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고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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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3장  [375나는갈길모르니] 286주예수님내맘에오사

===하나님의 동역자들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공동체안에 거니시는 분, 동시에 개인적 단독자 안에 내주하심))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JC믿는 모든 이의 참생명의 순전온전완전을 위해 봉사하며, 성도는 피조물의 진복, 곧 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 위해 섬기며 다스리는 자로서 보냄받았음)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섬기는 자들로 있음)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 비록 지역교회가 여러가지 믄제로 뒤덮여 있다 하더라도, (분명히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만물이 우리 것,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 ---  (고린도의 믿는 이들이 바로 그런 선택 가운데 있는 바) 헬라문화-지혜-철학 등 다양한 사고방식 따라 (믿는이 각자조차도) 선호하는 대로 선택하지만, 주님 안에서 내가(바울이)  보는 바 (그 질실한 면목은) (그대들이 보기에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만물과 (그대들이 추앙하며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너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Q께 사용되는 것임을 너희가 알아야만 한다. 심지어 사망이나 세상조차도 너희를 위하여 선한 역사를 하도록 Q이 사용하시는 수단이다. 모든 것이 너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너희의 종들이다.

....[고전 3:16-23]만물이 너희 것이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초에 견고하게 서야 한다. 그리할 때 성령께서 임하셔서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 이제 교회는 만물이 다 너희 것이라는 놀라운 복음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이시고 우리는 그의 몸이다. 거룩한 교회가 만물을 다스린다.

1. 하나님의 성전

교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이다. 교회는 약한 이들로 이루어져 있어도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거기에 거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놀라운 선언이다. 우리가 성전이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우리를 존귀하게 하셨다.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처소이다. 그 거룩함을 나타낼 자들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교회이기에,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비추어서 존귀하게 여겨져야 한다. 교회의 영광이 여기에 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세워지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기 위함이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는가가 결정적인 문제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운행하시는가? 성령의 임재 안에 사는가? 성령께서 임하실 때 일어나는 부활의 생명이 우리 안에 일어나는가? 성령으로 말미암는 계시가 현재적인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이 놀라운 비밀이 알려져야 한다. 이것은 신비한 규정이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는 것이다. 약하고 보잘것없는 우리가 그의 거룩한 성전이 되어서 그 영광을 드러낼 자격을 얻었다. 이 영광을 감사하고 이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거룩함이다. 그 영광이 나타나기에 합당한 거룩한 영광으로 세워져야 한다. 그래서 육체의 죽음이 요구된다. 성령은 육체 안에 거하시지 않는다. 성령은 영 안에 거하신다. 성령은 불이시고 그 불로 육체를 태우고 영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성령의 역사는 소멸하는 역사이고 십자가의 역사이다. 

거룩함은 십자가의 결과이다. 십자가를 통과한 자들이 그 거룩함에 참여한다. 죄에 대해서 죽은 자들이 거룩한 열매를 맺는다(롬 6).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신다.

성령의 임재가 없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초대교회들과 같은 성령의 임재와 역사들을 사모한다. 육체를 죽음으로 넘기고 거룩한 하늘의 영광이 나타나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멸하면) 그 사람도 멸하시리라.”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우상숭배가 성전을 더럽힌다. 성전에서 장사한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성전을 더럽혔다. 우리가 성전인 것을 모르고 성전을 세상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세우면서 세상적인 사고로 나아가고 그리하여 교회가 성전이 아니라 세상의 공동체가 되어버린다. 하나님의 영의 임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지 사람들의 즐거움을 구한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관하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이 주가 되고 그리하여 성전이 더럽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이런 성전을 허무신다. 하나님은 불이시고 그 불로 모든 우상들을 파하신다. 하나님의 역사는 파하고 죽이는 역사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고 아름다운 영광이 임한다.

2. [세상에 대해] 어리석은 자가 되라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의 지혜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의 지혜의 종말이다. 십자가는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한다.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세상의 지혜에 대해서 단호한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의 지혜와 십자가의 지혜는 공존할 수 없다. 세상의 지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련하게 여기고 그에 따른 삶을 미련하게 여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들어가려 할 때 세상의 지혜를 그대로 따라 행하면 십자가는 점점 장애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신자들에게 세상의 지혜에 대한 죽음, 단호한 결별을 요구한다.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어라.” 이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비밀에로 들어간다. 새 창조의 지혜로 들어간다.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의 지혜는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창조와 섭리도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의 지혜가 그리스도인에게 유혹이다. 오늘날 특히 더욱 더 그러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세상의 지혜를 지닌 자들이 교회 안에서도 지혜로운 자로 행세한다. 교회가 세상의 지혜를 받아들이고 이것이 교회를 위한 것이 될 것처럼 여기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려 한다. 여기에 교회의 세속화가 있고 교회의 무너짐이 있다.

“세상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모든 철학과 종교의 지혜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 모든 지혜들이 세상을 세우고 있지만 이것들은 하나님의 판단에 어리석은 것이다. 그리스도도의 십자가가 지혜이고 이 십자가에 비추어서 볼 때 세상의 지혜는 어리석다. 지혜자가 오히려 더욱 어리석다. 세상의 지혜에 따름이 지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해 어리석게 됨이 지혜이다. 세상이 나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바울이 말했다.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지혜를 멸하신다. 세상은 십자가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빛을 어둠으로 미워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의 교만과 자랑을 파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미움을 당한다.

교회는 세상에 대해서 미련하게 된 이들이 모인 곳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이해될 수 없는 길을 가는 이들이다. 더욱 어리석게 되어야 한다. 오늘날 이 시대를 거슬러 가야 한다.

3.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케 되고 세상의 지혜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비로소 만물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열리고 그리하여 만물을 그 비전으로 품게 된다. 죽음이 세상을 다스리는 영광의 비전을 열어준다. 죽은 자는 그리스도의 권세에 참여하게 된다.

세상의 지혜는 땅에 속한 것, 육체에 속한 것을 말한다. 십자가의 지혜는 하늘에 속한 것, 영에 속한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오르신 하늘의 영광을 선포하고 우리가 거기에 참여한 자임을 말한다. 이제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본다. 세상의 지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보고 생각한다. 바로 만물을 주의 발 아래 두셨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의 지체가 되어 그와 함께 다스린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육체가 아니다. 육체의 자랑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이들이다. 우리가 우리의 눈을 그리스도께로 향할 때, 그리스도가 우리의 전부가 될 때 만물을 다스리는 주의 비전에 참여하게 된다.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그리스도를 알 때 생기는 그리스도의 비전, 그리스도의 마음(고전 2:16)이다. 우리가 성전에 되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영역에 제한되지 않고 만물을 향한 주의 비전으로 올라간다. 

세상의 지혜가 말하는 바 사람의 자랑이 진정한 의미, 영적 관점에서 본다면 전혀 아니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의 지혜는 사람을 높이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높인다.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여함으로 세상에 대한 죽음을 경험하고 사람에 대한 자랑과 추구를 내려놓고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

고린도교회의 분쟁은 사람에 대한 자랑의 문제였다. 그리스도에게 돌려야 할 자랑을 사람으로서의 사역자에게 돌림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나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람을 낮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사람에 대한 자랑이 깨진다. 세상의 지혜가 사람을 높인다면 그리스도의 지혜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낮춘다. 육체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사람이 존중된다. 

사람이 높여지고 다른 사람이 낮추어지고 다른 이들을 멸시하고 누른다. 세상의 역사가 지내온 과정이 바로 사람을 높임으로 사람들을 낮추게 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타나는 곳에 이런 자랑과 교만이 깨지고 사람에 대한 복종이 사라지고 진정한 겸손과 존귀케 함이 일어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에게서 자유케 되고 만물을 소유한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면 만물이 우리 것이 된다. 놀라운 비밀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낮아지면 그리스도와 함께 높아지고 그의 영광과 권세에 참여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자유케 하고 세상을 향해서 전진하게 한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이다. 

세상의 지혜에 대해서 죽을 때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이 임한다는 것은 놀라운 십자가의 비밀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비밀을 모른다. 죽음이 얼마나 위대한 능력인지.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시고 그의 능력이 나타나면 세상은 우리 발 아래 들어온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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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rinthians 3  Amplified Bible

==Foundations for Living

1 However, brothers and sisters, I could not talk to you as to spiritual people, but [only] as to [a]worldly people [dominated by human nature], mere infants [in the new life] in Christ! 2 I fed you with milk, not solid food; for you were not yet able to receive it. Even now you are still not ready. 

3 You are still [b]worldly [controlled by ordinary impulses, the sinful capacity]. For as long as there is jealousy and strife and discord among you, are you not [c]unspiritual, and are you not walking like ordinary men [unchanged by faith]? 

4 For when one of you says, “I am [a disciple] of Paul,” and another, “I am [a disciple] of Apollos,” are you not [proving yourselves unchanged, just] ordinary people?

5 What then is Apollos? And what is Paul? Just servants through whom you believed [in Christ], even as the Lord appointed to each his task. 

6 I planted, Apollos watered, but God [all the while] was causing the growth. 

7 So neither is the one who plants nor the one who waters anything, but [only] God who causes the growth. 

8 He who plants and he who waters are one [in importance and esteem, working toward the same purpose]; but each will receive his own reward according to his own labor. 

9 For we are God’s fellow workers [His servants working together]; you are God’s cultivated field [His garden, His vineyard], God’s building.

10 According to the [remarkable] grace of God which was given to me [to prepare me for my task], like a skillful master builder I laid a foundation, and now another is building on it. But each one must be careful how he builds on it, 

11 for no one can lay a foundation other than the one which is [already] laid, which is Jesus Christ. 

12 But if anyone builds on the foundation with gold, silver, precious stones, wood, hay, straw, 

13 each one’s work will be clearly shown [for what it is]; for the day [of judgment] will disclose it, because it is to be revealed with fire, and the fire will test the quality and character and worth of each person’s work. 

14 If any person’s work which he has built [on this foundation, that is, any outcome of his effort] remains [and survives this test], he will receive a reward. 

15 But if any person’s work is burned up [by the test], he will suffer the loss [of his reward]; yet he himself will be saved, but only as [one who has barely escaped] through fire.

16 [d]Do you not know and understand that you [the church] are the temple of God, and that the Spirit of God dwells [permanently] in you [collectively and individually]? 

17 If anyone destroys the temple of God [corrupting it with false doctrine], God will destroy the destroyer; for the temple of God is holy (sacred), and that is what you are.

18 Let no one deceive himself. If anyone among you thinks that he is wise in this age, let him become a fool [discarding his worldly pretensions and acknowledging his lack of wisdom], so that he may become [truly] wise. 

19 For the wisdom of this world is foolishness (absurdity, stupidity) before God; for it is written [in Scripture], “[He is] The one who catches the wise and clever in their craftiness;” 20 and again, “The Lord knows the thoughts of the [humanly] wise, that they are useless.” 21 So let no one boast in men [about their wisdom, or of having this or that one as a leader]. For all things are yours, 

22 whether Paul or Apollos or Cephas (Peter) or the world or life or death or things present or things to come; all things are yours, 

23 and you belong to Christ; and Christ belongs to God.

==Footnotes

1 Corinthians 3:1 Lit fleshly.

1 Corinthians 3:3 Lit fleshly.

1 Corinthians 3:3 Lit fleshly.

1 Corinthians 3:16 Paul repeats “Do you not know” nine more times, each time followed by an important truth (cf 5:6; 6:2, 3, 9, 15, 16, 19; 9:1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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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rinthians 3 New King James Version

==Sectarianism Is Carnal

1 And I, brethren, could not speak to you as to spiritual people but as to carnal, as to babes in Christ. 

2 I fed you with milk and not with solid food; for until now you were not able to receive it, and even now you are still not able; 

3 for you are still carnal. For where there are envy, strife, and divisions among you, are you not carnal and [a]behaving like mere men? 

4 For when one says, “I am of Paul,” and another, “I am of Apollos,” are you not carnal?

==Watering, Working, Warning

5 Who then is Paul, and who is Apollos, but ministers through whom you believed, as the Lord gave to each one? 

6 I planted, Apollos watered, but God gave the increase. 

7 So then neither he who plants is anything, nor he who waters, but God who gives the increase. 

8 Now he who plants and he who waters are one, and each one will receive his own reward according to his own labor.

9 For we are God’s fellow workers; you are God’s field, you are God’s building. 

10 According to the grace of God which was given to me, as a wise master builder I have laid the foundation, and another builds on it. But let each one take heed how he builds on it. 

11 For no other foundation can anyone lay than that which is laid, which is Jesus Christ. 

12 Now if anyone builds on this foundation with gold, silver, precious stones, wood, hay, straw, 

13 each one’s work will become clear; for the Day will declare it, because it will be revealed by fire; and the fire will test each one’s work, of what sort it is. 

14 If anyone’s work which he has built on it endures, he will receive a reward. 

15 If anyone’s work is burned, he will suffer loss; but he himself will be saved, yet so as through fire.

16 Do you not know that you are the temple of God and that the Spirit of God dwells in you? 

17 If anyone [b]defiles the temple of God, God will destroy him. For the temple of God is holy, which temple you are.

==Avoid Worldly Wisdom

18 Let no one deceive himself. If anyone among you seems to be wise in this age, let him become a fool that he may become wise. 

19 For the wisdom of this world is foolishness with God. For it is written, “He catches the wise in their own craftiness”; 

20 and again, “The Lord knows the thoughts of the wise, that they are futile.” 

21 Therefore let no one boast in men. For all things are yours: 

22 whether Paul or Apollos or Cephas, or the world or life or death, or things present or things to come—all are yours. 23 And you are Christ’s, and Christ is God’s.

==Footnotes

1 Corinthians 3:3 Lit. walking according to man 

1 Corinthians 3:17 destr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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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3장 (개요)

본장의 내용은 이렇게 요약된다.

Ⅰ. 고린도 교인들의 육적인 것과 분열을 책망한다(1-4)

Ⅱ. 잘못을 고치는 방법.

1. 사역자의 한계(5)

2. 사역자들의 일치점과 같은 계획의 수행(6-10)

3. 같은 기초 위에 선 사역자들(11-15)

Ⅲ. 육체의 순결을 지키도록 권면하다(16,17). 겸손과 겸양의 권고(18-21)

Ⅳ. 특별한 사역자들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도록 간언한다(2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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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에 속한 고린도 교인들(고전 3:1-4)

Ⅰ.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약함과 유치함에 대하여 책망한다. 

성화된 사람들조차도 불완전하며, 은혜와 지식에 있어서 자라나고 증진될 여지가 분명히 있다(벧후 3:18). 

신령한 은혜로 새로운 영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기에, 권한다.(롬12: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린도교인들에게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1절)고 말한다. 그들은 신령한 계시 위에 그들의 교훈과 수단을 수립하고 복음의 정신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아직, 육적이고 부패한 생각의 지배아래 있었다. 

그들은 아직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였다. 그들은 기독교의 얼마를 받아들였으나 그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믿음과 거룩함도 부족하였다. 

그러나 이 서신의 몇몇 절로 본다면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의 지혜와 지식을 대단히 자랑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아래 사항을 주목하자. 

많은 지식과 이해력이 있는 자들은 흔히 자만하는 경우가 많다. 바울은 그들이 유치하기 때문에 깊은 지혜의 말로 그들에게 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구한 바 성령이 열어주시는 지혜를 따라 깊이 묵상함 통해 해석될 필요가 있는 진리말씀에 속하는]그런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곧 고기가 아니라 젖으로 먹일 필요가 있었다(2절). 청중들의 능력을 알아서 그 능력에 따라서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충실한 사역자의 의무이다. 

어린이들이 어른으로 성장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어린 아이들은 키가 자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알아듣기 쉬운]평범한 일이 아니고 깊은 신앙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기회와 수단을 통하여 신앙의 연조를 쌓아서 지식의 성장이 있어야 한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사역 아래 오래 있었으나 기독교 지식에 있어서 개선이 없었던 것이 책망당할 만했다. 

은혜와 지식에 있어서 성장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비난을 받아야 한다.

Ⅱ. 바울은 그들이 육에 속함을 책망한다. 

그것에 대한 증거로 사역자들에 대한 선호/편견, 쟁투와 불화를 증거로 든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3절). 

그들은 사역자들 때문에 경쟁하고 싸우고 당을 지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4절) 

이것들이 육적인 관심과 생각이 지배하는 육신에 속한 증거였다. 아래 사항들을 주목하자. 

신앙에 대한 경쟁과 싸움은 [다름아닌]육적인 증거이다. 참다운 신앙은 화평하게 하고 싸우지 않는다. 

당을 짓는 것은 신앙의 원리가 아니고 인간의 원리다. 그들은 자신의 교만과 정열로 인도되고 기독교의 정신으로 인도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수준보다 높게 살아야 할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과 너무나 같게 살며 행동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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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고전 3:5-10)

여기서 바울은 그들에게 어떻게 하여 이 잘못된 마음을 고치고 바르게 할까를 훈계한다.

Ⅰ. 고린도 교인들이 다투어 섬기는 사역자들은 어디까지나 사역자들이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5절). 

사역자들은 은혜의 하나님에 의하여 사용되는 도구이다. 고린도 교회의 어떠 분당은 사역자들을 그들의 신앙의 주와 종교의 창시자로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역자들을 신성화하거나 하나님 대신에 놓지 않도록 하자. 

사도들은 믿음과 종교를 계시하고 전파하도록 권위와 자질을 받았지만 그것의 창시자는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사역자들이 신처럼 되는 것은 잘못이다. 신령한 권위는 그들이 따르는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한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6절). 둘은 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유용했다. 하나님은 여러 기구를 사용하시며 그들을 여러 용도에 맞도록 조정하신다. 바울은 일을 시작하는데  적당했고 아볼로는 일을 성장시키는 데 적합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신다. 

사역의 성공은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와야 한다. "그런즉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7절). 

비록 사도적 사역자이라도 그들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시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가장 유능하고 충실한 사역자는 자기의 부족을 알고 하나님이 그의 사역의 모든 영광을 받으시게 한다. 

바울과 아볼로는 그들 홀로는 아무 것도 아니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Ⅱ.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일치성.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8절) 

즉 같은 주로부터 채용되고 같은 계시를 위탁받고 같은 일을 하며 같은 계획에 종사하고 분당 짓는 자들에 의하여 대립되더라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같은 일을 하는 동역자이다. 

그리스도의 모든 충실한 사역자들은 사역의 위대성과 의향에 있어서 하나이다. 적은 일에 있어서 감정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토론과 경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참다운 기독교를 전파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혼을 구하는 일에 있어서는 충심으로 일치하고 있다. 

모든 그런 사역자들은 충성의 영광스러운 보답을 기대할 수 있다.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그들의 일은 하나이나 열심은 다르다. 그들의 목표와 계획은 같으나 그러나 어떤 이들은 더 철저히 수행한다. 

그들의 주는 하나이나 이 선하시고 은혜로우신 주님은 그들의 봉사에 따라서 다르게 보답한다. "모든 사람의 일이 그의 보답을 받는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크게 성공한다. 가장 성실한 사람은 가장 큰 보답을 받는다. 모든 충실한 사역자들이 종사하는 일은 영광된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쉬네르고이:동역자들)(9절). 같은 서열과 신분으로서가 아니고 그에게 복종하며 그의 도구가 됨으로써 동역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귀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들의 일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노동이 헛되지 않도록 돌보신다. 

인간들은 어떤 사역자들을 찬성하나 어떤 사역자는 무시한다. 인간은 칭찬을 해야할 때에 비난하고 비난해야 할 때에 칭찬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질리에 의한 것이다. 온당한 이유없이 보답하지 않고 항상 그의 종들의 근면과 성실에 의하여 보답하신다. 

충실한 사역자들이 인간에 의하여 나쁘게 이용된다면 하나님 안에서 자신들을 격려해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 자기를 증거해야 할 대상은 복음의 위대한 사역의 지도자이며 감독자인 하나님 자신이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감독 아래 있고 농사와 건축에 고용되었다. 확실히 하나님은 그들을 주의깊게 보고 계신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바울의 것도 아니요 아볼로의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들은 다만 너희을 심고 물을 준다.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밭에 내리는 신령한 축복이다. 너희들은 우리의 밭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래에서 그와 함께 그를 위하여 일한다. 우리가 너희 중에서 일해 온 것은 하나님만 위해서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집이다. 

바울은 앞의 은유를 전에 사용했던 적이 있으나 이제 집의 은유를 든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바울은 여기에서 자기를 지혜로운 건축자로 부르고 이것은 이중적인 명예이다. 하나님의 저택의 우두머리의 건축자가 되는 것은 명예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건축가였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자질이 갖추어 있지 못한 일에 있을 수가 있다. 

바울이 자기를 그렇게 부르나 그것은 자기의 교만이나 신령한 은혜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는 지혜로운 건축자이나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덕분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선을 말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영적 교만은 가증스럽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허영을 위하여 이용하는 것이며 스스로를 우상으로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높이며 그의 명예를 위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관심의 적합한 표현이다. 

사역자들은 그들의 은사와 은혜를 자랑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더 좋게 자질을 갖추고 더 성공하면 할수록 이 특별한 선함에 대하여 더욱 더 감사해야 한다. 

"나는 터를 닦았고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웠으니" 전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는 말과 같다. 

그들 중에서 교회의 기초을 놓은 것은 바울이었다. 그는 "복음으로써 그들은 낳았다(4:15)" 그 외에 어떤 스승을 가져도 "그들은 많은 아비를 가지지 않았다." 

바울은 그들 중에서 봉사한 누구든지 훼손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명예나 존경을 박탈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충실한 사역자들은 자신의 명성을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일하기가 쉽다. "그러나 각각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것은 적합한 주의이다. 좋은 터에 나쁜 건물을 세울 수가 있다. 실수하기 쉬운 점이다. 

확실하고 올바른 기초를 놓을 뿐 아니라 좋은 집을 그 위에 세우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초에 적합한 건물만 세워야 한다. 금과 흙이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 

사역자들은 신령한 계시의 터 위에 자신의 상상이나 그릇된 이을 세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그들의 주님의 분명한 교리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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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닦은 터(고전 3:11-15)

여기에서 바울은 그들 가운데에 세운 터가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되셨느니라"(엡 2:20). 

이 터 위에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세운다. 이 반석 위에 모든 기독교인은 소망을 둔다. 다른 터 위에 천국의 소망을 세우는 자는 모래 위에 세우는 것이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우리 주와 그의 중보의 교리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이다. 그것은 기초이다. 이 기초을 떠나면 모든 위로가 무너지고 죄인의 소망이 사라진다. 

"죄 많은 세상을 하나님에게 화목하게 하는 것은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이다"(고후 5:19). 이 기초를 잡고 그리스도의 중보를 믿는 사람 중에 두 종류가 있다.

Ⅰ. 어떤 사람은 이 터 위에 "금과 은과 보석으로" 세운다. 

즉 복음의 순수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전파하며 예수 안에 있는 진리만을 잡으며 그것만을 전파한다. 이것은 좋은 터 위에 잘 세운 집이다.  

이 때에 사역자들은 교회의 대 예언자로서 그리스도만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도자와 교사로 여기고 그리스도가 가르친 복음을 가감함이 없이 순수하게 받고 전한다.

Ⅱ. 다른 사람들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운다." 

즉 그들이 이 기초 위에 세우나 여러 점에 있어서 예수의 마음을 떠나며 그리스도의 교리 대신에 그들의 상상이나 창작을 대치시키며 심판날에 견디지 못할 것과 불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드러낼 것으로 세운다.

이들은 다 타버린다. 사람들이 이 터 위에 세운 것이 밝히 드러날 때가 온다. "모든 사람의 공력이 밝히리니" 

자기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하나 주의 날에는 그들의 행위가 밝히 드러날 것이다. 잘못을 범한 자와 피할 자가 밝히 드러난다. 지금은 우리가 실수를 범하여도 숨겨지기도 하지만 우리의 잘못을 그대로 나타날 때가 온다.

 왜냐하면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13절). 최후의 날 심판의 날에는 모든 것을 나타낸다. 

어떤 이는 이것을 유대 국가가 멸망하고 그의 체제가 없어지는 때를 의미하며 기독교 위에 유대 교사들이 세우고자 한 피상적인 건물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그 표현은 야금술을 은유하기도 한다. 불이 금과 은과 불순물을 가르고 구별한다. 금과 은과 보석은 불을 견디고 나무와 풀과 짚은 타버린다. 

불이 금을 찌꺼기로부터 구별하고 타버리는 물질과 타지 않는 금속을 구별하는 것과 같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일과 일을 구별하는 때가 온다.

1. 어떤 사람들의 일은 시험에 견디고 좋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들은 좋은 터에 잘 세웠으며,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잘 세운 것이다. 터나 건물이 한 덩어리가 된다. 

기본 진리와 그 진리를 수호하는 사람들이 함께 가르침을 받는다. 지금은 이것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날에는 완전히 드러난다. 

잘 짓는 사람은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 그는 명예와 칭찬을 받고 영원한 상을 얻는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충성은 내세에 있어서 완전한 보답을 받을 것이다. 진실하고 순수한 신앙을 전파하며 그들의 일이 올바르면 보답을 받는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얼마나 넘치는 보답일까!

2. 그들의 공력에 "불타 버릴 사람들이 있다"(15절). 

이들의 부패한 의견과 가르침이 나타나고 잘못된 경배가 거절될 때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거절을 당할 것이다. 

최후의 날은 모든 위장을 제거하고 사실을 밝힌다. 공력이 타버리는 사람은 큰 손해를 당한다. 좋은 터 위에 나무와 풀과 짚으로 세우는 사람은 손해를 당한다. 

그가 비록 정직한 그리스도인이었더라도 그의 약함과 부패가 그의 영광을 삭감한다. 구원을 받더라도 공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기독교의 터를 잡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세우는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겨우 받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상급의 구원을 바라고 앴는 바] 우리의 사랑을 크게 자극한다. 우리는 결코 남의 약점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보라,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그 자신은 그의 공력을 태워버리는 불에서 구출된다. ((이것은 또한 타락하고 기독교를 부패시키는 사람들의 구원이 그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암시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에서 끄집어내는 가지처럼 구원하나 그들의 공력은 태위버리신다. 

(**이 귀절에서 카톨릭 교도들은 연옥의 교리를 세운다. 이것은 그 자체로서 분명히 불이나 짚의 교리이다. 성경에서 온 교리가 아니고 신부들의 야망과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만들어진 교리다. 이 교리는 이 귀절에서 지지를 얻지 못한다.)

(1) 왜냐하면 이것은 비유적인 불을 의미하고 실제적인 불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실제적인 불이 종교적인 의식이나 교리를 소멸할 수 있겠느냐?

(2) 왜냐하면 이 불은 인간의 공력이 어떠한 것인지 시험한다. 그러나 연옥의 불은 시험을 위하고 인간의 행동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다만 벌을 주기 위함이다. 그들은 용서받을 죄로 가정된다. 이 세상에서 해결되지 않고 연옥의 형벌을 받아야 된다.

(3) 왜냐하면 이 불은 바울과 아볼로의 공력도 시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연옥의 불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할 신부들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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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전(고전 3:16-17)

여기에서 바울은 그가 말한 "너희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언급에 입각하여 그의 주장과 권면을 다시 시작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16,17절). 

바울이 똑 같은 취지를 말하는(6:13-20 참고) 이 서신의 다른 부분에서 본다면 고린도 교인들의 거짓 선생은 방탕한 교리를 가르친 것 같다. 이러한 교리는 풀이나 짚으로조차 생각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세워졌고 하나님에게 바쳐진 교회를 분열-부패-파괴하려고 한다. 하기에, 이런 교리를 전파시키는 사람들은 파멸을 초래하기까지 하나님의 교회를 부패시켜 신성과 정결을 깨뜨리는 자들이기에, 그들의 종국은 멸망뿐이다. 

분열이 파멸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불화와 분쟁을 반대하는 주장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으나 내가 의미하는 것은 다음 귀절의 본래 의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것은 고린도 교회를 집합적으로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기독교의 교회는 하나님의 전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하나님은 유대인의 성전에 거하셨다. 그 성전을 소유하시고 그 안에 거하시고 영광스러운 구름이 임재의 표시였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모든 참다운 신자들 안에(집합적으로, 또한 개별벅으로!!) 거하신다. 

성전은 거룩하게 하나님에게 바쳐졌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사용되었다. 그와 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되어 그를 섬기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우리 자신을 더럽히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을 하면 안 된다. 

우리를 유혹하는 어떠한 교리나 박학다식한 교사의 말을 들어서도 안 된다. 기독교인은 천직이 거룩한 것이다. 마음과 교제가 순결해야 한다. 

우리는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그에게 거룩하게 바칠 것을 팔지 않도록 주의하고 피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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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요청(고전 3:18-20)

여기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무질서와 분열과 경쟁에 대한  치료로써 겸손과 자신에 대한 겸양한 태도를 권한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18절). "학문과 웅변과 말의 유창함과 랍비들과 변사들과 철학자들에 의하여 복음의 단순성과 진리로부터 떠나지 말라." 

아래 사항을 주목하자. 인간의 지혜와 예술을 너무 높게 생각하면 우리 자신을 속일 위험성이 있다. 

교리들을 청중의 부패한 성미에 맞도록 하고 교리를 좋은 말로 장식하며 깊고 강한 이성으로 옹호하는 사람에 의하여 복음의 단순성과 순수성이 무시될 수 있다. 그러나 "지혜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느니라." 

지혜자는 자기의 무지를 알고 그것을 슬퍼해야 한다. 그는 자기의 이해를 불신하고 그것을 의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 자신의 지혜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고 자신의 칭찬은 자기의 기만을 낳는다. 

지혜롭게 되는 길은 우리의 생각을 적당히 낮추는 일이며 하나님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진실로 철저히 지혜롭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교훈을 따르기 위하여 인간의 이해를 버리는 사람은 참되고 영원한 지혜를 얻는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시 25:9). 

자신의 지식과 권력을 경시하는 사람은 더 좋은 지식을 가지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계시로 배우고 개선된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으로 속임을 받는 교만한 사람은 신령한 지혜도 수정하고 오류가 없는 진리와 지혜의 계시를 자기 자신의 천박한 지식보다 못하게 여긴다. 

아래 점을 주목하자. 우리가 참으로 지혜롭고 선하려고 하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낮추어야 한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19절)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지혜 즉 정치와 철학과 웅변은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해도 그렇다. 

"하나님은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욥 4:18) 인간의 가장 현명한 자는 더 그러하다.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 147:5).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우리의 것과 비교할 수 없듯이 그의 지혜와 우리의 지혜는 비교할 수가 없다. 유한과 무한을 측량할 척도가 없다.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과 비교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나님은 얼마나 인간의 지혜를 무시하고 부끄럽게 하는가? 

"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욥 5:13) 하나님은 그들을 스스로 빠지고 얽매이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최고의 학문과 기술이 그들을 실망시키도록 하신다. 

"주께서 지혜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20절) 그들은 헛것이다(시 44:11).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아시고 지혜있는 자의 깊은 생각과 은밀한 뜻과 목적을 아신다. 

하나님에게는 숨김이 없고 "오직 만물이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하나님은 그들이 헛된 것임을 아신다. 이 세상의 현자의 사상은 허영과 약함과 어리석음의 혼합이다. 

사람들의 가장 현명하고 좋은 사상도 하나님의 것과 비교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 겸양과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존중과 그의 계시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에 의하여 배우고 인간의 외양적인 지혜보다 그리스도의 소박한 진리와 신령한 교리를 취하도록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현명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야하고 자신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경쟁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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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자랑을 금함(고전 3:21-23)

여기에서 바울은 교사들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않도록 상술한 내용과 그들이 가지는 사역자에 대한 동등한 관심에 입각해서 권면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21절). 

사역자들은 인간인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에게만 합당한 경외를 바치며 그들에게 바치지 말며 당의 우두머리를 지나친 찬양과 존경으로 추종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과 성령의 가르침에 위배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비를 잘 거역한다. 사역은 대단히 유용하고 은혜로운 제도이다. 

충성스러운 사역자들은 누구에게나 축복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우매와 약함은 축복을 불행으로 만든다. 그들은 사역자들과 함께 당을 만들수도 있다. 

그들을 머리로 삼고 지도자에게 영광을 돌리며 방향도 모르고 따라간다. 

이런 불행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겸손한 마음과 인간의 이해의 부족함과 하나님의 지혜를 존중하는 일이다. 

사역자들은 서로 경쟁해서는 안 되며 모든 사역자들은 같은 목적으로 같은 주를 섬긴다. 그들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에 의하여 임명되었다.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는 다 너희의 것이다." 서로서로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 자신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이 때에 바울은 교회 재산의 목록 즉 참다운 신자의 영적 부유함을 열거한다. "모든 것이 너희의 것이다. 여러 종류의 사역자들과 아니 이 세계도 너희의 것이다." 성도가 이 세계의 임자라는 의미가 아니고 이 세계는 성도를 위하여 존재하고 무한한 지혜가 적합한 것같이 이 세계도 그들에게 적합하다. 

신령한 축복과 함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 "생명도 너희의 것이다. 천국 생명을 위하여 준비할 시간과 기회를 가지도록 함이다. 사망도 너희의 것이다. 생명을 소유하기 위하여 가야할 십자가의 길이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할 친절한 사자이다. 지금의 것도 너희의 것이다. 이것은 노자를 위함이다. 장래의 것도 너희의 것이다. 순례의 길이 끝날 때 영원히 부유하고 즐겁도록" 함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으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며,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다. 시간과 영원, 이 땅과 천국 생명과 죽음 모두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좋은 것이 부족하지 않도다"(시 84:11).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임을 잊지 말자. 거의 지배를 받아야 하고 기쁘게 그의 명령에 순종하고 기쁘게 그에게 바쳐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된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좋은 것을 받을 권리도 자격도 없다. 

현재에 완전하고 영원히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 " 

그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에 의하여 기름부음을 받고 사명을 받고 중보자의 직책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명예를 가지시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시도록 모든 것이 신자의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죄많은 세상을 자신에게 화해시키시고 화해된 세상에 풍부한 그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 복음의 총합이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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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5:16, 17]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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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의 90%가 습관이라고 합니다. 
10%의 시간만 내 의지로 통제 가능하고, 나머지는 무의식적 습관에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습관이라는 무서운 리모컨에 의해서 우리 모두는 조종당하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도 습관적인 노예근성을 제거하는 데만 40년이란 긴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조종하던 노예근성을 해결하지 못하면 새 땅에서의 성공적인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첫 정복전쟁을 치르기 전에 이스라엘이 했던 집단행동은 바로 할례였습니다(수5장). 전술을 논하고 무기를 가다듬는 식의 전쟁 준비가 아닌,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는 성결의식이었습니다. 인생을 바꾸려면, 의도적으로 일상습관을 바꾸기 시작해야 한다. '성결'이 우리의 가장 큰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습관적인 상태에 빠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개인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이 성장함에 따라 교회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각 개인이 침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교회도 역시 침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90%가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는데 여러분의 신앙생활도 그렇지는 않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더 거룩해질까요? 시간이란 우리의 친구가 아니라 원수입니다.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시간은 그들을 저버립니다.
시간은 그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즉 시간은 영적인 일들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을 오히려 연장시킬 따름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 사용하시던 전파가 점점 더 엷어지고 서서히 약해져 갑니다. 가끔씩 좋은 날에나 하나님의 전파를 감지하는 정도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 저는 기독교 방송을 많이 듣습니다. 기독교 전북 방송이 우리 도내를 벗어나 논산을 지나면 약간 전파가 잘 잡히지 않습니다. 청원정도 가면 전북 방송 청취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합니까? “아, 내가 전라북도에서 멀리 왔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무뎌진 영적 감성
습관적인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적 감성이 점점 무뎌지고 한때는 아주 선명하게 들리던 하나님의 음성이 점점 더 희미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그들은 사정거리 밖을 벗어나 더 이상 그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적인 일들에 대한 무관심은 증가하고, 영혼을 흔드는 감동도 무디어져 갑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이제는 변화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변화는 기독교의 중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복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주 예수를 믿으라! 회개하고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한 사람도 회개하거나 믿지 않는다면, 복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이 가진 유일한 희망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변화될 수 없다면, 그들에게 변화 받으라고 설교할 필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자들은 변화 받으라고,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사람들은 어둠에서 돌이켜 빛으로 나와야 합니다. 우상에게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그들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는 영적인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생사를 좌우하는 요소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습관적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악순환의 무덤에 빠지듯 자기들이 변화하기 더 어려운 형편에 빠져 간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한때 감정적으로 감동을 받을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들의 의지도 하나님 편을 들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선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진실하게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런 노력들이 줄어듭니다.  만일 지금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결코 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반드시 변화되어야 하는 시간을 맞이합니다. 그때 그들이 변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결코 하지 못할 것입니다. 시간은 변화될 수 있는 날들을 야금야금 갉아먹습니다. 
인생에는 정해진 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너무 많은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비극적인 사실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애당초 얼마만큼의 시간이 우리들에게 주어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얼마나 남아 있는지 새까맣게 모릅니다.
변화를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내 날이 아닙니다.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습관적인 상태에 머무는 이유?
우리가 습관적인 상태에 머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진정으로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오직 한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교회에 들어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 해서 모두 회심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수년간 교회를 다녀도 별다른 진보를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을 시험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진정한 회심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철저한 회개와 변화된 삶, 죄의 용서와 영적 중생에 대한 의식적인 자각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입니까?
2)훈련을 위해 사탄에게 넘겨졌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습관적인 상태에 빠질까요? 아마도 지옥에서 건짐을 받기 위해 엄한 훈련의 방편으로 사탄에게 넘겨졌는지도 모릅니다.
고전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고전 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고전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고전 11: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전 11: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고전 11: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고전 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나이는 들어가지만 더 이상 거룩해지지 않는 악순환의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은 두 가지 일 때문에, 즉 어떤 육체적 죄(고전 5장) 또는 성찬에 대한 심각한 무례(고전 11장) 때문에 마귀에게 넘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3)죄 때문입니다.
죄가 습관적인 상태로, 이를테면 많은 사람들이 빠져 드는 악순환의 무덤으로 가는 원인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확실합니다. 
오직 죄만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며, 또한 죄는 완전히 속이는 것으로 사람들 속에 존재해 치명적인 일을 저지르게 합니다. 습관적인 상태를 초래하는 죄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①태만의 죄입니다.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로 남겨 두는 죄입니다.
②위반의 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성령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행동을 하는 죄입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갈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③육신의 죄가 있습니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땅의 생각, 하늘의 생각
골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그렇다면 땅에 있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 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골 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위에 것 즉 하늘의 생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말씀드려 성령을 따라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많이, 자주, 그리고 경외심을 가지고 읽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마음 즉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또한 많은 묵상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청년들은 ‘생명의 삶’을 통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같은 본문으로 우리 성도들에게 새벽마다 말씀을 묵상합니다. 깊은 묵상을 통해서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점검하지 않는 생활은 살 만한 가치조차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철학자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성령께서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말씀에 얼마나 더 많은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까?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1)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여기에서 ‘인도’라는 말은 ‘a[gw(71, 아고)’라고 하는데 ‘인도하다, 데리고 오다, 이끌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에 이끌리어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눅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사람이 짐승을 이끄는 것처럼 우리는 성령에 이끌리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빌립이 성령에 이끌려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만나서 전도하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행 8: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행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성령님이 가라 하면 광야도 가는 것입니다. 빌립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광야로 갔더니 뜻하지 않는 일행을 만나게 됩니다.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빌립이 성령의 지시를 받고 무시했다면 그 사람을 전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성령에 이끌리는 삶입니다.
2)성령을 거스리지 않는 것입니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안에 성령이 주시는 생각과 육체의 소욕이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이 주시는 생각과 마음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따라서 육체의 소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따를 수 없습니다. 바울은 성령을 받고 난 뒤 내면에서 일어나는 영적 싸움에 대해서 말합니다.
성령을 받았지만 여전히 육체가 뿜어내는 욕망의 유혹이 강력하기에 자신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령을 받고도 여전히 악을 행하고 죄를 저지릅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사는 사람은 성령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3)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는데 성령의 열매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은사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은사충만은 각 사람의 분량에 따라 주어집니다. 은사가 없다고 해서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의 생활충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성령의 열매는 맺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데 열매가 맺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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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전<나오스-ναός>이 임하시는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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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 성전 문지방에 임하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겔10:4)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11:19)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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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히브리어로 <헤칼-לכ'ה>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나오스-ναός> 또는 <히에론-ἱερόν>입니다. 
<히에론>은 성전의 외적인 모습을 의미합니다. 주로 건물과 관련되어서 사용됩니다. 
반면, <나오스>는 성전의 거룩성과 영광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유형 성전인 <히에론>도 중요하게 보시겠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이 가득한 성전의 본질인 <나오스>를 더 크게 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성전>에 있습니다.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순간, 그 영혼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에서 함께 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될 것입니다. 
<나오스-성전>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인 성전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진정으로 회복되어야 할 성전의 모습입니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내>가 거룩한 성전의 시작입니다. <나>부터 회복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교제 회복이 우선입니다. 예배의 회복입니다. 
거룩한 성전이 <내>안에서 회복하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뜨거워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반응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무릎 꿇게 될 것입니다.
그 곳이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성전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감격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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