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후13장 [452.내모든소원기도의제목] [455.주님의마음을 본받는자]
===권면과 끝 인사 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3.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6. 우리가 버림 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7.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 [민6:22-27(24-26)]...대제사장의 축복.....구약과 신약의 복의 개념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지고지선의 진복-영복 근원, 스스로 계시는 관계적 인격이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죽음-부활승천으로 너를 거듭나게 하사 친히 소유-기업-자녀 삼아 그 복되심의 기쁨-평강 누림이 극치에 달하신 바, 무한-풍성-부요-충만하신, 애틋한 끓어오르는 사랑으로 무릎꿇어 섬겨 당신 존재의 정수를 부어 주시는]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곧 복되신 주, 그분의 지극한 사랑 받음 인해 그분자신의 영광으로 충만하여 변화된 그분의 거룩한 그릇과 통로요 그분의 영광으로 충만케 되며 기름부으심이 행보마다 뚝뚝 떨어지게 하시는 바>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 성부 하나님의 사랑[복의 근원 성부하나님이 친히 근원적 능력으로 불기둥으로 인도하고 구름으로 덮어 보호하심]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 성자 JC의 은혜 [환한 미소로 생명진리의 빛을 비추어 살리시며, 자신의 모든 것 기울여 희생하사 성육신-대속의 십자가 죽음-부활승천 통해 회복시켜 베풀어 주신 친절과 자비] 누림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 [다함없는 사랑 가득찬 눈으로 늘 응시하시는] 아버지와 아드님의 영이신, 내주하시는 성령의 교통하심 가운데 그 역사하심 통한 화목-화해-화평-평안-안전-조화-충만, 그 효력과 기쁨 향유, 흘러보내어 공급함[[주님의 뜻하신 바 보냄받은 인생의 목적 친히 이루심]]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 구약의 복 :: <토브(뜻하신 바로 그대로 이루어진 까닭에 주님 마음에 만족하며 선하고 기쁘며 좋음...명사형은 투브)>로서 하나님과 아담간에 상호찾음됨으로 인한 하나됨의 연합인한 지고지선의 상태<토브> 누림을 뜻함... 그 내용으로는 <에셰르(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상호 친밀히 앎 바로 그 자체)..동사형은 아쉬레>, <베라카(품에 안긴 자녀에게 애틋한 사랑노래로 어우르고 달래며 무릎꿇고 섬김으로 축복하는 것이 바라크임..바라크의 명사형)>. <헬레크(일상에서 각 사람마다에게 예비-공급-누림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모든 공급하심의 일상의 필요로서의 할당된 분복 : 영토로 표상)..동사형은 할라크> ::: 신약의 복 :: 성육신하사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대속적 죽음-부활승천 하심 통해 믿는 이에게 오셔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성령 누림 인한 <에이레네 (평강/평화-복지-번영)> <율로기아 (찬양, 축복, 복> <마카리스모스(복, 지복, 행복)>...이는 구약의 복 개념((에셰르-베라카-할레크의 투브)) 모두를 그안에 포함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 2 Corinthians 13 Amplified Bible ==Examine Yourselves 1 This is the third time that I am visiting you. Every fact shall be sustained and confirmed by the testimony of two or three witnesses. 2 I have already warned those who have sinned in the past and all the rest as well, and I warn them now even though I am absent [from you] as I did when I was with you the second time, that if I come back I will not spare anyone, 3 since you seek [forensic] proof that Christ is speaking in and through me. He is not weak or ineffective in dealing with you, but powerful within you. 4 For even though He was crucified in weakness [yielding Himself], yet He lives [resurrected] by the power of God [His Father]. For we too are weak in Him [as He was humanly weak], yet we are alive and well [in fellowship] with Him because of the power of God directed toward you. 5 Test and evaluate yourselves to see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and living your lives as [committed] believers. Examine yourselves [not me]! Or do you not recognize this about yourselves [by an ongoing experience] that Jesus Christ is in you—unless indeed you fail the test and are rejected as counterfeit? 6 But I hope you will acknowledge that we do not fail the test nor are we to be rejected. 7 But I pray to God that you may do nothing wrong. Not so that we [and our teaching] may appear to be approved, but that you may continue doing what is right, even though we [by comparison] may seem to have failed. 8 For we can do nothing against the truth, but only for the truth [and the gospel—the good news of salvation]. 9 We are glad when we are weak [since God’s power comes freely through us], but you [by comparison] are strong. We also pray for this, that you be made complete [fully restored, growing and maturing in godly character and spirit—pleasing your heavenly Father by the life you live]. 10 For this reason I am writing these things while absent from you, so that when I come, I will not need to deal severely [with you], in my use of the authority which the Lord has given me [to be used] for building you up and not for tearing you down. 11 Finally, believers, rejoice! Be made complete [be what you should be], be comforted, be like-minded, live in peace [enjoy the spiritual well-being experienced by believers who walk closely with God]; and the God of love and peace [the source of lovingkindness] will be with you. 12 Greet one another with a [a]holy kiss. 13 All [b]God’s people greet you. 14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fellowship of the Holy Spirit be with you all. ==Footnotes 2 Corinthians 13:12 A traditional greeting in biblical times, much like today’s handshake and hug. 2 Corinthians 13:13 Lit the saints. ========== 고린도후서 13장 (개요) 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이 장에서 고집스러운 죄인들에 대하여 엄하며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한다(1-6). Ⅱ.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이유를 든다(7-10). Ⅲ. 바울은 이 서신을 고별사와 축도로써 결론을 맺는다(11-14). =========== 너희 자신을 살피라(고후 13:1-6) Ⅰ. 잘못된 것을 수정하기 위하여 제 일과 제 이의 서신을 보냈기 때문에 세 번째 고린도에 가면 고집이 강한 죄인들에게 아주 엄하게 될 것을 말한다. 이 일에 관해서 주목하자. 1. 그의 책망에 있어서 취하는 그의 주의. 엄한 처벌에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 첫째와 둘째의 충고를 주었다.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세번째 너희에게 갈터이니"는 제1과 제2의 서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비록 떨어져 있으나(2절), 그들과 함께 있는 것같이 그들을 충고하였다. 이 해석에 의하면 전 후서는 1절에서 말하는 증거이다. 우리 구주의 지시와 (마 18:16) 모세의 율법보다 더 극단으로 나가기 전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범법자들을 취급해야 하는가에 대해 잘 배워 숙지하여야 할 것이다(신 17:6; 19:15). 우리는 우리 형제의 잘못을 말하기 위하여 여러 번 그에게 나가야 한다. 이리하여 바울은 전에도 말하고 지금도 말한다. "전에 죄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쓴다. 세 번째 나가면 범법자를 심하게 책망할 것이다. 혹자는 바울이 고린도에 방문할 것을 두 번 계획했으나 저지되고 세 번째로 그들에게 갈 것을 알린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어떠하든지 간에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의 유익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수고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2. 경고에 대하여. "내가 다시 가면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무례한 죄인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죄인을 발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낮추실 것이라"하였다. 이제 바울은 그러한 죄인을 용서하지 않고 교회의 책벌을 가하기를 원했다. 이 때에 이런 책벌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공식적]표시로써 해석되었다. 다음을 주목하자.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이 은혜로운 방법이지만 항상 참으시는 것은 아니다. 회개시키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리고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마침내 오셔서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다. Ⅱ. 바울은 자기가 엄하게 되는 이유를 말한다. 즉 "저희들이 구하는 그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위함이다. 그가 전하는 복음의 성공을 위하여 그의 사도됨이 증명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사도직을 부인하는 자들을 엄히 책망해야 했다. 이것을 문제 삼게 한 것은 거짓 교사들의 계획이었다. 이 사도직에 대하여는 거짓 사도들의 중상과 경멸, 조롱과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강하게 증거하고 있었다(3절).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이셨으나 혹은 십자가에서 약하고 경멸받는 사람으로 나타났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그의 부활과 생명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다." 이와 같이 사도들도 세상에서 아무리 천박하고 경멸을 받아도 도구로써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내며 세상을 기독교로 변화시키는 은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안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증거를 찾는 그들에게 그들의 기독교를 가르친다(5절).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 만약 그들이 자신을 통해 전파된 복음, 곧 참된 기독교리를 인정한다면 이것이 바울의 사도직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암시한다. 만일 그들이 믿음[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그분의 모든 말씀을 참되게 믿음 ::: 곧 복음과. JC의 성육신-십자가죽음-부활-승천-은혜의 성령 부어주사 내주, 동행, 인도, 보호, 양육, 가르치심 가운데 나타난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품-본성-영광-뜻과 계획, 이 땅의 모든 고난가운데 JC 빼어닮게 하시며 복음 이루심을 붙드는 믿음, 더불어 복음을 말할 수 없는 하나된 기쁨안에서 증거하게 하시려는 섭리따라, 보좌에서 중보하시는 구주의 재림을 고대함 따라 신부로서 고대함의 산 소망으로 행하는, 말씀과 성령따라 살아 생동하며 발휘하는 산 믿음]을 가지고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시면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앙은 바울의 사역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말씀은 그들의 선생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들을 다시 낳았다. 위로부터 사도직을 받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동반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버림을 받지 않았다면은 바울도 버리운 자가 아님을 알 것이라 믿는다(6절). 바울이 앞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요청한 의무 즉 "너 자신을 시험하라"는 말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된다. 즉 자신의 영적 상태를 살펴야 한다.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원수로부터 기만당하기 쉽고 이 기만은 가장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증거하는 데 관심을 가지며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지 영혼에게 묻게 된다. "우리가 버리운자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 우리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든지 크게 속이는 자이다. 사람이 자신과 자신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 것이 얼마나 책망받을 일이겠는가? ----------- 서신을 보내는 이유(고후 13:7-10) Ⅰ. 고린도 교인들이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께 바울은 기도한다(7절). [복음으로 실지로 복음이 되게 하라..베풀어 주신 바로 그 말씀을 붙들고 깊이 주를 의지함으로써 열어주시며 깨닫게 하시는 바, 은혜의 바다로 들어가라, 겸손히 온유함을 견지하며 열린-잘 배우는 부드러운-탄력성 있는-애통하는 마음으로 개인적으로 세심하게 비춰보아 적용하기, 곧 모든 근본동기와 드러난 열매들을 점검하고 회개하며, 끊어 낼 것은 끊어내고 돌아서서 떠나라, 참되게 JC를 믿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바 지금 처한 모든 고난마다 주께 아뢰고 일절 오래 참음으로 끝나기까지 감수하되, 가르치시며 인도-동행-보호-은혜 베푸시는 주 이름을 불러 앙망하며 감수하고, 그 교훈을 잊지 말라, 오직 성령따라 행하라, 성령의 기도-찬양-하나님의 모든 풍성부요충만을 누리게 하시는 그분의 사랑-희락-화평으로 일절 오래 참음 안에서 자비-양선-충성(믿음)-온유(겸손, 겸비)-절제로 살라...매순간마다 마음을 열고 성령을 호흡하라!!] 죄에서 떠나며 악을 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 우리의 친구를 위하여 가장 원하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우리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이 은혜를 위하여 자주 항상, 끊임없이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악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보다(세상에서는 믿는 이가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다.."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니라"..오히려 [무심코] 악을 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깨어!!...그리스도의 이름 부르며 성령따라 행함으로써!!] 기도해야 한다. Ⅱ.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유와 제목에 대하여 관찰하자. 1. 자신의 명성 때문이 아니고 신앙의 수호를 위함이다.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비록 우리가 비난을 당하고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신앙의 명예를 위함이다"(7절). 다음을 주목하자. (1) 복음의 충성스러운 종의 소망은 그들이 무시되더라도 전한 복음이 귀중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2) 거룩한 신앙을 장식하는 가장 좋은 길은 "[오직 복음 진리따라]선을 행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됨으로] 칭찬을 받으며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 중심을 지킴 통해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그리스도의 모든 영광의 풍성을 맛보고 누리기를 선택하며]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다." 2. 또 다른 이유는 이러하다. 바울이 그들에게 갈 때에 그들이 아무런 비난받을 것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8절에 암시되어 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들이 악을 행하지 않고 복음을 거슬러 행하지 않았다면은 바울은 그들을 벌할 아무 권력이나 권위가 없는 것이다. 주께서 바울에게 준 권위는 파괴함이 아니요 덕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전에도 말했고(8장), 여기서도 말한다(10절). 비록 [겸비-온유-친절-온화-일절 오래참으신 JC의 어떠하심따라 온유-오래참음-부지런함-열심으로 복음전도와 가르침에 있어서 전지전능하신 살아계신 주와 하나되어 그 임재앞에 있어 복음전파 하는 자로서 <일절 두렵고 떨림으로>늘 온유-겸비함을 취하였으나, 실지로는 복음전파를 위한 사도직에 따르는 치리의 권세가 있었던 바] 바울이 복음의 전도를 위하여 큰 권세가 부여되었지만 그 진리를 순종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권리는 없다. 그 자신이 [그 사도적 치리권 행사에 있어서] 진리를 거스릴 수도 없고 원하지도 않았다. 이 거룩한 약함을 얼마나 바울이 기뻐하였겠는가.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한다(9절). 즉 믿음이 강하고 선한 열매를 맺는 자들을 비난할 권세는 결코 없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도 한다. "비록 우리는 핍박과 경멸로 약하지만 너희는 거룩함에 부유하고 선한 일에 인내하는 것을 보고서 우리가 기뻐하노라." 3. 바울은 그들이 온전하기를 원했다(9절). 그들은 진실하여 완성을 목표하도록 바란다. 진실은 복음의 온전함이다. 혹은 철저한 개혁이 그들에게 있기를 원했다. 바울은 그들이 죄에서 떠날 뿐만 아니라 은혜와 거룩함에 있어서 자라나기 부족한 것이 고쳐지고 개혁되기를 원했다. 이것이 이 편지를 쓰는 큰 목표였다. 그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사도로서 주께서 바울에게 주신 권세를 행사하며 엄하게 하지 않게 하려함이다. 즉 "모든 불순종을 벌하는 일"(6장)을 피하기 위함이다. --------- 마지막 격려와 축도(고후 13:11-13) 바울은 이 편지를 맺는다. Ⅰ. 그의 고별사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특별한 고별사를 하며 그들의 영적 복지에 대한 충심의 소원을 하면서 당분간 떠나 있다. 1. 그는 그들에게 얼마의 좋은 격려를 한다. (1) 온전하며 사랑으로 [먼저 성령따라 마음을 열어!! 상호간에]연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모임에 크게 유익한 것이다. (2)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견디는 모든 고난과 핍박 아래에서 [서로 사랑과 생명의 성령따라 교통함 통해]위로를 받고 더욱 앙망하는 것이다. 혹은 이 세상에서 하는 역경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3) 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형제들과 화목하면 할수록 우리 영혼이 평안하다. 바울은 가능한 한 그들이 같은 마음과 판단을 가지기를 원했다. (4)그들은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의견의 차이가 소외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즉 서로 서로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바울도 그들의 모든 분열이 치유되고 싸움과 분노가 없으며 "싸움과 시기와 중상과 수근거리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것은 평화의 적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을 약속하면서 격려한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11절). 다음을 주목하자. (1) 하나님은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평화의 원천이시며 하나되게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화목하시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를 사랑하며 그와 화목하며 우리도 서로 사랑할 것을 명령하신다. (2) 하나님은 사랑과 평화 중에서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들과 함께 사시며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랑과 화평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은혜의 하나님]임재를 허락 받고 [점점 더 크게 확장-증강되어 충만케 됨 통해 지금부터 ,또한 영원히] 이후에 영광스러운 임재를 가지게 된다. 3. 바울은 그들이 서로 인사하라고 지도하며 그와 함께 한 성도들의 문안을 그들에게 전한다(12, 13절). 사랑의 거룩한 입맞춤으로 [하나된 형제자매로서 상호 진실한 아가페적 교통과 공급으로서]애정을 증명하라고 지도했다. 이 당시에는 시행되었으나 교회가 부패하여짐에 따라 방탕-불결함 때문에 이후에 금지되고 말았다. Ⅱ. 사도의 축도이다(14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렇게 바울은 이 서신을 맺는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을 작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의 교리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다른 인격이나 그러나 한 하나님이다. 이 세 분은 인간의 축복의 근원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에게 눈을 집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의 이름으로 축복을 받고 세례를 받는 삼위 일체 하나님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사는 것이 의무이다. 이것은 장엄한 축도이다. 이 축복을 [참되게 받아 누리기 위해!!] 받기 위하여 열심을 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은 이런 것이다. 구속자로서 그리스도의 은혜요, 구속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해, 의하여 우리에게 부여되는 모든 은혜와 사랑이 교통하심이다. 곧,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 이외에 더 무엇을 원하겠는가? 아멘. === === 고린도후서 제 13장 =====13:1 @두 세 증인 - 이 표현은 특별히 어떤 인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율법이 정한 바 범죄자에 대한 재판 시 두 세 증인의 증거가 필요한 것처럼(신 19:15), 바울이 전통적인 율법에 따라 합법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엄격하게 시행하겼다는 의지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바울이 이런 경고를 할 때 그의 심중에 이미 처벌에 대한 계획이 세워져 있었고 본문의 경고도 그것을 위한 절차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생긴다. 바울이 바라는 것은 그런 처벌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미리 각성하여 회개함으로써 서로 웃는 낯으로 대면하게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그의 바람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바울은 이제 마음의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하나님의 능력으로 - 약함이 곧 강함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역설적 진술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지만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약함을 나타내셨다. 정확하게 표현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타나게 하기 위해 스스로 약함을[겸비를] 선택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약함이 결코 육체적 정신적 나약함이나 무기력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약함은 자신을 낮추어서 분노하지 않고 복수하지 않는 약함이며 하나님께 복종하여 자신을 포기하는 약함이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약함은 그의 죽음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입고 부활의 승리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도...약하나...살리라 - 그리스도가 약함속에서 하나님의 강함으로 능력을 나타내었던 것처럼 바울도 그리스도의 약함과 강함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강함'을 '살아남'의 개념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약함을 통해 가장 강한 부활의 ;그리스도를 따름을 의미한다. 따라서 약함 가운데서 나타나는 능력의 최절정은 부활생명인 것이다. =====13:8 @진리를...위할 뿐이니 - 여기서 '진리'(* , 알레데이아)는 일반적인 용법으로 사용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복음'을 뜻한다고 본다(Harris). 그리고 불트만(Bultmann)의 해석대로 '다른 복음'에 반대되는 참된 교의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도 타당성이 있다. 바울은 사실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끝내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진리'가 자신의 명예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진리'를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甘受)할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격없는 사도라는 혹평을 받고 버림받은 그리스도인이 되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가 바울이었다. =====13:11 @형제들아 -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부를 때에 이런 칭호를 사용한다(1:8;8:1). 바울에게 있어 고린도 교인들은 여전히 '형제들'이며 장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기뻐하라 - 이 말은 헬라어법에 따른 일반적인 인사말로 '안녕히 계십시오' 정도로 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늘 체험하라'는 온전한 신앙에로의 초대로 볼 수도 있다. 공동번역은 전자로 해석하고 있으나 뒤에 이어서 나오는 다른 명령어들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후자의 의미로 이해하는 편이 더 타당하다. @온전케 되며 - 고린도 교인들은 정말 온전케 되어야 한다. 환자의 몸이 건강하게 회복되듯이 그들은 무질서와 방탕함에서 벗어나서 다시금 영성(靈性)을 회복하여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위로 받으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칼레이스데'(*)는 '격려하다', '위로하다', '탄원하다', '권면하다' 등의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공동번역은 '내 권고를 귀답아 들으십시오'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가능한 해석이다. 한편 좀 다른 차원에서 이 말은 '서로 서로 격려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다툼'과 '분냄', '당짓는 것', '중상'등과 같은 요소들을 모두 갖춘 그들로서는 사랑을 회복하여 더욱 '서로 격려함'의 미덕이 필요한 것이다(12:20). @마음을 같이 하여 - 이는 '동일한 생각과 사상을 지니라'는 의미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의 복음', '하나의 그리스도', '하나의 하나님'이 라는 사상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 화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동일한 신앙고백 위에 있음으로써 거짓 사도들의 미혹에 속지 않으며 분열하지 않을 것이다. @평안할지어다 - 칼빈(Calvin)은 이 말을 '갈은 마음'을 가진 결과라고 보고 있다(롬12:18;살전 5:13).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표현은 바울이 대부분의 서신서를 끝맺으면서 평강(평안)을 비는 인사말에 쓰는 상투적인 끝맺음에도 해당된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 - 평강의 하나님에 대한 설명은 신약성경에서 많이 발견된다(롬 15:33;16:20;빌 4:9;살전 5:23;살후 3:16;히 13:20). 그리고 바레트(Barrett)에 의하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신약성경 중에서 본 서신에만 유일하게 언급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만이 고린도 교인들을 하나로 화목하게 하고 온전하게 할 것이다. @거룩하게 입맞춤 - 입맞춤은 원래 고대 근동에서 행해지던 인사의 한 형식이었다. 그런데 초대 교회에서는 여기에다 성(聖)스런 의미를 부여했다(롬 16:16;벧전 5:14). 다시 말해서 초대 교회에서는 '입맞춤'이 제의적 의미까지 지녔다는 것이다(Barrett). 입맞춤은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교제하고 한 가족으로 연합함을 뜻한다. 그뿐아니라 주의 만찬이 있기 전에 상호간의 용서와 화해의 표시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Harri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