 주후 약 2세기경부터 이 단어는 유대 사회에서 그 기능적 의미를 잃고 흩어진 유대인들 가운데에서 주로 헬라어들인 다른 표현들로 대치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 단어는 귀족 가문을 나타내는 존칭으로 종종 언급된다. (f) 쿰란 공동 사회에서는 "장로"라는 호칭이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특별한 직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 두루마리(1QM 13:1)에는 전쟁의 서열에 대한 묘사 가운데에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나란히 장로들의 이름이 나온다. 아마 이곳에서는 가문들의 우두머리들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러나 다메섹 문서(CD 9;4)와 공동체 규정(1QS 6:8)에는 장로들이 제사장 다음 서열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장로들은 교육과 재판의 결정들에 대한 책임들, 곧 율법이 요구하는 올바른 행동에 대한 지식을 공급함에 있어서 제사장 다음이었던 것이다. 3. 신약성경의 용법. 프레스뷔테로스는 신약성경에서 66회 나오며, 공관복음에 24회, 요한복음에 1회, 사도행전에 17회, 목회 서신에 5회, 히브리서에 1회, 공동 서신에 5회, 요한계시록에 12회 사용되었다. (a) 유대인의 장로들. (1) 공관복음에서 유대 장로들은 수난에 대한 예언과 수난 기사들에만 나오고 있으며 이 언급은 특히 예루살렘의 귀족 가문 출신의 공회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공관복음에서 장로들은 제사장 귀족 계급인 "대제사장" 다음에 거의 정규적으로 나열되어 그들 공회원들에게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상호의존 관계임을 보여준다. 이들이 대공회에 속한 집단들의 목록에서 맨처음으로 나오는 유일한 곳은 수난에 대한 첫번째 예언 대목이다(막 8:31). 이것은 깊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의 장로라는 호칭은 그들을 율법의 대표자로 특징 지우는 것이며, 이 율법 아래에서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난의 사건들에 대한 기록에서 실제적인 행위자이며 선동자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공회의 제사장 회원들이었다(참조: L. Coenen). (2) 산헤드린의 구성원이되 성직자가 아닌 자로서 '장로들' elders이라고 불리우는 자들은 신학적으로 사두개파의 대제사장 계급의 모범을 따르는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다(행 23:1-10, 행 23:14).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여기에 차별을 두지만 예수님의 재판에서 그들이 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한다. ① 무엇보다도 마태는 예수님에 대한 재판에서 대제사장 뿐 아니라 '장로들'까지도 유대인 관계자로 언급한다(마 21:23; 마 26:3; 마 26:47; 마 27:1; 마 27:3; 마 27:12; 마 27:20; 마 28:12). 마태는 최초의 수난 예언(마 16:21)에서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희롱하는 곳에서만이(마 27:41) 그들과 함께 서기관들을 역시 언급한다. ② 마가와 누가의 경우에는 세 무리는 수난 예언에서 언급될 뿐만 아니라(막 8:31; 눅 9:22) 권세에 관한 질문과 연관하여서도(막 11:27; 눅 20:1) 언급한다. 그러나 형을 선고할 때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만이 언급되는 반면 예수님을 체포한 자들은 세 무리 모두에 의해 보냄 받는다(막 14:43). 눅 22:52에서 예수님은 그를 잡으로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마태에 따르면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와 함께 모여 있었다(마 26:57; 유사하게 막 14:43; 막 15:1). 눅 22:54도 장로들이 대제사장과 함께 있었음을 전제한다. ③ 산헤드린의 일원인 장로들은 또한 예루살렘에서의 사도들의 박해에도 한 역할을 한다(행 4:5; 행 4:8; 행 4:23). 행 6:12에 따르면 헬라파 유대인들은 스데반에 맞서서 백성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을 선동하였다. 바울의 생명을 취하고자 40인의 선동자들이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할 준비를 하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움을 청했다(행 23:14). 아나니아는 한 대변자와 어떤 장로들과 함께 총독 벨릭스에게 내려와서 바울을 고소하였다(행 24:1).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새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에게 바울에 대한 재판을 요청하였다(행 25:15). (3) 눅 7:3에 따르면 가버나움의 백부장이 예수님께 유대 회당의 장로들을 보내어 자기 종을 고쳐주기를 요청하였다. (4) 제의적 청결 및 부정에 대한 논쟁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위반한 것으로 언급된다. 이것은 그리스도 이전 세기에 모세의 토라를 결의론적으로 발전시킨 바리새파 서기관들(신학적 선조들)을 언급하는 것이다(마 15:2; 막 7:3; 막 7:5). (4) 히 11:12의 장로들은 앞서간 자들의 믿음의 길에 대해 말하는 본 장에서 언급된 자들이며 옛 언약의 믿음의 증인들이며 따라서 지나간 세대의 일원들이다. 이들 지나간 믿음의 증인들의 모범이 히 11:3 이하에 열거된다. (b) 그리스도교의 장로들. (1) 누가는 최초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을 사도들 다음 가는 장로들로 묘사한다. 이 그룹은 누가에게 아마도 유대교의 산헤드린과 유사하거나 사도행전의 이방인 그리스도교 독자들에게 헬라 도시의 게루시아(Gerousia: 장로회의)와 유사할 것이다. 행 11:30에서 이 지도적인 그룹은 예루살렘을 위해 안디옥에서 모금한 연보를 수령한다. 행 15:2; 행 15:4: 행 15:6; 행 15:22에 의하면 비록 주도적인 역할이 사도들 자신에게 그대로 남아 있긴 하지만(베드로가 화자이다) 장로들은 사도회의에 참여한다. 사도의 규례에 관한 본문(행 15:23)과 더욱이 그것을 언급한 곳(행 16:4)에서 장로들은 사도들 뒤에 언급된다. 행 15:41에 의하면 바울과 실라가 수리아의 길리기아 교회에 전달한 엔톨라이 톤 프레스뷔테론(장로들의 교령)은 사도의 교령이다(행 15:23 이하). 행 16:4 이후에는 사도들이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누가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한 장로들을 예루살렘 교회의 새 지도자들로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일종의 권위를 지닌 위원으로 소개하는데, 그들의 우두머리는 야고보이다(행 21:18). (2) 누가는 또한 장로들의 모임을 바울이 세운 이방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도자들로 언급하는데, 저들은 눅 7:3의 회당 공동체의 장로들과 유사하다. 이 그리스도교 장로들은 각 교회에서 교회의 설립자들에 의해 기도와 금식으로 임명되었다(행 14:23). 에베소에서도 장로 회의가 교회를 이끌며(행 20:17), 그것의 임무는 목자들의 직무에 비교된다(행 20:28). (3) 똑같은 제도가 목회 서신과 공동 서신에서 발견된다. 딛 1:5에 따르면 사도의 생도 디도는 바울 사도의 명령으로 그레데에 있는 공동체에 장로들을 세운다(이 용어는 딛 1:7의 에피스코포스, 감독과 교체 가능하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함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의 특징이다(딤전 5:17). 장로들은 성급한 고소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딤전 5:19). 벧전 5:1 이하에서 기자는 동료 장로(쉼프레스뷔테로스)로서 다른 장로들을 권면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목자직의 품행에 관하여 훈계한다(참조: 행 20:28). 약 5:14은 장로 회의의 존재를 암시하는데, 병자를 위하여 돌보도록 장로들을 청할 수 있다. (4) 프레스뷔테로스는 요한이서(1절)와 요한삼서(1절)의 발송자로 독특한 지위를 자치한다. 비록 그의 신원은 알 수 없으나 지방 장로 회의의 일원이라든가 우두머리는 아닌 것 같다. 프레스뷔테로스는 파피아스(Papias)가 말하는 사도 전통을 간직하여 전달하는 자를 가리키는 영예의 명칭인 것 같다(유세비우스, HE ⅲ. 39. 3 이하; 참조: Boronkamm 670; H. von Campenhausen). (c) 요한계시록에서 24장로들은 하늘의 존재로 묘사된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있으며, 만국에서 온 수많은 순교자들로 기술되어 있다(계 7:9-17).계 5:5과 계 7:13을 제외하고 그들은 대표자들이며(계 4:4; 계 7:11; 계 14:3), 제의적 예배를 대표한다(계 4:10; 계 5:6; 계 5:8; 계 5:11; 계 5:14; 계 11:16; 계 19:4). 프레스뷔테로이는 요한계시록의 환상들 중에 12회 언급되는데, 항상 24인(2X12; 제일 처음으로는 계 4:4 이하에 언급, 계 7:11을 참조)이 한 그룹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흰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앉아 있는데, 단지 네 생물이 이들과 보좌 사이에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이들은 고귀한 천국 직분을 맡은 자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활동들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며(계 4:10 이하; 계 5:6 이하; 계 11:16 이하) 또한 이 찬양들을 부를 때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다(계 14:3). 가끔 그들 중의 하나가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 앞으로 나온다(계 5:5; 계 7:13; 참조: 마 16:15 이하에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증거). 이 환상들이 지상 교회에서의 장로들의 직분에 대응하는 천국 직분이며 또한 이 직분을 보다 높은 지위로 올린다는 의미를 시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시사를 증명하기는 불가능하다. 24라는 숫자와 보좌 주위에 있는 무리는 천문학적 개념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장로들이 천국에 속하고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 이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 형상과 숫자는 유대 제사장들(대하 24:7 이하), 또는 성전 찬양대(대하 25:9 이하)를 가리키는 24개 조의 지도자들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후기 유대교에서 "장로들"로 칭함을 받았다(참조: E. Lohmeyer, 계 4:4에 대한 HNT 16, A. Satake, "Gemeindeordnung", WMANT XI, 147). 이들은 거룩한 성의 문과 기초석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열 두 족장들과 열 두 사도들을 대표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계 21:12 이하) 또는 이 개념들과 다른 개념들의 연합일지도 모른다(참조: G. B. Caird, 요한계시록 주석, 63 이하). (d) 마지막으로 프레스뷔테로스는 단순히 연장자에게 사용되기도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책망을 해서는 아니되며, 오히려 공손한 태도로 권면해야 한다(딤전 5:1; 딤전 5:2; 참조: 벧전 5:5). 베드로는 오순절 기도에서 욜 3:1(70인역본)을 인용하여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고 말한다. 요 8:9은 산헤드린의 장로들이 아니라 "나이 많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간음한 여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예수님께 데려와졌기 때문이다(요 8:3; 참조: R. Schnackenburg. John). 눅 15:25에서 탕자의 형은 '나이 먹은' older(호 휘오스 프레스뷔테로스)으로 기술된다.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악한 꾀, 뱀이 하와를 꾀었던 것처럼!! --"Q은... 동성애자까지도 사랑한다 말씀하시지 않았던가?....그런지 안그런지 한번. 시험해 보면 어때??", 여기에 빠져들지 않아야 할지니!!--"주 보시기에 동성애는 분명히 죄이기에, 그 죄 범한 그 상태로는 "전존재 십자가에 못박히는 심정으로 참되게 회개하여 주께 돌이키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영원한 죽음밖에 없음을 분명히 지적하는 것이 가장 큰 사랑!!, =회개에 이르게 하는 복음은 근본적으로 말씀의 광명한 빛 가운데 드러냄인 바!! 쓴소리임= 참 인권을 위한다 함은 동성애는 마땅히 멸절에 이르는 죄라 하시기에!! 주 보시기에 "참 인권"이란 생명 구원과 보존-보호 위함인 바, 사탄적 우상인 인본주의에 속아서는 안되며, 살아계신 창조주 보시기에 "인권 보호"의 절대적 참 정의를 옳게 전해야 함!!-- 성경이 말하는 바, 동성애가 죄임을 깨닫게 하여 참 회개에 이르도록 해야 Q께로 돌이킴 인한 구원에 이르게 됨)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둘류오) 종[둘로스]이 되다, 예속되다, 섬기다. 복종하다] 것과 .......주님은 "일차적 또는 이차적" 고자라도, "동성애의 죄를 범한 자"라도!! " 그 Q께 반역한 사탄마귀 체계인 마귀의 종노릇하는 타락한 세상의 오도 되고 미혹/가스라이팅 받아 ==> "내 인생 내것, 마음대로 먹고 놀고 대충 편히 살다 내 맘 내킬 때 그냥 자살할거야"하며 살도록 = 멸망 길 가도록 !! 그대를 사로잡아 포로/중독/멸절에 빠져들게 하는바 그 사기/기만/미혹/허망/멸절당함에 이르게 하는 본질적 참혹성을 참되게 깨닫고!! 지난날을 애통함으로 회개하고 주께 돌이키면" !!! 거듭난 참 맏는 자녀로 여겨 당신의 새 생명 삶과 더불어 영적 기업까지 아낌 없이 차별 없이 베풀어 주고 계심!!....[이사야 56장 1-7.. ===여호와께 연합한 사람 (( 무릇 모든 죄 범함, 주께 범한 죄란 대죄-소죄 구분 없이!! 주 보시기에는 하나 하나 동일한 무게로 ((그대를 그토록 사랑하는, 그대의 도드이신 주님)) 그 주님 마음 아프게 하는 바 됨을 참되게!! 알아야 하리라.....심지어 동성애-살인-도적질-사기라도...이 모든 죄 하나 하나마다 (세상 인식과는 달리!!) 같은 정도로 평가하고 여기시는 바 사탄마귀의 기만/속임의 가스라이팅에 빠져 자기자신 매몰함을 선택했던 지난 날을 아파할지니 "주님여,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허비하며 살 수 없습니다, 주님여!! 주 안에서 나의 진정한 데스티니--주님의 반쪽으로 살게 하소서" 외치며!!, 진정한 회개/참회 거쳐 주 이름 부르며 주께로 돌이켜 JC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자마다에게 [지금, 바로 여기에서부터!!, 그리고] 주님의 성산에서조차도 기업(상급...지고지선-지복직관- 영생의 주님 누림) 주시겠다 하고 계심!!..["성적 자기결정권" 행사 라는 허울에 빠져들어, 수술하여 성기를 제거하거나 만들었음을 부끄러이 여기는가??, 초긍정적으로, 그것조차 구원의 표징인 그대의 십자가 상흔으로 여길 수는 없을까??.. 그대의 몸 손상시켰다 해도!!, 주 오시면 부활의 몸 주시리니 그대가 원한다면! 그 흔적조차도 없애 주시지리라]....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3.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5.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6.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8.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 "너는 쓰레기 같이 홀로 버려진 바, 니 인생은 니것이니, 마음껏 흥청망청 제멋대로 살면서, 결혼도 하지말고 너 혼자 끼리끼리 잘 먹고 잘 살다가 죽고싶은 때 칵 죽어버려라"하며 인류 멸망에 이르게 하는 사탄마귀의 악한 꾀의 결과는 속임기만허망멸절뿐!! ***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성령의 제자!!..(마치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듯이!!..대다수는 듣지 않을 것이나..그래도 깨닫고 경청할 바, 마음의 눈과 귀 열린, 남은자의 구원 위해 전파할 소명 받고]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주께서 사로잡으신 바 그것을 사로잡고자 달려감]과 주 예수께 받은 [온 인류 구원....내 죄를 매일 보며 회개함 통해!! 예배/경배 회복으로 감당할 바] 사명(=디아코니아..[섬김]..수종듦/음식 대접...사랑의 봉사 수행(각자마다 맡은 각양 은사/직분 그대로, 그 위치에서!!, 실지로 행동하되, 말씀 그대로 깨달은 바 적용-->간증-->적용!!...은혜의 복음 전파와 그리스도의 몸 돌봄/양육/공급/섬김.., 예언-섬김-가르침-위로-구제-다스림-긍휼) 곧 [예수로 섬김으로써]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주님의 경륜 가운데!! 흉년들어 겸손해진 바, 생명 열매 풍성히 맺음의 빚 진 이방인교회들의 감사-구제 연보 전달이 그토록 필요한 (결코 마음 열지 않는 ) 땅끝 선교지!! 예루살렘 교회를 , 선교 보고를 통해 깨어나게 함 + 바로 거기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복음 증거자 죄수 신분으로서 로마 방문에로 연결하심으로써 복음 전도여행을 순교로]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후4:5..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에베소교회는 아시아지역 많은 교회의 모체 교회 역할 중이었고, 에베소교회/두란노서원에서 양육-훈련받고 파송된 이들이 교회 지도자가 되고 있었음 전제할 것..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 @@프로세코) 주의하다, 전념하다. 동사 프로세코(Aeschyl., Hdt. 이래)는 프로스(prov", 4314)와 에코(e[cw, 2192: 가지다, 쥐다, 소유하다)에서 유래했으며, (a) '~으로 가져오다, 가까이 가져오다'(Hdt. 이래), '배를 육지에 대다' 그리고 독립적으로, '기항하다', (b) ① '~에 마음을 돌리다, 주의[유의]하다'(Arstph., Plat., Dem., Polyb; 욥 7:17): 행 8:6; 행 16:14; 히 2:1; 벧후 1:19, '돌보다, 부양하다': 행 20:38. ② '자신에게 주의하다' 즉 '스스로 조심하다'(70인역본에서 '자신을 경계하다' 즉 '조심[주의]하다', 창 24:6; 출 10:28; 신 4:9; 신 6:12 기타): 눅 17:3; 행 5:35. ③ 어떤 사물에 대해 '경계, 주의[조심]하다': 눅 12:1. ④ 또한 여격 없이: 마 7:15; 마 10:17; 마 16:6; 마 16:11 이하; 눅 20:46; 마 6:1; 눅 21:34. (c) ① '~에 마음을 쏟다, ~에 애착하다, 붙어 다니다, ~을 붙잡다, 고수하다'(어떤 사물이나 인격체에): 인격체의 여격과 함께, '아무개에게', 행 8:10 이하; 딤전 4:1; 사물의 여격과 함께, 딤전 1:4; 딛 1:14. ② '~에 몰두하다, ~에 빠지다, ~을 탐닉하다': 딤전 3:8. ③ '~에 생각과 노력을 쏟다, 전념[열중]하다': 딤전 4:13; 히 7:13. ....... @@에피스코포스) 감독자, 감독. 1.고전 헬라어 문헌 (a) 일반 헬라어에서 에피스코포스는 '감독자 overseer, 감시인 watcher'을 의미하며, 에피+스코보스 :: 관심 가지고 방문하여, 직접 살펴보고 만지고 확인하고 돌봄(방문하여 위로-격려-공감-안아줌) ① '보호자protector, 후원자patron', (c) 공직의 한 명칭으로서 일리어드 10,38과 24,729(Hector)에서 에피스코포스는 국가에 책임있는 공직자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아테네인들은 국가 관리, 예를들면 아데네인들에 의해 아테네 연맹의 다른 도시들에 보냄 받은 감독자들에 대해 에피스코포이를 사용하였다. 에피스코포이는 또한 비밀 경찰이나 사법적 기능을 지닌 관리나 그리고 한 경우에는 조폐소의 관리와 같은, 다른 나라의 비슷한 공직자들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에피스코포이는 지방 관리나 단체들의 관리들에 대해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만, 정확한 책임은 분명하지 않고 심지어 종교적인 연관이 있는 경우에도, 예를들면 로데스에 있는 성소를 위한 어떤 단체의 에피스코포이는 제의적 책임을 지니지 않고 기금을 관리하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업무를 행하였다. 로마의 사제(pontiff)는 베스타의 처녀들을 감독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한에서만 에피스코포이이다. 한가지 흥미있는 용법은 공공 건물의 건축과 관련하여 수리아에서 발견된다. 여기에서 에피스코페를 가진 자들은 건축자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며 아마도 자금을 관리하는 감독자들이었다. 수로 공사와 성전 건축과 연관된 비슷한 예들이 있다. (d) 에피스코포이는 감독자, 감시인, 정찰병으로서의 사람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시체를 지킴, 배나 사업이나 시장이나 건물을 감독하는 것, 젊은 부부를 돌보는 것, 집을 다스리는 것 등 이다. 이와 관련된 다른 의미들로는 '보호자, 탐정, 밀정, 정찰병'이 있다. 2. 70인역본 및 유대교의 용법 에피스코포스는 70인 역본에서 14회 나오며, 히브리어 파키드(감독, 통치자, 관리)의 역어로 9회 사용되었다. (a) 에피스코포스는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만물을 감찰하시는 절대적인 에피스코포스이시다. 70인 역본은 욥 20:29에서 엘을 에피스코포스로 번역하였다. 하나님을 에피스코포스로 일컬은 것은 하나님의 사법적인 기능을 분명히 언급하는 것이다. 필로는 선한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느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숨겨질 수 없다는 동일한 사상을 지닌다. 특별히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보신다(참조: 지혜서 1:6; 행 1:24). (b) 에피스코포스는 70인 역본에서 분명하게 지칭된 직책이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감독, 십장'(overseer)에 대해 사용되었다. 특정한 경우에 (삿 9:28; 민 31:14) 권세의 지위에 있는 특별한 사람들, 관리들이 에피스코포스로 나타난다. 그러나 때때로 그 단어는 이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이 능력의 행사 자체를 나타내기도 한다(사 60:17). 그리고 에피스코포스는 국고 감독자들(대하 34:12,17), 제사장과 레위인들(느 11:9,14,22), 성전의 관리들(왕하 11:l8)에 대하여 시용되었다. 민 4:16에서 이 단어는 성전 직무(분)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 필로는 '영혼을 아는 자'에 대해 이 단어를 사용하고, 요세푸스는 '도덕의 수호자'에 대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 (c) 다메섹 규정 법칙 (The Damascus Rule)과 쿰란 공동체 규정(The Community Rule of Qumran, 예를 들어 lQS 6:12, 20)에 나오는 메바케르(그 공동체의 '감독자')는 후기의 감독(bishop) 직분에 대한 예시를 찾아 볼 수 있다. 메바케르는 아마 파키드와 동일한 직책이었던 것같다(IQS 6:14). 이 메바케르는 율법을 알고 있는 자였으나 제사장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진영'(the camp)과 전체 구성원에 대한 모든 중요한 결정권이 맡겨졌다. 그는 분명히 군주체제적인 특징들을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자를 그 공동체에 받아들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징벌을 가할 수 있었다. 그는 재판관들과 함께 그 공동체의 복지 자금을 통제하였고 그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는 외부인들과의 법적 관계와 상거래를 재가하였다(CD 13:6이하; 14:9-12). 동시에 구약성경의 비유를 따라 그의 직분은 목자의 직분에 비교된다. '그는 아버지가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같이 그들을 사랑하며, 목자가 자신의 양을 돌보는 것과 같이 그들을 모든 고통 가운데에서 인도할 것이다. 그는 그들을 얽매는 모든 속박들을 풀어줄 것이다'(CD l3:9). 이 모든 기능들이 후에는 공동체 규정(IQS)에서 한정적인 인물로 나오는 제사장들의 지도자에게도 이전되고 반면에 비(非)제사장적 감독들은 행정관 역할로 축소된다는 것은 감독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1QS 6:l4, 20). 전체 구성원들의 하나의 모임인 회중을 뜻하는 에다의 의장으로서의 독립적인 존엄성은 제사장들을 통솔하고 복종시킴으로 그 독립성을 보였으나 아마도 점차로 제사장들의 의장에게로 양도되었던 것 같다. 이 사실은 제사장적인 감독의 출현을 예시하는 것이다. 이 해석은 다메섹 문서(the Damascus Document)가 훈련교법서(the Manual of Discipline)보다 더 초기의 것이라고 가정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일치되고 있지 않으나 유력한 견해는 기존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3. 신약성경의 용법 신약성경에서 에피스코포스는 5회 나오며, 벧전 2:25에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른 구절에서는 기독교 공동체 내의 기능이나 직무를 가진 개인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행 20:28; 빌 1:1; 딤전 3:2; 딛 1:7). (a) 벧전 2:25에서 에피스코포스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포이멘)와 감독(에피스코포스)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일견하여 에피스코포스는 단지 포이멘(목자)을 강화하고, 따라서 양떼를 지키는 자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을 치는 것과 지키는 것은 목자의 사역을 묘사하는데 있어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이 두 사상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연결되고 있었으며(민 27:17) 신약성경에서 다시 나온다(행 20:28). 더 나아가서 이 단어는 영혼에 대한 가장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지혜서 1:6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말한 것처럼, 인간의 마음을 아시고, 필로가 하나님에 관하여 말한 것처럼, 인간의 영혼에 숨겨진 것을 보신다. 그리스도는 또한 믿는 자의 영혼을 돌보기 위하여 최고의 자기 희생으로 자기 자신을 주시는 분이시다(참조: 히 12:15). 그의 감시는 사랑의 염려와 관심, 곧 기꺼이 짊어지는 책임을 나타낸다. 이 말은 절대로 개인적 세력 강화의 의미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의미는 인간들의 구원을 위한 염려에서 기인한 그리스도의 자신을 버리시는 섬기심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 이유 때문에 포이멘과 에피스코포스가 그렇게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라는 말은 그 안에 헬라어로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에피스코포스로서의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는 모든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문맥이 구원 역사(歷史)의 가장 심오한 신비를 지적하는 에피스코포스는 이렇게 공동체와 관계된 그의 사역을 나타내기 위해 예수님에게 돌린 고귀한 직함이다. (b) 다른 구절들에서 에피스코포스는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에피스코포스는 순회하는 카리스마적인 복음의 전도자, 사도, 선지자에 대하여 결코 사용하지 않고 정착한 회중, 곧 특정한 지역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신앙 생활에서 교회를 관리하는 목자적인 감독에 대한 필요는 히 l2:15에도 분명히 나타나는 바와 같이, 원래 모든 구성원들에게 지워지는 의무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감독은 특별한 직분의 과제가 되었다. 이 전환은 행 20:28에서 보게 된다. 이 구절에서 에베소 장로들(프레스뷔테로이)에게 행한 바울의 연설에서 볼 수 있듯이, 처음에는 프레스뷔테로이와 에피스코포이 사이에 구별이 없었다. 여기에서, ① 모든 프레스뷔테로이는 예외없이 에피스코포이로 불리워진다. 그들은 신분상으로는 장로들이며, 책무상으로는 감독들이다. ② 그들의 책무는 양들을 돌보는 일이다(참조: 벧전 2:25; 벧전 5:2이하). ③ 한 교회에는 여러 명의 에피스코포이가 있으며. 그들 중에 아무도 상위권이 없다. ④ 그들의 감독에 대한 소명은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며, 이것이 선택이나(참조: 행 1:21이하; 행 6:3이하) 사도에 의한 임명을 배제하지는 않는다(행 14:23). 그렇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그들의 감독직의 수임과 권위의 기초가 되는 성령의 역사(役事)이다. ⑤ 문맥에 따르면, 그들의 기능은 공동체의 존재가 오로지 달려 있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기초하여 회중을 세심하게 감시하고 염려하는 감독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c) 에피스코포이는 직무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① 행 20:28에서 확실한 것은 바울이 교회에서 책임있는 사람들의 사역과 직무를 단순히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다른 회중과는 구별되는, 프레스뷔테로이와 에피스코포이로 불리어 질 수 있는 한정된 그룹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그들이 부름 받은 것을 알고 있다. 그 직무는 이미 실질적으로 현존하는 것이다. 그 직무는 아직도 영구적인 명칭이 되지 않았으나 곧 그러한 명칭이 될 것이다. ② 빌 1:1에서 "감독들"도 비록 이 특별한 직무가 일반적인 기능의 견지에서 예외로 한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단지 행동이 아닌 직무가 고려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③ 딤전 3:1이하에서 에피스코페(ejpiskophv, 1984)는 추구할 수 있는 독특한 직분이며, 이 직분을 얻으려면 자격이 구비되어야 한다. 이 구절에서는 단순히 자격을 열거하고 직책의 임무들은 열거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성령에 관한 그 이상의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상적인 필요로 말미암아 이것이 발전되었지만, 그 직책의 자격은 매우 진지하게 진술되어 있다. 즉 에피스코포이는 도덕적 신뢰성이 있어야 하고 일부일처의 결혼 생활을 해야 하며 가정 생활에 규율이 있어야 하고, 가르칠 능력이 있어야 하며 성숙해야 한다. 그리고 비 그리스도인의 세계의 표준에 따라서도 비난 받을 만한 점이 없어야 한다. ④ 딛 1:5이하의 병행구절에서 장로들의 자격 요건도 이와 비슷하며, 딛 1:7절에 에피스코포스가 갑작스럽게 프레스뷔테로스 대신에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똑같은 기능이 있다는 사실, 즉 순회 사역자, 곧 사도나 선지자나 교사가 없을 때 회중을 인도하고 대표하며,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하는 일이 고려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⑤ 딤전 3:2과 딛 1:7에 단수가 사용된 것은 개 교회에 단 한 명의 감독만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유형으로서의 감독에 관한 언급이다. 감독의 직무의 핵심은 힘보다는 오히려 섬김이다. 술취하지 아니하고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의 권위는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다. [참조: 여기에서 단독적인 지역 교회에서 일하는 몇 명의 감독들을 나타내는 행 20:28과 빌 1:1에 모순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딛 l:7에서 한 사람의 감독(단수)에게 요구되는 자질들에 대한 언급은 다른 모든 직분 맡은 자들을 통제하는 단일 감독의 군주적인 감독 제도에 대한 이론을 거의 지지하지 않는다. 이 감독 제도는 제 2세기와 제 3세기에 성공한 것인데, 그것은 어느 정도는 탁월한 은사들을 소유한 개인들 때문이며, 또한 어느 정도는 더 견고한 조직에 대한 요구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⑥ 딤전 5:l7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 특히 가르치고 설교하는데 있어서 훌륭한 몇 몇 장로들을 선발한 것은 초기의 구별에 대하여 암시하는 것 같으며, 이 구별은 결국에는 감독이 수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만다.(참조:Walter Bauer; L.Coenen).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그레고레오) 지켜보다, 망보다, 정신차리고 있다. 경계하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그레고레오는 후기형이며, 에게이로(ejgeivrw, 1453, 일으키다, 깨우다)에서 형성되었으며, `깨어있다, 지켜보다, 주의하다, 경계하다, 망보다'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그레고레오는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마드(서다)의 역어로(느 7:3), 샤가드(지켜보다, 망보다)의 역어로(렘 5:6; 렘 38(31):28; 애 1:14; 단 9:14)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그레고레오는 신약성경에서 2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주시하다, 깨어있다(마 24:43; 막 13:34; 눅 12:37; 눅 12:39 등). (b) 정신을 차리다, 주의를 기울이다(마 24:42; 마 25:13; 막 13:35; 고전 16:13; 살전 5:6; 계 3:2; 골 4:2). ***[461.십자가를질수있나]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 Acts 20 Amplified Bible ===Paul in Macedonia and Greece 1 After the uproar had ended, Paul sent for the disciples, and when he had encouraged them he told them goodbye, and set off to go to [a]Macedonia. 2 After he had gone through those districts and had encouraged the believers, he came to Greece. 3 And he stayed three months, and when a plot was formed against him by the Jews as he was about to set sail for Syria, he decided to return through Macedonia (northern Greece). 4 He was accompanied by Sopater of Berea, the son of Pyrrhus, and by Aristarchus and Secundus of the Thessalonians, and by Gaius of Derbe, and Timothy, and Tychicus and Trophimus of Asia. 5 These men went on ahead and were waiting for us (including Luke) at Troas. 6 We sailed from Philippi after the days of Unleavened Bread (Passover week), and within five days we reached them at Troas, where we stayed for seven days. 7 Now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Sunday), when we were gathered together to break bread (share communion), Paul began talking with them, intending to leave the next day; and he kept on with his message until midnight. 8 Now there were many lamps in the upper room where we were assembled, 9 and there was a young man named Eutychus (“Lucky”) sitting on the window sill. He was sinking into a deep sleep, and as Paul [b]kept on talking longer and longer, he was completely overcome by sleep and fell down from the third story; and he was picked up dead. 10 But Paul went down and threw himself on him and embraced him, and said [to those standing around him], “Do not be troubled, because [c]he is alive.” 11 When Paul had gone back upstairs and had broken the bread and eaten, he talked [informally and confidentially] with them for a long time—until daybreak [in fact]—and then he left. 12 They took the boy [Eutychus] home alive, and were greatly comforted and encouraged. ===Troas to Miletus 13 But we went on ahead to the ship and set sail for Assos, intending to take Paul on board there; for that was what he had arranged, intending himself to go [a shorter route] by land. 14 So when he met us at Assos, we took him on board and sailed on to Mitylene. 15 Sailing from there, we arrived the next day [at a point] opposite Chios; the following day we crossed over to Samos, and the next day we arrived at Miletus [about 30 miles south of Ephesus]. 16 Paul had decided to sail on past Ephesus so that he would not end up spending time [unnecessarily] in [the province of] Asia (modern Turkey); for he was in a hurry to be in Jerusalem, if possible, on the day of [d]Pentecost. ===Farewell to Ephesus 17 However, from Miletus he sent word to Ephesus and summoned the elders of the church [to meet him there]. 18 And when they arrived he said to them: “You know well how I [lived when I] was with you, from the first day that I set foot in Asia [until now], 19 serving the Lord with all humility and with tears and trials which came on me because of the plots of the Jews [against me]; 20 [you know] how I did not shrink back in fear from telling you anything that was for your benefit, or from teaching you in public meetings, and from house to house, 21 solemnly [and wholeheartedly] testifying to both Jews and Greeks, urging them to turn in repentance to God and [to have] faith in our Lord Jesus Christ [for salvation]. 22 And now, compelled by the Spirit and obligated by my convictions, I am going to Jerusalem, not knowing what will happen to me there, 23 except that the Holy Spirit solemnly [and emphatically] affirms to me in city after city that imprisonment and suffering await me. 24 But I do not consider my life as something of value or dear to me, so that I may [with joy] finish my course and the ministry which I received from the Lord Jesus, to testify faithfully of the good news of God’s [precious, undeserved] grace [which makes us free of the guilt of sin and grants us eternal life]. 25 “And now, listen carefully: I know that none of you, among whom I went about preaching the kingdom, [e]will see me again. 26 For that reason I testify to you on this [our parting] day that I am innocent of the blood of all people. 27 For I did not shrink from declaring to you the whole purpose and plan of God. 28 Take care and be on guard for yourselves and for the whole flock over which the Holy Spirit has appointed you as overseers, to shepherd (tend, feed, guide) the church of God which He bought with His own blood. 29 I know that after I am gone, [false teachers like] ferocious wolves will come in among you, not sparing the flock; 30 even from among your own selves men will arise, speaking perverse and distorted things, to draw away the disciples after themselves [as their followers]. 31 Therefore be continually alert, remembering that for three years, night or day, I did not stop admonishing and advising each one [of you] with tears. 32 And now I commend you to God [placing you in His protective, loving care] and [I commend you] to the word of His grace [the counsel and promises of His unmerited favor]. His grace is able to build you up and to give you the [rightful] inheritance among all those who are sanctified [that is, among those who are set apart for God’s purpose—all believers]. 33 I had no desire for anyone’s silver or gold or [expensive] clothes. 34 You know personally that these hands ministered to my own needs [working in manual labor] and to [those of] the people who were with me. 35 In everything I showed you [by example] that by working hard in this way you must help the weak and remember the words of the Lord Jesus, that He Himself said, ‘It is more blessed [and brings greater joy] to give than to receive.’” 36 When he had said these things, he knelt down and prayed with them all. 37 And [f]they began to weep openly and threw their arms around Paul’s neck, and repeatedly kissed him, 38 grieving and distressed especially over the word which he had spoken, that they would not see him again. And they accompanied him to the ship. ===Footnotes Acts 20:1 Northern Greece. Acts 20:9 Luke (the writer) takes a good-natured poke at Paul when he describes Paul’s long-winded preaching. Anyone who studies Paul’s letters, especially in the original Greek, will soon discover that Paul was a vivacious, wonderfully emotional servant of the Lord who was never stingy with words. Acts 20:10 Lit his soul is in him. Acts 20:16 The yearly Jewish festival which celebrated the harvest. Acts 20:25 Paul did not to expect to return to Ephesus, but he did. See 1 Tim 1:3. Acts 20:37 Lit there was considerable weeping of all. ========= 사도행전 20장 (개요) 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바울이 마게도냐, 헬라, 아시아를 왕복 여행하고 마침내 드로아에 도착한다(1-6). Ⅱ. 바울이 드로아에서 주일(안식 후 첫날)을 지킨 사실이 특별히 설명되고 있으며 그가 그곳에서 유두고의 생명을 부활시킨 사실이 설명되고 있다(7-12). Ⅲ. 다음 오순절을 예루살렘에서 지키기 위하여 가는 도중 바울은 그가 개척한 교회들을 순회 방문함(13-16). Ⅳ.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행한 바울의 고별 설교, 이제 바울은 그곳을 떠나고자 하고 있었다(17-35). Ⅴ. 바울과 장로들 사이의 애석한 작별(36-38).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을 통하여 바울이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하여 또한 인간들의 영혼을 위하여 선한 일을 하기에 얼마나 분주하였는가를 알게 된다. 그는 이방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성장시키기 위하여 분주하였다. ========== ===바울이 마게도냐와 헬라를 다니다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바울의 에베소 작별(행 20:1-6) 바울의 제3차전도여행의 대략을 훑어본다.., 안디옥에서 갈라디아 브루기아등 터키 북부지역을 거쳐 에베소로 와서 3개월간은 회당, 그후 2년간은 두란노서원에서 강론하면서 체류한 후 마게도냐와 헬라의 아가야를 방문한 다음 에베소로 복귀하였고,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소요사건을 기점으로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빌립보, 데살로니가)를 두루다닌 후 헬라의 아가야(고린도)에서 3개월 체류한 후 소아시아를 거쳐서 예루살렘을 방문[구제연보를 전달]하려는 결심의 실행을 위한 구체적 행보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여행에 대하여서는 이미 간략하게 언급되었던 바, 그 여행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 즉 금박 활자로 써서 기념할 만한 가치가있는 것들을 다 기록하려고 하였다면 그 기록된 책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다만 사건의 윤곽만을 암시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것들은 보다 귀중하게 여겨져야 하는 것이다. Ⅰ. 바울의 에베소 작별.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들의 사도로서 임명된 이래 어느 딴 곳에서 체류하였던 것보다 더 오랫 동안 에베소에 체제하였다. 이제는 떠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도시에서도 역시 그가 복음을 전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에베소에소의 소요사건이 있은 이후, 성서에 기록된 그의 생애의 여정의 마지막까지(성서야 말로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전부의 자료이다) 우리는 바울이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다시 새로운 교회를 개척한 사실이라든가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리워지지 않는 곳에 복음을 전한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롬 15:20). 왜냐하면 다음 21장 끝 장면에서 우리는 바울이 죄수가 된 사실을 알게 되며, 그는 본서가 끝날 때까지 죄수로 계속 남아 있었다. 1. 바울은 반란이 진정된 후 곧 에베소를 떠났다. 바울은 그곳에서 당한 방해 소동을 그로 하여금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지 말라고 하는 섭리의 지시로써 간주하였다(1절). 바울의 퇴각은 그의 적들의 분노를 어느 정도 진정시켰고 또한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좀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 폭풍우 속에서는 누워있는 것이 좋다는 말. 이 문제에 관하여 어떤 이들은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기 전에 "고린도 교회"에 첫 편지를 썼고 그렇기에 고린도 전서에 그가 언급하고 있는 그의 에베소에서의 "사나운 맹수와의 싸움은" 이 폭동의 비유적인 기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나는) "맹수와 싸웠다"는 그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2. 바울은 놀라움에 가득 차서 갑작스럽게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 바울은 그들과 진지하게 작별하였다. 바울은 그곳 교회 회중의 지도자급인"그의 제자들을 그에게로 불러" 초대 교회의 관습 대로 서로 포옹하고 사랑의 입맞춤으로 그들과 작별하였다"("포옹하고 사랑의 입맞춤으로 작별하였다"는 것은 시리아 사본이 전해 주는 내용이다). 사랑하는 친구들은 서로 헤어질 때까지는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모른다. 헤어질 때서야 그들이 서로의 심정 속에 얼마나 가까이 있었던가 하는 사실이 나타나는 것이다. Ⅱ. 그의 헬라 교회들의 방문. 이 교회들은 그가 심고 한 번 이상 물을 준 교회들로 그의 심정에 늘 떠나지 않고 가까이 있었던 교회들이었다. 1. 바울은 먼저 "마게도냐로" 갔다(1절). 그곳은 그 폭동이 일어나기 이전에 그가 가고자 계획했던 곳이었기에(19:21), 거기서 바울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교회들을 방문하였으며 "그들에게 많은 격려를 하였다"(2절). 바울의 그의 친구들에 대한 방문은 전도 방문이었다. 그의 설교는 광범하고도 풍부한 것이었다. "그는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할 말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시간에 인색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들에게 많은 여러 가지 경우에 있어서 그들이 행할 많은 의무들을 권하였다. 그리고(어떤 이가 원문을 그렇게 해석하듯) "여러 이유를 들어" 그들을 권면하였다. 바울은 그의 권유를 여러 가지 다양한 동기와 근거를 들어 강조하였다. 2. 바울은 "헬라에 석 달을 머물러 있었다"(2, 3절). 어떤 사람은 바울이 그리스 중에서도 특히 "아가야"에 주로 머물러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가야도 역시 바울이 가고자 했던 것이며, 그는 그곳의 고린도와 그 주변 지방을 돌아 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9:21). 그곳에서도 역시 제자들에게 많은 권고를 하였으며함께 그들을 지시하고 확신을 주며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굳게 의지하도록 종용하였음에 틀림 없었으리라. Ⅲ. 바울의 여정 변경. 우리는 언제나 우리들의 목적을 그대로 관철시킬 수는 없다. 예기치 못했던 돌발 사건은 계획을 변경케 하고 따라서 우리의 목적하는 것은 늘 변경의 여지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1. "바울은 배를 타고 수리아로 들어가서 안디옥으로 가고자 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처음으로 이방인들을 봉사하기 위하여 파견된 곳이었다. 하여, 바울은 그의 여행 중에는 그곳을 경유할 수 있도록 여행 과정을 들릴 수 있게끔 수립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계획을 바꾸어 그가 왔던 길인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로 작정하였다." 2. 그 이유는 유대인들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그가 언제나 다니던 경로대로 여행을 할 줄 알고 길목에서 지키다가 그를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에 반대하도록 폭도들이나 행정관들을 선동하여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성취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주 바울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구출하기 위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는 돈을 강탈하기 위하여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하여 얼마나 지독하게 악의를 품고 있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나는 그들이 바울의 돈이 아니라 바울의 피에 주려 있었다고 생각한다. Ⅳ. 바울이 아시아로 갔을 때 그의 여행에 동행한 동료들. 그들의 이름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4절). 그들 아직 몇 사람은 사역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사역자들이었는지 어떤지는 확실하지 않다. "베뢰아 사람 소바더"는 로마서 16장 2절에 언급된 사람인 "소시바더"와 같은 사람인 것 같다. 그들 가운데는 "디모데"도 있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비록 [데메드리오 소요사건 직후]에베소를 떠나면서(1절) 디모데를 그곳에 남겨두었고 그 후에 바울은 그곳에 있는 그에게 그의 맨 처음 편지를 써보냈지만[디모데전서] 그는 곧 바울을 따라 와서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과 함께 바울을 수행하였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에게 복음 전도자로서 그곳에 있는 교회를 어떻게 정착시키며 또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지시했다(딤전 1:3; 3:14, 15 참조). 그 편지는 디모데에게 어떠한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지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그가 지금 머물러 있는 에베소에서 뿐만 아니라 에베소에 머물게 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유하게 되며 또는 전도자로서 그가 파송되기도 할 여러 곳에 가서 그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지시하는 편지였다(그리고 디모데 그 한 사람만이 아니라 바울에 속해 있으면서 마찬가지 방법으로 수고하는 모든 다른 복음 전도자들에게도 주는 지시였다).** 사실 혹자는 이러한 값있게 쓰일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바울을 수행한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바울이 있는 곳보다 그가 없는 곳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더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다음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였다. 1. 그들은 바울의 전도에 의하여 각성되고 새로워진 사람들을 그가 가르치는 일에 그를 돕기 위해서였다. 바울이 가는 어느 곳에서나 실로암 연못의 물결은 요동을 하였고 따라서 온갖 불구자들을 치유의 물에 집어 넣을 많은 조력자가 요구되었던 것이다(역주:바울의 치유의 능력을 상징화한 것임). 쇠는 뜨겁게 달구어져 있을 때 두둘겨야 하는 것이다. 2. 그들이 그에 의해 훈련되어져 미래의 섬김에 적합하게 되고 그들로 "그의 교훈과 행실을 완전히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딤후 3:10). 당시 바울은 허약했고 피곤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친구들이 그를 수행하며 그를 도울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바울을 외모에 의해 판단해 버리기 쉬운 외인들에게 바울에게는 외모로 보아서는 쉽게 발견도지 않는 참된 가치있는 것이 무한하다는 것을 알리고 또 바울의 능력을 그들이 선포할 필요도 있었다. Ⅴ. 바울은 드로아에 왔다. 드로아는 바울이 그의 친구들과 합류하기로 정한 곳이었다. 1. 그들은 드로아에 먼저 가서 바울을 기다렸다(5절). 그것은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가기 위해서였다. 드로비모는 특히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사모하였다(21:19). 우리들은 좋은 동료와 여행하기 위하여 잠시 지체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2. 바울은 그곳으로 서둘러서 갔다. 그리고 이곳에서 누가가 이제는 바울과 함께 동행하게 되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본서의 저자가 "우리는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라고 말하므로 자기까지 포함시켜 우리라고 말하였기 때문이고(6절) 그리고 누가가 처음으로 바울을 사귀게 된 곳도 바로 드로아였다는 사실 때문이다(16:11). 본문에 "무교절"이 언급된 것은 바울이 유대인들의 관습대로 유월절을 준수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가 무교절이란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기록해 놓은 것이리라. 바로 이 즈음에(소아시아의 에베소에 있을 때)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그의 첫 번째 편지를 기록하였으며, 거기서 고린도 교회에게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유월절이시며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우리들의 무교절이라는 것과(고전 5:7, 8) 또 본체가 오면 그림자는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가르쳤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배를 타고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왔다." 그리고 그곳에 와서 "이레를" 머물렀다. 그들은 복음을 전도하는 일을 위하여 이곳 저곳으로 여행을 하느라고 어쩔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낭비하였다. 그럼에도 그러한 시간은 그냥 낭비된 시간으로 계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바울은 드로아로 가는데 "닷새"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서둘렀지만 그는 드로아에 오직 이레 동안만 머물러 있으며 휴식을 취했다. 바울은 여행하는 시간을 절약하여 그 시간을 유익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또한 그러한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 ===유두고를 살리다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드로아에서의 바울의 전도와 유두고의 소생(행 20:7-12) 우리는 본문에서 바울이 드로아에 머물러 있던 칠일 가운데 마지막날 그곳에서 발생하였던 일에 대한 설명을 발견하게 된다. Ⅰ. 그곳에는 그곳에서 살고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의 경건하고 신앙적인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은 그들이 변치않는 관례였고 또한 모든 교회들의 관례였다. 1. "제자들이 함께 모였다"(7절). 비록 그들은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성경을 읽고 명상하고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름으로써 하나님을 통하여 그들의 교통을 유지하였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모여서 일치하여 하나님께 예배했으며, 또한 상호간의 유대와 도움에 의해서 서로의 친교를 유지했고 모든 훌륭한 그리스도인들과의 영적인 친교를 그들이 나누고 있음을 입증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함께 모여야만 한다. 비록 그들이 한 장소에 모두 모일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이도록 해야 한다. 2. 그들은 그들이 "주의 날이라고 불렀던"(계 1:10) "안식 후 첫날 함께 모였다."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은 그리스도와 성령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정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 강림이 모두 일주일의 첫날에 일어났고 이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그날을 주일로 지키는 것이다. 본문에 보면 이 날(안식후 첫날)이 되자 제자들이 함께 모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들이 이 날 모이는 관습이 모든 교회들에게 선례가 되었다. 한 주일의 첫날은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에 의해서 신앙으로 지켜져야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리고 이 날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의 계약의 징표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날을 지킴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날은 엄숙한 집회를 가짐으로 지켜졌다. 이 집회는 그의 사역자들과 그의 궁전의 청지기들에 의해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또한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준수되었다. 그리스도로부터 위임을 받고 그리스도 아래로 불리움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이 날을 지키고 섬길 의무가 있으며 이 날에 그들은 주의 궁정의 하인으로 섬길 의무가 있는 것이다. 주일의 첫날은 하나님의 날로 정해진 날이었다. 3. "그들은 윗 다락에 함께 모였다"(8절). 그들은 함께 만날 수 있는 성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