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1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행18.고린도[아굴라부부, 디도유스도, 회당장그리스보, 회당장소스데네]_에베소[아굴라부부] 정착_가이사랴_안디옥 복귀_[3차여행]갈라디아/브루기아..아굴라[에베소_아가야(고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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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8장


==하나님의 확실한 인정, -로 여기다 reckon, consider, set down....헬라어[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 = 히브리어[하샤브]

[롬4:1-5...*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마귀는 오늘도 계속 정죄감을 심어 주려고 한다.. 죄책감에 묶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셨던 보혈의 은혜보다 자신의 죄가 더 커보이도록 영적인 눈을 가리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의 감격 죄사함의 기쁨 하나님의 자녀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도록 만들려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는 훨씬 더 크다.. 그 은혜 안에는 죄로 인한 정죄가 없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의롭다고 칭해 주셨다.. 그런데도 마귀는 아니라고 한다.. 잘못믿고 있다고 조롱한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으로 인해서 의롭다고 <여겨 주시며> 칭해 주셨다..  이는 참된 영적인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완성해 주셨던 사랑의 법칙이니..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겨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여겨 주시며 천국 백성으로 받아들여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여기다"를 뜻하는 헬라어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 신중하게 결정내리다 확정하다 결론을 내리다 생각하다 추정하다 = 그렇게 이미 획득한 것으로서 그것을 발휘하며 살아야 한다(=계좌에 현금 이체 해 둔 것처럼!! 네가 찾아서 필요한 데에 적절하게 쓰라...있음에도 마치 없는 것처럼 사장시키지 말고 필요한데 쓰라!!. = 생생하게 발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주님 그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적용하여 친히 깨닫게 하사 이끌며 동행하실 바 그 다음 행보로 나아가 믿음의 그 능력을 체득하라)는  의미... 그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오류도 없는 확실하게 결론 내리는 것을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라고 한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서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를 자주 사용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죄사함을 얻게 하시고 의롭다고 칭해 주시며 자녀로 삼으시는 은혜에 대해서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를 사용했다... 더 이상의 반론의 여지가 없는 진리 중의 진리인 것을 확정하는 것이다..

---------- ////: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롭다 여겨주시는 로기조마이의 은혜.//// 

[롬 4:18-25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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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하샤브) ...생각하다, 계획하다, 간주하다, 판단을 내리다, 계산하다

.....하샤브(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생각하다, 계획하다, 평가하다, 간주하다, 판단을 내리다, 계산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개념은 사고 활동에 있어서의 정신의 일이다. 이 단어는 '이해력' 보다는 새로운 사상의 창조를 언급한다.

(a)  하샤브는 '계획하다, 고안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개념은 사람과 하나님 모두에 관련하여 사용되며, 이것은 칼형과 피엘형 모두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은 형제에 대하여 악을 '도모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슥 7:10).

단 한 구절, 창 50:20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모두 언급되어 있으며, 여기서 요셉은 이 단어를 두 번 사용한다: 즉 그의 형제들이 일찍이 그를 대할 때 악을 '의도하였지만'('계획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을 위하여 '의도하셨다'('계획하셨다').

(b)  하샤브는 '판단을 내리다' make a judgment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 역시 사람과 하나님을 언급하여 사용되며 칼형과 히필형으로 나타난다. 잘 알려진 구절, 사 53:4에서 이 의미를 전달한다: "...우리는 생각하기를(판단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매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는) 나를 대적으로 여기사(판단하사)..."라고 욥이 외치는 욥 33:10에서 하나님께서 주어로 나온다. 니팔형은 단순히 칼형의 수동태이다.

(c)  하샤브는 드물게 단순히 '마음으로 생각하다', '숙고하다' meditate(칼형과 피엘형)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말라기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들에 대하여 칭송한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다윗이, 하나님께서 그를 '생각하심'에 대하여 인간의 정체를 고려해 볼 때 놀라움을 나타내는 곳에서(시 144: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피엘형이 사용되었다(의미상 어떤 뚜렷한 구별은 없음).

(d)  하샤브는 '~의 탓으로 돌리다, 전가하다, 간주하다, 여기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사실상 '판단하다'의 특수한 의미이다. 

이 의미로는 칼형으로 3회, 니팔형으로 3회 나오며, 후자는 단순히 수동형이다. 이것도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 대하여 언급한다.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한 후에, 죄를 자신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다윗에게 간청한다: "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삼하 19:19).

보다 더 의미심장하게, 하나님께서 '(죄 따위를) 돌린다'고 언급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으며 하나님은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돌리셨다' imputed)(창 15:6, 롬 4:3).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죄를 '돌리지' 않은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한다(시 32:2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롬 4:8).

(e)  하샤브는 '발명하다', '창안하다' to invent이며, 칼형으로만 사용된다. 

이것은 장막의 우두머리 건축자로 하나님에 의해 선택 받은 브살렐과 관련하여 사용되는데, 금과 은과 놋을 이용하여 공교한 것들을 '고안해 내는' devising('발명하는' inventing) 그의 일의 일부를 묘사한다(출 31:4, 출 35:25, 출 35:35). 유다 왕 웃시야는 영리한 사람으로 하여금 전쟁 기계를 '발명케 하여' 예루살렘에 배치해 두었다(대하 26:15).

(f)  하샤브는 '계산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피엘형으로만). 

이 단어는, 노령의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시대에 성전 수리를 행하였을 때, 일하는 자들이 정직했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돈(은)을 사업계획과 연관시켜 일하는 자들과 함께 '계산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모세 율법에서 다가오는 희년에 비추어 소유지와 산물의 변동 가격을 계산하는데 필요한 '계산' accounting에 관하여 몇 회 사용되었다(레 25:27, 레 25:50, 레 25:52, 레 27:18, 레 27:23). 

(g)  단 한번 나오는 힛트파엘의 용례는 단순히 두 번째 지적한 '판단하다'라는 의미의 재귀적인 용법이다(민 23:9).


===바울이 (환상 중 나타나신 주님 말씀 인해 아덴에서의 실패느낌/눌림에서 회복됨) 고린도에서 전도하다

......고린도는 코린트 문화 양식에서 보듯이 구약의 소돔과 고모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 어느 시대, 어느 곳보다도 성적 타락과 부도덕, 곧 퇴폐와 향락의 극치를 보이고 있었다...물론 현 시대의 어떠함은 당시 고린도나 에베소 보다 더한 것도 사실이다..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생업 위해 + 그리스도를 나누기 위해)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성령의 백성]○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빌립보-데살로니가-베뢰아 교회로부터 보내준 선교 헌금을 가지고 옴)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생계 위한 천막 만들기를 중단하고 날마다 온종일)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Q 말씀에 붙잡혀(헬라어 '쉬네코'(συνέχω) : Q경륜 이루실 바!!, 열어 부어주시는 Q말씀에 완전히 자신을 열어드림+동시에 그 말씀 주시는 Q 온전히 붙잡아 하나 됨 --전존재를 이끄심의 말씀에 맡겨드림으로써 그분을/그분의 길 따라 좇아감)...보혈-말씀-성령과 생명공동체에 (기쁨으로!!) 강권함 받아들여 붙잡힘의 "수동태"의 "빠져들어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됨"의 축복이여(-주부적 관상에서 보듯)...주께서 말씀하시게 하라... 바울은 동시에 상호붙잡힘contemplation을 강조하는바, 주님께 빠져들라: 연합한 하나, 주와 합한 한 영됨 [고후6:17.."주와 합한 자는 한 영이니라"]

.....'강권하다'의 헬라어 '쉬네코'(συνέχω)란 단어의 어원은 σύν (쉰)과 ἔχω (에코=오이코스, 집-가정, 오이코노미아는 경륜)란 단어의 합성어.... '쉰'은 전치사로 '함께'(with)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에코'는 동사로 '가지다, 붙들다, 강권하다"....수동태이니  "말씀에 붙잡히다"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도다.” 여기서 ‘강권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쉬네코’인데, 이는 ‘통제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쉬네코’를 ‘control’로 번역한다.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고린도후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고후 5장17절에 나온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새로운 삶의 체계를 따라 산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 새로운 피조물은 사람을 죽이는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성령으로 산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5절)....사도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사실인데 이것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아덴에서의 실패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아덴 사역이 왜 실패하였던가?  아덴에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했지만, 그러나 아덴의 학문적 풍토를 의식한 탓으로 지나치게 자신의 지식과 헬라철학을 의존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덴에서의 전도를 통해 '전도란 사람의 말과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전에도 바울에게 이런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덴 사역 이전까지 그것은 이론적인 이해였다. 그는 어느 정도, 사람의 설득력이나 지혜, 또는 언변이 복음의 결실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덴 전도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내리는 결단에 자신의 언변이나 지식, 지혜가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일으키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신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에 이르러서는 전혀 자신의 지혜를 의존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님을 전했다.

사도 바울은 이때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고린도전서 2:1-5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것은 그가 진정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만을 신뢰하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창11:20-르우는삼십이세에 스룩을 낳고]--스룩의 뜻은 ‘(칭칭 감는)넝쿨, 매우 단단한 힘’..... 이것은 세상과 분리되고 하나님과 관계를 개선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의 영혼을 담장의 넝쿨처럼 칭칭 감아 함께 얽히게 함으로써 세상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는 분리의 역사가 가능케 된다(요 15:7). 성도가 제 힘과 의지로는 세상과 분리될 수 없고,. 오직 말씀과 기도로만 거룩해지며(딤전 4:5), 그 위에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이 은혜로 부어질 때 분리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이 성도를 붙잡으시는 ‘매우 단단한 힘’이다.

고린도후서 5:14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강권하시는도다”라는 단어의 난하주를 보면 ‘끄는도다’라고 해석되어 있다. 표준새번역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강권하시는도다”는 헬라어로 ‘쉬네코’이다. 이 단어는 ‘단단히 붙잡다, 사방에서 소를 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아서, 목자가 소를 몰듯이 주님이 우리를 몰아 전진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이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은혜인 것이다(롬 8:30). 하나님의 사랑의 고집은 세상의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꽉 붙잡고 억제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복음전파라는 그 어려운 성역을 쉽게 걸어갈 수 있었다. 오직 한 분, 그에게 사랑을 쏟아 주시는 하나님이 만족하실 때까지 그분에게 집중하였던 것이다. 그 사랑이 너무도 강하여 전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사랑이 너무도 강하여 온 몸 바쳐 끝까지 충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랑이 너무도 강하여 가진 재산, 가진 명예, 가진 지식도 모두 내려놓았다. 예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 앞에서 모든 것이 바울에게는 배설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빌 3:8). 그 사랑이 너무도 강하여 로마에서 생명까지 기쁨으로 바쳤던 것이니,,, 그렇다. 참된 의미에서 제대로 된 "세상-롓자아-죄성/육신과 분리 , 곧 서로에 대해 십자가에 못박힘"이란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일지니... 그러면 분리의 아픔, 분리로 인한 고난, 분리로 인한 인간적 손해가 아무리 엄청날지라도 아까운 것이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살 때는 분리의 길이 순교의 길이라 해도 기쁨으로 그 길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리라.

........[마13:10-17...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말씀을 사모하며 성령 앙망하는))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피스튜오의 사람마다, 파라람바노 자각하라..상호 사로잡힘의 하나됨/생명 교통 공급..카타람바노 이루라..그분의 충만에 이르도록!!..그분을 디오코 하라/그분의 길 따라 좇으라))빌3:12..내가 이미 얻었다(람바노..얻다/획득하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텔레이오오..완성/성취하다) 함도 아니라.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카타람바노)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카타람바노) 달려가노라(디오코.[헬>디오코...) 뒤쫓다/run after, 추적/추구하다 pursue, 박해하다 persecute]....주께서 지혜와 계시 말씀으로 열어보여 주심 통해 [길-진리-생명-빛-은혜] 깨달아 알아채도록 하신바, 너무나 엄청나고 커서 도저히 감당못할만큼 큰 구속의 은혜와 그분의 말씀에 전존재가 사로잡혀 주와 합한 영으로 하나되어 말씀의 그 능력으로 살며, 게다가 위에서부터 부어주시는, 엄습하는 파도처럼 그러나 잔잔히, 늘 충만하여 넘쳐나도록 끊이지 않고 공급해 주시는, 쏟아지는 폭포수나 소낙비 같은, 불러내신 그분의 뜻 이룸 위한 충만한 은혜 늘 새로이 부어주시는 주 성령님을, 오늘 지금!!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여 전적으로 의지하며 붙듦으로써 (이 세상에 보내신) 그분이 뜻하신 목적 그대로 그분 빼어닮아가며, 맡기신 사명 끝까지 완수하고자 함.. 

...[요1:5, 9-14...*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0 절: 알다..--(히)야다(알다)--라아/하자(보다)--샤마(듣다)..(헬)기노스코..시각적 경험으로 지각하여 인식하다/알아차리다--확인/확증하다/낳다--이해/해석/판단/결정하다

---11절의 ‘영접하다’ = παραλαμβανω(파라람바노).. '옆에' παρα(파라) +'람바노'(받다) = (믿음으로써) 아래 있는 내게로 끌어당겨 받아(붙잡아) --내 영혼몸 전존재와 하나됨 만들어 의지하며 살다.


@@카타람바노) 붙잡다/따라 잡다, 이해하다/깨닫다, 압도하다/이기다/사로잡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카탈람바노(Homer 이래)는 전치사 카타(katav, 2596: 아래로, ~에 대하여, ~에 따라서)와 람바노(lambavnw, 2983: 취하다, 가지다, 받다)에서 유래했다. 

카타는 원래 '위로부터 아래로'이며 따라서 카탈람바노는 완전히 단순형을 강화한 것이다.

(a)  능동태로 (특히 적대적 방법으로) '붙잡다, 단단히 쥐다',  (b)  '~에 빛을 비추다, 따라 잡다',   (c)  '파악하다, 참으로 이해하다',   (d)  '굳게 잡다',  (e)  중간태로 ① 자신을 위해 요구하다, ② '파악하다, 이해하다'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카타람바노는 70인역본에서 126회 나오며, 히브리어 나사그(5381: 도달하다, 미치다, ~에 뒤따르다, 창 31:25; 레 26:5; 신 19:6; 삼상 30:8; 왕하 25:5), 라카드(3920: 포획하다, 붙잡다, 취하다, 민 21:32; 삿 7:24; 삼하 12:26; 잠 16:32; 사 20:1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70인역본에서 카탈람바노는 '붙잡다, 취하다, 놀라다, 갑자기 만나다, 압도하다, 빼앗다, 지각하다, 헤아리다, 이해하다, 따라잡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카타람바노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고전 헬라어나 70인역본의 개관을 통하여 이미 드러난 요점은 카타가 단순형에 강력함(힘으로 붙잡음, 막 9:18)이나 갑작스러움(놀라움, 살전 5:4)의 성격을 부여해준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요 8:3 이하; 예수님의 죽음 이후의 때에 대해, 요 12:35). 이 용어의 인식론적 성격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만을 제외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이 동사는 롬 9:30에서 믿음에서 난 의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역설적으로 아무 노력없이 얻는다는 면에서 '최종적으로 획득하다'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바로 다음 구절에서처럼 '~에 비추거나 따라 잡는다'는 요소가 인지됨). 또 빌 3:12; 빌 3:13에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말미암아 잠정적으로 나타나고 부활로 말미암아(영적인 몸으로) 완성된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친교의 측면에서 그러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친교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하고 그것을 따라잡으려고 분투해야 하며, 결국에는 ejxanavstasi", 1815(부활)에 그것을 소유할 것이다. 

그것은 부활을 통하여 종국적으로 완성될 때까지 믿음의 삶 가운데서 매일 매일 새롭게 확인되어야만 한다.

빌 3:12c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이 사망과 부활의 친교 속으로 완전히 끌어 들이신다.

고전 9:24은 그리스도인들의 승리의 면류관, 즉 이 친교의 완성 = 조에 아이오니오스에 대해 말한다. 

또한 '압도하다, 눌러 버리다, 제압하다'라는 부정적 의미로도 사용된다(요 1:5).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어둠은 빛을 이기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 빛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 안에서, 로고스 안에서 나타난 새로운 궁극적 생명이다. 

어둠은 그분의 빛의 능력을 사라지게 할 수 없었다. 이 빛의 존재 자체로 말미암아 밤의 영역 전체가 정복되고 그 능력을 빼앗긴 바 되었다.

중간태로는(지적인 영역에서만), '확증하다'(행 4:13; 행 25:25), '기본적으로 이해하다, 마음 속에 전유하다'(행 10:34; 엡 3:18; 온전히 충만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위대함을)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G. D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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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는 것<카타람바노καταλαμβάνω>이 이기는 것
[요1:1-5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깨닫다의 헬라어는 <카타람바노 καταλαμβάνω>... "~아래로 ~에 따라서"를 뜻하는 전치사<카타>+ "공격적으로 취하다, 받다"를 뜻하는 <람바노>가 합쳐진 단어로,... <카타람바노καταλαμβάνω>는 "확실하게 잡다, 정확하게 파악하다, 차지하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다"의 뜻을 가진다. 
.......[요1: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에서 깨닫다 <카타람바노>가 사용되었다 ....어둠은 빛이 와도 깨닫지 못한다... 더 정확한 의미로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 빛이 어둠에 비춰지게 되면 어둠은 물러 가기 때문이요, 빛 앞에서 꼼짝 못하기 때문이다... 그 빛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지혜이며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어둠은 마귀에게 속한 죄로 눌린 세상의 모습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모든 것을 이기실 수 있지만, 믿는 우리는  어둠에 속한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그 (말씀-지혜 JC) 진리를 깨닫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이길 수 있는 지름길이요,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존 전에 무릎 꿇게 되며,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길 수 있게 되며, 깨달을 때 자신을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니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예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게 될 때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이여!! 오늘도 그 은혜의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깨달은 말씀으로 하루를 살게 하소서,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에 속한 승리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나를 완전히 사로잡으사 완전히 깡그리 아시는 주여, 주 영광의 말씀으로 흑암의 옛사람을 처리해주시고 거듭난 나의 모든 것 되소서, 나를 변화시키시며, 내 안에서 주님께서 친히 사명 이루시옵소서! 지금 오늘도 내내 새롭게 하시며 내 전존재를 사로잡아 주와 하나 되어 삶 이루게 하소서===
구원에는 3 가지 시제가 있다. 구원의 과거, 구원의 현제, 구원의 미래이니,... 구원을 받았다.-- 구원을 이루어 간다.-- 구원을 완성할 것이다. 
.....구원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부활하신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나는 그리스도 안으로 내포되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죄에 대한 죽음이 나의 죄에 대한 죽음이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나를 위한 부활이 된다. 바로 그러하기에 나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갖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니... 이미 이루어진 구원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을 구원의 과거라고 한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하여 나의 인격이 바로 예수님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요, 나는 이제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예수님처럼 변화되어야 하는 바, 이것을 성화라고도 하고 구원의 현재라고도 한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모두 부활한다,  이것을 구원의 미래 또는 구원의 완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이미 구원이 완성된 것처럼 가르치거나 주장하면 잘못 가르치는 것이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어도 할례를 받고, 모세 5경을 지키야 구원이 완성된다고 빌립보 교인들을 혼동으로 몰고 갔을 그 때, 바울은 이에 대해 경고하면서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빌3:12) 
바울은 구원의 완성을 본 것이 아니고 완성을 향하여 좇아가고 있다고 강조하는바,  바울은 구원의 현재를 강조하고 있었다. 구원의 시제 중에 바울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구원의 현재!!.... 예수님의 은혜를 덕 입어서 지금 여기서 나를 변화시키는 삶을 사는 것, 예수님이 우리에게 위임한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함이다... 왜 그럴까? 구원의 현재 이외에 구원의 과거(믿음으로 죄 용서받음)나 구원의 완성(부활)에서 우리가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현재에만 가능한 것이니,. 우리의 할 일이 있는 곳은 오직 구원의 현재뿐인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구원의 현재이다. 이미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부활은 나중에 구원이 완성될 미래의 일이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구원의 현재를 이루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덕 입어서 열심히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 성화되어야 하고,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 사역을 열심히 이루어 드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혹시라도 “우리는 어차피 구원을 받았고, 어차피 주님이 재림 할 때 우리의 부활도 이루어지니까 이 땅에서는 그냥 그렇게 살다 가자!” 이렇게 생각하거나, 실지로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주변에 있을 수 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이란!!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의 완성을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원의 완성을 이루기까지는 이 땅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긴장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종종 세상 사람들이 교인들을 향하여 “말로만 믿는다고 하지 실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없다”고 말들 하는 바,. 사실 이 말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 상태,  가장 중요한 약점--구원의 현재를 살고 있지는 못함--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원의 현재를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바,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사로잡으셨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는 것이다. 개역성경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되었다고” 번역했다. 여기 잡혔다는 동사는 헬라어로 카타람바노..... 꼼짝 못하게 꽉 붙잡혀 있다는 의미.... 그래서 사로잡다, 체포하다는 뜻도 되고 체포해서 신문하여 이해한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바울은 언제 예수님께 체포되었을까? 다메섹에서!! 다메섹에서 그리스도가 바로 메시아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거기서 바울을 사도로 사로잡고 체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체포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바울을 잘 알고 계시는데!!, 바울이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심, 이것을 속칭 "신상이 털렸다".로 표현하기도 한다... 바울은 참되게 아는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사로잡은 것은 바울을 사랑하고, 바울을 잘 알고, 바울의 죄를 용서하고, 바울의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바울은 정말!! 알았다. 그래서 바울도 예수님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울을 체포한 것은 과거형, 수동태이니!!,.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미 체포되었다...그리고 바울이 좇아가는 것은 현재형, 능동태이다. 지금 좇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 먼저 사로 잡혔기 때문에, 바울도 예수를 사로잡으려고 지금 좇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은혜를 미리 맛본 사람이라야!! 현재도 주님을 좇아가는 것이다. 아무도 미리 은혜를 맛보지 않으면 주님을 현재 좇을 수 없다. 주님을 붙잡기 위해서 좇아가기를 원하는가? 미리 예수님께 사로잡히셔야 한다. 예수님께 사로잡히면 예수님께 신상이 털리는 것이요,.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를 다 아시고 용서하시고, 여러분의 약점을 다 아시고 강하게 하시고, 여러분의 성공도, 실패도 깡그리 다 아시기에!!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미리 맛보아야 우리도 그분을 붙잡기 위하여 좇아가게 되는 것이다. 현재 주님을 좇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주님께 사로잡힌 적이 있는지를 체크해 보아야 한다.. 먼저 사로 잡힌바가 되어야 여러분이 주님을 좇을 수 있기 때문이다.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너희를 떠나 반비례적으로!!)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말씀 사모하는 유대인마다에게로 복음이 전파됨)

.......구속하시는 주님의 움직임, 신약 경륜이  유대인--->이방인-->유대인으로 향해야 함을 드러내고 계심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극도로 타락-음란-우상 가득한, 이데올로기적 우상-맘몬들, 곧 극단적 이기주의- 능력주의, 인본주의-기회주의-상대주의-대중/군중영합주의-쾌락/금욕주의-포스트모더니즘/물질주의자(이상적 민주주의 연대의 공고 추구를 주장하는,  마이크 샌들의 논지는 [조건의 평등 추구하는] 이익 당사자 집단들의 광장 중심 토론 통한 정의와 공정 지향하는, 공동체주의적 사회-공화주의...666)들이 우글거리는] 이 성중에 내 백성(=택한자..지금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그러나 곧 나타날바)이 많음이라 하시더라....모태에서 조성될 때부터 멸망 받아 마땅한 자기 죄와 죄인 됨를 드러내어 비추시는 성령, 구주JC 믿음 아니고서는 피상적-부분적 접근에 불과한 학문적-이론적-철학적 접근은 아첨에 불과함...오직 공동체주의적 복음주의자로서 그리스도 살기  문제임!!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12.  [오직 성령 내주하심 여부의 문제....주예수보다더]○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바울 소송단의 대표자 역할함으로써 몰매 맞았으너, 이를 계기로 주께 돌이킴

===바울이 안디옥으로 내려가다...

18.  [때와 시기 지도하시는 성령 인도따른 작별]○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아볼로가 담대히 전도하다

24.  ["나야말로 독사의 자식, 죄인의 괴수"고백하기를 배워 전도함, 땅끝까지 나아가는 전도자]○(애굽 제1의 학문 도서관 도시,70인역 구약성경 번역된곳)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바울은 남이 세운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 것을 원칙 삼았었기에!! 베드로의 구역으로 여겼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자연적으로 메세지는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였을것...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바울과 함께 장막 만드는 업율 같이 하면서 깊이 사귐 통해 주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배워 알고 적용하며 예수 제자인 전도자로 살아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그들로부터 듣고 패러다임 전환 이룬바)아볼로가 아가야[고린도]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자기 부인-자기 십자가 짐, 곧 성령의 수술대에 올라 수술/처리 받음인 "절제"를 포함한, 9가지 성령 열매를 사시사철 맺기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자기 죄 회개하고 주 이름 불러 자기위 구주, 곧 주님-주인이요 유일무이한 하나님으로 영접함으로써, 주 예수 이름의 세례=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세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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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18 Amplified Bible

===Paul at Corinth

1 After this Paul left Athens and went to Corinth. 

2 There he met a Jew named Aquila, a native of Pontus, who had recently come from Italy with his wife, Priscilla, because [the Roman Emperor] Claudius had issued an edict that all the [a]Jews were to leave Rome. Paul went to see them, 

3 and because he was of the same trade, he stayed with them; and they worked together for they were tent-makers. 

4 And he reasoned and debated in the synagogue every Sabbath, trying to persuade Jews and Greeks;

5 but when Silas and Timothy came down from Macedonia (northern Greece), Paul began devoting himself completely to [preaching] the word, and solemnly testifying to the Jews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Messiah, the Anointed). 

6 But since the Jews kept resisting and opposing him, and blaspheming [God], he [b]shook out his robe and said to them, “Your blood (damnation) be on your own heads! I am innocent of it. From now on I will go to the Gentiles.” 

7 Then he moved on from there and went to the house of a man named [c]Titius Justus, who worshiped God and whose house was next door to the synagogue. 

8 Crispus, the leader of the synagogue, believed in the Lord together with his entire household [joyfully acknowledging Him as Messiah and Savior]; and many of the Corinthians who heard [Paul’s message] were believing and being baptized. 

9 One night the Lord said to Paul in a vision, “Do not be afraid anymore, but go on speaking and do not be silent; 

10 for I am with you, and no one will attack you in order to hurt you, because I have many people in this city.” 

11 So he settled there for a year and six months, teaching them the word of God [concerning eternal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12 But when [d]Gallio was proconsul of Achaia (southern Greece), the Jews made a united attack on Paul and brought him before [e]the judgment seat, 

13 declaring, “This man is persuading people to worship God in violation of the law [of Moses].” 

14 But when Paul was about to reply, Gallio said to the Jews, “If it were a matter of some misdemeanor or serious crime, O Jews, I would have reason to put up with you; 

15 but since it is merely a question [of doctrine within your religion] about words and names and your own law, see to it yourselves; I am [f]unwilling to judge these matters.” 

16 And he drove them away from the judgment seat. 

17 Then the Greeks all seized [g]Sosthenes, the leader of the synagogue, and began beating him right in front of the judgment seat; but Gallio paid no attention to any of this.

18 Paul stayed for a while longer, and then told the [h]brothers and sisters goodbye and sailed for Syria; and he was accompanied by Priscilla and Aquila. At Cenchrea [the southeastern port of Corinth] he had his hair cut, because he was keeping a [Nazirite] vow [of abstention]. 

19 Then they arrived in Ephesus, and he left the others there; but he entered the synagogue and reasoned and debated with the Jews. 

20 When they asked him to stay for a longer time, he refused; 

21 but after telling them goodbye and saying, “I will return again if God is willing,” he set sail from Ephesus.

22 When he had landed at Caesarea, he went up and [i]greeted the church [at Jerusalem], and then went down to Antioch.

===Paul’s Third Missionary Journey

23 After spending some time there, he left and traveled through the territory of Galatia and Phrygia, strengthening and encouraging all the disciples.

24 Now a Jew named Apollos, a native of Alexandria, came to Ephesus. He was an eloquent and cultured man, and well versed in the [Hebrew] Scriptures. 

25 This man had been instructed in the way of the Lord, and being spiritually impassioned, he was speaking and teaching accurately the things about Jesus, though he knew only the baptism of John; 

26 and he began to speak boldly and fearlessly in the synagogue. But when Priscilla and Aquila heard him, they took him aside and explained more accurately to him the way of God [and the full story of the life of Christ]. 

27 And when Apollos wanted to go across to Achaia (southern Greece), the brothers encouraged him and wrote to the disciples, [urging them] to welcome him gladly. When he arrived, he was a great help to those who, through grace, had believed and had followed Jesus as Lord and Savior, 

28 for he powerfully refuted the Jews in public discussions, proving by the Scriptures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Messiah, the Anointed).

===Footnotes

Acts 18:2 This action may have been prompted by conflicts within the Jewish community caused by the spread of Christianity.

Acts 18:6 An act symbolizing rejection.

Acts 18:7 One early ms reads Titus; two early mss omit the name.

Acts 18:12 Junius Gallio’s term as proconsul was brief a.d. 51-52, but is validated by an ancient inscription found at Delphi. This is important because it establishes the date of Paul’s visit to Corinth while on his second missionary journey and sets the date of his letters to the church at Thessalonica.

Acts 18:12 The proconsul tried cases from a large, raised stone platform situated in front of his official residence.

Acts 18:15 Gallio, the proconsul of Achaia, in essence ruled Paul’s teachings to be a form of Judaism and therefore legal under Roman law.

Acts 18:17 As leader of the synagogue Sosthenes would have presented the charges against Paul. Apparently something related to this made him the target of the attack. If this Sosthenes is the same man mentioned in 1 Cor 1:1, he later became a believer and follower of Christ.

Acts 18:18 Lit brethren. 

Acts 18:22 This marks the end of Paul’s second missionary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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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장 (개요)

본장의 내용은 이러하다.

Ⅰ.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 나눈 사적인 대화. 

유대인들과의 공개적인 토론. 

유대인들이 바울을 배척함으로 그가 이방인을 향하여 돌아선 사실들이 소개된다(1-6).

Ⅱ. 그곳에서의 그의 사역의 큰 성공.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 더욱 큰 복음의 풍성한 수확을 바라고 계속 노력할 것을 격려하신 사실(7-11).

Ⅲ. 얼마 후 바울이 그곳에서 유대인들로부터 받은 방해 공작. 

그러나 로마의 통치자인 갈리오의 냉철한 판결에 의해 그는 그 난관을 잘 뚫고 나간다(12-17).

Ⅳ. 고린도에서 오래 동안 머물러 있은 후 바울이 여러 지방을 여행함. 

그것은 그가 설립하고 개척한 교회들을 교도하고 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 여행 동안 그는 예루살렘을 잠시 방문한다(18-23).

Ⅴ. 아볼로의 지식의 괄목할 만한 변화와 교회 안에서의 그의 유용함에 대한 설명(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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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하다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바울의 고린도 방문(행 18:1-6)

바울은 아덴에서는 그다지 많은 박해를 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또한 유대인들이 살고 있거나 그들과 이해 관계가 있던 그러한 장소에서도 바울이 종전에 당했던 것과 같은 심한 대우를 받고 쫓겨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덴에서의 바울에 대한 태도는 냉랭한 편이었으며 또 거기서 선을 행할 수 있는 어떤 전망도 거의 없었으므로 디오누시오와 함께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의 보살펴 줌을 뒤로 하고 그는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바울은 여러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한 교회를 세우는 도구 역할을 하였다. 

고린도는 마게도니야지역의 베뢰아에서 남쪽 방향에 있는 아티카반도지역의 아테네에서 서쪽방향에 좁은 육로로 연결되는 펠로포네스반도를 포함하는 그리스(헬라)중 아가야 지방의 중심 도시였고 당시는 로마 제국의 속령으로써 부유하고 찬란한 곳이였다. [고린도(코린트) 남쪽에 겐그레아, 동쪽에 아테네, 남서쪽에 스파르타가 위치]

고린도는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도록 허용된 곳은 아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다. 

당시 그 주변 지역은 펠로포네스(펠로폰네스, 펠로폰네소스)반도, 그 입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고찰하여 보자.

Ⅰ. 바울의 자신의 생계를 위한 노동(2, 3절).

1. 바울은 비록 학자로서 자랐지만 또한 그는 수공업 기술자였다. 

그는 천막을 만드는 기술자였으며 또한 실내 장식품 제조 기술자이기도 했다. 

그는 천이나 피륙 혹은 가죽이나 짐승의 껍질을 가지고 군인들이나 양치기들이 사용할 천막을 만들었다(어떤 이들은 당시는 일반적으로 천막을 가족으로 만들었다고 전해 준다). 즉 천막의 겉 덮개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천막 안에서 사는 것을 짐승 가죽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흔히 말하였다. 

^^라이트푸트(Dr. Lightfoot) 박사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자손들에게 학식이나 유산을 물려 주기도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에게 어떤 기술 한 가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었음을 말해 준다. 랍비인 유다(Judah)는 "그의 아들에게 [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기술을 가르치는 사람과 같다"고 말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기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울타리로 잘 보호된 포도원을 지닌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전문적이고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익히도록 하라..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어떤 기술을 지니고 있어서 그 기술을 가지고 부지런히 일하여 스스로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의,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모든 이에게 이로운 좋은 기술은  그  어떤 종류라도 그 누구도 결코 경멸해서는 결코 안 되는 법이다. 

바울은 비록 바리새파 사람으로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성장했지만 그는 젊어서부터 천막 만드는 기술을 배웠었고 또 그 기술을 오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기술을 망각해 버리지 않았다.

2. 비록 바울은 그가 설립한 교회나 그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로부터 생계 문제를 의뢰할 권리가 있었지만 식량을 얻기 위하여 그의 직업을 가지고 가능한한 일했다. 

이러한 점은 더욱 그의 위대한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바울이 얼마나 겸손했는가는 생각해 보자. 사실 바울은 이 겸손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주님으로부터 배웠다. 

바울이 얼마나 부지런하였으며 얼마나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자. 

정신적인 측면에서 뛰어날 만큼 우수한 일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그였으나 때때로 그가 손으로 노동하여 일용양식을 마련하는 것도 결코 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네 얼굴에 흐르는 땀으로 너는 빵을 먹게 될 것이다"라는 저주로부터 면제된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가 가장 부당하고 터무니없는 정황 속에서도 그의 전도 사업을 잘 추진하였고 또 복음에 대적하는 온갖 편견을 얼마나 신중하게 극복하였는가를 생각하도록 하자.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남에게 "짐스러운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자신이 일을 하여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였다(고후 11:7; 살후 3:8, 9).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3. 우리는 바울 스스로가 그의 기술의 숙련도에 있어 대가였으리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돌아다니며 삯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고린도에 왔는데 그들도 바울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겨우 생계나 유지할 수 있는 일당에 불과한 돈을 벌었다. 

가난한 기능인들은 비록 부유한 상인들같이  재산을 늘릴 수는 없지만 만일 그들의 직업으로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감사히 여김이 마땅하다.

4. 비록 그 자신이 위대한 사도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일하기를 선택한다. 

그 이유는 후에 알 수 있듯이(26절) 그들이 하나님의 일들에 대하여 매우 총명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동역자였었음을" 인정한다(롬 16:3). 

이 사실은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돕기 위한 섬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하라는 좋은 본이 된다. 

JC 안에서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이다. 서로 JC에 대한 지식을 증진시켜 줄 사람들과 동료가 되어 사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한 자신들이 주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였듯이 우리들도 그러한 영향 아래 살게 하려는 사람들과 사귀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이 아굴라에 관해서 본문은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전해 준다.

(1) 그는 유대 사람이었으나 본도에서 태어났다(2절). 

베드로 전서 1장 1절에 나타나 있듯이 흩어진 많은 유대인들이 그 지방에 정착하여 살았다.

(2) 그는 최근에 이달리야로부터 고린도로 온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그의 거주지를 옮겼던 것처럼 여겨진다. 이 세상이라는 곳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 거할 곳을 선택하여 살 수 있는 그러한 자유 세상은 아니다.

(3) 그가 이달리야를 떠나게 된 이유는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부터 추방한다는 글라우디우스 황제의 최근의 칙령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미움을 받았고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는 치욕과 곤경이 안기어졌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유산은 "무늬있는 매와 같은 것이어서 주변에 있는 매들이 그를 에워쌌다"(렘 12:9). 

아굴라는 기독교도였지만 그는 유대인이였기 때문에 추방을 당했다. 이방인들은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 없어서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를 구별할 줄을 몰랐다. 글라우디우스 당시에 생존했던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이 칙령이 글라우디우스 통치 7년에 발령되었는데, 그 칙령이 내려진 이유는 유대인들은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이었는데, 이 소요의 발생 근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찬성자와 반대자들 사이의 극심한 갈등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점점 과열되어 결국 로마 당국에까지 알려져서 문제가 되었는데, 이 상황은 소심하고 신경이 과민하였던 글라우디우스황제를 분격하게 하였고 그는 유대인들을 로마경내에서 모두 추방하라고 명령하였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기독교도들을 박해하였다면 이방인들이 기독교도나 유대인을 막론하고 다 박해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는 일이다.

Ⅱ. 바울의 유대인들에 대한 설교. 

바울은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개종하여 유대인들의 집회에 드나드는 희랍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갖게 하려고 했다.

1. 바울은 공개적으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했다." 

우리는 사도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했는가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힘이나 폭력으로 하지 않았으며, 불이나 칼로 하지도 않았고 절대 수락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은 정정당당한 논리에 의해 복음을 선포했다. 

그들은 한 사람씩 복음으로 이끌어 들였고 조리있게 강론했으며 그것에 반대할 자유도 허용했다. 그리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줄 수 있는 준비도 갖추고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라, 우리가 변론하자"고 초청하신다(사 1:18). 그리고 죄인들에게 그들의 변명을 해보라고 도전하신다.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사 41:21) 

바울은 성서에 입각한 설교자였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설교가였다.

2. "바울은 그들을 권면했다"(에페이덴, 18:4). 

그가 권면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중 한 이유 때문이었다.

(1) 그들이 속히 믿어야 된다는 절박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그들에게 단순히 복음을 논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권면하였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위해 또 그들 자신의 영혼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제시된 구원의 제안을 거절하지 말라고 간청했다.

(2) 아니면 그가 복음을 권면한 것은 복음을 지니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한 일이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울은 그들을 권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그가 그들을 설복시켰다는 말로 이해한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그의 의견에 따르게 하였다. 그들 중 몇 사람이 그의 조리있는 강론에 의하여 믿게 되어 그리스도에게 굴복한 것이다.

3. 바울은 그의 동역자요 보조자들이 그에게 오자 더욱 열심히 복음 전하는 일을 하였다(5절). 

그러므로 본문에 보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와서" 마게도니아 교회들로부터 좋은 소식을 바울에게 주었고, 또 즉시 고린도에서 바울을 돕게 되자 바울은 전보다 더욱 "말씀에 붙잡혀" 말씀 전하는 일에 바울의 힘과 능력을 진력하였다. 

바울은 그의 동포인 유대인들의 완고한 고집과 불신앙을 비탄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회개를 위하여 어느 때보다도 더욱 열심을 내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하여"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고후 5:14). 앞의 인용한 내용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복음을 증거하였다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그렇게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기에 바울은 모든 가능한 권위와 진지함을 가지고 그 자신이 완전하고 확실하게 확신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되고 또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야라고 하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밝히 증거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신실한 자세로 그들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이 소식을 그들에게 전하였다.

Ⅲ. 그 후 바울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단념하고 그가 다른 장소에서 했던 것과 같이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된다(6절).

1. 많은 유대인들 아니 그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그들의 반대를 고집했고 가장 강력한 논증에도 굴복하려 하지 않았고 결정적인 권면에 대해서도 굴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적하여 훼방하였다"(본문을 직역한다면). 

그들은 복음에 반대하기 위하여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들은 복음의 전진을 막기 위하여 손을 잡았다. 

그들 자신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였으며 최선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못하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복음을 조리있는 말로 격퇴시킬 수는 없었다. 조리있는 말로 전도자들을 대항할 수 없게 되자 폭언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훼방하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독적인 언사를 말하였다. 또한 이로써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모독하였다(계 13:5, 6). 

자기들의 불신앙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노골적인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2. 그러므로 바울은 그 자신이 그들에게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선언을 하고 그들이 그들의 불신앙 속에서 멸망하도록 방임해 버린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그들에게 증거했었다"(5절). 그러나 

그들이 바울의 증언을 반대하고 그들의 반대를 고집하고 그들이 전도자들을 반증하는 악령에 사로잡히자(6절) 바울은 그의 열심을 그는 상징적 행위로 나타냈다. 

즉 그는 "그 의복을 흔들어" 그 먼지를 떨어버렸다(전에도 그들은 "발에 묻은 티끌을 털어 버렸었다." 행 13:51). 

이같이 바울이 옷의 먼지를 털 것은 그들을 대적하는 증언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같이 바울은 그들과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그 다음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다. 

빌라도가 그의 손을 씻음으로써 그 상징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죄를 유대인들의 책임으로 전가시켰듯이 바울은 그의 옷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림으로써 만일에 있을 그들의 심판에 자신은 무관하다는 것을 나타냈다.

(1) 바울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였으며 그들 영혼의 피에 대하여 그는 깨끗하였다. 

비록 그가 그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충실한 파수군과 같이 그들에게 경고를 하였고 또한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믿게 하려고 하였으나 헛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피에 대하여 바울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문과 20장 26절의 내용은 바울이 에스겔 33장 8, 9절을 참조한 것임이 명백하다.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죄인들을 경고하는데 자기 책임을 다했노라고 자기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역자의 마음에는 위로가 되는 것이다.

(2) 만일 그 유대인들이 그들의 불신앙을 고집한다면 그들은 확실히 멸망할 것이고 그들의 저주는 바로 자기들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너희가 자신들의 파괴자가 될 것이며, 이 땅에서 너희 나라가 멸망할 것이요 하늘 나라에 가서는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멸망이 임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은 너희가 져야 하리라"고 하였다.

3. 그들을 포기하였다고 해서 바울은 자신의 사명마저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다. 

비록 이스라엘을 도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은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도 가리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맨 처음 복음에 대한 초청을 받았고 또 그들에게 응당한 대우가 취해졌기 때문에 이 일에 대하여 불평할 수가 없었다. 

처음 초대된 손님들이 응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준비된 음식을 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본문은 다음가 같은 뜻의 말씀이다. 

"우리들은 유대인들을 모아들이려고 하였다(마 23:37).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몸이 없는 머리가 되실 수 없으며 기초없는 건물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원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의 복음에 대한 거부와 소수의 회심이 이방인들을 더 풍부하게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그들의 정면에서 이야기하였다. 

이것은 자신의 정당성을 밝히 위해서였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질투를 일으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롬 11: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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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고린도에서의 바울(1)(행 18:7-11)...이제, 유대인 회당이 아니라 디도 유스도의 집을 전도할 거처로 삼는 [이방인의 사도] 바울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전해지고 있다.

Ⅰ. 바울의 장소 이동. 

JC는 그의 제자들을 파견할 때 그들에게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고(눅 10:7) 지시하셨다. 

그러나 본문의 바울의 경우처럼 장소를 변경해야 할 경우도 있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사악함에 의해 축출당하였으므로 회당을 나갔다. 그리고 바울은 "유스도라고 하는 사람의 집으로 들어갔다"(7절). 

바울이 이 사람의 집에 들어간 것은 그곳을 숙소로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도를 하기 위해서였던 것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바울로 하여금 평화스럽게 그들의 회당에서 그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하자 착한 사람인 유스도는 바울에게 자기 집을 개방하고 그가 자기 집에서 전도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하였다. 바울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방주가 개인의 집에 정박한 것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바울이 회당에서 설교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지 못했을 때 바울은 개인 집에서 전도함으로 그의 가르침에 손실을 보지 아니하였다. 이 사람과 그의 집에 한 본문의 설명을 고찰하여 보자.

1. 그 사람은 유대인들과 이웃하여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는 우상 숭배자가 아니었으며 고넬료와 같이 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바울이 비록 유대인들을 단념하였지만 이 사람의 집에서 모임을 시작하므로 유대인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였다. 

바울이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야 할 수밖에 없었을 때일지라도 그는 아직도 유대인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랐다.

2. 그 집은 회당 바로 옆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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