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술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 및 공동서신 @@1차전도여행후(안디옥..공의회 참석 위해 예루살렘으로 출발 직전..AD49).갈라디아서[이신칭의 획증] ==> 2차전도여행중(고린도 체류중..AD52)데살로니가전후서 ==>.3차전도여행중(에베소 체류중...AD55~58).고린도전후서/3차전도여행중(고린도 떠나기 직전..AD57~58)로마서.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가이사랴(2년 체류) 거쳐서 로마로 이송...로마감옥(1차수감중..AD60~62)에베소서/빌립보서/골로새서 ==>.석방후 (여행중..AD63~66)디모데전서/디도서.==>..로마감옥(2차수감중..A67-68.)디모데후서/히브리서...CF>베드로전후서(바빌론 체류시..AD67년 순교전 )..야고보서(AD44이전), 유다서(AD67이전, 또는 AD70-85년사이), 요일이삼서(에베소..AD90-91년). -목 차- I. 서 론 A. 바울의 회심(A.D.35) B. 제1차 전도여행(A.D.46-48) C. 예루살렘 총회(A.D.49) D. 제2차 전도여행(A.D.50-52) E. 제3차 전도여행(A.D.53-58) F. 결박과 순교(A.D.59-67/68) II. 각 서신의 개론 A. 갈라디아서 B. 데살로니가 전서 C. 데살로니가 후서 D. 고린도 전서 E. 고린도 후서 F. 로마서 G. 골로새서 H. 빌레몬서 I. 에베소서 J. 빌립보서 K. 디모데 전서 L. 디도서 M. 디모데 후서 참고서적 ============= 1. 서 론 바울의 서신서를 알기 위해서는 바울과 그의 전도여행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본 서론에서는 바울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그의 전도여행을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쫓아가도록 하겠다. 그리고 본론부에서는 각 서신서들을 바울이 기록한 연대순으로 하여 정리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론에서 서술되어질 바울의 전도여행은 본 바울서신의 순서를 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1.1. 바울의 회심(A.D.35) 바울서신의 저자인 바울은 당시에 매우 번성하고 교육의 중심지인 다소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상속받았으며(행22:25-28), 다소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다(행21:39). 또한 자신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3:6)라고 말할 정도로 열렬한 율법주의자였다. 이 열심으로 그는 교회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했던 것이다(고전15:9; 갈1:13,23).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을 하고 이방인의 전도자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 아라비아로 갔다가 돌아와 다메섹 근처에서 (도합)3년을 지낸 그는 [홀로, 개인적으로..회심후 첫번째방문]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15일 동안 머물렀다(행9:22-26;갈1:18..베드로,야고보를 만남 : 예루살렘에서 복음전도하다가 헬라파유대인들의 살해음모를 눈치 챈 성도들에 의해 가리사랴로 이동, 그후 다소로 이동). 고향인 다소로 가서 잠시(약10여년) 머물렀다가 시리아 안디옥으로 가서<바나바가 와서 데리고 감> 1년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흉년을 맞은 예루살렘교회에 구제금품을 전달하러 올라오게 되었고 [2번째 예루살렘 방문...성전에서 3층천의 황홀경에 들어간 듯함, 이 때 황홀경중 환상속에서 이방인의 사도로 사명을 받은 것으로 추정함...**[고후12:1-10.삼층천 경험]고린도후서는 AD57년 가을~58년 봄 사이에 에베소에서 쓴 것이기에, 대체로 AD43~44사이에 예루살렘방문중 성전에서 환상중 경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데, 이 때 흉년으로 인한 부조금을 예루살렘에 전달하러 갔었다... ] 그후, 안디옥으로 복귀한 다음, 이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의 지시하심따라 바나바와 함께 선교사로 임명 받아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행11:27-30; 12:25). 1.2. 제1차 전도여행(A.D.46-48) 바울과 바나바와 마가의 전도여행은 안디옥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인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 섬의 살라미에 도착한 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구브로 섬의 서부 지역인 바보로 들어가 복음을 전파하였다(행13:4-12). 이곳의 전도 이후부터는 바울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기 시작한다.[바보의 총독 서기오바울 만난 기념 + 마술사 엘루마의 시력상실 사건] 바울과 그 일행이 배를 타고 버가(소아시아)에 도착한 후,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13:13). 바울과 바나바는 내륙지방인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다. 이곳에서 바울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유대교로 개종한 귀부인등과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고 반대-대적-박해함 통해)유대인들이 박해를 하여, 이고니온으로 갔고(거기에서상대적으로 오래 머물렀음 :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여 루스드라로 이동), 루스드라로 가게 되었다.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를 고치는 이적을 행하지만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바울을 쫓아 나선 유대인들의 방해로 더베로 갔다(행14:19). 더베를 방문하여 많은 결실을 거둔 바울과 바나바는 (이제 복귀하기로 결정) 이전에 그들이 전도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안디옥에 들어가서 그들을 다시 격려한 후(행14:20-23...각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움),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버가에서 복음을 전한 후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1.3. 예루살렘 총회(A.D.49) 유대로부터 안디옥으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이방인 신자들도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다(행15:1). 이 같은 문제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내게 되는데 '예루살렘 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결국 이 총회에서 이방인 성도들이 최소한의 몇 가지만 삼가해 줄 것을 결정하고(행15:19-21,28,29), 바울과 바나바, 바사바와 유다와 실라를 통하여 이방 교회에 전달하도록 하였다(행15:22). 이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하고자 예루살렘으로 [3번째 예루살렘 방문]가던 중에 갈라디아서를 썼다고 본다(A.D.49). 1.4. 제2차 전도여행(A.D.50-52)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사항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해 주었던 바울과 바나바는 얼마 동안 안디옥에서 함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쳤다(행15:30-36). 이들은 구브로 섬과 소아시아 남부에 세워진 교회들을 돌아보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버가에서 헤어진 마가와 동행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인하여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자기 고향(구브로) 근방으로 떠났으며(행4:36), 바울 역시 자기 고향(길리기아 다소) 쪽으로 향하였다. 이때부터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실라와 함께 하였으며, 루스드라에서 디모데와 합류하였다(16:1-3).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 무시아에 이르러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드로아로 갔다(행6:6). 다시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네압볼리로 가서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하였다(행16:6-12).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빌립보의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로 감옥에서 나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행17:1). 이곳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많은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을 전도하지만 유대인들의 시기로 쫓겨났다. 밤에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로 가서 전도를 한 후(행17:10), 아덴에 가 그곳의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설교를 한다(행17:22). 이후에 아덴을 떠나(디모데에게 데살로니가 교회 상황을 살펴보고 오라고 부탁) 고린도에 이르러 일년 육개월 동안 말씀을 전하면서, [복귀한 디모데로 부터 데살로니가교회 상황을 전해 듣고 고린도에서]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를 보냈다(A.D.52). 고린도에서 또다시 반대에 직면하여[바울을 갈리오총독앞에 고소하였으나 무시당하자 소스데네를 법정, 갈리오앞에서 무리들이 폭행함]겐그레아(고린도교회를 겐그레아교회라고도 함)를 거쳐서 에베소에 갔다가[아굴라부부를 머무르게 함] 잠시 전도한 후 [유월절절기에 맞추어] 배를 타고 가이사랴 항구에 도착하여 예루살렘에 나아가[4번째 예루살렘 방문] 예루살렘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곧바로 안디옥으로 귀환하였다(행18:21,22). 1.5. 제3차 전도여행(A.D.53-58) 안디옥에 얼마 있다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다니며 모든 제자들을 굳게 하다가(행18:23), 에베소로 가서 전도하였는데(행19:1-41), 이곳 에베소에서(3개월+2년 체류)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두개의 서신을 썼다(A.D.55-58). 데메드리오의 사건으로 에베소를 떠나 바울은 마게도냐(빌립보, 데살로니가)와 헬라의 아가야(고린도...3개월 체류)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행20:1-5). 바로 이때에 이 지방에 있는 고린도를 출발하기 직전에 로마서를 써 보내었다(A.D.57/58). 무교절 후에 바울은 빌립보에서[누가가 합류 동행] 배를 타고 드로아로 가서 이레 동안 머물며 강론을 하였다(행20:6-12). 이 후 앗소에서 배를 타고 미둘레네, 기오, 사모를 거쳐 밀레도에 도착하였다(행20:13-16). 이곳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작별을 하고(행20:17-38), 행선하여 제자들의 반대에도 뿌리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을 떠났다(행21:1-17). 둘레마이에서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하루를 묵은 후 가이사랴에 이르러 빌립의 집에서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로부터 예루살렘에 가지 말 것을 듣지만 계속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마지막이자 5번째 예루살렘 방문] 예루살렘에 도착을 하여 '형제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행21:17).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이방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 했다는 소문 때문에 유대인 신자들을 무마하기 위하여 정결예식을 행하였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바울이 이방인 드로비모를 성전 안뜰로 데리고 들어왔다는 말로 군중을 충동하여 바울은 심하게 폭행을 당하였다(행21:28-29). 이 때 로마군 천부장의 도움을 받아 빠져 나왔다. 그러나 바울의 고발당한 이유를 확실하게 알기 위하여 천부장은 바울을 산헤드린 공회 앞에 데려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바울을 죽이고자 하였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행22:30). 1.6. 결박과 순교(A.D.59-67/68) 대제사장과 몇몇 유대 지도자들은 가이사랴까지 찾아와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였다. 벨릭스 총독은 첫 재판을 한 후 재판을 연기한 후 2년이 지날 때까지 연기하였다(행24:27..2년간 가이사랴 체류). 이후 유대인들은 벨릭스의 후임인 베스도 총독에게 예루살렘에서 재판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베스도에게 로마로 건너가 네로 황제(가이사 행25:7-12) 앞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베스도 총독은 상소할 자료를 작성하기 위하여 헤롯 아그립바2세를 불러 도움을 구했다(행25:26-27). 그리하여 바울은 로마로 가게 되었다. 로마로 가는 바울의 여행은 항해하던 중 폭풍을 만나 멜리데 섬에 상륙을 하기도 한다(행27:14-28:1). 그러나 이듬해 봄 다시 항해를 계속하여 무사히 로마까지 도착하게 되었다(행28:11-14). 이 로마감옥의 첫 투옥 때 바울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옥중서신을 보내었다(A.D.60-62). 그 후 다시 석방이 되어 자유롭게 마지막 전도여행을 하던 도중에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보냈다(A.D.63-65). 그러다 갑작스럽게 로마의 감옥에 결박되어 있으면서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 서신[또한 마지막 옥중서신으로 봄]인 디모데 후서를 보내었다(A.D.67/68). 바울은 네로 황제시대 때 순교를 당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그 년도에 대하여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데 유대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주후 67년으로 잡고, 교부 제롬은 주후68년으로 잡고 있다. =============== 2. 각 서신의 개론 2.1. 갈라디아서 2.1.1. 배경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로부터 이방인들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행13:1-3;14:25-27). 그 소식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안디옥 교회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도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유대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구원을 얻는 데는 단순히 예수를 믿는 믿음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한다고 곧 유대적 의식들, 특히 할례도 역시 불가결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무리였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방인들의 회개 소식에 항의를 하였다(행15:1). 이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주의자들은 갈라디아를 누비면서 이방인들도 구원의 한 방법으로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사도의 직분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지 않고 인간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며 따라서 바울의 복음은 간접적으로 전수된 것이며 그는 단순히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힘쓰며 만약 조건만 부합하면 자신도 할례를 전한다고 주장함으로 바울의 신뢰성에 도전을하였다. 가만히 들어온 이 사람들의 소리에 갈라디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자 바울은 기독교적 자유의 교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2.1.2. 저자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다. 본서에서 기록자는 자신의 이름을 바울이라고 밝히고 있다(1:1). 그러나 튜빙겐 학파와 부르노 바우어, 로만, 피어슨, 나벨 그리고 반 마엔 등이 바울의 저작권을 부인하지만 이 모든 것은 주관적 추론에 근거하여 주장하는 것에 그친다. 유세비우스, 오리겐, 터툴리안, 알렉산더의 클레멘트, 그리고 이레니우스 등은 자신들의 서신에서 인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초대교회의 인물들이 본서를 저자를 바울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서가 저자를 바울임을 자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서신은 매우 인간적이며 전체 내용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한사람"을 보이고 있는데 바로 다소의 바울이다. 2.1.3. 수신지 본서 3:1을 보면 본 서신의 수신자들을 갈라디아 사람들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갈라디아인들이 누구인지에 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북갈라디아설과 남갈라디아설로 요약할 수 있다. 2.1.3.1. 북갈라디아설 갈라디아는 지리적인 위치로 볼 때 로마령인 갈라디아의 북쪽 지역으로 바울이 이 지역에 여러 교회들을 세웠고 갈라디아서는 그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 북갈라디아설은 여러 가지의 증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즉 '갈라디아 사람들'이란 말의 통속적 사용을 볼 때에 북갈라디아 지역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가 사용한 행13:13,14과 행14:6 그리고 행16:6의 일반적 용법과 남갈라디아 여러 도읍들에 관한 누가의 설명, 행16:6과 행18:23의 의미를 볼 때에 갈라디아란 행정구역이 아니며, 제3차 전도여행 초기에 북쪽 지역을 방문했을 때 세운 교회라고 본다. 그러나 북갈라디아설은 이제 남갈라디아설에 의해 매우 광범위하게 논박되고 있다. 2.1.3.2. 남갈라디아설 이 남갈라디아설은 19세기 이후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견해이다. 2.1.3.2.1. 사도행전에 그 당시 중요한 논쟁이 있었던 북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을 볼 때에 남갈라디아설을 지지한다. 2.1.3.2.2. 갈라디아서에는 바울이 자신의 건강을 회복하는 기간에 갈라디아 교회들을 처음 방문하였다고 하였는데(갈4:13), 이는 건강의 회복기에 있는 환자로서 지형이 매우 험악한 북쪽 지역을 말하기 보다는 남쪽지역일 가능성이 많음을 보여준다. 2.1.3.2.3. 바울은 자기 세운 교회들을 언급할 때 교회가 위치해 있는 행정구역의 명칭들을 사용하였으므로 '갈라디아 사람들'이란 그 행정구역에 속해 있는 교회의 사람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2.1.3.2.4. 바나바의 이름이 갈2장에 세번이나 기록되었는데 이는 그가 남갈라디아 교회들에 개인적으로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갈라디아설에 대하여는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수신지인 갈라디아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 이론들을 종합해 볼 때에 남갈라디아설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2.1.4. 저작장소 및 저작연대 저작연대는 수신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먼저 두 견해를 살펴 본 후 저작연대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2.1.4.1. 북갈라디아설에 따른 연대 처음의 저작연대는 갈1:6의 타케오스(quickly)라는 단어에 의해 갈라디아를 바울이 방문한 직후에 씌어졌다는 것인데 이 단어는 갈라디아인들의 변절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므로 옳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직후에 기록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주장은 갈라디아서가 로마서보다 먼저 씌어졌으며 고린도 후서가 기록된 후에 씌어졌다고 보고 제3차 전도 여행 말기에 고린도에서 보낸 서신으로 보고 있다. 2.1.4.2. 남갈라디아설에 따른 연대 남갈라디아설도 갈4:13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예루살렘 공회 후에 기록되었다는 견해와 예루살렘 공회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견해로 나뉘게 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저작연대에 관한 결정은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을 살펴봄으로써 결정지을 수 있다고 본다. 예루살렘 방문에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즉 갈라디아서 2:1-10이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 방문이었다는 견해와 갈라디아서 2:1-10이 사도행전 11:30에 나오는 방문과 같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전자의 견해는 전통적인 견해로 두 본문의 유사점을 들어 설명하지만 갈2:1에 나오는 "다시"라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 바울이 예루살렘 공회를 방문하기 전에 예루살렘에 두번 방문한 사실은 구제기금을 가지고 방문한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과 사도행전 15장이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15장에 언급된 공회기간에 합의를 보았다는 법령에 관한 것들이 갈라디아서에는 빠져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갈라디아서 2:6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더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식사 문제로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사건은 그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한 예루살렘 공회 후에 있은 사건이었다기 보다는 공회 이전이 사건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반박들로 인하여 갈2장과 행15장이 동일하다는 견해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로부터 예루살렘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전하는 자로 (바나바와 함께)파송을 받아 예루살렘에 갔었는데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함께 교제할 것을 권면하였었다. 그러나 그 직후 베드로가 안디옥에 와서 교제를 나누던 중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을 피한 일이 있어 바울은 공적 자리에서 이를 책망하였다. (그리고 1차전도여행 후 갈라디아지방 교회들에 유대인 거짓교사들의 책동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들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안디옥 교회에 대표자들을 급히 보내게 하였다. 그리하여 안디옥 교회는 이러한 일들을 논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바울 등 대표자들을 보내고 이 결정을 위하여 회의가 소집된 것으로 본다(행15장). 이와 같은 사정과 주장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볼 때에 본 서신은 바울이 공회에 참석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쓰여졌다고 보여지므로 갈라디아서의 저작 연대는 A.D. 49년경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데살로니가전서는 A.D.50년즈음, 2차전도여행중 아테네에서 머무는 동안에 쓰여진 것으로 보고 있음] 2.1.5. 저작동기와 저작목적 동기는 그 당시 율법과 할례에 대하여 지나친 열심을 가진 유대 그리스도인(거짓교사)들이 교회 안에 분쟁의 근원을 제공하여 갈라디아에서 기독교적 자유의 교리가 위기에 처하게 된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자극을 받은 것이 그 이유라고 본다. 그리고 목적은 바울이 교회 안에 유대주의자들이 들어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는 반대되는 [율법준수행위을 통한 의]를 강조함으로써 교회 안에 혼란이 일어난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율법과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재강조하고,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생활로써 그 믿음의 순전함을 입증하려는 권면을 하려고 한 것이었다. 2.1.6. 내 용 2.1.6.1. 인사와 사도직의 권위(1:1-5)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과 기원을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의 사도직은 자신으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신적인 기원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다. 2.1.6.2. 변절자들에 대한 저주(6-10) 그러므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선생들에게는 저주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2.1.6.3. 계시로 말미암은 복음(1:11-24)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말미암을 것으로서 자신이 직접 받은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복음이 철저한 율법주의자요, 광신적인 자신을 변화시켰음을 간증하고 있다. 2.1.6.4. 복음의 진리를 확신하는 바울(2:1-14) 여기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의 핵심 지도자들로부터 사도로 인정 받는 겸손한 동역의 모습과 복음 진리를 확신 있게 수호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2.1.6.5. 믿음으로만 얻는 의(2:15-3:14) 사람들은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짓밟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바울은 사람의 의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을 말하면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이 의롭게 된다는 구원을 핵심을 가르치고 있다. 2.1.6.6. 율법이냐? 약속이냐?(3:15-29)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과 약속의 목적과 의미를 바로 지적하고 있다. 언약은 변경할 수 없고 중요하다. 그리고 율법의 목적은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없지만 죄를 드러냄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알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며,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인도하는 개인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2.1.6.7. 종에서 아들이 됨(4:1-11) 과거에는 우리가 종의 아들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 있는 아들되었다는 사실을 바울은 종과 아들을 대조시켜서 은혜의 복음 아래 있는 신자의 축복의 특권을 가르쳐 준다. 또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있다. 2.1.6.8. 바울과 갈라디아인들과의 관계(4:12-20) 그리고 갈라디아인들의 무너진 믿음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바울 자신의 목자 심정과 영적 어머니로서의 헌신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한 해산의 수고라는 말을 통하여 알 수 있다. 2.1.6.9. 이삭과 이스마엘(4:21-31) 아브라함의 꾀에 따라 얻은 하갈의 자녀와 하나님의 주신 자유를 누리는 여자 사라의 자녀와의 비유를 통해서 은혜(약속) 아래 사는 생활과 율법(의지) 아래 사는 생활의 차이점을 말하고 있다. 2.1.6.10. 자유인으로 살라(5:1-12) 지금까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를 말한 바울은 5장 부터는 실제적인 생활 속에서 자유를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참자유란 어떤 목표와 욕심을 추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고 그 위에 굳게 서서 사는데서 시작됨을 말하고 있다. 2.1.6.11. 자유의 본질(5:13-15) 신앙은 얽매임이 아니라 자유에로의 부르심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본질인 하나님 앞에 거리낌없이 나갈 수 있는 자유요, 사랑과 섬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2.1.6.12. 성령의 열매(5:16-26) 복음을 믿음으로서 얻은 자유는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고 오직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온전해 지는 것이다. 즉 성령의 소욕에 헌신적으로 순종할 때에 열리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이다. 2.1.6.13. 낙심치 말고 끝까지 선을 행하라(6:1-10)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낙심치 말고 끝까지 선을 행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러므로 심는 대로 거두게 해 주신다고 신뢰로 행해야 한다. 그리고 성도의 자유는 실제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를 섬길 때에 완성되어감을 말하고 있다. 2.1.6.14. 십자가를 자랑하라(6:11-18) 이제 바울은 편지를 끝맺으면서 친필로 힘있게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율법주의자들처럼 그들이 자랑으로 일삼는 율법도 지키지 않는 모순에 빠진 그들을 본받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예수의 흔적을 가지는 성도가 되라고 하는 권면으로 끝맺고 있다. 2.1.7. 평 가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서신서 중 최초의 것으로서 "종교적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불려온 서신서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리고 그를 통한 자유의 복음을 말한 성경이 바로 갈라디아서이다. 본서의 주제는 한마디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제 아래 본서는 복음에 대하여 그 핵심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서신서이다. 본서를 통하여 율법과 분리된 믿음에 의해 의로와진다는 이신득의의 칭의 교리는 교회에 의해 인정되고 수용되었다. ------------ 2.2. 데살로니가 전서 2.2.1. 배 경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동방으로 연결하는 로마의 대로인 비아 에그나티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중요하였다. 행정관들로 구성된 자치 기구가 있었으며, 또한 회당이 있었던 사실로 보아(행17:2) 도시 안에 유대인 식민 구역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바울이 실라 및 디모데와 함께 그곳을 방문한 것은 제2차 전도 여행 때였다. 바울과 실라가 투옥되었던 빌립보를 떠난 직후였다. 이곳에서의 사역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의 대다수는 우상숭배자들이었던 것 같다(살전1:9).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초신자들이었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지식과 신앙의 경험이 부족했다. 결국,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염려는 디모데를 자기 대신 데살로니가로 보내어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정을 알아오게 하였다. 2.2.2. 저 자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다. 그러나 본서가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위조자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주장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 본서가 바울의 다른 서신서들 보다 교리적 성격이 결여되어 있고, 율법의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생각을 공격치 않고 있으며 데살로니가의 새신자들이 불과 몇 개월 이내의 기간에 내외적으로 그토록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본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에 대한 격렬한 말(2:14-16)은 로마서의 글과 다르며, 너무나 바울의 성격과는 다른 글이므로 분명히 위조자의 글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본서 자체가 바울로부터 보내어진 것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으며, 전형적인 바울의 문필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본서에 사용된 어휘의 9/10이 다른 서신들 중에 나타나고 있으며, 바울의 특유한 어휘들이 발견되며, 다른 서신들 중에 나오는 교리와 배치되는 기록이 없으므로 바울이 본서의 저자임에 틀림없다. 또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인 이그나티우스, 오리겐, 터툴리안 등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다. 2.2.3. 저작장소 및 저작연대 2.2.3.1. 저작장소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쳤으며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는 아덴으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로 갔다. [아덴]에 체류하는 동안 바울은 교회의 형편을 확인하기 위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냈으며 [고린도로 이동하였고] 디모데가 고린도로 돌아와 전한 보고를 접하자 즉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고린도에서 썼다. 2.2.3.2. 저작연대 본서의 저작연대는 본서의 문안의 기록(살전1:1; 살후1:1)을 볼 때에 제2차 전도여행때로 본다. 더 자세한 연대 추측을 위해서는 델피에서 발견된 碑銘(비명)으로 알 수 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갈리오의 법정에 끌려 왔었다(행18:12-17)고 하는 성경의 기록을 미루어 볼 때에 본 서신의 기록 연대를 A.D.52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2.2.4. 저작동기 및 저작목적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매우 짧은 기간동안 머물다가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몸소 갈 수 없음과 초신자에 불과한 마게도냐 교회 교인들이 그들의 친척들과 이웃 사람들로부터 당하지 않으면 안될 경멸과 조롱의 결과 우상숭배와 유대교에로 한없이 되돌아 가려는 유혹에 넘어가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그리하여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어서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온 소식은 그들이 바울의 염려와는 달리 굳은 신앙과 사랑과 소망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이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좋지 못한 소식도 있었는데 바울이 전한 말씀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시도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었고 이에 바울은 위로와 지도를 해야겠다는 동기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본서의 저작 목적은 바울 자신의 "인격"과 동기에 대한 비방 운동과의 정면적인 대결(1,2장)과 반가운 소식으로 말미암은 기쁨과 감사의 표현(3장), 잠자는 자들로 인해서 일어난 문제와 재림의 양상에 관련된 문제에 대한 해명, 그리고 그들에게 지도와 교훈을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본서를 쓰고자 하였다. 2.2.5. 수신자 본서의 수신지는 1:1에서 말하고 있듯이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이다.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과 다음과 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바울이 전도여행 중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여 다른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회당으로부터 전도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 회당에 출석하던 소수의 유대인들과 아주 많은 경건한 헬라인들과 데살로니가에 살고 있던 상류계급에 속한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많은 이방 우상 숭배자들이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에 의해 선포된 복음을 듣고 심정의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했다(살전1:9). 결국 이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이 되었던 것이다. 2.2.6. 내 용 2.2.6.1. 문안인사(1:1) 이 문안인사에서 이 서신을 보내는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등장하고있으며 수신자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2.2.6.2. 감사의 기도(1:2-10)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나타난 열매들인 믿음에 의해서 비롯되는 역사, 사랑에 의해 촉진되는 수고, 소망에 의해 고무된 인내들로 인하여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한 메시지와 메시지의 전달자들을 영접한 태도와 믿음의 전파, 성령의 역사 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2.2.6.3. 바울의 목자생활(2:1-12) 앞 부분에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모범적인 신앙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단락에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이 이처럼 성장하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감당한 바울의 헌신적인 목자적 삶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순수한 동기, 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독립적으로 필요를 채운 일 및 그들을 향한 자신의 깊은 애정을 강조하고 있다. 2.2.6.4.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말씀을 받는 자세(2:13-16)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이 증거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이고 복음을 위해 유대인들로부터 고난을 받음을 감사하고 있다. 2.2.6.5. 목자의 기쁨(3:1-13) 그리고 그들을 자신의 소망과 기쁨이며 자랑이라고 말하며 그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관심을 말하며(17-20),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낸 일을 말하고 있다. 이어서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굳게 섰다는 좋은 소식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자신에게 준 모든 기쁨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다시 하며 그들의 미래를 위한 기도를 한다. 2.2.6.6. 실제적인 권면들(4:1-12) 다음으로 바울은 그들의 실제 생활에 있어서 신자답지 못한 점이 있음을 알고 권면한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두신 뜻은 거룩함이므로 성결해야 하며, 형제들간에 더 많이 사랑하며, 근면하게 일을 할 것을 권면한다. 2.2.6.7. 주님의 재림(4:13-5:11)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먼저 간 성도들로 인해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기독교인들은 재림 사건에 동참할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을 통해 위로를 주고 있다(13-18). 또 재림의 시기에 관해서는 그 때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재림은 급작스럽게 임할 것이기 때문에 현재에 깨어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2.2.6.8. 기타 실천적인 권면(5;12-22) 사도 바울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권면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책임들(화목하며 게으른 자를 책망하고 약한 자를 돕는 등)과 영적인 의무들(기뻐함, 기도, 감사, 성령을 소멸치 않음, 선을 굳게 붙잡음 등)을 포함하는 일반적인 성격의 권면들이다. 2.2.6.9. 결론(5:23-28) 바울은 마지막으로 그들을 위해 다시 한번 기도하며 자기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사랑의 모습과 모든 형제에게 편지를 읽어주라는 명령으로 편지를 마치고 있다. 2.2.7. 평 가 본서에서는 다른 서신서에서 볼 수 없는 최후의 사실들에 관한 교리가 많이 발견된다. 특히 매 장마다 재림을 가리키는 언급으로 매듭지어져 있다. 재림을 갈망하는 초대 교회 성도들의 관심에 해답을 주기 위하여 종말론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한 서신서이다. ------------ 2.3. 데살로니가 후서 2.3.1. 배 경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설명은 전서에서 언급하였으므로 이곳에서는 데살로니가에 대하여 설명하도록 하겠다. 데살로니가는 현재의 살로니가만에 위치해 있었고 이 만의 높은 지대로부터 경사진 지점에 원형 경기장과 같은 형태로 세워진 도성으로서 이 거대한 도로상에 있는 모든 대소 도시들 중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곳이었다. 데살로니가는 주전 315년에 알렉산더 대왕 밑에서 군관으로 있던 카쌘더(Cassander)에 의해 세워졌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대왕의 모친 올림피아를 죽이고 그녀의 군대를 궤멸한 후 정치적인 배려로 대왕의 이복 여동생과 결혼하였는데 그녀의 이름이 데살로니가였다. 그리하여 그녀의 이름을 기념하여 이름 지어진 도성이 바로 데살로니가市가 되었다. 그후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수도가 되기도 하였으며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자유시로 만들었다. 이리하여 데살로니가는 상당한 자치권을 획득했다. 데살로니가인들의 대부분은 그리스인들이었고 따라서 문화는 그리스 문화였다. 그리고 상업도시였기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고 이들의 활동은 이방인들에게 영향을 끼쳐 일부 이방인들이 회당에 출입하게 하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였다. 2.3.2. 저 자 데살로니가 전서와 마찬가지로 본서 또한 전적으로나 부분적으로 바울이 기록한 서신임을 부정하는 주장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 살후2:1-12은 계시록에 나타난 말세론적 구절이므로 다른 서신서와는 다르며, 전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임박한 사실로 보고 있는데 후서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고, 죄의 사람(2:1-12)은 네로나 베스파시안 황제 또는 트라얀 시대 등을 가리키므로 바울이 본 서신의 저자일 수 없다. 그리고 전서의 내용을 많이 반복하고 있고 냉담하고 유대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문안의 말은 고의로 꾸민 위조자의 글이다. 그러나 외적증거로 유세비우스, 오리겐, 터툴리안, 및 뮤라토리 단편의 증언들은 본서가 바울의 기록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이레니우스는 본서를 인용하고 있다. 또한 본서의 기자에 대하여 논의가 있을 때마다 사도 바울이 기자로 여겨졌었으며 데살로니가 후서 자체의 내적 증거는 외적 증거와 완전히 일치하므로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 틀림없다. 2.3.3. 저작장소와 저작연대 문안의 기록(살전1:1;살후1:1)에 제2차 전도여행 때에 바울과 동행하였던 실라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제2차 전도여행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제2차 전도 여행 시에 빌립보에서 활동했다(행16:11-40). 그곳으로부터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로 갔고 이어서 아덴으로 갔다(행17장). 그리고 아덴으로 부터 고린도로 나아갔다(행18:1). 바로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디모데와 실라가 마게도냐로부터 도착했었다(18:1,5). 이는 데살로니가 전서에 있는 내용과 동일함으로 바울은 고린도에 있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본 서신의 기록 장소는 [고린도]로 보여진다. 데살로니가 후서가 데살로니가 전서 보다 나중에 기록되었다는 견해가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이유로서는 후서에는 전서에서 다루어진 문제들이 더욱 깊이 다루어지고 있으며, 데살로니가 후서에 나오는 이전 편지에 대한 언급(2:15,3:17)은 데살로니가 후서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서에 나오는 명령(4:1-12;5:12-28)이 있는데 후서에서는 이러한 명령들 주 일부가 더욱 강하게 표현되어 있고 명백한 지시가 있기 때문이다(3:6-15). 그러나 전서와의 간격은 데살로니가 전서가 데살로니가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회답이 고린도로 돌아올 정도의 수개월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옳으므로 데살로니가 전서의 연대를 A.D.52경으로 본다면, 데살로니가 후서도 같은 연대에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3.4. 수신지 수신지는 본서의 1:1에 나오듯이 데살로니가 교회이다. 2.3.5. 저작 동기와 저작 목적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데살로니가 전서는 여러 형제들에게 기쁘게 읽혀졌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제2의 서신이 필요했음이 분명해졌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이 여전히 박해를 당하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서 여전히 혼동이 있었다는 소식도 바울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훈에 순종치 않는 자들에 대한 처리와 고린도에서 많은 고난을 겪고 있는 바울 자신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기도해 주도록 요청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서신을 보내게 되었다. 첫째,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이 핍박 속에서도 경험하고 있는 영적인 성장에 대해서 감사를 표하고, 그리스도 재림 시에는 그들의 원수들은 벌을 받게 될 것이며 그들은 영광을 누릴 것이라는 보장으로 격려하기 위해서이다(1장). 둘째, 재림과 관련하여 잘못된 오해들을 진정시키고 재림이 있기 전에 반드시 일어날 어떤 사건들을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2:1-12). 셋째, 주의 날이 이미 지나갔다는 가짜 서신에 속지 않도록 경고하고, 문란한 자들에게 훈계를 주고, 교훈들에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이다(2:13-4:18). 2.3.6. 내용 2.3.6.1. 문안인사(1:1,2) 데살로니가 전서에서와 같이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문안인사를 하고 있다. 2.3.6.2. 핍박 중에서도 이기도록 격려(1:3-12)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여전히 어려운 핍박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핍박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핍박의 유익과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상기시킴으로써 격려하고 그들을 위한 소망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 2.3.6.3. 재림;동심하거나 흔들리지 말라(2:1-12) 데살로니가 성도들 중에 주님의 재림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바울은 주의 날은 이미 임한 것이 아니며, 불법의 사람이 먼저 나타나야 하며, 주 예수께서 재림으로 그를 폐하시고, 그가 패망하기 전에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심판 받게 될 많은 이들을 속이고 현혹하리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바른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2.3.6.4. 바울의 감사와 기도(2:13-17) 불법을 따른 자들과 대조하여 바울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선택하였음을 기뻐하며 이어서 그들이 가르침 받은 유전을 지키라는 권면을 하고 있다. 이 놀라운 사실 앞에 바울은 감사에 넘쳐 기도하고 있다. 2.3.6.5. 권면들(3:1-15) 바울은 그들에게 기도의 요청을 하고 또한 그들의 믿음을 깊이 인정한다(3:1-5). 이어서 게으름으로부터 말미암은 규모 없는 행동을 책망하고 있다(3:6-13). 이와 같은 그의 가르침은 바울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도 해당되며 그들을 원수로 생각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3:14,15). 2.3.7. 평 가 본서 또한 데살로니가 전서와 마찬가지로 종말론적 교훈이 주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전서보다 엄격한 교훈조이며 구약 성경을 배경으로한 유대적 색채를 띠고 있다. 특히 본서 중에는 주의 재림의 전조가 될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① 신앙심이 깊은 이들로부터 갑작스럽게 배교가 급증할 것이며, ② 어떤 견제적 영향이 옮겨질 것이고(2:6,7), ③ 사단에 의해서 생기가 불어 넣어지고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 위에 자신을 높여 대적할 악의 現身이 완전히 모습을 들어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가르침은 바울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 2.4. 고린도 전서 2.4.1. 배경 2.4.1.1. 고린도 市 고린도 시는 그리이스의 펠로폰네수스 반도에 있는 호머시대 부터 유명한 도시였다. 이곳은 두 바다를 연결짓는 항구를 소유하고 있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상업의 중심지로서 그리이스 최대의 도시였지만 그러나 B.C.120년에 로마의 뭄미우스(Mummius)에 의해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그후 씨이저(Julius Cesar)에 의해 재건되었다. 도시가 재건이 되자 상인들이 그리이스 전역에서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유대인들 역시 상업상의 편리함 때문에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이 후 고린도는 그 부와 예술, 문학, 사치 등으로 아카이아(Achaia) 지방의 수도가 되어 다시금 옛날의 영광을 되찾았다. 사도 바울이 이 도시를 방문하기에 앞서 이 도시는 그리이스의 영광이라고 할 정도로 위치에 와 있었고 세네카의 형제인 로마 총독 갈리오의 통치 아래 있던 시기였다. 2.4.1.2. 바울의 고린도 사역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에 아테네를 떠나서 혼자 이 도시를 방문하였으며, 마게도냐에서 온 실라, 디모데와 얼마 후에 이곳에서 합류하였다(행18:5). 이곳에서 바울은 아굴라를 만나 그의 집에서 함께 살면서 그와 천막 제조업에 종사하는 한편 회당에 나가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다. 이렇게 1년 6개월을 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으나 유대인들의 적대로 이 후에 아굴라, 브리스길라와 함께 동쪽에 있는 항구 도시 겐그레아로 갔다. 그리고 나서 겐그레아에서 동료들과 작별하고 가이사랴를 경유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잠시 그곳에서 머문 뒤, 안디옥으로 갔다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경유하여 다시 에베소로 갔다. 이곳에서 3년간 체류하면서 고린도 교회에 대한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고후 12:14의 기록을 볼 때에 고린도후서를 쓰기 이전에 바울이 최소한(스스로 세번째로 방문하고자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두번은<제2차전도때 한번, 그후 불확실한 시점에? 아니면 3차전도때 마게도냐 거쳐서 한번 더> 공식 방문한 것으로 보여진다.(아마도 3차전도여행시, 안디옥에서 에베소로(3년간 머무름), 에베소에서 드로아로, 이어서 마게도냐로(드로아에서 고린도전서를 받은 고린도교회 사정을 가져 올 디도를 기다렸으나 만나지 못하여 마게도냐로 건너감..거기에서 소식을 가져온 디도를 만났음), 마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 집필하기전에 한번 더 다녀왔다?> 고린도에 공식 방문하지 않았나 여기는 것이 타당함??...만약 그렇다면 그후 다시 고린도를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마게도냐로 돌아왔으나, 예루살렘에 오순절이전에 도착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인해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마게도냐를 떠나기 전에 고린도후서를 쓴 것으로 보임) 2.4.2. 저자 본서는 사도 바울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를 본서의 내적증거(1:1-3; 3:4,6)와 초대 교부들의 주장들이 증명하고 있다. 2.4.3. 저작 장소와 저작 연대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던 기간인 A.D.51년 7월에 세네카의 형제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으로 부임했으므로(행18:12), 바울이 고린도를 처음 방문하여 머물던 기간은 [제2차 전도여행중인] 50년 가을부터 52년 봄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18개월 동안 머물렀고, 그후 에베소, 가이사랴를 거쳐 안디옥에 들어가는 제2차 전도 여행을 마쳤다(행18:22). 그후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에 나서서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두루 경유하여 에베소에 이르렀다(행18:23,24). 에베소에서 약3년간(실은 도합 5년간?) 머물며 바울은 전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에 이 서신은 에베소에서 썼으며 그 시기는 바울이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겠다(고전16:5-9)고 말한 오순절 이전의 어느 시기에 기록되었다고 보여지므로 A.D.57년, 곧 바울이 처음 방문한지 5년 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2.4.4. 수신지 본서의 1:2에서 본서의 기록자인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고린도 교회를 수신지라고 밝히고 있다. 2.4.5. 저작 동기와 목적 에베소에서 바울은 3년간 머물면서 글로에의 집 편으로 들려온 소식(1:11)과 그들이 그에게 보낸 질문이 가득 담긴 편지는 바울에게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이리하여 바울은 기독교리의 교리와 실제에 관한 중요한 사항들에 대하여 답변하면서 교회에 발생한 여러 가지 죄에 대한 책망을 하고자 편지를 쓰게 되었다. 본 서신을 바울이 쓴 목적은 교회 안에서 허용한 죄들로 인해 그들을 책망하려는것과(1-6장),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그 생활의 근거가 되는 교리에 대한 그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었다. 2.4.6. 내용 2.4.6.1. 바울의 인사와 감사(1:1-9) 바울과 소스데네의 이름으로 고린도의 성도들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르는 모든 다른 자들에게 발송되었다. 특별히 이 교회가 소유한 영적인 은사들에 대하여 바울은 감사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끝까지 지키시리라는 확신으로 끝맺고 다. 타락하여 용납하기 힘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서도 감사할 것을 찾는 바울의 모습은 본받을만한 것이다. 2.4.6.2. 당파심에 대한 바울의 교훈(1:10-4:21) 1장 10절부터 6장까지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죄를 지적하며 책망하는 부분이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파라는 이름으로 당파가 있었다. 바로 이러한 교회의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보내심은 오직 복음을 전케 하기 위함이라는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있다. 즉 먼저 세상의 지혜와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대조시킴으로 참된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였다. 하나님의 역사 방법은 사람의 방법과 다르며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택하여서 하나님의 참 지혜를 전하신다(1:17-2:16). 그러면서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농업과 건축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의 분쟁은 자기가 서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데서 나왔음을 지적하고 세상의 지혜에 대해서는 미련한 자가 되어야 참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고 말하였다(3:18).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인정치 않자 이에 대해 바울은 그들에게 자기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겨야 한다고 말하면서(4:1-5), 그 이유는 그들이 교만하기 때문임을 지적하고 있다(4:6-13). 이러한 지적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고자함이 아니라 영적인 아버지의 입장에서 간절한 권면이라고 말하고 있다(4:14-21). 2.4.6.3. 도덕적 타락의 문제(5:1-13)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된 신앙에서 나온 근친상간의 문제에 대하여 그 범법자는 교회로부터 내어쫓아야 한다. 그 목적은 그로 죄를 회개케 하여 구원하기 위함이며 나쁜 도덕적 죄는 반드시 교회로부터 축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5:1-8). 그리고 범죄한 자들과는 사귀지 말 것을 권면하는데 이는 교회의 신앙을 지킬 목적이므로 그들과 깊은 영적 교제를 갖지 말라는 것이다(5:9-13). 2.4.6.4. 불신자들 앞에서의 송사(6:1-11) 교인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신앙 가운데 일어나는 일을 불신자들에게 의뢰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므로 믿는 사람들끼리 신앙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송사하는 것은 불의한 자가 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 없게 된다. 2.4.6.5. 도덕적 방종에 대한 경고(6:12-20) 여기에서 바울은 다시 음행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가를 말한다. 음행은 자기 몸을 자기 자신을 위해 즐기는 범죄이며 저주 가운데로 빠뜨리는 일이다. 성도의 몸은 자신의 몸이 아니라 주님의 피값으로 산 주님의 것이며 거룩한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므로 주를 위하여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사용해야 한다. 2.4.6.6. 결혼에 대하여(7:1-40) 먼저 혼인하는 문제와 독신으로 지내는 문제에 대하여 흑백 논리로 말하지 않고,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에 따라야 한다. 독신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독신으로 지내지만 정욕을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은 결혼해야 한다. 그리고 결혼한 부부는 서로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혼에 대하여서 이혼은 어떤 이유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며 믿지 않는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하면 함께 살고, 신앙을 이유로 갈리고자 하면 갈리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어떤 형편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든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다. 처녀의 결혼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만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며 더욱 주님만 더 잘 섬기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2.4.6.7.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8:1-11:1) 우상에게 한 번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가의 여부를 묻는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먼저 자기 지식을 자랑하지 말고 연약한 자를 사랑으로 세우고자 하는 기준에서 행해야함을 말하면서 우상의 제물의 문제에서 조그마한 자기 지식을 포기하지 않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기 자신은 얼마나 큰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포기한 이유(9:15-18)와 그의 신앙의 자세(9:19-27)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실패의 역사를 들면서 주님을 믿음으로 이제 모든 것에 자유하였으니 우상의 제물을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고 자만하는 자들은 그 교만으로 넘어지기 쉽다(10:1-13). 우상숭배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참여할 수 없다(10:14-22). 결론적으로 우상제물에 대하여 자기 지식으로 옳게 여기는 대로 행하거나, 자기 믿음의 분량껏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다 가한 것이 아니며 성도의 모든 행동 기준은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 유익과 권리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동해야만 한다고 답변하고 있다. 2.4.6.8. 공적 예배에 대하여(11:2-14:40) 먼저 교회 안에서의 남녀간에 있어야 할 질서에 대해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이 원리는 인격체의 우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세상에서의 질서면에서 말하는 것이다(11:2-16). 성만찬을 일반 음식과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면 심판을 받는 것이므로 자기를 살핀 후에 참예해야 한다는 성만찬의 바른 의미와 자세를 말하고 있다(11:17-34). 성령의 은사들에 대하여 바울은 이 모든 은사들은 성령의 주권적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것으로서 하나의 지체처럼 각기 다양한 은사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몸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12장). 그리고 여러 은사의 우열 문제로 문제가 된 고린도 교회에 교회와 남에게 가장 유익을 주는 사랑은 이 모든 은사들 보다 중요하다(13장). 그러나 이런 은사의 사용을 업신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은사를 사모하되 그 목적이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활용하라고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비교하면서 설명한다(14장). 교회의 질서는 이 모든 문제들, 그것이 은사의 사용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여성들의 사역에 대한 것이든 간에, 무엇보다도 핵심적인 것이다(14:26-40). 2.4.6.9. 부활에 대하여(15:1-58)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인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확실성에 대하여 답변을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 신자들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궁극적으로 부정하게 되며,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대한 부정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15:1-19). 그리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모든 신자들이 부활하며 만물이 다 하나님께 복종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어서 부활을 믿는 신자의 실제적 삶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를 말해준다(15:20-34). 죽은 자들이 어떤 종류의 육신을 장차 받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부활할 몸의 형체와 성질에 대해 답변한다(15:35-50). 그리고 부활에 대한 결론으로 부활은 사망을 이기고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하면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면 보장된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격려한다(15:51-57). 2.4.6.10. 헌금(연보)에 대하여(16:1-4)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헌금할 것을 말하면서 헌금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미리 준비하여야 하며 헌금 관리는 신실한 몇 사람이 하도록 권면한다. 2.4.6.11. 결론(16:5-24) 바울은 이제 서신을 마무리하면서 그의 전도 일정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간절한 권면으로 믿음 안에서 사랑으로 강건하게 서 있을 것과 주님 역사에 충성하는 일꾼들에게 복종하며 그들의 수고를 알아 줄 것과 주님을 사랑할 것을 말하면서 인사를 하고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선언하고 사랑의 확인으로 편지를 마친다. 2.4.7. 평가 본서는 고린도 한 교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교회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지침으로써 그 지도 원리는 깊은 영적 진리에 입각해 있다. 예를 들면 음행에 대하여는 교회가 기강을 바로잡아 그 죄를 저지른 사람이 회개할 때 회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13장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문학적 가치 또한 탁월한 서신이다. -------------- 2.5. 고린도 후서 2.5.1. 배 경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부도덕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라고 경고(고전5:9)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고린도 사람들이 이 편지를 잘못 이해하였다는(고전5;10,11) 사실을 전해 들음과 동시에 교회 내에 어떤 무질서가 있음을 글로에의 집을 통하여 들었다. 그 후에 그 교회의 대표들이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가지고 바울에게 도착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보냈다. 그 후 바울은 [제3차전도여행을 시작] 에베소에서 드로아로 갔다. 또한 거기서 마게도냐에 갔을 때 고린도의 상황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온 디도를 만났다. 이에 바울은 이전에 자신이 보낸 고린도전서와 디도의 보고를 듣고서 고린도후서를 썼다. 2.5.2. 저 자 본서의 저자가 사도 바울이라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없다. 본서가 저자를 사도 바울이라고 내증 있으며(1:1;10:1), 본서의 특징이 다른 바울의 서신과같다.그리고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이 서신을 인용하였고 바울의 서신임을 말하였다. 2.5.3. 저작장소 및 저작연대 제3차 전도여행이었던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며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를 쓴 후,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를 거쳐 마게도냐로 들어갔다(고후2:12,13). 바로 이때 마게도냐에 머물면서 쓴 서신이 본서이다. 그러므로 본서를 기록한 때는 고린도전서 16:8에 언급된 오순절 이전의 어느 시기에 기록한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후 늦어도 1년 이내이므로 A.D.57년 가을이나 이듬해인 58년 봄에 쓰여졌을 것이다. 2.5.4. 수신지 수신지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다(고후1:1). 2.5.5. 저작동기 및 저작목적 바울은 이전에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악행을 듣고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린도전서를 써 보냈다. 그후 디도를 보내 고린도 교회를 시정하고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만들도록 하였다. 그 후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디도를 만나기 위해 드로아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갔다. 그곳에서 디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고린도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시금 그들이 회개를 하였다는 좋은 소식과 함께 아직도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있다는 말과 바울을 오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의 오해를 풀고 거짓교사들에 대한 경고를 하기 위해 본서를 쓰게 되었다. 그러므로 본서의 목적은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오해에 대한 논박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회개한 대적들에게 동정심을 보이도록 권면하는 것이었다. 또한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러 갈 때 그들의 헌금이 순조로이 되게 하려고 편지를 썼다. 2.5.6. 내 용 2.5.6.1. 서론(1:1-11) 인사를 한 후에 바울은 자신이 주의 일을하다가 얼마나 큰 시련을 겪었으며, 그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고 오히려 환난을 통하여 얻게 된 평안에 대하여 감사를 표시한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도 기도로써 그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권면한다. 2.5.6.2. 바울의 계획(1:12-2:17) 고린도 방문 계획을 변경함으로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오해를 받은 바울이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즉 변경한 이유는 고린도의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설명하였다. 오히려 바울의 방문이 지체됨으로 인해 대적자들이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들에게 동정심을 베풀라고 권면한다. 2.5.6.3. 사도의 성격(3:1-7:16) 고린도 교회 내에서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의문을 갖는 자들이 더러 있었다. 이들에게 자신은 모세와 같은 구약의 일꾼이 아니라 새 언약의 일꾼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 복음이 율법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설명하고(3:6-18),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직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감사와 자부심으로 자신이 전한 복음은 예수의 주되심을 증거한 것이며, 계시된 복음을 증거한 것이라고 말한다(4:1-6). 그리고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의지하고 자신을 질그릇으로 인정한다(4:7-12). 그러나 더 큰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으로 화목케 하는 말씀을 전해야 한다. 신자와 불신자의 구별된 삶을 말하고 구별된 삶을 살라고 말한다(6:14-7:1). 그리고 이전에 죄를 지은 사람에 관한 심한 책망의 편지를 쓰고 근심했는데 오히려 그 책망이 받아들여짐으로 커다란 영적 유익을 얻었음을 말한다(7:2-16). 2.5.6.4. 헌금계획(8:1-9:15)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고린도 교회를 동참시키고 있다. 헌금에 대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 마게도냐 교회의 모범을 상기시키고, 헌금의 원리, 관리, 준비, 유익 등을 설명하면서 권면하고 있다. 2.5.6.5.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10:1-13:10) 거짓 선생들이 바울을 비난하고 무시하고 자신을 과시하는 것을 듣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즉 자신의 '외모의 초라함'과 '약함'에 대하여, 신령한 참 '능력'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판단'을 잘 대조하며 답변한다. 또한 강한 어조로 거짓 선생들을 공격하고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한다. 특히 자신이 교회를 위해 당한 갖은 수난과 행적을 자세히 열거하며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의 신비 체험을 오히려 약점으로 들어 자랑하면서 이 모든 것의 자랑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 곧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것을 말하면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진리에서 떠난 자들이 계속 회개를 하지 않으면 엄히 다스리겠다고 말한다. 2.5.6.6. 결론(13:11-14)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와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빌어 주면서 본서를 끝맺는다. 2.5.7. 평 가 본서는 다른 서신들이 보여주지 않는 바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울이 교회 안에 있는 반대자들에 의해 비난을 받은 점과 자신의 신비체험에 대한 간증과 육체의 약점, 등이 보이고 있으며 이에 대한 답변과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기 위해 취했던 그의 강한 어조가 돋보이는 서신이다. 한편 바울의 자서전적인 특징으로 인하여 본서는 바울의 연구에 대한 가치 있는 자료가 되고 있으며, 주관적인 성격의 서신이며, 그리스도의 환난을 강조하고 있는 서신이다. ----------- 2.6. 로마서 2.6.1. 배 경 2.6.1.1. 로마교회 로마교회의 기원은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에 로마를 방문한 적이 없으며 그가 로마서 15:20에서 다른 사람의 터 위에 세우지 않는다고 말함을 보아 이미 로마의 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함께 갔던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들"(행2:10)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돌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이 로마의 교회는 신자들 가운데서 자발적으로 시작했던 인물이 있었을 것이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아마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의 혼합된 하나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색채는 이방적 요소가 강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바울은 본서의 초두에서 그들을 이방인으로 분류했으며(롬1:13), 바울의 로마방문 기사에서 보여 주듯이 그곳 유대인들마저도 기독교 진리에 대해 전연 무지한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6.2. 저 자 로마서를 기록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롬1:1).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자기들의 편지에서 본 서신을 인용함으로써 본서가 바울의 서신임을 말해 주고 있으며, 초대 교회 이후로 이점에 관하여 의문이 제기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한 기록자는 자신을 사도 바울로 말하고 있으며(1:1), 바울이 기록한 다른 서신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도 로마서에 담긴 교리적인 내용들은 사도 바울에게 늘 나타나고 있는 전형적인 내용들임을 볼 때에 본서의 기록자가 사도 바울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6.3. 저작 장소 및 저작 연대 2.6.3.1. 저작장소 바울은 로마 교회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좌절되었다(15:21,1:13). 그 당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모든 지역에 전한 후에 예루살렘의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모금을 방금 마친 상태였다(15:22). 그리고 그 편지는 세 번째 선교 여행을 위하여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다음 해에 쓰여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면서 이 편지를 썼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이러한 증거로서 바울이 "겐그레아 일군"으로 지칭하는 뵈뵈를 천거하고, 고전1:14에서 언급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인 가이오의 인사(롬16:23), 에라스도의 문안인사를 들 수 있다. 특히 에라스도에 대하여 딤후4:20에서 "고린도에서 머물렀고"라는 말씀이 있는 것으로 보아 로마서가 고린도에서 기록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6.3.2. 저작연대에 대하여 저작연대를 잡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바울이 최초로 고린도에 체류한 것은 제2차 전도여행(행15:36-18:22) 동안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짧은 체류기간 동안에 이렇게 긴 서신을 저술하기에는 힘들다고 볼 때에 행20:3에 기록된 아가야(그리이스)에서 있었던 3개월에 걸친 전도의 막바지인 제3차 전도여행 중 세 번째의 고린도 방문기간(행18:23-21:16)에 로마서를 기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의 전 기간을 53/54-57/58년으로 추정할 때에 로마서의 저작 연대는 그가 고린도를 출발하기 직전인 57년 또는 58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2.6.4. 수신자 본서의 수신자는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다. 그러나 로마교회의 구성원들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는데 윌리엄 맨슨은 바울이 구약성경에 호소하는 것으로 보아 이 서신의 전체적 주장은 이방인보다는 유대인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J.Munck는 주로 이방인들에게 보낸 서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로마 교회는 어느 한쪽이 우세한 하나의 혼합된 공동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바울 당시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로마 교회에 속해 있었지만 로마 교회가 이방인 세계의 가운데 있다는 "너희 가운데"라는 표현을 볼 때에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의 정확한 비율은 알 수 없지만 로마 교회의 대다수가 이방인인 성도로 구성되었음이 타당한 것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로마서의 저자인 바울은 그가 편지하고 있는 그들 가운데 유대인과 이방인 중 어느 편이 더욱 많은가 하는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의 강조점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죄 아래" 있으며 모두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 있으며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이들의 조상임을 말하고 있다. 2.6.5. 저작동기와 저작목적 바울은 이제 제3차 전도여행의 종착점에 도달하였다. 그는 몸소 로마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복음이 전파되면서 이곳에 친구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수년 동안 가져왔던 소망인 로마에 가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 때문에 곧 바로 갈 수 없어 구제헌금을 전달한 후에(행24:17), 로마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바울이 로마서를 저술한 목적은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그는 먼저 동료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 그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고자 저술을 하였다(롬1:11). 그리고 개인적 상면의 대용물로서 서신의 수단을 통하여 로마교회와 교제를 갖기 원하여서 쓰는 것이다. 또한 목회적인 관점에서 불신자들의 공격에 어떻게 방어하고 이겨내야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신학적으로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 대한 지식을 주기 위해서 썼다. 마지막으로는 바울 자신의 서바나에로의 여행과 관련하여 로마 교회의 협조를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본서가 쓰여졌다고 본다. 2.6.6. 내 용 바울은 이신칭의의 교리가 실제적이며 필요한 것이고(1-3장), 성경적이며(4장), 효과적인 즉 열매를맺는 것(5-8장)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후에 9-11자에서 역사의 노정에서 하나님의 가장 귀중한 약속이 신앙하는 남은 자들을위하여 의도되었고, 그들 안에서 실현되었다고 말하고있다.그리고 12-16장에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실제적인 적용을 담고있다. 2.6.6.1. 서론(1:1-17) 바울은 서론에서 로마 성도들에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은 자로 소개하고, 로마 성도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서론부 마지막에는 로마서 전체의 주제이며 요절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고 있다. 2.6.6.2. 하나님의 의의 필요성(1:18-3:20) 1:18-32절은 이방인의 죄로서 이방인들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알았지만 고의적으로 감사치도 않고 영화롭게도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을 내어 버려두셨다라고 말하고 있다. 2:1-3:8절에서는 유대인의 죄를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방인을 판단하며 비방을 하지만 오히려 같은 일을 행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의를 주장하는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모습과 할례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고 할례라는 의식만 자랑하는 형식주의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유대인들을 지적하자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라는 질문에 유익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이용하여서 구속계획을 성취하셨는데 이는 불의를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참되심과 선하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리고 불의한 자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서 하나님은 결코 일부러 불의하게 만들어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불의를 섭리하여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시는 것 뿐이다. 앞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죄인임을 말한 바울은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3:9-20절에서 선언하고있다. 2.6.6.3. 하나님께 나아가는 의의 길(3:21-5:21) 1:18-3:20에서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밝힌 바울은 이제는 새로운 구원의 길이 나타났음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죄악된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어서 절망적이었는데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므로 믿음에 의한 구원의 길이 나타났음을 말하고 있다(3:21-31). 이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 없이 미치며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이미 구약에서부터 증거되고 있음을 믿음으로 의롭다함 받은 아브라함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4:1-25). 그리고 5:1-11에서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복은 하나님과의 화목임을 말한다. 그 근거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그리스도에 있다. 5:12-21에서는 첫 사람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떻게 오늘에까지 의롭다함(구원)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2.6.6.4. 죄에서 해방됨(6:1-8:39) 사도 바울은 의롭다함을 받은 자와 죄와의 관계를 6장에서 밝히고 의롭다함을 받은 자와 율법과의 관계를 7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6장에서는 사도 바울은 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어떻게 죄에서 벗어나 거룩하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사용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의의 병기로 사용해야 한다.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를지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한다. 7장에서는 의롭다함을 얻은 신자는 율법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그 내면의 동기와 목적을 바로 알아 그리스도 아래 있으므로 강제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지키고자 하는 성도에게 부딪치는 내적인 투쟁을 치열하게 마지막에 기록하고 있다. 8장에서는 성령을 통한 해방을 말하고 있는데 성화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좇아 행할 때 가능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은 오히려 고난에 직면해야 되는 삶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이루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2.6.6.5. 이스라엘에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9:1-11:36) 본 단락에서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문제를 포함하여 전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밝히고 있다. 즉 많은 특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이 배척함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어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없이 선택한 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9:30-10:21에서는 인간의 책임편에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다루고 있다. 11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많은 수가 실패했지만 여전히 남은 자가 있음을 말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면서 교만하지 말고 거울로 삼아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경륜의 비밀을 밝히고 있다. 2.6.6.6. 의의 적용(12:1-15:13) 1-11장에서 기술한 교리의 윤리적 적용에 대한 내용이다. 구원 받은 신자는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취할 태도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이 원수와 불신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리고 믿음 없는 사람들과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도의 거룩한 공동체를 위한 태도에 대하여 말을 하고 있다. 2.6.6.7. 결론(15:14-33)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전도의 계획을 말하며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2.6.6.8. 추신(16:1-27) 사도 바울은 동역자의 이름을 일일이 들어가며 문안하고 있다. 그리고 이단에 대한 경고를 하고 게시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붓을 놓고 있다. 2.6.7. 평 가 본서는 바울의 다른 어느 서신들보다도 더 풍부하고 더 조직적인 기독교의 중심적 견해들을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바울 서신들은 성질상 논쟁적, 교정적인데 반해 본서는 주로 교육적이다. 즉 본서는 오랫동안 기독교 신학을 받쳐온 地主가 돼왔으며, 칭의, 전가, 수양, 성화와 같은 신학적 전문용어들은 본서의 어휘들로부터 전용된 것들이며 이 서신의 논증적 구조인 선교적 목적을 위한 논리 역시 기독교 사상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바울은 불같은 어조로 복음을 비방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옹호하는 갈라디아서와는 달리 로마서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죄인을 위하여 율법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충분하고 값없이 주시는 구원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 2.7. 골로새서 2.7.1. 배 경 골로새 지방은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市들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리쿠스 강의 협곡을 내려다보는 바위로 이루어진 산의 정상, 아시아의 오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전 5세기 경 페르시아 전쟁 기간 중에는 상당한 중요성을 가진 읍이었으나,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가 도시로 발전되 어감에 따라 골로새의 상업은 사양길을 걷고 있었다. 그곳은 특히 인근에 언덕으로 된 시골에서 목동들의 손으로 길리워진 양떼들로부터 얻어지는 검은 윤택이 나는 양모 때문에 중요시되어 왔다. 바울 당시에도 아직은 웬만한 크기의 도시로 남아 있긴 했었으나 이미 퇴폐기에 접어 들어 있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 때 브루기아 지방을 지나가긴 하였지만 그가 직접 골로새나 그 인근 도시들을 방문했다는 정확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방문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바울은 그곳 사람들이 "그의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골2:1)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골로새는 바울이 아시아에 체재해 있는 동안 아마도 디모데나 에바브라(골1:7)에 의해서 복음화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파하고 있을 때 여러 곳을 순회중이었던 것이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잡다한 신들을 숭배하는 브루기아인들이 사는 도시였으며, 행2:10에 '브루기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기록되었음을 볼 때 이미 이 도시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들(행2:5)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전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이러한 배경들을 살펴 볼 때 골로새에는 기독교의 반대 세력이 많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바울 역시 본 서신에서 그러한 사실들을 암시하고 있다(2:8,16,18). 2.7.2. 저 자 본서의 기록자는 사도 바울이다. 내증으로 본서 자체도 기록자가 '바울'임을 밝힌다(1:1,23;4:18). 뿐만 아니라 본서의 문체나 용어 역시 바울의 다른 서신인 에베소서와 비슷하다. 또한 본서는 바울이 쓴 빌레몬서와도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골4:1-14과 몬23,.24). 외증으로 초대교회의 지도적 인물들도 본서가 바울의 기록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순교자 저스틴, 이레니우스 등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2.7.3. 저작 장소 및 저작 연대 에베소서와 빌립보서, 빌레몬서처럼 골로새서도 옥중서신에 속한다. 그러므로 한 서신의 저작 시기와 장소가 대체적으로 네 서신들 모두의 시기와 장소를 결정한다. 바울은 이 서신을 쓸 때 죄수의 몸으로 있었다(골1:24;4:3,10,18). 그 장소에 대하여는 가이사랴에서 썼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행24-26장을 살펴 보면 가이사랴의 감옥생활과는 일치되지 않으며 오히려 로마에서의 생활과 조화를 이룬다(행28:30,31). 그리고 에베소의 감옥에서 쓰여졌다고 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를 인정할 때에 누가가 바울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누가가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갔었다는 행27:1과 28:16의 말씀을 통하여 로마에서 쓰여졌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저작 시기는 A.D.61-63경인 듯한데 아마 이 시기의 중간쯤에 썼을 것이며 빌립보서 보다 먼저 썼을 것이다. 2.7.4. 수신자 수신자는 1:2에 저자가 기록한대로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임에 틀림이 없다. 바울이 직접 골로새 교회를 세우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동역자인 에바브라에 의해 세워졌으므로 골로새 교인들은 바울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바울은 에바브라의 권위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 그들에게 편지할 수 있었다. 2.7.5. 저작 동기 및 저작 목적 당시의 골로새는 혼합종교가 만연하던 도시였다. 따라서 교회는 이교주의적인 물결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으며, 또 유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혼돈 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에바브라를 통하여 알게 된 바울은 그러한 이단적 사조에서 골로새 교인들이 벗어나야 될 것을 염려하며 이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러므로 본 서신을 바울이 쓴 목적은 골로새인들에게 영혼을 파멸케 하는 이전의 악한 행실로 되돌아 가지 말도록 경고하고(골1:21,23;3:5-11),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구세주(2장)로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해결책이란 것에 대하여 경고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 그리고 골로새인들의 관심을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에게로 돌려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고 경배하게 하기 위함이다(1:13-18;2:8,9). 또한 에바브라에 대한 존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도 썼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용서와 자비의 덕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바울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위격과 관련된 교리적인 문제와 기독교인의 삶과 관련된 실천적인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2.7.6. 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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