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1.2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28.지고지선/지복직관의 진복_ HS안에서이루는합일=야다에셰르바라크=샬롬_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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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시128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주와같이길가는것430...진실하신주성령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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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구속자, 구속하시는 여호와====@구속[무름(속량)/자유]회복---속전(지속적으로 정결케 하는 보혈의 능력)--보수./보응/심판

la'G:(1350, 가알)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 [구속자 redeemer..근친/근족/혈연자 =고엘]

가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redeem,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어근과 매우 유사한 어근 파다([d"P; , 6308): 구속하다 redeem)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가알(la'G: , 1350)의 강조점이 구속자의 자격과 행함에 있는데, 반드시 근친이어야 하며, 근친의 특권이나 의무는 다름아닌 속량에 있다는 것이다.((JC가 바로 그러하시다..그는 태초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신 아들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이미 예고된 대로, 참사람으로서 성육신하셨고 인성을 가지셨기에 [죄로 인해 자기의 모든 것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파산한 자들인]우리의 피를 나눈 근친/근족으로서 모든 면에서  참된 자격과 능력을 갖추신 유일무이한 고엘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가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자기의 친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함하는 4개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a)  첫째로, 가알은 오경의 법령에서 궁핍한 때에 판 밭을 되사는 것이나 가난할 때 자신을 판 이스라엘인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되사서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대로 각 사람에게 배정/배분된 대로 모든 것을 돌려주고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지고지선의 진복 누림의 바탕을 제공하여 주는 구속의 일]로서 이런 매입과 무르는 일은 근친의 의무였다(레 25:25-54).

레 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다. 

물론, 만약에 자신이 부유하게 되면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것이다(레 25:26). 

한편, 가난한 자는 기업만이아니라 자기 자신을 동족 이스라엘인에게나(레 25:39)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타국인(레 25:47)에게 팔기도 하였다. 

그를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척 - 형제, 삼촌, 사촌들, 가족의 혈족 - 에게 있었다(레 25:25, 레 25:48, 레 25:49).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친척을 속량한 redeemed 자(혈연자)는 '근족 - 구속자'로 알려져 있었다. (참조: EDBW).

---가난한 자의 구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례는 수혼법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룻기에 있는 것 같다. 

신 25:5-10에 의하면, 남편의 형제는 후사 없는 과부를 취하여서 씨를 영속시키고, 남자 후손과 결부되어 있는 땅의 계승을 보증해야 했다. 

여기 [수혼법의 실행 의무]에서 그것을 실행하는 근친은 야밤이라고 불리어지며, 어근 가알은 사용되지 않는다.

....룻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것들, 즉 밭을 되사는 것과 수혼이 언급된다. 근친은 밭을 사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룻과 결혼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의 요지는 나오미가 가난하여 밭을 팔 수 밖에 없었을 때, 근친은 그녀를 위해 그 밭을 되사야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후사 없는 형제의 과부를 위해서 이 일을 기꺼이 하려 했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 근본을 모르는] 룻과 결혼하여 그들의 기업을 지속시킬 자손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거부하였으며 여기에 보아스가 개입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 즉 친족과 수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엘(구속자)이란 단어는 후자의 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레게트(Leggett)는 룻기에 구속적이고 메시야적인 유형론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고엘(goel)로서의 보아스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예시되어 있음을 보았다. 보아스가 구속의 권리를 소유하였으면서도 분명히 룻을 위하여 개입할 의무(까지)는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보라...룻은 나오미의 견해를 따라서 겸손하게 자신을 신부로 취하여 후사를 낳도록 해 달라는 뜻으로 보아스의 이불을 들추고 눕는다!!...겸손과 순종의 극치이다!!))

....보아스가 이 가난한 과부들의 곤경을 보았을 때 그의 생애가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러 왔던 것과 같이 메시야의 경우도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또한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시 72:2, 시 72:4, 시 72:12, 시 72:13, 사 11:4).

(b)  둘째로, 가알은 재산이나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 아닌 짐승들을 무르는 것, 혹은 부정한 짐승들의 첫 소산을 무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레 27:11-33). 

이 [속전!!]사상은 인간이 교환물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전은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 몫이 제공되었다. 이런 경우에 무르는 자는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주인이었다.

(c)  셋째로, 가알은 살해당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RSV '보복자' revenger)가 되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칼 분사 고엘로 나타난다. 

고엘은 구속자이며, 이 구속자는 '피의 보수자'로 불리우는데, 그의 임무는 자신의 친척을 살해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다(신 19:6). 

이 사상은 가까운 친족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지불함으로서 집을 재매입하거나 노예를 속량할 수 있는 것처럼, 친족의 잃어버린 생명은 마땅히 살인자의 그에 상응하는 생명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친족은 피의 보수자이다. 이런 사형 제도는 피비린내 나는 숙원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죄없는 사형 집행인이었으며 따라서 살해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보수자'라는 의미로 12회 나온다(민 35:12, 민 35:19, 민 35:21, 민 35:24, 민 35:25, 민 35:27, 신 19:6, 신 19:12, 수 20:3, 수 20:5, 수 20:9).(참조: R. L. Harris).

(d)  넷째로, 가알은 하나님께서 '구속자'로서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출 6:6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라고 약속하신다(출 6:6, 참조: 시 77:15).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출 15:13).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 78:35).

....이사야서에는 '구속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지칭하여 13회 나오는데 모두 사 41- 63장에서 사용되었다. 가알은 하나님에 대해 9회 사용되었으며, 사 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가알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사 51:10, 사 63:9)과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구원(사 48:20, 사 52:3, 사 52:9, 사 62:12)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41:14)이며 '너희의 왕 이스라엘의 창조주'(사 43:14, 사 43:15)이며 '만군의 여호와'(사 44:6)이며 '야곱의 전능자'(사 49:26)이다. 그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는 '구속 받은 자'이다(사 35:9).

....시편에는 종종 영적인 구원이 육적인 구원과 병행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시 69:18.,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시 103:2, 시 1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윤택을 잊지 말찌어다...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이 그러하다(참조: EDBW).

[욥19:25,26,27]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25. "And as for me,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at the last He will take His stand on the earth.   *26. "Even after my skin is destroyed, Yet from my flesh I shall see God;   *27.Whom I myself shall behold, And whom my eyes shall see and not another.  

....유명한 구절, 욥 19:25에서 고엘이란 단어는 흠정역성경에서 '구속자' redeemer로 번역되며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속죄의 사역을 하러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파다"에 의해 더욱 특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제 욥 19:25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욥을 죽음의 먼지에서 구속할 친구이자 친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더욱 정확하게 관련된다. 욥 19:26의 난해한 어구, "이 가죽을 벗은 후에"는 다른 모음들과 함께 "내가 깨어난 후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NIV 각주와 욥 14:12-14을 참조하라. 욥 14:12-14에서 부활에 관한 욥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를 돌아보시며 욥은 나무처럼 제 2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의 소망에 의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 욥 14:14의 할리파는 욥 14:7의 할랍에 대한 응답이다). 어쨌든 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고엘이신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참조: R. L. Harris). 


..[[사59:20,21]]..*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4]] *2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미가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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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괴수 죄성 지닌 자, 세상살이는 메섹과 게달의 장막에 사는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 탈취와 노략의 쟁투, 곧 환난의 날이라, 오직 구주JC께 부르짖어 그분안에 충만히 거하라.

[시120]   *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3.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5.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이제, 마음 열어, 중심으로 동행하시는 영원반석/성채/산성-보혜사-인도하시며 지키시는 목자, 엘에제르 HS와 동행하라

[시121]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보라, 그리스도를 살라, 사람들로 하여금 평강과 형통 허락하시는 네안의 여호와를 감사하며 흠모하고 기리게 하라, 자원하여 나아와 공예배에 함께 참석하기를 원하도록 만들라.

[시122편]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네눈을 [세인의 조소와 멸시로부터]구주 JC께 돌려 중심으로 산 믿음 발휘함으로 앙망하라, 긍휼 구하라, 정복자 그 이상의 존재, , 허락하신 영생안에서 모든 이김을 감사하라

[시123편]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엘에제르, 임마누엘 여호와께 감사하라...[세인의 약탈-침노와 멸절로부터] 말씀의 뜻대로 행하시도다.

[시124]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지고지선의 진복은 오직 구주로 사는 (선을 행하며 정직하게 동행하는) 기독자들은 여호와의 선대하심/평강형통 깨닫고 감사하라..

[시125편]   *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오순절-해방/회복]구속 은혜 기쁨안에서: 섭리의 때, 해방 감격 = 전존재로 누리는 영적 기쁨과 감사, 실제적 형통 [모든 이들이 주께 돌이킴] 회복/부흥 추구 실행의 긍휼 간구

[시126편]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솔로몬에게 깨닫게 하신 말씀--친히 집과 가정을 세우며 지키시는 전능-은혜 구주를 높이며 친밀한 하나됨 이루어 따르라, 자랑-기쁨의 가정과 기업된 자녀들이여

[시127편]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므로 오직 여호와를 경외할찌어다----


1.  여호와를 경외하며(야레) 그의 길을(데레크 :가치의미목적보람/관점/태도/선택)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에셰르..경외함/사랑과 견고한 신뢰/앙망의 합일로 도드이신 주님 동행함)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예기야...주님의 지고지선의 베푸심/지혜명철따라 발휘됨으로) 먹을 것이라(=누림) 네가 복되고(에셰르) 형통하리로다(토브..주의 어떠하심의 체현)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파라) 포도나무(게펜)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생명력 왕성한) 감람나무(자이트)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아는 자..야다..참생명진복 주 동행의 지고지선을 알기에 그의 임재 떠남을 질색하며 슬퍼함)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바라크..경배감사찬양누림맛봄감상음미..소유기업공급통로됨..판박이, 반사)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주님보좌 거처..HS임재로 인해 믿는이는 각자가 시온,예루살렘, 복음교회!!)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바라크)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투브..번성번영창대함)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내적예루살렘의 확장이 영적이스라엘, 복음교회!!)에게 평강이(샬롬) 있을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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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시128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1.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주님을 경외하며, 주의 명에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나 복을 받는다.
2.  네 손으로 일한 만큼 네가 먹으니, 이것이 복이요, 은혜이다.
3.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와 같고, 상에 둘러앉은 네 아이들은 올리브 나무의 묘목과도 같다.
4.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복을 받는다.
5.  주께서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빈다. 평생토록 너는, 예루살렘이 받은 은총을 보면서 살게 될 것이다.
6.  아들딸 손자손녀 보면서 오래오래 살 것이다.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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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시128
1.  Blessed is every one that feareth the LORD; that walketh in his ways.
2.  For thou shalt eat the labour of thine hands: happy shalt thou be, and it shall be well with thee.
3.  Thy wife shall be as a fruitful vine by the sides of thine house: thy children like olive plants round about thy table.
4.  Behold, that thus shall the man be blessed that feareth the LORD.
5.  The LORD shall bless thee out of Zion: and thou shalt see the good of Jerusalem all the days of thy life.
6.  Yea, thou shalt see thy children's children, and peace upon Israel.
===시128개요===
이 시편은 앞에 나온 시편과 같이 가족을 위한 노래다. 

앞에 나온 시편에서 우리는 우리 가정의 번영이 하나님의 축복에 달려 있음을 배웠다. 

우리는 이 시편에서 우리의 가정을 안락하게 해줄 축복을 얻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사는 것이며, 그에게 복종하는 길에 있음을 배운다. 

그렇게 하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축복을 받게 된다(1-2, 4). 특별히 다음과 같은 은택을 입는다.
1. 그들은 저희의 수고로 번영하고 성공하게 된다(2).
2. 저희의 관계는 좋게 된다(3).
3. 그들은 그들의 가족이 훈육되는 것을 보며 산다(6).
4.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번영하는 상황에 있는 것을 보고서 만족하게 된다(5-6).
.....우리는 이러한 진리에 대한 굳건한 신념에서 이 시편을 노래해야 한다. 

신앙과 경건은 외적인 번영에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된다. 

우리는 그러한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며, 그것이 그러함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그것으로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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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자의 축복(시 128:1-6)
경건함이 현재와 미래의 삶의 약속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Ⅰ. “진실로 경건한 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없는 진리로서 반복해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확증하고 있는 바, 복된 자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들”, 곧 하나님의 뜻을 규칙적이며 계속적으로 지킴으로써 그들의 영혼과 증거에 하나님을 깊이 존경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마음속에서 지배하는 원칙이 되는 곳에서 대화의 방침이 그에 부응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도를 지키려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경시하며 뒤로 제쳐놓게 된다면 우리는 헛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인 것처럼 가장하게 된다. 경건한 자들은 복이 있다(1절). 그리고 그들이 복을 얻을 것이다(4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신다. 그리고 그들은 복되다고 하신 말씀이 그들을 진정 복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축복에서 나오는 이러한 복이 보장되고 있다.
1. 모든 성도들에게 보편적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모든 나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자는 여호와 그분을 자기 하나님으로 영접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높거나 낮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빈부귀천에 무관하게) 그들에게 복이 있다. 

만일 신앙이 그 자신을 다스린다면, 그를 보호하며 부요케 해줄 것이다.
2. 그러한 성도에게 특별히, 대중적인 능력에서 국가나 교회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관심에서 특정한 인물에게, “네가 복되리로다.”
3. 우리는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때 격려를 받는다(2절). 

“네가 복되리로다.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를 행한다면, 너는 그 약속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이며, 네게 주어진 것처럼 그 은택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네가 복되리로다. 즉 네가 형통하리로다. 네게 무슨 나쁜 일이 생길지라도 그것으로부터 유익을 가져오게 되리로다. 네가 사는 동안에 그리고 네가 죽어서 영원에 이를 때에도 형통하게 되리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주요한 관심사로 주장되었다(4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받으리로다.” 

"믿음으로 약속 가운데서 그것을 보리로다." 

약속의 이행에서 관찰함으로써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을 가지고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놀랍게도 그렇게 이루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로부터 아무런 은총이나 축복을 받을 만한 공로가 없기 때문이다.
Ⅱ. 특별한 약속이 경건한 백성들에게 주어졌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들의 유익을 위한 것인 한 그 약속을 신뢰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흡족하다.
1. 하나님의 축복에 의해 그들은 성실한 생활을 하게 되며, 그로 인해 안락하게 살게 된다. 

그들이 근심이나 고통 없이 편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되지 않았고,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고 약속되었다. 

여기에 두 가지 약속이 나타나 있다.
(1) 그들은 할 일을 갖게 되며(게으른 생활은 불행하고 괴롭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강과 능력과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지 않을 것이며, 무능한 빈자들처럼 다른 사람의 노동에 의지해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살후 3:12)는 의무와 같이 상당한 자비다.
(2) 그들은 저희의 수고에서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자들이 얻을 것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이 먹을 양식을 와서 뺏어먹지 않을 것이며, 압박하는 통치자나 침입하는 적에 의해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시들게 하거나 날려보내시지 않을 것이다(그가 행하신 것처럼. 학 1:9). 그의 축복은 큰길로 임하게 하신다. 

우리 자신의 수고의 열매를 즐거워하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노동하는 자에게는 잠과 같이 음식도 달콤하다.
2. 그들은 가족관계에서 풍부한 위로를 얻게 된다. 

아내와 자녀들이 인간의 큰 관심이듯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형성된다면, 피조물이 주는 위로보다 훨씬 큰 인간의 기쁨이 된다.
(1) “아내는 집 내실에 있는 포도나무와 같다.” 

장식용으로 된 펼쳐진 포도나무와 같을 뿐만 아니라, 이득이 되는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열매와 같다(삿 9:13). 

포도나무는 약하고 연한 식물로, 지탱되고 소중히 여겨질 필요가 있지만, 매우 가치 있는 식물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지식의 나무”(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다고 생각한다(포도나무의 모든 산물이 나실인들에게는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거처는 남편의 집이다. 거기에 그녀의 일이 있다. 그리고 거기가 바로 그녀의 성(城)이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보소서, 장막에 있나이다.” 그밖에 다른 어떤 곳에 있을 수 있겠는가? 

아내의 거처는 “집 내실에” 있으며, 천대해 방랑하거나 권세를 부르기 위해 지붕에 올라가지도 않는다(만일 아내가 그렇게 한다면 다음 시편에 나오는 것과 같이 “지붕의 풀과 같다”). 오히려 아내는, 남편에게서 갈빗대를 가져갔기 때문에, 집 내실에 있다. 

그녀는 집안을 굳게 결합하는 포도나무와 같이 사랑 받는 아내가 되며, 유순한 포도나무와 같이 복종하는 아내가 되어 똑바로 자라날 것이다. 

그녀는 자녀에게서만이 아니라, 지혜와 의와 선한 관리에서도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땅을 가리거나 신 포도, 또는 소돔의 포도를 맺지 않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이” “샘 곁의 무성한 가지”(80:11; 창 49:22)가 될 것이다.
(2)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며”, 올리브 나무 철에, 본래 야생식물이지만,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서 “뿌리와 진액”을 함께 받은 것과 같다(롬 11:17). 

평범한 식사지만 넓은 탁자를 가진 부모가 자녀들이 그 주위에 앉아 있음을 보며, 둘러앉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자녀들을 가진 것은 즐거운 일이다. 

자녀들이 흩어지지 않고, 부모들이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함께 둘러 있는 것을 볼 때 기쁘다. 

욥은 “자녀들이 그를 둘러 있었던”(욥 2:5) 번영의 일례를 보여주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탁자에 앉는 것을 즐거워하며, 탁상담화의 즐거움을 보존하기를 기뻐하고, 그들이 건강함을 기뻐한다. 

그리고 그들은, 육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린 감람나무와 같이” 바르고 푸르게 되게 하기 위해 음식을 간청하며, 좋은 교육의 수액을 공급받아 적당한 시기에 봉사하게 된다.
3.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그들이 간구하는 선한 것들을 갖게 된다. 

“여호와께서” 언약궤가 있고,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했던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시온에서의 축복”은 보통 섭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은총에서 나오는 가장 좋은 축복이다(20:2).
4. 그들은 자라나는 세대의 위로를 즐거워하면서 오래 살게 될 것이다. 

요셉과 같이(창 50:23)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네 가족은 창대하게 되며 오래 계속되고, 너는 그것을 보는 즐거움을 가질 것이다.” 

그들이 좋은 후손이라면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잠 17:6)이다. 노인은 손자를 즐거워하는 경향이 있다.
5. 그들은 하나님 교회의 복지와 그들 본토의 복지를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는 그것을 그 자신의 가족의 번영만큼 소중히 생각한다. 

“너는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가 오래 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공공의 문제의 의해서 너의 사적인 위로를 가볍게 하거나 상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시온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며, 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선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평강을 보지 않고서는 그의 자식의 자식을 보고서 위로를 거의 취할 수 없다. 

그리고 다음에 오는 자들에게 신앙의 상속을 순수하고 완전하게 넘겨주기를 소망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좋은 유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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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y:(3373, 야레) 경외하는 (자), 두려워하는 (자)

야례(형용사)는 야레(arey: , 3372: 두려워하다, 경외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두려워하는, 경외하는'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6회 나오며, 명사적 의미와 형용사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두려워하는 자, 경외하는 자'라는 표현이 자주 나타난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는 [하나님의 고귀하심, 거룩하심, 바로 그대로 바로 그 임재앞에서 그분께 합당한]실제적인 의나 경건을 자기의 두려움 안에서 이행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서 욥은 악을 피한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시 128:1에서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는 여호와의 길로 나아간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에 응답함으로써 자기의 특별한 경건을 입증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악한 자와 대조된다(전 8:13). 

하나님의 선하심(시 31:19)을 따른 언약 바로 그대로, 필요공급조달(시 34:9), 보호(시 33:18, 시 33:19), 보호하시는 자비(시 103:11) 소망성취 약속(시 145:19)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마다에게 제공된다.

야레의 흥미있는 용법은 시 22편에서 발견된다. 

여기에서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라는 어구는 한편으로는 '야곱의 자손' 및 '이스라엘의 자손'과 병행되며(시 22:23), 다른 한편으로는 "대회"(시 22:25)와 병행된다. 

이 병행구들, 특히 그 중에서도 마지막 병행구는 이 용어가 예배 드리기 위해 모인 예배 회중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용법의 가능한 두 개의 다른 실례들도 발견된다(시 115:11, 시 115:13, 시 118:4).

야레는 또한 두려움의 감정이나 악에 대한 예상을 나타낸다(출 9:20, 신 20:8, 삿 7:3).  (참조: A. BOWLING;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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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2 ...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성경에 ‘경외’라는 단어가 171회(개역개정) 등장합니다. 다른 유사한 뜻의 단어들보다 월등히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경외’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경외’는 공경할 경(敬), 두려워할 외(畏), ‘공경하고 두려워함’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나타나는 것, 말씀하신 바, 믿음의 즉각 순종 

‘경외’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구절은 창세기 22장입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아브라함이 자신의 가장 귀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려 하는 긴박한 상황입니다. 

그는 아들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시는 분인 줄 알았고 그분을 믿었기에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이전에 이미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은 이후 25년이 지나서야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또 그 후 자녀를 낳기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하나님, 저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언제 이루시려고 주신 자식을 바치라고 하십니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아브라함의 순종에 “이제야 네가 경외하는 줄 알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아노라’는 히브리어로 ‘야다티’라고 하는데, ‘야다’라는 히브리어는 ‘동침하다’라는 뜻으로 체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노라’라고 하셨을 때에는 ‘너의 행동이 내 마음에 와 닿는구나. 이제 너의 순종으로 나를 향한 너의 믿음을 알겠다’라는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 믿음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인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나타나는 것, 죄를 미워함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잠 8:1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태도는 ‘죄에 대해서 하나님과 같은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무엇입니까? 

죄는 헬라어로 ‘하마르티아’인데 이것은 ‘과녁을 벗어나다’라는 뜻입니다. 즉 죄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하는 것이 죄인 반면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레위기 말씀에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레 10:8-11)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분별할 수 있는 [영원한]절대적 기준을 하나님이 이미 주셨습니다. 죄의 기준은 사람이 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즉, 뉴 노멀이란 주님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지금의 시대를 보십시오. 혼전 성관계, 동성애, 낙태 등을 대하는 사회의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죄에 대한 기준이 낮아지고, 둔감해졌으며,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혼란스럽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포스트모더니즘[상대화]과 아노미[불법과 혼돈], 코스모폴리타니즘[글로벌리즘 =똘레랑스]은 사사시대, 솔로몬시대이후 국가적 불행의 근본이유가 되었음))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절대적인 기준이 없고 내가 정하면 그것이 기준인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 기준과 가치))

내 마음에 거리끼면 죄이고, 아무렇지도 않으면 괜찮은 것입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 죄를 ‘불법’이라고 표현했습니다(요일 3:4). ‘불법’이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아노미아’입니다. 

여기서 ‘아노미’ 현상이 나왔습니다. 즉, ‘혼란, 혼동’입니다. ((혼돈 -무질서))

죄의 결과로 우리의 삶에서 평안은 사라지고 혼돈만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4:33).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고 죄를 지으면서도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껌 종이 하나를 길에 흘리고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빨강 신호등을 보고 건널목을 건너면서도, 무단 횡단을 하면서도 마음에 찔림을 받지 않습니다. 

운전 중에 신호 위반을 하고 속도 위반을 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거스름돈을 적게 받을 때는 상대가 잘못했다며 정죄하듯이 대하면서 많이 받을 때는 이게 웬 횡재냐며 모른척합니다. 

남을 비방하면서 후련함을 느낍니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마음껏 악성 댓글을 답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거리낌이나 찔림이 없습니다. 자신이 정한 기준으로 무감각하게 넘깁니다.

죄의 기준을 [세상 기준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서 결정하는 여호와 경외함이 필요합니다.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무너진 도덕성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으로 회복할 때 경외함이 실천되는 것입니다. 

죄를 가까이하십니까? 죄를 끊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이유는 [실은 심중에] 죄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멀리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죄를 미워하십시오. 

성경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함께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똥을 더럽다고 여기고 그 냄새를 싫어하여 우리 주변에서 빨리 치우려고 고안한 것이 양변기입니다. 

금방 치워버리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럽다 여기고 싫어하고 빨리 버리고 멀리하십시오.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로마서 3장에서는 인류의 타락을 묘사합니다. 

인류가 타락한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롬 3:10-18).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8-9).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잠 16:6).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나게 됩니다. 

악을 미워하고 멀리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표현되며 그것은 삶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세계 곧 만유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바, <홍익인간-경천애인>가치지닌]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회복하려면 영성과 더불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성품(자비롭고 은혜롭고 일절 오래참으시며 용서하고 긍휼과 진실 무궁하심) 따르는절대적]도덕성이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삶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도덕성을 회복합시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길로 행하는 하나님의 자녀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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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1870, 데레크) 길, 도로, 여행, 태도, 방식

데레크(명남)는 다라크(&r'D; , 1869)에서 유래했으며, '길 way, 도로 road, 여행 journey, 태도 manner, 습관 habit, 인생행로, 행위, 일, 일의 방식'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700회 나온다.

(a)  동사 다라크(&r'D; , 1869: 밟다, 걷다)와 관계되어 있는 데레크는 처음으로 계속적 걸어다님에 의하여 닦인 길을 언급한다. 

창 3:24은 "생명나무의 길"을 언급하는데, 인간의 타락 후 그 길은 차단되었다. 하갈은 천사가 자신을 만났을 때 술로 가는 길에 있었다(창 16:7). 

이것은 또한 "술로 가는 도중에"로 번역되어 질 수 있다(참조: 창 38:21, 출 4:24). 

가끔 데레크(der다)는 트랜스 요르단(Trans-jordan)의 남북으로 뻗은 왕의 대로(데레크 함멜레크)처럼 주요 대로를 언급한다(민 20:17, 민 21:22). 

후에 비와 마리스(Via Maris)로 알려진 '해변 길'(사 9:1)은 가사로부터 다메섹까지 뻗쳐 있었다. 

출 13:17은 애굽으로부터 블레셋을 경유하는 해안 길을 언급한다.

(b)  데레크는 "여행"을 의미하며, 주로 수일 동안의 여행을 언급한다. 

요셉은 그의 아버지의 애굽 여행을 위하여 여행에 필요한 물자를 준비하였으며(창 45:23), 기브온 족속들은 완전히 "여행이 심히 길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여호수아를 속였다(수 9:13). 

엘리야는 그들의 바알신이 "길을 행하는" 중에 있을 것이라고 시사함으로써 바알의 선지자들을 조롱했다(왕상 18:27). 

창 24:21에서 아브라함의 종은 메소포타미아에까지 자신의 여행(혹은 임무)을 성공적으로 하게 해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c)  데레크는 은유적 용법으로 가끔 사람의 활동과 행위를 묘사한다. 

사람은 의인의 길 혹은 악인의 길을 따른다(시 1:6). 의인의 길은 "여호와의 길"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여호와의 도를 지키라"고 명령하게 되는데(창 18:19, 잠 22:6), 이것은 하나님 율법의 규례와 계명에서 발견된다(왕상 2:3). 

하나님의 도는 인간의 도보다 훨씬 더 높으며 사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범죄의 길을 버리도록 촉구받고 있다(사 55:7-9).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길(행위)이 패괴하였기" 때문에 홍수를 내리셨으며(창 6:12), 심지어 율법을 주신 후에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들의 길이 형통치 못하리라는(신 28:29) 것을 확인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곧 바로 여호와의 도를 이탈하였다(신 9:16). 

분열 왕국 시대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일관성 있게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으며, 하나님을 무시하였다(왕상 16:26). 

그들은 옳다고 여기는 길을 택하였으나 그러나 결국은 그 길은 죽음으로 인도하였다(잠 14:12).

(d)  잠 30:19에서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행위)는 공중을 나르는 독수리, 반석 위를 기어다니는 뱀, 그리고 바다의 배의 기이한 움직임들에 비교된다: "곧 공중에 날아 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e)  데레크는 '태도 manner' 혹은 '습관 custom'을 의미한다. 

롯의 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와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돔성이 멸망한 후 결혼의 정상적 '관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창 19:31). 창세기에서 라헬은 여인의 습관(경수)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가 나타났을 때 일어설 수 없다고 스스로 변명하였다(창 31:35).

(f)  욥기에서 2회, 잠언에서 1회, 데레크는 창조의 문맥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언급한다.

욥 40:19에서 거대한 하마는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으로 불리운다. 

잠 8:22에서 동일한 관용구(레쉬트데레크)는 또한 하나님의 창조물 중 으뜸인 것으로 의인화된 지혜를 언급한다. 

욥 26:14에서 창조와 역사에서 하나님의 권능의 증거는 '그의 행사의 술 장식'(NASB) 혹은 '하나님 역사의 외적 술 장식'으로 불리운다(NIV).

(g)  '도'(ways)는 렘 3:13과 잠 31:3에서 성격적 편애에 대한 희귀한 의미를 지닌다.

(h)  도로 road와 '지배' 간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 단어는 고든(Gordon)에 의해 인용된 '행진하다'라는 의미로 드러나는 것 같다(UT id.). 

'밟다 tread'의 개념은 권세로 억누르다 혹은 도로나 길을 밟다로 확대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지배, 능력, 힘, 권세'라는 번역에 의하여 명료하게 되는 구약성경의 성구들이 있다. 

포프(Pope)는 욥 17:9과 욥 26:14에서 두 경우를 발견하였다("욥" AB, in loc). 

다후드(Dahood)는 시편과 그 외의 많은 성구에서 그러한 의미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Bib 38:306-20). 그가 자신의 '시편' AB에서 제시하는 성구는 다음과 같다, 시 1:1, 시 1:6, 시 67:2, 시 77:13, 시 90:16, 시 101:2, 시 102:23, 시 119:37, 시 138:5, 시 146:9. 

이들 중 어떤 성구들은 설득력이 있으나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다. 그 의미는 HCHL에서 허용되며 의심할 여지 없이 몇몇 구약성경 문맥에서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참조: Wolf; BDB). 

===복이 있다 = 복되다 =복의 근원이 되다 ***지복 ::: 에셰르/에쉐르, **하나님의 풍성부요충만(힘)+영원생명(장수)권능(능력)= :::바라크....경배/예배 ::: 베라카 ===

rv,a,(835, 에셰르) 행복, 복, 지복....견고한심지통한  믿음소망사랑의  연합일치/지복직관의 하나됨의 동행/누림의 인생살이 

... 그 특징은 (주님 함께 하심따라)   손으로 직접  수고한 바로 그대로 누림!!..

에셰르(명남) 또는 아샤르(rv;a;)는 아샤르(rv'a; , 833)에서 유래했으며, '행복 happiness, 복 blessedness, 지복 bliss'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5회 나온다.

이 명사는 언제나 남성 복수 연계형 아쉬레로 나오며, '~는 복되도다(복이 있도다)' 또는 '복되도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복되도다'는 축하(아쉬레)를 받기 위해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한다. 

'복 있는 사람', 곧 복된 사람은 동사 아샤르가 지적하는 것처럼 '똑바로 가거나 걷는 것' 말하자면 올바로 행하는 사람이다. 

예를들어 '복된' 사람은 분명히 말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다(시 2:12, 시 34:8[9], 시 40:4[5], 시 84:5[6], 시 84:12[13], 시 146:5, 잠 16:20). 

복된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의 권세, 즉 그의 율법(시 119:1, 시 1:2, 잠 29:18). 그의 말씀(잠 16:20), 그의 길(시 128:1, 잠 8:32) 아래에 들어온 사람이다. 

위에 두신 성령과 입에두신 주님말씀 통해 복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을 베푼다(시 41:1, 잠 14:21).(참조: BDB; 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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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Iz"(2132, 자이트) 감람나무, 올리브

자이트(명남)는 '감람나무, 올리브 나무 olive tree, 올리브 oliv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8회 나온다.

창 8:11에서 처음으로 자이트가 나오는데, 비둘기가 방주에서 나가 갓 딴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다. 

올리브는 약속의 땅에서 받을 "축복"의 하나였다. 감람나무는 토지가 많지 않은 산기슭에서 자란다. 올리브는 고대나 오늘날 근동에서 흔하면서도 가치 있는 나무로서, 열매와 기름과 목재로도 유명하다. 

올리브유는 특히 중요 산물이었으며 음식물에 쇼트닝으로 사용되었으며(레 2:4-6), 등불을 밝히는 기름으로(출 27:20), 그리고 기름 붓는 의식에서 관유로(출 29:7) 사용되었다. 

왕과 제사장은 감람유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자기의 뒤를 잇는 선지자로 세울 때 그에게 감람유를 부었다.

이 기름은 또한 의약으로도 사용되었으며 향수로도 사용되었다(참조: 시 104:15, 겔 16:9). 

왕에게 기름을 붓는 관습은 이스라엘 밖에서도 드물게 나타나는데, 드박스(devaux)는 헷족속의 왕을 예로 든다. 

왕에게 기름을 붓는 행위는 분명히 하나님의 영이 임함을 상징하는 것이다(참조: 삼상 10:1, 삼상 10:10, 삼상 16:13). 

그러한 상징은 제사장의 기름 부음에도 또한 적용된다.

슥 4:3이하에서 기름을 공급하는 등잔을 지닌 일곱 가지 달린 등대도 하나님의 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슥 4:2-6).

감람나무로부터 흘러내리는 금 기름은(슥 4:12) 선한 행실이 가득찬 것을 상징한다. 

바울도 롬 11:17에서 렘 11:16의 비유(allegory)를 사용하고 있다. "나 여호와가 그 이름을 일컬어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으나..." 일찍이 다윗도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다는 생각을 했다(시 52:8).

올리브는 바닷가에서 잘 자란다. 올리브는 소금기 있는 공기와 안개를 좋아 한다고 한다. 

신 28:40에서 감람나무가 해변가 근처에 심어져야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서방인들에게 감람나무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으나 상록수가 자라기 어려운 여건인 동양인들에게는 감람나무의 갈색 잎은 매력적이다. 

감람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자랄 수 없는 곳에서 자란다. 더욱이 감람나무는 약간만 경작하거나 돌보아 줘도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한 그루의 감람나무에서 20갈론의 기름을 낼 수 있다.

감람나무에서 특별히 아름다운 점이란 없다. 그러나 호 14:6에서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라고 했다. 

회색이 섞여있는 나무둥치나 안쪽이 하얀 암갈색의 작은 잎새에도 아름다운 점은 있지 않고 열매까지라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수확이나 풍부한 기름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이 나무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욥 15:33에서 수천 꽃잎이 감람나무에서 떨어져 쓸데없이 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사실 감람나무는 각 백 개의 꽃 중에 단 한 개 만이 열매를 맺고 꽃잎이 떨어질 때 눈보라같이 보인다.((흰색 꽃이 많이 필수록 그만큼 더 소출이 늘어남))

수확기에는 감람나무 가지들을 흔들어서 열매를 딴다. 

농부들은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를 위하여 꼭대기 나뭇가지에 있는 몇 개의 올리브 열매는 남겨 두었다(신 24:10, 사 17:6).

유대인들은 감람나무로 비유되어 있다. 왜냐하면 다른 나무들이 자랄 수 없는 곳에서도 "열매"를 맺어야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품종이어야 하는 영적인 역할을 해야만 되었다(렘 11:16, 호 14:6).(참조: PEB; 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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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성경에 감람나무로 번역된 것은 이스라엘의 올리브나무를 뜻한다. 

감람나무는 우리말 성경이 중국어 성경에서 번역된 데서 비롯된 표현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 자라는 올리브나무와는 다른 나무다. 

어떤 사람은 감람나무를 중국의 올리브 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경에서 올리브나무는 종종 '영광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 같은 시적 표현들에 그 상징이 녹아 있다. 

>>줄기에서 나온 가지와 뿌리에서 나온 가지

올리브나무에는 줄기에서 나온 가지와 뿌리에서 나온 가지가 있다. 이 가지들은 'branch'로 번역되지 않고 'offshoot'로 번역된다. 줄기와 뿌리에서 독자적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두 종류의 올리브 가지는 성경의 곳곳에서 독특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올리브나무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말씀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줄기에서 나오는 가지는 히브리어로 '호테르'라고 한다. 

보통 줄기와의 접촉 부위가 두툼한데, 이는 목자의 막대기로 사용된다. 

목자는 양 떼를 인도할 때 호테르를 던져서 방향을 알려 준다. 이때 호테르는 두툼한 곳이 무겁기 때문에 그쪽이 먼저 땅에 떨어진다. 

호테르는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의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목자는 호테르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사자나 곰 같은 맹수가 양 떼를 공격하려고 달려들면 호테르로 맹수를 때려잡는다. 

목자가 호테르의 두툼한 한쪽 끝으로 맹수의 머리를 가격하면 맹수는 곧 나가 떨어진다. 

---뿌리에서 나온 가지는 '네쩨르'라고 한다. 

네쩨르는 올리브나무의 뿌리에서 원을 그리며 자라는데, 한 두개를 제외하고는 [어느 시점에서]모두 잘라 준다. 

남은 한 두 개의 네쩨르는 어린 묘목으로 사용되는데, 이를 우리말 성경에서는 '어린 감람나무'라고 번역했다. 

네쩨르는 어린 묘목을 위해 한두 개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잘라서 목자의 지팡이로 사용하는 것이 성서 시대 이스라엘의 풍습이었다. 

네쩨르는 허리에 차는 막대기에 비해 길다. 목자는 양들을 인도할 때 늘 네쩨르를 오른손에 쥐었다. 

목자는 위험한 곳에서 안전한 곳으로 양들을 옮길 때 이 지팡이를 사용했다. 

또한 장님이 지팡이로 길을 찾듯이 목자는 지팡이로 물과 진흙의 깊이를 쟀다.

>>메시아를 뜻하는 지팡이와 막대기

지팡이로 양 떼를 인도하고 다스리는 목자의 이미지는 이스라엘에서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델이었다. 이는 점차 권력의 상징인 왕의 '홀'을 상징하게 되었다.

"홀이 유다를 떠니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기49:10)."

올리브나무의 줄기와 뿌리에서 나오는 가지는 메시아를 상징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이사야11:1)."

줄기에서 나온 호테르는 양들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목자인 메시아를 상징한다. 

뿌리에서 나온 네쩨르는 어린 묘목으로 죽지 않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끝까지 살아남은 유다 지파 출신의 다윗 왕조, 즉 메시아 왕조를 상징한다.

>>나사렛과 메시아

마태는 예수님이 나사렛에 와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것은 선지자의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태복음2:23)."

이는 사복음서 중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유일한 표현이다. 구약 성경의 어느 선지자도 이런 예언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성서비평학자들은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며 이 말씀을 자주 들먹인다. 구약의 어느 선지자도 앞으로 오실 메시아가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고 예언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서 핵심은 나사렛의 어원에 있다. 

나사렛은 히브리어로 '나쯔라트'라고 한다. 이는 올리브나무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인 네쩨르에서 온 말이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어의 자음을 가지고 낱말놀이를 즐겼다. 원래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고 자음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네쩨르는 메시아를 뜻한다.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표현에서 유대인들은 "나사렛에서 자라신 예수가 바로 메시아"라고 선포하려는 마태의 의도를 알았고 쉽게 읽었을 것이다. 

마태복음의 대상이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었지만, 유대 문화를 모르는 이방인에게는 이런 말씀이 올무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올리브 기름

겟세마네 기도의 공간적 배경인 겟세마네 동산에게는 강력한 메시지가 숨어 있다. 

유대인들은 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겟세마네는 틀을 뜻하는 '가트'와 올리브기름을 뜻하는 '슈마님'이 합쳐진 복합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올리브기름을 짜는 틀이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리브기름을 쥐어짜는 것처럼 심령을 쥐어짜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이다.

올리브기름은 성서 시대부터 지금까지 성지 이스라엘의 대표 수출품으로 명성을 이어왔다. 

토양과 기후가 올리브 재배에 부적합한 이집트와 메소포타이아 사이에 위치해서 '사이 땅'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은 양질의 올리브기름을 수출했다. 

이는 고대부터 이스라엘의 경제를 지탱해 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스라엘은 일본과 함께 평균 수명은 높은 나라로 유명하다. 이스라엘의 장수 비결 가운데 하나가 올리브기름이라고 한다. 

지중해 주변의 나라들 중 양질의 올리브기름을 식생활에서 즐기는 나라의 특징은, 중풍과 심근경색 같은 심혈 관계 질환의 발병률이 현저하게 낮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샐러드 드레싱으로 약간의 레몬과 함께 올리브기름을 사용한다. 아침 공복에 올리브기름을 두세푼씩 먹는 사람도 있다. 이스라엘에서 올리브기름은 기쁨과 축복의 상징이었다.

이스라엘은 8월에 '투베아브'라는 명절을 지내는데, 이때부터 이스라엘에서는 낮이 짧아지기 시작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하지에 해당한다. 

이 명절은 올리브를 재배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투베아브를 지나면서부터 올리브 열매에 기름이 차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투베아브 전에는 올리브 열매를 눌러도 기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9,10월에 올리브 열매를 수확해서 피클을 만들어 저장한다. 

11월초에는 올리브 열매를 따서 기름을 짠다. 이쯤 되면 녹색의 올리브 열매는 검은색으로 변하며, 열매에 기름이 가득 찬다.

올리브기름을 짜는 것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었다. 

하나는 올리브 열매를 부수는 단계이고 다음은 부순 열매를 바구니에 넣어 무게추나 나사 등을 이용해 짜는 단계다. 

올리브를 짜는 '올리브 프레스'는 갈릴리 호수의 북서쪽에 위치한 가버나움에서 주로 생산해서 전 이스라엘에 보급했다. 

이스라엘에서 올리브는 모두 네 번 짰는데, 각각 사용되는 용도가 달랐다. 무게추에 올리는 돌은 각 단계마다 무게가 달랐다. 

처음에는 가장 가벼운 돌을 사용해서 기름을 짰다. 

첫번째로 짠 기름은 성전에 바치는 가장 거룩한 기름으로 사용되었다. 이 기름으로 성전의 촛대를 밝혔다. 왕과 대제사장을 기름 부을 때도 이 기름을 사용했다.

처음 짜고 남은 찌꺼기를 더 무거운 무게추를 사용해서 다시 짜서 얻은 기름은 가정에서 식용으로 사용했다. 

남은 찌꺼기에 다음 단계의 무게추를 올려서 세번째로 짠 기름은 용도가 다양했다. 이는 가정마다 있는 올리브 등잔을 밝히는 데 쓰였고 여자들 화장품과 약품으로도 쓰였다. 

더 무거운 무게추를 이용해서 남은 찌꺼기를 짜면 하나도 나올 것 같지 않은데도 다시 한 번 기름이 바구니 옆으로 흘러나온다. 이 마지막 기름은 잿물을 부어 비누로 만들어 사용했다.

무거운 무게추가 위에서 눌러 댈 때 바구니의 옆에서 기름이 흘러나오듯이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의 짐이 누르는 중압감으로 완전히 땅에 엎어지셨다. 

예수님의 얼굴은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 납작하게 땅에 눌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는 바구니 옆으로 기름이 흘러내리듯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흘러내렸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조용히 무릎을 꿇고 고요하게 기도하는 모습으로 그린 성화가 있다면 이는 겟세마네 기도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무거운 무게추를 단계마다 하나씩 올려서 네 번 올리브기름을 짜듯이, 예수님은 최후의 한 방울도 남지 않은 찌꺼기가 될 때까지 기도하셨다. 

올리브 찌꺼기를 땔감으로 사용했듯이,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서 온전히 불태우신 것이다. (열린다 성경-식물 이야기, 류모세, 두란노)

올리브 나무는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와 더불어 이스라엘에서 가장 흔한 과일나무이다. 

올리브 나무는 척박한 토양과 소량의 물만으로도 튼튼한 잎을 피운다. 그래서 올리브 나무는 영혼을 치유하는 나무로 불리며 지중해의 환경과 문화에 잘 어울려서 수천 년을 산다. 

올리브 나무는 줄기에 마디가 많고, 많은 은빛으로 반짝인다. 

 

올리브 나무는 늘푸른나무로 5월에 작은 흰색의 꽃이 피고, 나무 열매는 가을에 수확해서 식료품, 연료, 목공품,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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