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역개정]시127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비둘기같이온유한187...
--------------------- =====여호와 구속자, 구속하시는 여호와=====@구속[무름(속량)/자유]회복---속전(지속적으로 정결케 하는 보혈의 능력)--보수./보응/심판 la'G:(1350, 가알)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 [구속자 redeemer..근친/근족/혈연자 =고엘] 가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redeem,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어근과 매우 유사한 어근 파다([d"P; , 6308): 구속하다 redeem)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가알(la'G: , 1350)의 강조점이 구속자의 자격과 행함에 있는데, 반드시 근친이어야 하며, 근친의 특권이나 의무는 다름아닌 속량에 있다는 것이다.((JC가 바로 그러하시다..그는 태초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신 아들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이미 예고된 대로, 참사람으로서 성육신하셨고 인성을 가지셨기에 [죄로 인해 자기의 모든 것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파산한 자들인]우리의 피를 나눈 근친/근족으로서 모든 면에서 참된 자격과 능력을 갖추신 유일무이한 고엘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가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자기의 친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함하는 4개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a) 첫째로, 가알은 오경의 법령에서 궁핍한 때에 판 밭을 되사는 것이나 가난할 때 자신을 판 이스라엘인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되사서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대로 각 사람에게 배정/배분된 대로 모든 것을 돌려주고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지고지선의 진복 누림의 바탕을 제공하여 주는 구속의 일]로서 이런 매입과 무르는 일은 근친의 의무였다(레 25:25-54). 레 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다. 물론, 만약에 자신이 부유하게 되면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것이다(레 25:26). 한편, 가난한 자는 기업만이아니라 자기 자신을 동족 이스라엘인에게나(레 25:39)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타국인(레 25:47)에게 팔기도 하였다. 그를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척 - 형제, 삼촌, 사촌들, 가족의 혈족 - 에게 있었다(레 25:25, 레 25:48, 레 25:49).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친척을 속량한 redeemed 자(혈연자)는 '근족 - 구속자'로 알려져 있었다. (참조: EDBW). ---가난한 자의 구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례는 수혼법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룻기에 있는 것 같다. 신 25:5-10에 의하면, 남편의 형제는 후사 없는 과부를 취하여서 씨를 영속시키고, 남자 후손과 결부되어 있는 땅의 계승을 보증해야 했다. 여기 [수혼법의 실행 의무]에서 그것을 실행하는 근친은 야밤이라고 불리어지며, 어근 가알은 사용되지 않는다. ....룻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것들, 즉 밭을 되사는 것과 수혼이 언급된다. 근친은 밭을 사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룻과 결혼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의 요지는 나오미가 가난하여 밭을 팔 수 밖에 없었을 때, 근친은 그녀를 위해 그 밭을 되사야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후사 없는 형제의 과부를 위해서 이 일을 기꺼이 하려 했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 근본을 모르는] 룻과 결혼하여 그들의 기업을 지속시킬 자손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거부하였으며 여기에 보아스가 개입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 즉 친족과 수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엘(구속자)이란 단어는 후자의 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레게트(Leggett)는 룻기에 구속적이고 메시야적인 유형론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고엘(goel)로서의 보아스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예시되어 있음을 보았다. 보아스가 구속의 권리를 소유하였으면서도 분명히 룻을 위하여 개입할 의무(까지)는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보라...룻은 나오미의 견해를 따라서 겸손하게 자신을 신부로 취하여 후사를 낳도록 해 달라는 뜻으로 보아스의 이불을 들추고 눕는다!!...겸손과 순종의 극치이다!!)) ....보아스가 이 가난한 과부들의 곤경을 보았을 때 그의 생애가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러 왔던 것과 같이 메시야의 경우도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또한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시 72:2, 시 72:4, 시 72:12, 시 72:13, 사 11:4). (b) 둘째로, 가알은 재산이나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 아닌 짐승들을 무르는 것, 혹은 부정한 짐승들의 첫 소산을 무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레 27:11-33). 이 [속전!!]사상은 인간이 교환물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전은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 몫이 제공되었다. 이런 경우에 무르는 자는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주인이었다. (c) 셋째로, 가알은 살해당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RSV '보복자' revenger)가 되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칼 분사 고엘로 나타난다. 고엘은 구속자이며, 이 구속자는 '피의 보수자'로 불리우는데, 그의 임무는 자신의 친척을 살해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다(신 19:6). 이 사상은 가까운 친족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지불함으로서 집을 재매입하거나 노예를 속량할 수 있는 것처럼, 친족의 잃어버린 생명은 마땅히 살인자의 그에 상응하는 생명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친족은 피의 보수자이다. 이런 사형 제도는 피비린내 나는 숙원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죄없는 사형 집행인이었으며 따라서 살해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보수자'라는 의미로 12회 나온다(민 35:12, 민 35:19, 민 35:21, 민 35:24, 민 35:25, 민 35:27, 신 19:6, 신 19:12, 수 20:3, 수 20:5, 수 20:9).(참조: R. L. Harris). (d) 넷째로, 가알은 하나님께서 '구속자'로서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출 6:6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라고 약속하신다(출 6:6, 참조: 시 77:15).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출 15:13).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 78:35). ....이사야서에는 '구속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지칭하여 13회 나오는데 모두 사 41- 63장에서 사용되었다. 가알은 하나님에 대해 9회 사용되었으며, 사 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가알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사 51:10, 사 63:9)과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구원(사 48:20, 사 52:3, 사 52:9, 사 62:12)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41:14)이며 '너희의 왕 이스라엘의 창조주'(사 43:14, 사 43:15)이며 '만군의 여호와'(사 44:6)이며 '야곱의 전능자'(사 49:26)이다. 그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는 '구속 받은 자'이다(사 35:9). ....시편에는 종종 영적인 구원이 육적인 구원과 병행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시 69:18.,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시 103:2, 시 1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윤택을 잊지 말찌어다...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이 그러하다(참조: EDBW). [욥19:25,26,27]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25. "And as for me,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at the last He will take His stand on the earth. *26. "Even after my skin is destroyed, Yet from my flesh I shall see God; *27.Whom I myself shall behold, And whom my eyes shall see and not another. ....유명한 구절, 욥 19:25에서 고엘이란 단어는 흠정역성경에서 '구속자' redeemer로 번역되며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속죄의 사역을 하러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파다"에 의해 더욱 특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제 욥 19:25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욥을 죽음의 먼지에서 구속할 친구이자 친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더욱 정확하게 관련된다. 욥 19:26의 난해한 어구, "이 가죽을 벗은 후에"는 다른 모음들과 함께 "내가 깨어난 후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NIV 각주와 욥 14:12-14을 참조하라. 욥 14:12-14에서 부활에 관한 욥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를 돌아보시며 욥은 나무처럼 제 2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의 소망에 의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 욥 14:14의 할리파는 욥 14:7의 할랍에 대한 응답이다). 어쨌든 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고엘이신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참조: R. L. Harris).
..[[사59:20,21]]..*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4]] *2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미가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 --죄인괴수 죄성 지닌 자, 세상살이는 메섹과 게달의 장막에 사는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 탈취와 노략의 쟁투, 곧 환난의 날이라, 오직 구주JC께 부르짖어 그분안에 충만히 거하라. [시120] *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3.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5.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이제, 마음 열어, 중심으로 동행하시는 영원반석/성채/산성-보혜사-인도하시며 지키시는 목자, 엘에제르 HS와 동행하라 [시121]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보라, 그리스도를 살라, 사람들로 하여금 평강과 형통 허락하시는 네안의 여호와를 감사하며 흠모하고 기리게 하라, 자원하여 나아와 공예배에 함께 참석하기를 원하도록 만들라. [시122편]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네눈을 [세인의 조소와 멸시로부터]구주 JC께 돌려 중심으로 산 믿음 발휘함으로 앙망하라, 긍휼 구하라, 정복자 그 이상의 존재, , 허락하신 영생안에서 모든 이김을 감사하라 [시123편]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엘에제르, 임마누엘 여호와께 감사하라...[세인의 약탈-침노와 멸절로부터] 말씀의 뜻대로 행하시도다. [시124]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지고지선의 진복은 오직 구주로 사는 (선을 행하며 정직하게 동행하는) 기독자들은 여호와의 선대하심/평강형통 깨닫고 감사하라.. [시125편] *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오순절-해방/회복]구속 은혜 기쁨안에서: 섭리의 때, 해방 감격 = 전존재로 누리는 영적 기쁨과 감사, 실제적 형통 [모든 이들이 주께 돌이킴] 회복/부흥 추구 실행의 긍휼 간구 [시126편]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솔로몬에게 깨닫게 하신 말씀--친히 집과 가정을 세우며 지키시는 전능-은혜 구주를 높이며 친밀한 하나됨 이루어 따르라, 자랑-기쁨의 가정과 기업된 자녀들이여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바나..건축하다 ...야긴[그가세우신다]..보아스[그에게 능력이 있다])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샤마르) 아니하시면 파수꾼의(샤마르)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에체브)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형>에디드..<명>야다드:사랑하다/야다 : 알다..연인:도드...여디디야=야디드+ 야 :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솔로몬)에게는 잠(안식, 쉼)을 주시는도다 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나할라..맡긴 바 됨/유업, 소유, 기업, 누림)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사카르) 4. 젊은 자(나우르)의 자식은(벤) 장사의(깁보르) 수중의 화살(헤츠)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아쉬파)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에셰르) 그들이 성문에서(샤아르)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다바르)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 표준새번역]시127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솔로몬의 노래 1.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솔로몬의 노래)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 2.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리신다. 3. 자식은 주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보상이다. 4. 젊어서 낳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쥐어 있는 화살과도 같으니, 5. 그런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성문에서 원수들과 담판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 KJV]시127 1. Except the LORD build the house, they labour in vain that build it: except the LORD keep the city, the watchman waketh but in vain. 2. It is vain for you to rise up early, to sit up late, to eat the bread of sorrows: for so he giveth his beloved sleep. 3. Lo, children are an heritage of the LORD: and the fruit of the womb is his reward. 4. As arrows are in the hand of a mighty man; so are children of the youth. 5. Happy is the man that hath his quiver full of them: they shall not be ashamed, but they shall speak with the enemies in the gate. ======
시편 127장 (개요) 앞에 나온 시편들이 국가 시나 교회 시로 다양하게 분류되듯, 이 시편은 가정 시다. 이 시편은(우리가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아버지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 “솔로몬의 시”다. 그는 도성을 지킬 집을 짓고서 그의 아버지를 높이고 있다. 다윗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숭상하게 하고, 그의 섭리에 의지하도록 지시한다. 그것이 없다면 그의 모든 지혜와 보살핌과 근면은 헛되다고 가르친다. 어떤 이들은 이 시편을 솔로몬 자신이 기록했다고 한다. “솔로몬의 노래”처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실로 많은 시를 썼다. 그리고 그것들과 전도서와 비교해 볼 때 세상 관심의 허무성과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보여주는 점에서 양자의 내용은 같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1. 재산에 대해(1-2). 2. 그것을 남겨줄 상속자에 대해(3-5).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맡은 일에 대한 성공과 우리의 모든 위로와 즐거움에 대한 축복을 바라면서, 하나님을 우러러보아야 한다. 그는 모든 피조물을 우리에게 있도록 할 수도 있고 더 이상 없도록 할 수도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 섭리에의 신뢰(시 127:1-5) 우리는 모든 이생의 관심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계속 주목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 솔로몬은 현자가 되기 위해 부르짖었고, 그래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해와 예견에 의존하기 쉬웠다.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좀더 높이 바라보도록 [여호와를 참되게 알고 사랑하며 섬기며 의뢰하도록] 가르치며, 그의 모든 기업에 하나님을 모시도록 가르친다. 솔로몬은 [가업을 세우고 지키기 위해] 바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다윗은 그에게 신앙의 지도 아래 그의 기업을 경영하는 법을 지도했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가르칠 때 그들의 상황과 경우에 따라 훈계를 적절히 해야 한다. [그 모든 일에서]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Ⅰ. 가정의 문제와 사업에서, 심지어는 왕의 가족이나 왕의 가정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심보다 더 안전한 것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에 의지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재간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1. 가정을 세우는 데. ---“여호와께서” 그의 섭리와 축복으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아무리 정교하다 할지라도 “헛되다.” ===우리는 그것을 실질적인 집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여호와께서 건물과 그 가정사의 근본동기 자체를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것이 인간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것은 하늘을 공격하려고 시도한 바벨론의 건축이나 저주 아래 여리고를 건설한 히엘이나 다를 바 없다. ===만일 그 모양과 설계가 교만과 허무한 것에 그 뿌리를 둔 채 그대로 놓이고, 그 기초가 압박과 불의에 놓인다면(합 2:11-12), 하나님은 확실히 거기에 세우시지 않는다. 아니, 하나님께 인정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의 축복을 기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고, 그의 축복 없이는 모든 것이 다 허사다. 오히려 그것이 가정을 형성하는 데 비천하다고 이해될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유익한 결연과 직무, 고용과 구매에 의해 이것을 행하려고 노동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주장하사 가정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모든 것이 헛되며, “가난한 자들을 진토에서 일으키시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사다. 가장 잘 구성된 설계도 하나님께서 성공적으로 거두시지 않는다면 무너질 것이다(말 1:4 참조). 2. 가정 혹은 도성의 안전 돌봄과 지킴에 대해(바로 시편 저자가 특별히 언급하는 것이다). ---성의 파수꾼이 하나님 없이 지킬 수 없다면, 집에 있는 선한 사람도 그의 집이 무너지는 것을 구할 수 없다. “여호와께서” 불과 적으로부터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성을 돌아보며 그 성벽을 따라 순회하는 “파수꾼”이 졸거나 잠들지 않고 “경성함이 허사다.” ===맹렬한 불길은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즉각 발견한 불행은 막을 수 없다. 파수꾼이 살육 당하거나 수많은 돌발 사건에 의해 도성이 배반당하거나 상실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사태는 가장 주의 깊은 파수꾼이나 가장 사려 깊은 통치자도 미연에 방지할 수 없다. 3. 가정을 부요-형통-번성케 함에. ---이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며, 생각해야 할 일이지만, 사람이 행복하게 될 어떤 산물보다도 섭리의 은총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이 헛되도다. 그리하면 세상의 부를 열심히 추구하여 너희 육체의 원기 회복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보통 일찍 일어나는 자들은 늦게 눕는 일에 관심하지 않으며, 늦게 눕는 자들도 일찍 일어나려고 자신들을 쉽게 설복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열중해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그들의 관심사에 몰두하느라 잠을 줄인다. 그리고 그들은 휴식에서는 물론 음식에서도 거의 위로를 얻지 않는다. 그들은 “수고의 떡을 먹는다.” ===얼굴에 땀을 흘리면서 빵을 먹는다는 것이 우리의 금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보다 더하다. “그들은 일평생을 어두운 곳에서 먹는다”(전 5:17). 그들은 끊임없이 근심에 가득 차 있고, 위로를 쓰디쓰게 하며, 그들의 생을 짐으로 여긴다. 이 모든 일을 돈을 얻기 위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번영하게 해주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다.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전 9:11).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를 가장 사랑하는 자들은 이렇게 수고하지 않아도 그들의 마음을 편케 하며, 매우 안락하게 살아간다. ...[땅에 거하는 경건자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재물의 풍부함보다 낫다] 솔로몬은 “여디디야”라고 불렸다.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었다”(삼하 12:25). 그에게 왕국이 약속되었다. ...[주님은 그 뜻하신 말씀 그대로 이루신다] 그래서 압살롬이 다윗왕에 대해 반역할 그 때, 압살롬이 일찍 일어나 백성들을 감언이설로 꾄 것이 허사였으며, 아도니야가 그런 방식으로 동요해서 솔로몬왕에 대해 반역을 꾀함으로써 “내가 왕이 되리라”고 말하는 것이 헛되었다. 솔로몬은 평안하게 앉아서 “여호와의 사랑하심을 받았고”, 하나님은 그에게 잠을 주시고, 왕국도 역시 주셨다. (1)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헛되고 쓸모 없다. .....우리는 그것을 취할 때도 쓸데없이 걱정하며 헛되게 바라며 걱정한다(학 1:6, 9). (2) 육체의 잠은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의 잠이 안전하며(4:8) 달콤한 것은(렘 31:25-26) 그의 인자하심을 힘입은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것같이 우리에게 잠을 주신다. 그는 잠과 함께 우리에게 그를 경외하며 눕는 은총을 주신다(우리의 영혼이 그에게 돌아가며, 그에게서 우리의 휴식을 취한다). .....우리는 그와 함께 고요한 중에 깨어 잠을 취함으로써 얻은 원기를 그를 섬기는 데 사용한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즉, 그들에게 마음의 고요와 만족을 주시며, 현재의 안락한 즐거움과 미래의 안락한 기대를 주신다.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많이 갖든지 적게 갖든지 평안하게 될 것이다. Ⅱ. 가족의 증가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1. 자녀들은 “하나님의 기업”이다(3절). ---만일 자녀들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들을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창 30:2).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며, 또는 걱정이 된다. ===솔로몬이 율법에 반해 많은 아내를 두었으나 그가 가진 아들이 한명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본다. ===여호와께로부터 기업으로 자녀를 사모하는 자들이 한 아내에 대한 법적인 결혼에 의해 자녀를 주시기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자녀를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말 2:15). “어찌하여 하나를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저희가 음행하여 번성하지 못하리라.” “자식은 기업이요, 상급이로다.” 그렇게 여겨져야 하며, 그들이 축복이지 짐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를 신뢰한다면 입을 보내신 자가 고기를 보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오벧에돔은 여덟 아들들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가 언약궤를 영접했으므로 여호와께서 축복해 주셨기 때문이다(대상 26:5). 자녀들은 여호와께로서 온 것임은 물론 그를 향한 기업이다. 그들은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자녀”(하나님의 말씀)들이다(겔 16:20). 자녀들이 그에게서 한 세대로 정해질 때 우리의 가장 큰 영광이요 위로가 된다. 2. 자녀들은 선한 기업이며, 가족에게 큰 도움과 방어가 된다....[하나님 나라, 복음교회의 성도, 자녀의 증다는 영원한 젊은이, 엘 깁보르이신 구주께 축복이요 자랑이다!!] ---젊은 자의 자식은, 즉 젊은 부모들에게 태어난 자식은, 자신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 자기에게 있는 화살을 사용할 줄 아는,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다.” 그들은 가장 강하고 가장 건강한 자식들이다. 그들은 저희의 봉사가 필요할 때 부모들을 섬기도록 성장할 것이다. 그들은 부모와 가족에게 크게 선한 도구가 된다. 그들은 적들에 대해 방어를 튼튼히 할 수 있다. ===수많은 자녀들이 있는 가정은, 우리가 상상하건대, 크기가 다른 화살의 전통과 같다. 그러나 모두 다 때에 따라 쓰인다. 서로 다른 재능과 경향을 가진 자녀들은 여러 가지 길로 가족에게 도움이 된다. 많은 자식을 가진 자는 “성문에서 그 원수와” 담대하게 판단해 말할 것이다. 그는 젊은 기백을 가진 많은 자손과 매우 열심 있고 신실한 자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싸움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삼상 2:4-5). ===다음의 사실을 고찰해 보자. “젊은 자의 자식은 수중의 화살과 같다.” 그들은 신중하게 표적, 즉 하나님의 영광과 그 세대의 섬김을 향해 똑바로 겨냥할 수 있다. 그러나 후에 그들이 세상 밖으로 갈 때 손에서 나간 화살이 된다. 그때에는 너무 늦어 그들을 구부릴 수 없다. 그러나 손에 있는 화살은 너무도 자주 머리가 희어진 경건한 부모들에게 부단한 슬픔이 되고, 마음에 화살이 된다. 그러한 연고로 부모들은 슬픔으로 죽어 가는 경우도 있다. --- --- hn:B;(1129, 바나) 세우다, 짓다, 건축하다 바나(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세우다, 짓다, 건축하다 build'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7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바나는 가옥을 건축하는 것뿐 아니라, 가문을 세우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단어는 '자손을 가지다(번성케 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a) 바나는 제단(창 13:18, 창 22:9, 창 35:7), 집(창 33:17, 신 8:12), 성읍(출 1:11, 수 24:13), 성전(왕상 6:2-36, 왕상 8:13), 산당(왕상 14:23, 왕하 17:9), 성채(대하 17:12, 대하 27:4), 망대(대하 26:9, 대하 26:10), 문(대하 27:3), 성벽(대하 27:3, 대하 32:5, 느 4:6), 흉벽(전 9:14, 렘 52:4), 거리(단 9:25), 바벨탑(창 11:6-8)을 건설(축)하거나 쌓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b) 동사 바나의 신학적 의미는 이 동사가 처음에는 하나님을, 그리고 다음에는 사람을 주어로 취하여 사용되었음을 고찰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① 바나는 건축가로서의 하나님에 관해 묘사한다. 여호와는 성경에서 창조 질서와 역사 질서의 건축업자로 나온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서 취한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고 하는 대목에서(창 2:22) 비유적으로 인간의 유익을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창조 행동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 외의 경우에 성경에 나오는 시인들은 질서 잡힌 우주를 여호와께서 계획하여 지으신 건물로 묘사한다(암 9:6, 참조: 시 104:2-3). 여호와, 곧 창조질서의 지혜롭고, 능력 있고 좋은 건축가는 또한 세속사의 주권자요 도덕적 건축 청부업자이기도 하다. 그의 역사에 대한 주권적 지배는 여리고를 재건하는 자는 장자를 잃게 된다는 여호수아의 예언에 나타나 있다(수 6:26). 벧엘 사람 히엘은 800년이 지난 후에 이 끔찍한 예언을 이루었다(왕상 16:34). 역사의 설계자이신 하나님은 그 자신의 왕국을 지으면서 악한 자의 건축물을 파괴하신다. 불경한 자의 업적들을 파괴하시는 그의 지배에 대하여, 욥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욥 12:13-14a). 그의 의로우신 완성 때문에,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예견하였다: "저희[악한 자들]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시 28:5). 심판 때에, 하나님은 불경한 자들이 결코 재건할 수 없도록 그들의 도시들을 파괴하실 것이다. 이것이 가나안인들(신 13:16, H17)과 두로(겔 26:14)의 운명이었다. 이사야는 송영으로 다음과 같이 외쳤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 외인의 궁성으로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영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사 25:1-2). 한 마디로 말해서, 불의하게 세워진 것은 불안정하며 멸망할 것이다. 지배자들이 시온을 유혈로 짓고 예루살렘을 폭력과 불법으로 지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폐허가 될 것이며(미 3:10), 여호야김은 불의와 불법으로 광대한 집을 지었기 때문에 완고한 당나귀처럼 매장당할 것이다(렘 22:13-19, 참조: 합 2:12).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새로 건축한 집을 그들이 미처 사용하기도 전에 적에게 넘겨줌으로써 여호와께서 가나안인들에게 가한 운명과 똑같은 운명을 자기가 선택한 도시도 당하게 하셨다(신 28:30, 습 1:13). 비록 에돔같은 나라들이 그의 명령을 거스려 세우고자 결심하다 하더라고, 그들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말 1:4). 그렇지만 그의 주권이 그의 의로운 목적에 따라 선민을 통해서 그의 왕국을 세운다고 단언하는 본문들도 있다. 여호와께서는 만약 여로보암 1세가 여호와의 법령을 지킨다면, 견고한 집을 세우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왕상 11:38). 그러나 다윗과는 달리, 여로보암 1세는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 행동하지 못했다. 그의 충성스런 제사장들과 왕들의 집을 세우는 외에, 그는 또한 시온과 성전의 건축업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모세 시대에도, 하나님은 제단들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지시하셨다(출 20:25, 신 27:5). 이스라엘의 황금기인 통일 왕국 시기에 하나님은 자기의 집을 지을 시기와 장소 그리고 사람을 선정하셨다(왕상 8:16-20). 다윗은 솔로몬에게,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 그가 그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재료와 장인들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대상 22:11, 대하 2:7 이하, H 6). 따라서 그가 자기 이름을 둘 곳을 택하기 위해 이 민족을 창설하셨을 때, 그는 자기의 약속을 성취하신 것이다(신 12:5).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이 건물을 짓는 것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지시되어 있다(참조: 왕상 6장, 겔 40장, 느 3장). 더구나, 그가 다윗과 시온의 집을 잠시동안 헐어버림으로써, 그들을 징벌하시기는 하지만, 구원을 가져오시는 그의 목적이 영원히 망쳐질 수는 없다. 예레미야가 "건설하며 심다"라는 합성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합성어가 하나님의 파괴적인 심판행위 뒤에 나오므로,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다시 세우신다"는 것을 나타내준다(렘 1:10, 렘 18:7-10, 렘 42:10). 이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리라는 여호와의 약속은 인상적이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렘 31:4, 참조: 렘 24:6, 렘 33:7). 이런 단어 쌍의 비유적인 용법에서 주어는 항상 여호와이며, 예레미야서에서 이것이 나올 때, 목적어는 언제나 한 무리의 사람들, 주로 이스라엘이다. 이 단어 쌍은 구원사와 결부되며 여호와의 염려뿐만 아니라 그의 주도권을 강조한다. 예컨대 그는 고레스를 보내어 성전을 재건하게 하셨고(대하 36:23, 스 1:2-4) 다윗의 집을 재건할 것을 약속하셨다(암 9:11). (아마도 우주적인 구원을 가져오는 데에 이스라엘을 이용하려는 그의 의도에 대한 하나의 암시로서, 그는 첫번째 성전을 짓는 데에 뵈니게인들을 이용하시고, 또 두 번째 성전을 짓는 데에 할례 받지 않은 고레스를 이용한 것 같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므로, 그의 축복 없이 건물을 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시 127:1). 모든 집과 도시들은, 여호와께서 선민들에게 그들이 짓지 않은 도시와 집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시고(신 6:10 이하, 수 24:13) 배반자의 도시들을 멸하겠다고 위협하실 때(신 13:16, H 17) 보여주신 것처럼, 그의 재량권에 달려 있다. 여호와가 없으면, 공격 장비와 방어 공사도 아무 소득이 없다(겔 17:17, 참조: 겔 21:22, H 27). 다윗은 하나님을 크게 의지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지었다(시 51:18, H 20). ② 바나는 건축가로서 인간에 관해 묘사한다. 사람이 만든 건물들은 하나님의 성품이나 목적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에 의해 선한 것으로 판단되기도 하고 악한 것으로 판단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노아(창 8:20), 족장들(창 12:7-8, 창 13:8, 창 13:18, 창 22:9, 창 26:25, 창 35:7). 모세(출 17:15, 출 24:4), 여호수아(수 8:30)가 쌓은 제단들을 받으셨다. 반대로 그는 산당과 아론(출 32:5), 솔로몬(왕상 11:7), 르호보암(왕상 14:23) 등이 쌓은 이방신 제단들을 거부하셨다. 바나의 목적어로 가장 자주 나오는 도시들도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시온에 관한 노래는 기뻐하시지만(시 122:3), 가인이 지은 도시(창 4:17)나 앗수르의 니느웨(창 10:11)는 기뻐하지 않으셨다. 비록 두로가 유능한 장인들에 의해 이룩된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하긴 했지만(겔 27:3 이하), 죄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다(겔 27:26 이하). 비록 사마리아에는 다듬은 돌로 만들어지고(암 5:1, 참조: 사 9:10, H 9) 상아로 장식된(왕상 22:39, 암 3:15) 집들이 있었지만, 이 곳도 두로와 똑같은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건축 활동은 자주 하나님의 구원 활동과 관련되곤 한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시온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저장 도시들과 다른 요새지들도 세웠다(대하 8:5).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다시 집을 세울 날을 예기하였으며(겔 28:26, 겔 36:10, 겔 36:33, 겔 36:36)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종들이 또 다시 유다의 도시들을 세울 것이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늘과 땅에게 명령하였다(시 69:35, H 36). 낭독자는 그들 스스로 예루살렘 주변에 동네를 세운 느헤미야 시대의 노래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한다(느 12:29). 이스라엘 역사에서 집들은 그 곳에 사람이 정착하게 되었을 때 중요시되었다. 야곱이 가축을 위해서 집과 오두막을 지었다고 하는 첫 번째 언급은 그가 밧단아람에서 되돌아와 에서와 헤어지고 난 뒤에 나온다(창 33:18). 모세는 백성들이 그 땅에 정착할 것을 예상하여, 그들의 평평한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고 지시하였고(신 22:8), 그는 새 집을 짓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사람의 병역을 면제해 주었다(신 20:5). 바나는 자녀를 출산함으로써 가계를 세우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라헬과 레아는 결혼 축복에서 이스라엘의 집을 세웠다고 언급된다(룻 4:11). 수혼은 "집"이나 가계를 세우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신 25:9). 창 16:2, 창 30:3에서는 니팔형이 사용되어 '자손을 얻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c) 바나는 비유적으로, 안전의 표시(겔 28:26, 겔 11:3), 사치, 호사(전 2:4, 렘 22:14), 영구한 거주(왕상 2:36, 렘 29:2, 렘 29:28), 지혜의 집(잠 9:1), 회복(렘 12:14, 렘 12:16), 회개하는 자의 흥함(욥 22:23), 악인의 번영(말 3:15)을 나타낸다. (참조: BDB; TBC; B. K. WALTKE). ------- lm'[;(5998, 아말) 힘써 일하다, 수고하다 아말(동사)은 기본어근이며, '일하다, 노동하다, 힘써 일하다, 수고하다, 고생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1회 나오며, 칼형으로만 사용되었다(시 127:1, 잠 16:26, 전 1:3, 전 2:11, 전 2:19, 전 2:20, 전 2:21, 전 5:16, 전 5:18, 전 8:17, 욘 4:10). -------- rm'v;(8104, 샤마르) 지키다, 준수하다, 보존하다, 감시하다, 주의하다 샤마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지키다, 준수하다, 보존(간수)하다, 감시하다, 주의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7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a) 샤마르의 기본적인 개념은 '큰 주의를 하여 행한다'를 의미한다. 이 기본적인 개념은 이 동사의 변형된 다양한 의미들 저변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동사가 다른 동사들과 결합되면 그 의미는 '면밀하게 혹은 부지런히 행하다'가 된다. 예컨대 잠 19:8에서 "명철에 주의하다"(한글개역 "명철을 지키는"), 신 11:32에서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행하도록 주의하라 즉 주의 깊게 수행하라(한글개역 "지켜 행할찌니라")", 그리고 민 23:12에서는 주의 깊게 말하다 혹은 충실하게 말하다. (b) 샤마르는 언약 의무, 율법, 법규, 등에 '면밀하게 주의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창 18:19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그의 자식들에게 여호와의 도를 지키도록 즉 하나님의 도에 조심스럽게 유의하도록 명령해야 한다(출 20:6, 레 18:26, 신 26:16, 겔 11:20).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은 단지 이론 만의 문제나 마지 못해 추종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들을 행하라'는 표현이 자주 첨가되는데, 겔 37:24에서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잠 4:21은 그것들을 마음에 지키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 표현은 율법 등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제사장 직분과 같은 성직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사용된다(민 18:7). (c) 샤마르는 '돌보다, 보호하다'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정원(창 2:15), 양떼(창 30:31), 집(삼하 15:16) 등과 같은 것들을 지키거나 돌보는 것이 포함된다. 또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는 그룹(창 3:24)이나 문지기(사 21:11)나 파숫꾼(아 5:7)과 같이 침입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도 이 의미의 범주에 포함된다. 사람에 대해서도 이러한 의미가 적용될 수 있다.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라고 묻는다. 다윗은 시 34:20, 시 86:2, 시 121:3-4, 시 121:7 및 기타 구절들에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에 대해 자주 말한다. 욥 2:6에서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의 생명을 건드리지 말라고 명할 때 샤마르를 사용하신다. 또한 다윗은 요압이 압살롬과 싸우러 가기 전에 그에게 비장하게 타이르기를 "나를 위하여 압살롬을 지키라"(한글개역 "해하지 말라", 삼하 18:12)고 했다. 흔히 이 동사는 인격의 훈련, 즉 개인의 생활과 행동 면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에 대해 사용된다. 시 39:1에서 자기 행위를 조심하는 것, 잠 13:3에서 입을 조심하거나 지키는 것을 묘사한다. (d) 샤마르는 '중시하다', '...에 유의하거나 주의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사람이 하나님이나 기타 다른 것들에게 주의하거나 경의를 표하는 태도를 기술한다. 예컨대 호 4:10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유의하기를 그만두었다(한글개역 "여호와 좇기를 그쳤다")고 한다. 시 31:6은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언급한다. 또 다른 관련 용법에서 시 130:3에서 기자는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진실로 주의하실진대) 누가 서리이까?"라고 한다(욥 13:27). 이 단어는 삼하 11:16에서처럼 적대한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고 슥 11:11과 시 59:9에서처럼 기대한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e) 샤마르는 '보존하다' preserve, '축적하다' store up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에돔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분노를 계속하여 품고 있는 것(암 1:11)이나 지식을 축적하는 것(말 2:7). 이 단어가 창 41:35과 삼상 9:24에서는 음식에 대하여, 출 22:7에서는 귀중한 어떤 물건에 대해 사용되어 있다.(참조: J. E. Hartley; BDB). ------ dq'v;(8245, 샤카드) 지켜보다, 감시하다, 경계하다, 깨어있다. 샤카드(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깨어있다 wake, 지켜보다, 지키다, 망보다, 경계하다 watch'를 의미한다. 샤카드는 페니키아어와 시리아어에 동족어를 가지고 있다. 이따금 샤카드는 샤마르(rm'v; , 8104: 지키다, 경계하다)와 의미가 일치하며, 또한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샤마르(rm'v; , 8104)는 면밀한 주목과 보호를 강조하는 반면에 샤카드는 기본적으로 경계하는 태세를 강조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2회 나오며, 칼형으로만 사용되었다. (a) '~을 지키다, 지켜보다'(유익을 위하여 렘 31:28, 렘 44:27, 이루거나 임하게 하기 위하여 렘 1:12, 단 9:14, 인간이 죄를 범할 기회를 사 29:20, 먹이를 잡기위해[비유] 렘 5:6, 지혜의 문에서 '기다리는' 사람에 대해 잠 8:34) = '감시하다, 경계하다'(욥 21:32, 스 8:29, 시 127:1). (b) '깨어 있다, 잠자지 않고 있다'(시 102:8). (참조: BDB; TWOT). --일어나다---- !Wq(6965, 쿰) 일어나다, 일어서다, 세우다 쿰(동사)은 기본어근이며, '일어서다, 일어나다, 일으키다, 세우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30회 나온다. 이 어근은 본질적으로 '일어선다'는 신체적 행위를 가리킨다. 파생어의 의미들에는 그러한 행동의 결과가 내포된다. 즉 '서 있다'는 뜻이 된다. 또한 이 어근은 상징적으로 일어나거나 서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이와 동일한 용법들이 우가릿어에서 등장한다(참조: UT19: no. 2214). 본 어근은 1,085회 출현한다. 동사 쿰은 여러 그리고 다양한 문맥에서 나타난다. 근본적으로 이 단어는 엎드린 위치에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예: 수 3:16). 수많은 용례에서 이 단어는 예비적 행위를 가리키며 특히(예외 없이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음) 여행에 따른 준비 행위를 가리킨다(신 17:8 등등). 그러므로 창 27:19의 "일어나 앉아서(!)"는 단순히 "자 앉으세요"를 의미한다. 본 어근은 존경을 보이는 행위를 내포할 수도 있다. 발람은 발락에게 "일어나" 하나님의 말을 받으라고 말한다(민 23:18).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노인들 앞에서 "일어서라"고 명한다(즉 노인을 공경하라, 레 19:32). 이러한 강조 사항이 종교 의식에까지 이르고 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 모든 사람이 자기 장막 문에 "서서" 경배하였는데(출 33:10) 이는 하나님께 합당한 경의를 표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때 열왕들조차도 일어설 것이다(경배한다는 말과 대구를 이룸, 사 49:7). 나아가서 종교 의식적 용법에는 거룩한 물건들과 성역들을 세우고 바치는 행위가 포함된다(신 27:4). 하나님은 우상들을 세우지 말라고 명하신다(레 26:1). 진정 종말에 그는 이 계명이 성취되게 하실 것이다(사 27:9). 이 동사는 또한 직무적 용법을 가지고 있다. 즉 이 동사가 특정 직무수임에 적용된다. 예를 들면 종족의 종교적 우두머리(창 37:7), 선지자(신 34:10), 사사(삿 10:1) 등이다. 이러한 직무들은 세습적으로 계승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와 구별된다(이 단어가 제사장 직무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 단어가 법적 용법으로 쓰일 때 재판에서의 증언의 유효성을 내포한다(신 19:15). 이와 관련된 한 용법에서는 소유권 이양의 유효성을 의미한다(창 23:17). 하나님의 말씀이 설 것이라는 표현도 아마 이러한 법적 개념을 반향할 것이다(민 23:19, 시 40:8, 기타). 이 용법은 계약과 관련된 문맥에서, 그리고 특히 하나님의 언약을 다룬 문맥에서 종종 등장한다. 하나님은 자기의 언약을 인간에게 알리시며(창 9:11) 그가 친히 그것이 성취되게 만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창 17:19). 그는 자기의 언약을 세운(종종 '쿰'의 히필형) 여러 역사적 순간들을 기억하신다(출 6:4). 언약적 축복이 인간의 순종에 달려 있음을 그들이 기억해야 된다고 하나님은 확언하신다(신 28:9). 그러나 그 축복이 인간의 공로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님을 그들은 결코 망각해서는 안된다(신 9:5). 베리크(언약 covenant)와 결합시켜, 카라트(자르다 cut)와 헤킴을 상호 대용한 것은 각기 상이한 자료 J/E와 P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양자 간의 어의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하나는 언약을 '개시하다' initiating 또는 '체결하다' making(tr'K; , 3772)를 뜻하며 또 하나는 언약을 '확정하다, 확립하다' confirming or establishing(!yqije)를 뜻한다. 이스라엘 역사 전체에 걸쳐 이러한 상호 관련 주제들이 등장하며 경건한 사람들은 언약 수행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신실성을 증언하고 있다(예: 왕상 8:20). 궁극적으로 인간의 모든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으나 하나님의 언약은 설 것이다. 하나님의 일시적 언약들은 그의 영원한 언약을 계시하는 단계들이며 이 영원한 언약은 파기할 수 없는 그의 계획(사 46:10)과 목표(사 14:24)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뜻(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완전하게 표현되었다(예: 갈 3장, 히 9장). 마지막으로 이 단어는 군사적 문맥에서 자주 사용된다. 이것은 전쟁을 위한 준비(삿 7:15), 전쟁 수행(출 2:17), 전쟁의 승리(또는 분투노력의 성공, 수 7:2)를 가리킨다. 때로 쿰이 예상되는 또는 실현된 승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전투에 참가하실 때 승리는 확실하다. 따라서 이 단어는 그의 창조적 행위, 구원 행위, 심판하는 행위를 뜻한다. 경건한 사람들은 자주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일어나실 것을 간구하였다(민 16:35). 이점은, 이러한 승리 개념이 직접 표출되지 않은 수많은 시편 본문들을 밝혀준다(시 3:7, H8, 시 76:9, H10, 시 35:2). 하나님이 어느 편에 서게 될 때 그는 대적에게 승리한다.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들은 즉각적(시 89:43, H44), 궁극적(시 1:5) 패배를 당하리라는 경고가 주어진다. ----눕다--- bv'y:(3427, 야샤브) 앉다, 머무르다, 살다, 거주하다 = 거하다 abide. 야샤브(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앉다, 머무르다, 살다, 거주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08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a) '앉다, 내려 앉다'(창 27:19, 욥 2:13, 시 9:5, 창 21:16). 사사나 왕(시 9:5, 사 10:13), 매복한 자(욥 38:40, 렘 3:2), 적(삼상 13:16), 애곡자(욥 2:13, 사 47:5), 게으른 자(사 30:7, 렘 8:14)에 대해 사용되었다. (b) '머무르다, 체류하다'(창 24:55, 출 24:14, 삿 19:4, 삼상 16:8 등). (c) '거주하다, 살다, 거처를 정하다'(창 4:10, 창 4:20, 시 107:10 등, 분사로, '거주자, 거주민이나 주민' 창 19:25, 삿 1:21). 2. 니팔형에서 '거주하다'(출 16:35, 렘 6:8, 렘 22:6, 겔 12:20, 겔 26:19 등). 3. 피엘형에서 (a) '두다, 정하다, 치다' (겔 25:4). 4. 히필형에서 (a) '앉게하다'(왕상 2:24, 대하 23:20, 욥 36:7, 왕상 21:10 등). (b) '살게하다'(삼상 30:21), (c) '거하게 하다'(창 47:6, 창 47:11, 레 23:43, 삼상 12:8, 왕하 17:6, 호 12:10, 사 54:3, 겔 36:33). 4. 호팔형에서 (a) '살게되다, 거하게 되다'(사 5:8, 사 44:26, 겔 35:9)(참조: BDB; Gesenius). -----수고---- bx,[,(6089, 에체브) 상처, 수고, 고통, 그릇 1. 에체브(명남)는 아차브(bx'[; , 6087: 괴롭히다, 고통을 주다)에서 유래했으며, '아픔, 고통, 상처, 수고, 고생, 슬픔'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회 나온다. (a) '상처, 아픔', 잠 15:1에서 가정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처에 대해 사용되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b) '수고, 고생'(잠 14:23, 시 127:2, 잠 5:10) (c) '고통',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2. 에체브(명남)는 아차브(bx'[; , 6087: 모양을 만들다)에서 유래했으며, '그릇 vessel'을 의미한다. 렘 22:28에서 '파기'는 고니아(여호야긴)을 가리킨다: "이 사람 고니야는 천한 파기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 갔는고". (참조: BDB; HELOT). ----사랑하는 자----- dydiy](3039, 예디드) 사랑하는 be loved ...야다=알다(사랑하다)....도드:연인 예디드(형용사)는 사용되지 않은 어근 야다드(dd'y:: 사랑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사랑하는 be loved, 사랑스러운 lovely'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9회 나온다. 예디드는 주로 여호와의 사랑을 크게 받는 사람들로서의 이스라엘(혹은 유다) 민족과, 개인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사 45:1의 '사랑의 노래'(제목)는 임금, 곧 메시야(히 1:8, 히 1:9)에 관해 노래한다. 하나님의 이런 사랑은 사랑 받는 백성들에게 보호(베냐민, 신 33:12)와 번영(시 127:2)을 가져온다. --->평강-형통-번성/번영/창대함 이 사랑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 불순종하고 불신실하였을 때조차,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항상 신실하신 이유를 설명해 준다(렘 11:15).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자기의 말을 듣고 심판에서 구해주기를 간구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이런 사랑의 기초 위에서이다(시 60:5[7], 시 108:6[7]). 이사야는 여호와, 곧 불충실한 이스라엘이라는 포도가지를 손질하는 분을, 여호와에 대한 자기의 큰 사랑을 나타내면서, 자기의 사랑하는 자로 묘사한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사 5:1). 시편 기자는 성전 안에 있는 거처들을 '사랑스러운 곳'(혹은 "사랑하는 곳"), 즉 그가 즐거이 여호와께 예배 드리는 곳이라고 기뻐한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시 84:1).(참조: R. H. Alexander; BDB). ----잠---- hn:ve(8142, 셰나) 잠 sleep 셰나(명여)는 야셴(@vey: , 3462: 자다)에서 유래했으며, '잠 sleep'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3회 나온다. (a) 잠은 축복이다. 잠은 휴식을 주며 원기를 회복시켜 준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고(시 127:2), 지혜를 쫓는 자(잠 3:21-24)와 노동하는 자에게(전 5:12) 이로운 잠(단잠)을 주신다. 즐거운 꿈을 꿀 때 잠이 달다(렘 31:26). (b) 부자는 배부름 때문에 이런 의로운 잠을 자지 못하여 원기 회복을 누리지 못한다(전 5:12 하반절). 그리고 또 잠 못 이루는 원인은 과다한 일(창 31:40, 전 8:16), 악의 충동(잠 4:16), 번민이나 걱정(단 2:1), 불면증(에 6:1)이다. 인간은 잠자기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은 빈궁의 원인이다(잠 6:9, 잠 6:10, 잠 20:13, 잠 24:33). 잠은 또한 대적에게 유리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도 있다. 삼손이 자고 있는 동안에 결국 힘을 잃었다(삿 16:3, 삿 16:16). (c) 비유적, 상징적 표현으로서 육체의 죽음(욥 14:12), 멸망(시 76:5, 렘 51:39, 렘 51:37), 덧없는 인생(시 90:5)에 대해 사용되었다. (d) 야곱이 잠이 깨서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했다(창 28:6). 스가랴는 잠잘 때 천사가 와 깨웠다(슥 4:1).(참조: BDB; TWOT). ----기업---- hl;j}n"(5159, 나할라) 상속, 재산, 유산, 소유 [기업] 나할라(명여)는 '상속재산, 유산 inheritance, 물려받은 것 heritage, 소유 possession'를 의미한다. 나할라는 기본적으로 유산으로 전해지는 것이나 전해질 수 있는 것(예: 창 31:14), 옛적 권리에 의해 어떤 사람의 소유가 되는 것, 그리고 영구적으로 어떤 사람의 소유인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근접한 동의어는 모라샤(소유, 유산)가 있다. 그리고 때때로 점유된 세습재산, 소유를 뜻하는 예루쉬샤, 분깃, 할당된 부분을 의미하는 헬렉, 매입한 소유물을 뜻하는 미크네, 소유, 토지, 소유로 차지한 것을 의미하는 아훗자 등이 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20회 나온다. 나할라를 연구함에 있어 꼭 수반되는 것은 유산(기업)에 대한 성경의 광범위한 가르침이다.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에게 주시는 기업, 땅에 대한 사회적, 법적 규정들, 여호와의 소유, 경건한 자의 기업/유산으로서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요약해 보라. 온 땅은 창조주에게 속한다(시 47:4, H5). 그리고 창조주가 만물을 다스리므로 이스라엘은 그의 특별한 소유(신 32:8 이하, 출 15:17), 즉 왕들에게 어울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신 31:20), 참된 구원을 상징하는 곳(신 12:9, 참조: 히 3:17-19, 히 4:1-3, 누아흐)을 받았다. 이리하여 성경은 하나님을 위대한 왕(삿 8:23, 삼상 12:12), 그의 땅을 인간에게 주권적으로 나누어 주시고(참조: KD, 사 49:8, 사 57:13) 그의 신민에게 개인적으로 봉사할 의무를 지우는 영주(신 32:8)로 묘사한다. 드보(de Vaux)의 주장대로, 고대 근동에 널리 퍼져있던 봉건적 개념은 이스라엘에서 신학적인 면으로 전이되었다(AI, p. 164).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의 율법에 순종하느냐에 따라서(예: 민 33:50-54) 팔레스틴을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유업으로(출 32:13) 약속하시고(창 12:7, 출 32:13) 주셨다(수 21:43 이하 등). 점차적으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원주민을 쫓아내실 것이다(출 23:30). 그러나 이 선물은 단계적으로 얻어야만 했다(여호수아). 한번 거주하게 되면 그 땅은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해야 했으며 그 땅을 깨끗게 하고(신 20:16), 깨끗하게 지키고(예: 신 21:23), 하나님께 바침으로써(신 26:1 이하) 거룩하게 보전해야 했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징벌을 가져왔다(렘 16:9, 렘 17:4). 종말에는 그 땅을 다시 차지할 것이다. 단, 이 땅은 천년왕국에 대한 각자의 견해에 따라서 문자 그대로의 실재적인 땅으로나, 아니면 영적인 실재로 사료될 것이다(KD: 겔 47:14, 사 57:13, 참조: 히 12:25-29). 정복 이전에 제비로 땅을 분배하는 일은 고대 근동에서 잘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AI, p. 165). 신의 주권을 나타냈다(민 26:56). 루쉬두니(R. J. Rushdoony)는 가족 경제학(p. 174이하), 홀로된 여인을 돌볼 가족의 의무를 포함하여 장자의 의무, 제한된 장자 상속, 사회적, 도덕적, 영적인 기업(호 5:10), 실로 삶 그 자체(신 19:14, 신 20:19-20)를 상징하는 지계표(landmarks)에 대해 다룬다. 하나님이 특별히 창조하시고 선택하신 유업은 이스라엘 백성이다(신 4:20, 출 34:9, 참조: 행 15:16이하, 엠 1:3-4). 이러한 복된 위치(시 33:12)는 특별한 간구(신 9:26, 신 9:29, 시 28:9)와 확신(미 7:14, 미 7:18, 시 94:14, 참조: 시 37:18)의 근거였다. 하나님이 그들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자산으로 소유해서는 안되었다(레 25:47 이하, 참조: KD; 사 14:2, 습 2:9). 하나님은 또한 열방에 대해 특별하고 영구한 권리를 가지신다(시 82:8, 시 2:8-9, 참조: KD). 경건한 자들의 참된 영적 유업(시 111:6이하, 시 37:18, KD; 렘 12:14-17)은 특별히 그리고 비유적으로 아론, 제사장들, 레위인들, 이들은 자손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으나(민 18:20 이하에 대한 KD를 참조하라) 사실상은 모든 것 중에 가장 큰 유산, 즉 여호와 자신(수 18:7, KD; 겔 47:22)을 가지고 있다 - 에 의해 기술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