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12장 196성령의은사를 [197은혜가풍성한하나님은] 187비둘기같이온유한
===성령의 은사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하나의 몸과 많은 지체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1 Corinthians 12 Amplified Bible ==The Use of Spiritual Gifts 1 Now about the spiritual gifts [the special endowments given by the Holy Spirit], brothers and sisters, I do not want you to be uninformed. 2 You know that when you were pagans, you were led off after speechless idols; however you were led off [whether by impulse or habit]. 3 Therefore I want you to know that no one speaking by the [power and influence of the] Spirit of God can say, “Jesus be cursed,” and no one can say, “Jesus is [my] Lord,” except by [the power and influence of] the Holy Spirit. 4 Now there are [distinctive] varieties of spiritual gifts [special abilities given by the grace and extraordinary power of the Holy Spirit operating in believers], but it is the same Spirit [who grants them and empowers believers]. 5 And there are [distinctive] varieties of ministries and service, but it is the same Lord [who is served]. 6 And there are [distinctive] ways of working [to accomplish things], but it is the same God who produces all things in all believers [inspiring, energizing, and empowering them]. 7 But to each one is given the manifestation of the Spirit [the spiritual illumination and the enabling of the Holy Spirit] for the common good. 8 To one is given through the [Holy] Spirit [the power to speak] the message of wisdom, and to another [the power to express] the word of knowledge and understanding according to the same Spirit; 9 to another [wonder-working] faith [is given] by the same [Holy] Spirit, and to another the [extraordinary] gifts of healings by the one Spirit; 10 and to another the working of [a]miracles, and to another prophecy [foretelling the future, speaking a new message from God to the people], and to another discernment of spirits [the ability to distinguish sound, godly doctrine from the deceptive doctrine of man-made religions and cults], to another various kinds of [unknown] tongues, and to another interpretation of tongues. 11 All these things [the gifts, the achievements, the abilities, the empowering] are brought about by one and the same [Holy] Spirit, distributing to each one individually just as He chooses. 12 For just as the body is one and yet has many parts, and all the parts, though many, form [only] one body, so [b]it is with Christ. 13 For by one [Holy] Spirit we were all baptized into one body, [spiritually transformed—united together] whether Jews or Greeks (Gentiles), slaves or free, and we were all made to drink of one [Holy] Spirit [since the same Holy Spirit fills each life]. 14 For the [human] body does not consist of one part, but of many [limbs and organs]. 15 If the foot says, “Because I am not a hand, I am not a part of the body,” is it not on the contrary still a part of the body? 16 If the ear says, “Because I am not an eye, I am not a part of the body,” is it not on the contrary still a part of the body? 17 If the whole body were an eye, where would the hearing be? If the whole [body] were an ear, where would the sense of smell be? 18 But now [as things really are], God has placed and arranged the parts in the body, each one of them, just as He willed and saw fit [with the best balance of function]. 19 If they all were a single organ, where would [the rest of] the body be? 20 But now [as things really are] there are many parts [different limbs and organs], but a single body. 21 The eye cannot say to the hand, “I have no need of you,” nor again the head to the feet, “I have no need of you.” 22 But quite the contrary, the parts of the body that seem to be weaker are [absolutely] necessary; 23 and as for those parts of the body which we consider less honorable, these we treat with greater honor; and our less presentable parts are treated with greater modesty, 24 while our more presentable parts do not require it. But God has combined the [whole] body, giving greater honor to that part which lacks it, 25 so that there would be no division or discord in the body [that is, lack of adaptation of the parts to each other], but that the parts may have the same concern for one another. 26 And if one member suffers, all the parts share the suffering; if one member is honored, all rejoice with it. 27 Now you [collectively] are Christ’s body, and individually [you are] members of it [each with his own special purpose and function]. 28 So God has appointed and placed in the church [for His own use]: first apostles [chosen by Christ], second prophets [those who foretell the future, those who speak a new message from God to the people], third teachers, then those who work miracles, then those with the gifts of healings, the helpers, the administrators, and speakers in various kinds of [unknown] tongues. 29 Are all apostles? Are all prophets? Are all teachers? Are all workers of miracles? 30 Do all have gifts of healing? Do all speak with tongues? Do all interpret? 31 But earnestly desire and strive for the greater gifts [if acquiring them is going to be your goal]. And yet I will show you a still more excellent way [one of the choicest graces and the highest of them all: unselfish love]. ==Footnotes 1 Corinthians 12:10 I.e. wonderful events or occurrences beyond human capability which manifest the supernatural power of God and fulfill His purpose. 1 Corinthians 12:12 Lit is Christ. --------- @@@divine endowment (하나님이 주시는 바, 신성한 능력 부여)...자금이나 자질, 곧 누리거나 유통 공급할 수 있는 지속적 능력)의 기증/증여/부여/수여/기부 >>참되게 믿는 이를 위한 더 많은 은혜가 있습니다. There’s More Grace For You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AMP)6 But He gives us more and more grace [through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to defy sin and live an obedient life that reflects both our faith and our gratitude for our salvation]. Therefore, it says, “God is opposed to the proud and haughty, but [continually] gives [the gift of] grace to the humble [who turn away from self-righteousness].” 은혜란, [God's Reward At Christ' Excess..친히 성령으로 오셔서 내주하사 하나로 연합되어 사시는 그리스도..믿는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됨의 인침/보증]이시며,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형통케 하기 위해 당신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영향력[= 능력과 감화 power and influence]의 원천입니다. 즉 연약-무력-정체의 고인 상태로 죽어 있는 죄성과 옛습성따름이 아니라 거듭나 믿는이가 선택하며 따르는 바, 바로 내주하시는 성령과 하나되어 [영원히 살아계시는, 말씀하시는 전지전능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실지로 실생활 에서 살아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된 하나님 자녀안에 계신 영광의 하나님 그 자신을 증가[증강]-승진-진보하게 하는 신성한 능력부여(divine endowment)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이 세상에 보내어 머무르게 하신 뜻 바로 그대로 이루시도록] 당신이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그 충만하심으로부터] 밖으로 반사[또한 누림-유통공급]시키는 정도는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당신의 심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점 더 채우며 성령님이 당신의 삶에 일하시게 할수록 당신의 삶에서 은혜가 더 크게 역사합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증언할 정도로 당신의 영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점점 더 밖으로 반사[또한 누림-유통공급]할 수 있고 또 그리해야 마땅합니다. 그들은 설명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당신 안에서와 당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서 빛을 발하는 탁월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더 많은 기름부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고 있지만,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더 많은 기름부음을 주시겠다는 대목은 없습니다. 다만, 오늘의 본문구절을 통해서 볼 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은혜입니다. 더 많은 은혜는 당신에게 더 많은 일을 성취하거나 행할 수 있게 하는 더 큰 능력을 줍니다. 당신이 성공하고 진보할 때, 하나님은 당신의 경계선[지경]을 넓히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능력을 증가시키십니다. 할렐루야! 당신은 특정사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어떤 특정규모의 사업을 운영해왔을 수 있고, 이제 그 사업을 열 배나 백 배 이상으로 성장시키기 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에게 더 많은 은혜가 필요합니다. 더 많은 은혜가 없다면, 당신은 새로운 수준의 성장과 증가를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그 수준의 사업을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더 많은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더 많은 은혜가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4:16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말씀을 가지고!!!]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AMP..16 Therefore let us [with privilege] approach the throne of grace [that is, the throne of God’s gracious favor] with confidence and without fear, so that we may receive mercy [for our failures] and find [His amazing] grace to help in time of need [an appropriate blessing, coming just at the right moment]. 곰곰이 주님 이름을 불러 그분안에서 머무르면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주님의 Original design 과 Destiny를 바르게 깨닫도록 구하십시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한 하나됨 안에서 좁은 문, 좁은 길 걷는 동안, 어떤 은혜가 더 필요합니까, 어떤 은혜를 원하십니까? 치유의 은혜를 원하십니까? 사업의 확장의 은혜를 원하십니까? 영혼구원의 은혜를 원하십니까? 재정의 증가를 위해 더 많은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참 자녀됨을 인식하고, 모든 참 자녀마다에게 이미 허락되어 있는 무한한 은혜, 바로 그것을!!] 은혜의 보좌로 담대하게 나아와서 필요한 은혜를 [믿음으로!] 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자녀들에게 허락하여 주신, 필요한 은혜를 믿음으로 취하십시오. [거지처럼]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한 은혜를 취하는 것은 [자녀된] 당신의 몫입니다. 믿음으로 취하셨다면 그 다음단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것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그 그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여쭈어 보시고 그릇을 마련하십시요] ..[항상 그렇지만..필요하다면!!] 당신은 지금 당장 그 은혜를 활용해서 암이나 질병을 꾸짖어 몸에서 쫓아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그 은혜를 활용해서 질병에서 빠져나오십시오.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기도...사랑하는 하늘 아버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저는 이 은혜를 활용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공로를 세웁니다. 그래서 날마다 제가 아버지의 말씀을 묵상할 때 아버지의 은혜가 제 삶에서 배가되며, 왕국을 위한 더 많은 업적을 쌓을 수 있는 저의 능력도 배가됩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고린도전서 12장 (개요) 본장의 내용은 이렇다. Ⅰ. 고린도 교회에 풍성히 주어진 영적 은사에 대하여 말한다. 은사의 출처는 하나님이다. 여러 종류와 용도, 은사의 목적은 기독교의 확장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다(1-11). Ⅱ. 은사를 몸의 지체로 비유하여 설명한다. 각 지체는 서로 도우며 관계를 가지고 있다(12-26). Ⅲ.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각 지체는 전체의 몸의 유익을 위하여 은사를 받았다(27-30). Ⅳ. 이들 은사보다 더 유익한 은사를 구하라고 권한다(31). ======= 한 성령에서 나온 여러 은사(고전 12:1-11) 바울은 여기에서 고린도 교회에 풍성히 임한 영적 은사와 은사의 남용을 취급한다. 이 장에서 이들 은사가 무엇인가를 말한다. 불신자의 회개와 복음의 전파를 위하여 초대 교회의 사역자들과 교인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직책과 능력을 말한다. 은사(cavrisma..카리스마)와 은혜(cavri"..카리스)가 크게 다르다. 둘 다 하나님에게서 왔다. 구원을 위하여 은혜가 주어지고 다른 사람의 유익과 구원을 위하여 은사가 주어진다. 은혜가 없는 곳에도 은사가 있을 수 있고,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에서 전연 떠나 있을 수가 있다. 은사가 인간에게 주어진 신령한 자비이지만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릴 충분한 조건은 못된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풍부하였으나 혼란에서 온 많은 잘못된 일이 있었다. 그들은 이들 은사를 성령으로부터 받았다. Ⅰ. 바울은 그들이 은사의 출처와 용도를 알기를 원한다. 은사들은 하나님에게서 왔으니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이 둘을 모르면 잘못을 범한다. 올바른 깨달음이 신앙의 실천에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은사의 성질과 올바른 용도를 모르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Ⅱ.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빠져나온 옛날의 상태를 상기시킨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2절). 이방인이었을 때에 영적인 예산이나 은사들을 자랑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이방 종교의 정신을 받고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영향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이전의 이와 같은 상태를 이해한다면 모든 영적인 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모를 리가 없다. 1. 그들의 전의 상태, 그들은 "이방인"이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버린 상태로서 유지시킨 백성이었다. 선택된 유대 민족은 특별한 은총으로 세상의 다른 민족과 구별되었다. 이들에게만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지식과 예배가 제한되어 있었다. 세상의 나머지 백성은 약속의 계약에 낯선 사람이요 하나님이 없는 이스라엘 나라에서 소외된 백성이었다(엡 2:12). 개종 전에는 고린도 교인들도 그러한 이방인이었다.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가! 다음을 주목하자. 그리스도인들을 의무와 감사를 느끼게 하며 어떠한 사람이었던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대단히 유용한 일이다. "너희들은 이방인이었다." 2. 그들이 행하던 행위.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헛된 상상력과 무지를 악용하는 이방 선지자들의 영향으로 큰 우상에 빠져 나무나 돌을 섬기었다. 그들의 철학자들의 사상이 무엇이든지 그들을 추종하는 대중의 행위가 이러하였다. 그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문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우상을 섬기며 경의를 바쳤다(시 113:5, 6). 비참한 마음의 상태이다. 대중의 이와 같은 개념을 경멸하는 사람들도 행위로써 지지하는 형편이었다. 이방 종교의 실망스러운 상태이다. 성령이 그와 같은 어리석은 우상 숭배자에 임하며 그들이 이 성령에 의하여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세상의 왕이 인간을 얼마나 잘못 인도하며 인간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가! Ⅲ.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나온 참다운 영적 은사를 분별하는 방법.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들 모두 그렇다. 이방인들은 예수를 사기군으로 저주하였다. 많은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영으로 기사를 행하고 다닌다고 생각하며 이방인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처럼 행동했다. [라이트푸트(Lightfoot)의 "Horoe in loc" 참조].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예언과 기사와 부활과 교리의 선포와 영향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그리스도를 저주할 수가 없다. 반면에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주라 함은 신앙으로 살며 그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기사를 행한다 함이다. 사람들 앞에서 이 진리를 시인하며 죽을 때까지 유지하며 그 영향으로 살아가는 일은 성령의 성화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신앙이 성령으로 역사되지 않고는 그에게 복종하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그리스도를 주라 할 수 없다. 격려하고 힘을 주는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시험의 날에 이 진리를 고백한 수 없다. 다음을 주목하자. 하나님의 용납하심과 화해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중보가 필요한 것과 같이 우리의 성화와 견인을 위하여 성령의 역사와 영향에 의존해야 한다. 성령에 의하지 않고 기적으로 이 진리를 증거할 수 없다. 악마의 나라에 그렇게 유해한 교리와 신앙을 악의 영이 도와주지 않는다. 바울의 주장의 진수는 기독교의 반대의 입장을 가진 자의 영감과 기사는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라는 증거는 용기로, 기사로 할 수 없고 오작 성령만으로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특별한 역사와 능력은 하나님의 영에서 온 것이다. Ⅳ. 이들 성령의 은사들은 같은 성령에서 나왔으나 여러 가지이다. 이들은 한 창시자와 근원을 가지고 있으나 여러 종류이다. 자유로운 원인은 여러 결과를 만들고 같은 공급자가 여러 은사를 부여할 수 있다(4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즉 계시와 방언과 예언과 방언 해석이다. 그러나 "성령은 같다." 여러 직임과 규례와 제도가 있다(28-30절). 이 모든 것을 정하시는 이는 같은 주이시다(6절). "여러 역사"가 있으나 즉 기적적인 능력들이 있으나(에네르게마타 뒤나메온)(10절) "모든 역사를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여러 은사와 시행과 역사가 있으나 한 하나님, 한 주, 한 영에서 나왔으며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며 모든 영적 축복과 유산의 원천에서부터 나왔다. 같은 근원과 창시자에게서 나왔다. 은사가 다르나 이전에서는 일치한다. 얼마의 종류가 여기에 언급된다(8-10절). 여러 사람이 여러 은사를 가지고 있으나 같은 성령에서 나왔다. 어떤 이에게는 지혜의 말씀이 주어졌다. 즉 복음의 비밀에 대한 지식이다. 이 비밀을 설명하고 그리스도의 신앙의 계획과 성질과 교리의 정확한 이해라고 해석하고 어떤 이들은 솔로몬의 잠언과 같이 정중한 말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도에게 나타난 계시에 의한 지혜의 말씀이라고 한정시키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즉 비밀에 대한 지식이다(2:13). 구약의 예언과 모형과 역사에 싸여 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어려운 경우에 충고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기적에 대한 믿음 혹은 신령한 능력과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믿음이다. 위로부터 내려온 특이한 감동이다. 그래서 위험할 때에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의무를 수행하며 어떤 위험이나 곤란이 있어도 진리를 자인하고 고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안수나 기름을 붓거나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는 은사이다.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능력의 효력이다(에네르게마타 뒤나메온). 즉 죽은 자를 살리며 장님을 보게 하며 벙어리가 말하게 하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반신불수가 걷도록 하는 능력이다.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즉 미래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다. 혹은 성령의 특별한 은사로써 성경을 설명하는 일이다(14:24 참고). "어떤 이에게는 영을 분별함을" 즉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며 어떤 직책에 대한 어떤 사람의 내적 자격을 분별하거나 베드로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알아내는 성령의 역사이다(행 5:3).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영감으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이다. "어떤이에게는 방언을 통역함을 주시나니," 외국의 언어를 쉽게 통역할 수 있는 능력이다. 초대 사역자들과 교회들은 이런 여러 영적 은사를 받았다. Ⅴ. 이들 은사가 부여된 목적.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7절). 성령은 이들 은사의 역사로 나타나셨다. 성령의 영향과 유익이 그들 안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단지 소유자의 영광이나 유익을 위하여 분배되지 않고 교회의 유익과 덕과 복음의 전파와 발전을 위하여 주어졌다. 다음을 주목하자. 하나님이 부여하신 모든 은사는 선을 행하도록 함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그의 영광과 이웃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되어야 한다. 아무도 자기의 전유물로 가지는 것이 아니다. 유익을 주도록 위탁될 것이다. 남을 유익하게 할수록 자기가 이롭게 된다(빌 4:17).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유익과 기독교의 전파를 위하여 부여되었다. 자랑하도록 주어지지 하고 봉사하도록 주어졌다. 뽑내기 위함이 아니고 덕을 세우기 위함이다. 소유자가 높아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남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Ⅵ. 은사가 주어지는 분량. "이 모듣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주시는 이의 절대적인 기쁜 마음에 의하여 주어진다. 선물보다 더 무료인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자기의 것인 성령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을까.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그 뜻대로 주시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각양각색의 은사가 있다. 많이 받는 이도 적게 받는 이도 있다. 성령은 가장 훌륭한 판단자이시다. 사람의 생각대로 부여되지 않고 성령의 뜻대로 주어진다. 다음을 주목하자. 성령은 신령한 인격이시다. 그는 의존이나 간섭없이 자신의 뜻과 능력에 의하여 신령한 은사를 공급하신다. 은사들은 성령에 의하여 무료로 주어지지만 개인의 명예나 유익이 아니라 공공의 유익과 몸인 교회의 덕을 위하도록 목표가 서있다. --------- 사람의 몸과 같은 교회(고전 12:12-26) 바울은 위에서 주장한 진리를 이해시키고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서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그들의 의무를 상기시킨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인간의 몸에 비유한다. Ⅰ. 한 몸은 여러 지체를 가지고 있으나 여러 지체는 한 몸을 만든다(12절). "몸은 하나인데 여러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인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즉 여러 신학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신비스러운 그리스도이다. 머리와 지체의 관계처럼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몸이다. 여러 부분이고 여러 지체나 한 몸이다. 모든 지체는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한 성령을 마시게 하였느니라"(13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같은 위치에 있다. 같은 몸에 세례를 받고 같은 성령에 참여한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로써 몸의 지체가 된다. 한 몸이 된다. 외적인 의식은 신령한 제되다. 중생의 씻음(딛 3:5)이라 불리어지는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것은 성령의 신생으로써 된다. 성령의 역사와 성찬의 분배로 지체가 된다. 잔을 마실 뿐 아니라 성령으로 마셔 교제한다. 외적인 의식은 하나님에 의하여 정해진 수단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참 지체가 되는 것은 성령의 세례와 그의 새롭게 하여 주심과 감화의 덕분이다. 성령으로 생기를 얻어 한 몸이 된다. 다음을 주목하자.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모든 사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이다. 한 생활 원리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같은 성령으로 생동하게 된다. Ⅱ. 각 지체는 특이한 형태와 위치와 용도를 가지고 있다. 1. 가장 비천한 지체도 몸의 한 부분을 만든다. 발과 귀는 손과 눈보다는 덜 유용할지 모른다. 그러나 손이 아니며 눈이 아니라고 몸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가 없다(15,16절). 신비한 몸의 모든 지체도 같은 위치와 직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면 몸과 관계가 없는가? 같은 지위나 같은 은사를 못받아서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가장 비천한 지체도 가장 고상한 지체만큼 중요하다.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에게는 귀하다. 2. 몸의 지체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17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19절). 여러 지체이고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몸은 하나다"(20절). 한 지체가 몸이 아니고 여러 지체로 구성된다. 이들은 위치와 모양과 용도가 다르다. 그리스도의 몸도 그렇다. 그의 지체들은 다른 지위와 능력과 은사를 가지고 있다. 여러 지체가 몸의 아름다움을 이룬다. 다 눈이거나 귀이거나 팔이면 어떠한 괴물이 되겠는가! 여러 은사와 직책이 있음은 교회의 아름다움을 위함이다. 3. 인간의 몸의 각 지체의 배열과 위치는 하나님의 기쁜 뜻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18절) 모든 지체의 배열의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 있다. 그의 뜻대로 되어 있다고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위치와 능력이 정해져 있다. 모든 것의 주께서 은총과 은사를 기뻐하시는 대로 주셨다. 누가 그에게 반대할까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거나 불평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자리에 있지 않다고 투덜거리거나 싸워서는 안 된다. 4. 몸의 모든 지체는 어떤 의미에 있어서 서로 서로 필요하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21,22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체가 서로 요긴하도록 하셨다. 남는 지체나 불필요한 지체가 없다. 모든 지체가 봉사한다. 각 지체와 전체 몸에 유익하다. 불필요한 교회의 지체가 없다. 다 필요하다. 서로 시기하거나 경멸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서로 의존하며 귀하며 관계를 맺고 요긴하도록 하셨다. 어떤 은사에게 뛰어난 사람들이 다른 부족한 사람을 무시할 수 없다. 다른 은사에서는 그들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지체도 가장 낮은 지체가 없으면 무용하다. 눈은 손이 필요하다. 5. 인간의 신체에 대한 관심도 그러하다.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노출하기에 부끄럽고 흉한 몸의 부분은 잘 입혀서 덮어 둔다. 아름다운 부분은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나 놀라워 가장 필요한 곳에 배려와 명예가 주어진다(24절).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도 이와 같이 행동하여야 한다. 연약한 자를 멸시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덮어서 감추어 주어야 한다. 6. 하나님의 지혜는 몸의 각 지체가 분열하지 않고 서로 관계를 가지며 이웃의 슬픔과 기쁨을 나누도록 고안하고 질서를 세웠다(25,26절). 자연적인 육체도 조정하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25절) 분열이 없으며 상호 무시가 없도록 되어 있다. 영적인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해야 한다. 사랑의 강한 줄로써 연결되어야 한다. 이런 애정의 부패가 모든 분쟁의 씨가 된다. 이웃에 냉담하면 부주의하게 된다. 이 상호의 무관심이 분쟁의 시초이다. 자연적인 육체도 각 지체가 서로 보도록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몸도 같다. 각 지체는 동정해야 한다. 육체에 있어서 한 지체의 기쁨과 슬픔이 전체의 몸에게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도 동료들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함께 고통을 당하며 형제의 명예를 시기하지 말고 같이 기뻐하고 영광을 누려야 한다. -------- 은사의 종류(고전 12:27-31) Ⅰ. 바울은 여기에서 자기의 주장을 정리하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비교한다. 1. 그리스도인들이 서 있는 관계성 모든 시대에 걸쳐 그리스도인의 모임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의 몸의 지체이며 동료로서 서로 관계가 있다(27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각자는 지체이며 몸이 아니다. 몸의 일부분으로 붙어 있고 각 지체는 상호 의존과 관계를 가져 서로 돌보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의 몸과 같이 신령한 몸도 같이 배치되어 있다. 다음을 주목하자. 상호의 냉담과 경멸과 미움과 시기와 싸움은 그리스도인에게 어색한 것들이다. 그것은 몸의 지체가 서로 무관하며 싸우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울의 논지이다. 바울은 교만하는 사람과 자랑하는 사람과 성령의 은사로써 다투는 정신을 누르려고 노력했다. 2.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워진 여러 직책과 부여된 은사와 은총들(28절).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웠으니 첫째는 사도요" 사도는 교회를 세울 능력과 계시를 받았다. "둘째는 선지자요" 전도자와 같이 성령의 영감으로 예언하고 성서를 해석하며 기록하는 사람이다. "세째는 교사요" 목회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말씀과 교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 다음은 능력이요" 즉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 다음은 병고치는 은사요" 병고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로 돕는 것과" 병자와 약한 자에게 동정을 가지고 돌보는 사람이다. "다스리는 것과" 교회의 사랑의 헌금을 처리하며 가난한 자를 돕는 사람들이다. "각종 방언을 하는 사람이라." 여러나라 말을 하는 사람이다. (1) 풍부한 은사와 직팩. 얼마나 많을 은사인가. 선하신 하나님께서 원시 교회에 풍족히 주셨다. 그는 축복과 은총에 인색하시지 않다. 아니 부요하게 주셨다. 필요 이상으로 주셨다. (2) 직책과 은사의 순서. 올바른 순서로 놓여 있다.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 먼저 놓여 있다.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일을 알려 주고 그들의 영적 교훈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세워졌다. 이들이 없으면 복음의 지식도 거룩함도 증진 될 수가 없다. 나머지가 기독교에 아무리 필요하더라도 신앙에 그처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다음을 주목하자.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은사의 참 가치를 정해야 한다. 용도가 가치의 가장 좋은 표준이다. 최고의 목표를 만족시키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있다. 사도의 능력이나, 기적과 병고치는 것과 가난한 자를 돕는 것과 병든 자를 도와 주는 것은 유용하다. 즐기고 자랑하기 위한 방언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방언은 칭찬은 받기 쉬우나 듣는 사람의 덕이나 유익이 없다. 14장에 의하면 고린도 교인들은 이 은사를 아주 귀하게 여긴 것 같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의 참다운 가치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적당한 교만을 꺾는 방법인가. 인간은 가장 가치가 없는 것을 가장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잘못을 알게 하여서 정신을 차리도록 한다. (3) 은사의 고른 분배. 모든 지체와 직책은 교회에서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같은 능력도 가지지 않았다.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29, 30절). 그렇다면 교회를 괴물로 만든다. 마치 몸 전체가 눈이거나 귀인 것과 똑 같다. 직책에 맞는 교인들이다. 성령께서 정해 주시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직책이라도 만족해야 한다. 높은 지위나 큰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을 경멸하면 안 된다. 각 지체가 자기의 직책을 수행하며 서로 봉사하며 시기와 멸시와 무시와 악용 없이 서로 봉사해야 한다. 각 지체가 자기의 의무을 수행하면 교회는 얼마나 축복된 기관일까. Ⅱ. 바울은 충고와 암시로써 이 장을 끝맺는다. 1.가장 좋은 은사를 사모하라는 충고. ‘카리스마타 메이조나(크레잇토나’ TR) - dona potiora proestautiora 그 자체가 가장 귀하며 가장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명성과 존경을 가져오는 은사를 가장 귀하게 여기지만 이것들이 가장 좋은 은사이다. 즉 하나님이 가장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의 덕에 가장 유용한 것이 제일 귀한 은사이다. 이런 은사들을 사모해야 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는 가장 가치있고 좋은 것을 원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은사보다 은혜가 더 귀하다. 은사 중에도 유용한 것이 더 귀하다. 충고가 아니고 책망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은사를 사모하라"(젤루테). 13장 4절에 같은 단어가 번역되었다. 너희들이 그들에 대하여 싸우고 다투는도다. 바울은 이것을 책망하고 수정하려고 노력한다. 교만에서 다툼이 생긴다. 고린도 교회의 다툼은 이 근원에서 생겼다. 우월에 대한 싸움이었다. 우월권은 사랑을 박멸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모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때에 그의 형제를 떠미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은사가 유용하지만 자만과 경쟁의 화근이 될 때에 비극이다. 이것을 바울은 막으려고 하였다. 2. 더 좋은 은사 즉 사랑과 선의을 암시한다. 이것이 그들을 안정시키고 연합하는 유일의 길이며 은사가 유익하고 교회에 덕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서로 친절하며 관심을 가지며 다툼과 우월감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참다운 사랑을 가진 사람이 제일 높은 자리에 있다. 진실한 사랑이 모든 은사보다 더 사모해야 함을 주목하자. 사랑으로 마음이 빛나는 것이 자랑하는 명예나 직책이나 능력보다 더 좋은 일이다. ========= 고린도전서 제 12장 =====12:1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 '...에 대하여'의 헬라어 '페리'(* )는 고린도 교인들의 서면(書面) 질문에 답하는 말이다. 이는 이미 독자들이 제기된 문제점에 관하여 바울이 알고 있음을 전제한다. 여기서 바울이 '신령한 것'이라고 한 말에 대하여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신령한 것'의 헬라어 '프뉴마티콘'(* )이란 단어의 성(性)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1) 혹자는 14:37에서 '프뉴마티콘'이 '신령한 자'(* , 에 프뉴마티코스)로 사용되기 때문에 본문의 '프뉴마티콘' 역시 남성 명사로서 '신령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본다(Hofmann, Edwards, Holsten, Heinrici). (2) 혹자는 14:1에서와 같이 '신령한 것'(* , 타 프뉴마티카)이 중성 명사로서 '은사'를 가리킨다고 본다(Calvin, Luther, Meyer, Godet, Lenski). 본문의 '신령한 것'에 대한 성(性)이 불확실하며, 또한 (1),(2)의 내용이 서로 일맥 상통하므로 어느 한쪽으로 기울 필요는 없으나 본문의 문맥과 주제상 '신령한 것'의 의미는 '은사'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원치 아니하노니 - 본문의 헬라어 '우 델로'(* ,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바울적 표현으로 친근한 어구인 '아델포이'(* , '형제들이여')를 수반한다(10:1;살전 4:13). 바울의 희망을 분명히 천명(闡明)하면서도 그 대상에 대하여는 친근한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감정적인 문제로 비화될 여지를 최소화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성령의 은사의 목적과 그 기원에 대하여 그리고 은사의 다양성에 대하여 무지한 결과 초래할 수 있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12:2 본래 고린도 교인들의 대부분은 이방인 출신으로 이방의 우상 종교를 좇아갔던 과거상태를 상기시켜줌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어있는 현재 상태와 대조시키고 있다. 바울은 성령의 현현(顯現) 이전과 이후를 이방인이란 단어로 분명히 구별짓고 있다. 말 못하는 우상 - 본 구절은 이방 종교의 허구성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표현으로 우상은 생명이 없어서 사람의 요구에 반응할 수도 없고,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도 없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과거에 섬겼던 우상의 본질을 말함으로써 그들이 이런 헛된 우상을 섬긴 것은 우매함과 세속적 탐심의 결과이고, 그 상태는 비극적인 것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 '끄는 그대로'의 헬라어 '호스 안 에게스데'(*)에서 '호스 안'은 반복의 개념으로 쓰이는 코이네 헬라어의 관용어로서 '끌림을 당할 때마다'라고 번역된다. 그리고 '끌려갔느니라'의 헬라어 '아파고메노이'(* )는 아고(* , '내가 인도하다')의 미완료 수동태 분사이다. 이는 과거의 고린도 교인들이 헛된 우상의 요구대로 이끌려 자기의 판단과 결정과는 무관하게 비인격적인 숭배를 하였음을 보여준다. =====12:3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저주할 자'의 헬라어 '아나데마'(* )는 '신에게 드려진 것'(눅 21:5) 혹은 '신의 저주아래 놓인 것' 등의 의미이다. 본래 이 단어는 신성한 장소에 저축된 것을 의미하였다가 신에게 바쳐진 것을 뜻하게 되었고, 바쳐진 것은 바치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잃어진 것이므로 '멸망된 것' 곧 '저주받은 것'의 뜻이 되었다. 바울은 저주의 대상에게 이단어를 사용하였다(16:22;롬 9:3;갈 1:8). 본절에서 바울은 '저주받은 예수'(*, 아나데마 예수스)와 '주 예수'(' ,퀴리오스 예수스)를 대비시키고 있다. 즉 2절에서 이교도에 대하여 언급하고나서 본절에서는 유대교적 배경을 가지고 예수를 저주받은 자로 인식하는 부류들과 기독교적 그리스도관을 가지고 예수를 주 예수로 고백하는 자들을 비교하여 핵심에 접근하고 있다. 본절에서 '그리스도'라 하지 않고 '예수'라 지칭하고 있는 이유는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인간 예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신 후 인류 역사에 종속되어 자발적인 삶을 영위하시다가, 그의 택하신 백성을 구속하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한편 예수를 '주'시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성령으로'(* ,엔 프뉴마티 하기오)라고 정한 것은 고후 11:3, 4에서 제시한 것처럼 '다른 예수','다른 영' 그리고 '다른 복음'으로 미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른 예수'란 바울의 증거에 위배되는 것으로 바울은 예수를 참 하나님(Vere Deus)인 동시에 참 인간(Vere Homo)으로서 이해하였다. 본장 10절에서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를 언급한 것도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서 다른 신앙 고백 내용을 가진 '다른 영' 때문일 것이다. =====12:4 은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마톤'(' )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 '은혜의 선물'을 뜻한다. 이 단어는 바울 서신에 16회 나온다. 바울은 이 단어를 특별한 사람들만 받을 수 있는 어떤 신기하고 특별한 은사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여러 가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이레세이스'(' )는 원래 '분배' 혹은 '분할'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를 여러 갈래 나눈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본장 11절에서는 분사형 '디아이룬'(* )으로 사용되어 '나눠주다'라는 의미로 번역됨으로써 은사의 '다양성'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5, 6절의 '여러 가지'에도 이와 동일한 헬라어가 사웅되었다. 성령은 같고 - 예수를 주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 인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사는 어떤 특정한 것들 만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그 다양성 위에 한 성령의 역사가 있음을 알아야 분쟁이나 다툼 따위의 문제가 사라질 것이다. =====12:5 직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온'(* )는 '디아코네오'(*, '섬기다', '봉사하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아코니아'는 여러 가지 의미를 포괄한다. (1) 이 말은 '사랑을 밑바탕으로 한 섬김'을 뜻하고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봉사를 가리킨다. (2) 보다 특별한 의미로는 '어떤 의무의 수행'을 뜻하여 사도들이나 전도인들이나 마가 같은 조력자들이 맡은 책무를 수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3) 때로는 이 단어가 연보(捐補)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하였다(롬15:31; 고후 8:1ff.). 연보는 부수적인 활동이 아니라 기독교적 사랑에서 나오는 참된 활동이기 때문이다. 본절에서의 직임은 이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염두에 두고 언급된 것이다. 주는 같으며 - 직임은 개개인의 공명심으로 말미암아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主)'를 위한 것이다. 성도가 그 직임에 따라 각자에게 부여된 영역 속에서 봉사하는 것은 곧 주를 섬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직임의 열등성 또는 우월성을 따지고 그에 치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잊은 처사이다. =====12:6 역사는 여러 가지나...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 '역사'에 해당하는 헬라어'에네르게마톤'(* )은 '에네르게오'(* , '활동하게 하다')에서 온 말로 헬라 세계에서는 사람의 사역이나 세상에 감도는 우주적이거나 물리적인 힘을 가리켰고,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사역이나 사단적인 힘을 지칭하는데 주로 사용되었다(TDNT).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사역하시는 작용을 의미한다. 바울은 '역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삼위이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든 은사를 일관성 있게 주관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Mare).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성령의 은사는 성도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양하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상호 은사의 상이성을 인정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은사를 온전히 사용해야 할 것이다. =====12:7 바울은 8-10절에서 은사의 목록을 열거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여러 은사를 주신 것은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대원칙을 소개하고 있다.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 '하려 하심이라'의 헬라어 '프로스'(* )는 목적이나 의도를 가리키는 전치사로서 본구절은 은사의 목적을 설명하고 있다. 은사의 목적은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여기서 밝히고 있다. 성령의 나타남 - '성령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 프뉴마토스'(* )는 소유격으로서 본 구절에서는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쓰였는지 주격적 소유격으로 쓰였는지 논의의 여지가 있다. (1) 주격적 소유격의 용법으로 쓰였다면 성령께서 나타나신 것을 의미하고 (2) 목적격적 소유격의 용법으로 쓰였다면 사람이 성령의 내주(來週)하심을 드러낸다는 의미가 된다. (2)의 견해는 고후 4:2의 '진리를 나타냄'(*, 파네로세이 테스 알레데이아스)과 연관지어 설명된다(Meyer, Hofmann). 하지만 '성령'은 인격인 반면 '진리'는 비인격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Godet, Edwards). 따라서 (1)의 견해가 더욱 타당하다. 즉 성령은 인격자로서 은사를 주시고 성령께서 나타내시는 증거가 은사임을 보여준다. =====12:8 성령으로 말미암아...같은 성령을 따라 - 바울은 본절에서 성령과 연관지어 전치사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먼저 '말미암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는 '...에 의해'(by means of)라는 뜻으로 '지혜'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혜는 성령의 조명(照明)에 의한 것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는 '...의 기준에 따라'(according to the standard of)라는 뜻으로 '지식'과 관계되어 '지식'이 성령의 기준 내지 결정에 좌우되는 것임을 나타낸다. 지혜와 말씀을...지식의 말씀을 - 혹자는 '지혜'(* , 소피아)와 '지식'(*, 그노시스)이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만, 바울은 그들을 구별하고 있다. 본문에서 벵겔(Bengel)에 의하면 '지혜'(소피아)는 이론적인 성질을 내포하고 '지식'(그노시스)은 실제적인 성질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전자는 실제적인 적용을, 후자는 이론적인 지식을 의미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특히 '지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는 비밀을 설명하는데 쓰이는 용어로 이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고후 10: 5)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고후 4:6)이며,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빌 3 : 8)이다. 결국 이 은사들은 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결합되어 성령께서 가르치는 말씀으로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데 사용된다(고전 2 : 6-13; 엡1:8, 17; 골 2:3). 혹자는 '지혜'는 '사도'와 '선지자'를 만들고, '지식'은 '교사'를 만든다고 한다(Godet). 이 점을 수용 한다면, '지혜의 말씀'은 본서 28절에 나오는 직임들 가운데 첫째와 둘째 것인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직임과 관련되고, '지식의 말씀'은 그 다음의 직임인 '교사'의 직임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이 견해는 '지혜'와 '지식'을 '실제'와 '이론'으로 구분하여 생각하기보다는 동시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결론적으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첫번째와 두번째 은사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성령과 연관지어 말한 것은 '구원의 계획'(Heilsplan)이나 '구원의 내용'(Heilsgut)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로 이해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12:9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 앞 구절에서는 '성령'을 제한하는 전치사가 '디아'와 '카타'였는데 본절에서는 '엔'(* , '...안에', '...로')이 사용되었다. 전치사 '엔'은 성령께서 사역하시는 영역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수단으로서의 의미도 있어서 '디아'나 '카타'를 사용한 것보다 더 강력하게 성령께서 행동의 주체자임을 표현한다(롬9:1ff). 믿음은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롬 1 : 17 ;3 :22) 본절의 '믿음'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제한된 은사를 의미한다. 이는 바울이 8 : 2에서 일반적인 믿음과 특별한 은사로서의 믿음을 구분하고 있는 것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Godet). 본절에서의 '피스티스'(* , '믿음')는 영적인 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발휘하는 능력의 개념을 내포한다. 믿음의 능력은 예언하고(히 11 : 3), 기적을 행하는(마 21: 21; 고전 13:2)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일반적으로 '피스티스'는 모든 은사들의 기본이며, 이 '믿음'의 정도에 따라 은사는 보다 영향력있게 행사(行使)될 수 있다. 병고치는 은사 - '병 고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야마톤'(* )은 복수 명사로서 여러 종류의 질병이 치유의 대상이었음을 시사한다. '은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마타'(* ) 역시 복수 명사로 은사가 각기 다른 종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병 고치는 은사'는 단지 사람의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자 마음과 정신의 치료까지 포괄하는 말이다. =====12:10 능력 행함 - 이 은사는 '믿음'과 '병고치는 은사'와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연의 법칙을 초월한 기적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도록 하여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게 하는 것이다(C.P.Wagner). 이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보다 더 포괄적인 힘을 지닌다. 이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갑작스런 죽음(행 5:1ff.), 박수 엘루마를 소경으로 만든 일(행 13:11)등과 같이 마귀를 대적하며, 그 추종 세력을 축출하는데 사용되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 행함으로 나타나는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방편이 되며(Calvin) 동시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계시하는 수단이 된다. 예언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페테이아'(* )는 하나님의 계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은사로 하나님에 의해 수여된 통찰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단어는 '말을 토하여 내다', '미리 경고한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한다'는 의미를 가진 '프로페튜오'(* )와 같은 어군으로 미래에 일어나리라고 예측되는 상황과 현재 일어난 사건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예언'을 하나님께서 교회를 가르치기 위해서 베푸신 가장 큰 은사 중의 하나로 보았다. 예언은 교회를 신앙의 기초 위에 세우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을 설명해 준다. 신약 성경에서 '예언'이란 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계시가 완결된 현재에 있어 '예언'이란, 예언의 말씀인 성경을 바로 이해하여 가르치며 현재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을 가리킨다(계 1 : 3). 영들 분별함 - '영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톤'(* )은 악한 영들을 의미하며, '분별함'의 헬라어 '디아크리세이스'(* )는 '구별', '인식', '가려냄', '심판' 등의 의미를 지닌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가 많았으므로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그릇된 가르침을 분별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요일 4 : 1). 하지만 당시에는 기록된 말씀이 없었으므로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가 필요했다. 이 은사는 교회를 거짓선지자들의 미혹으로부터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發露)였다.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는 어떤 현상의 이면에 있는 정신적인 영향력을 간파하는 능력으로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다.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거짓말 하는 영'이 들어 있는 것을 알았고(행 5 : 1-10), 마술사 시몬의 마음이 '악독하고 불의한 영'에 얽매여 있는 것을 간파하였다(행 8:23). 이러한 은사를 활용한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하는 어떤 행위가 신적인 것인지 혹은 인간적인 것인지, 아니면 사단으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확실히 식별할 수 있다. 각종 방언 말함 - '각종'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네'(* )는 '혈통', '민족', '종류' 등을 의미하므로 방언의 종류가 여러 가지임을 가리키고 각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였음을 시사한다. 방언은 고린도 교인들이 가장 자랑으로 삼았던 은사 가운데 하나로 교린도 교회에서의 방언의 형태는 각기 다른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뿐만 아니라 어떤 종교적 흥분 상태에 이르렀을 때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하는 것까지도 포함하였다. 방언들 통역함 - '통역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르메네이아'(* )는 '번역', '해석'을 뜻하며, 이 단어는 신약에서 본절과 본서 14:26에만 나온다. 이 특별한 방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경우에 이 방언에서 유익을 얻고자 한다면 이 방언을 통역할 사람이 있도록 성령의 통역 은사를 구해야 할 것이다(14:13). 그런데 바울은 방언이 그 자체로는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으므로 자제할 것을 권면한다(14:28). 본절에서도 방언의 은사와 함께 통역함의 은사가 언급되는 것은, 은사가 교회에 유익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함을 전제한다. =====12:11 은사들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기원을 가진다. 6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언급한 데 반해서 여기서는 성령의 행하심을 언급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은사들을 발생(發生) 시키실 뿐만 아니라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의 은사들을 자기들의 관점에 비추어 비교하여 열등의식이나 우월감에 빠질 필요가 없다. =====12:12 몸은 하나인데...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 '몸'과 지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에 비유함으로써, 교회가 그리스도의 유기체(有機體)임을 이해시킨다. '같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다페르'(* ,'just as', '꼭...처럼')는 롬 12 : 4처럼 유사 비교를 이끌어 내고 있다. 본절에서 '그리스도'(* ,크리스토스)는 단지 교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De Wette) 단순히 교회의 머리로서의 그리스도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Chrysostom, Estius, Meyer).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를, 교회를 몸으로 하는 인격적 주체자로서 간주한다(Edwards). 몸은 단일체이면서도 많은 지체와 더불어 유기적 연관성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도 많은 지체들로 구성되어 완전성과 통일성을 이룬다. =====12:13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 그리스도 안에서 혈통적인 구별이나 신분의 구분에 상관없이 한 몸이 되는 것은 성령이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본절에서 바울은 '하나됨'에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하나되지 못함에 대한 권면일 수도 있다(엡 4:4-6절). 바울은 '성령'(* , 프뉴마)과 '세례'(* , 밥티스마)와 '몸'(* , 소마)을 하나의 관계로 본다. 즉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하나된 몸, 곧 하나된 영적 유기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성령으로 세례받는다'고 하는 것은 성령이 어떤 외적인 방법인 물로써 변화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적으로 작용하여 변화시키심을 의미한다.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 '또'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는 전술한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설명을 이끄는 접속사로 쓰였다. 즉 성령으로 세례받은 것을 '마시다'는 표현으로 보충한다. 우리의 주 예수께서도 성령을 받아 들이는 것을 가리켜 '생수를 마신다'라고 표현하신 바 있다(요 7:37-39). 이제 성령을 받아들임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모두 다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분열과 다툼 따위를 종식(終熄)시키고, 공동 사역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12: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 12절에서 사용했던 상징적인 표현을 다시 사용하여 교회가 갖는 독특한 성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바울은 인간의 몸을 비유로 영적인 몸인 교회를 설명하고 있다. 즉 교회는 하나의 몸으로 되어 있지만 많은 기능과 역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12절에서는 지체가 많다는 점에 역점을 두었다면, 본절은 '한' 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12:15,16 바울은 몸의 지체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손과 발을 대비시키고 눈과 귀를 대비시키고 있다. 즉 비중있고 가치있는 손과 눈에 비해 덜 눈에 띄고 덜 사랑스런 발과 귀가 불평하는 것을 예로 들어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잡으려 한다. '발'과 '손' 그리고 '귀'와 '눈' 등은 은사가 각기 다른 사람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교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은사를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여 우월 의식이나 열등의식을 가지고 상대방에 대해 비난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교회의 건덕상 무익한 것이다. 영향력이 적고 보잘것없는 은사라 할지라도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귀중하다. =====12: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냄새맡는 곳은 어디뇨 - 본절은 15, 16절에 대한 연속적인 설명으로 교회의 각 구성원의 은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전제한다. 바울은 가정법을 사용함으로써 이해를 용이하게 하고 있다. 온 몸은 듣는 곳이 없이 보기만 해서도 안되며, 냄새 맡는 곳이 없이 듣기만 해서도 안된다. 따라서 지체의 다양성은 곧 몸의 효용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지체간의 관계 또한 상호 대립과 불평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12:18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 '원하시는 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델레센'(* )과 '두셨으니'의 헬라어 '에데토'(* )는 부정 과거로서 하나님의 계획과 창조 행위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많은 지체들로 구성 되도록 지으셨다. 이렇듯 각 지체들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원하심에 근거하는 것으로 바울은 간주한다. 하나님의 원하심은 완전하므로 각 지체들이 존재하는 자리가 완벽한 것이고 각 지체에게 귀중한 역할이 있음을 본 구절은 보여준다. 따라서 누구든 불평하거나 시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도전하는 것이 된다. =====12:19 만일 다 한 지체 뿐이면 몸은 어디뇨 - 17절의 내용에 대한 재설명이요 부연이다. 모두들 자기가 좋게 여기는 지체만 된다고 가정하면 몸은 정상적인 기능을 갖추지 못한 불구가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성도 각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은사를 발전하여 전체 공동체 속에서 자신이 갖는 독특한 역할을 잘 수행하여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바로 설 것이다. =====12: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 바울은 12절에서 몸의 단일성에서 지체와 다양성으로 전개시켜 나가다가 본절에서는 다시 다양성에게 단일성으로 회귀(回歸)하고 있다. 역시 강조점은 '하나'인 몸에 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각 지체들의 은사는 다양할 수 있지만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통일된 교회로 존재한다. =====12:21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 많은 지체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각 지체는 그 우선 순위나 중요도가 덜하다고 하여 그 존재 가치마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몸에 붙은 모든 지체는 한 몸을 이루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고 한 지체라도 없으면 다른 지체들이 자신의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12:22 더 약하게 보이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스테네스테라'(* )는 '약한', '병든' 등을 의미하는 말로 본절에서는 중요도가 전혀 없다는 것으로 간주(看做)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바울은 원문상 강한 부정을 사용함으로써 모든 지체들이 각각의 고유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12:23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 '아름답지 못한 지체', 그리고 '부족한 지체'(24절)는 앞절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를 다른 표현으로 설명한 동일한 의미들이다. 사람들이 가치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지체 상호간에는 우열이나 차등이 있다고 간주될 수 있겠으나 하나님께서는 열등하다고 간주되는 지체들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상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적 세계의 통치 원리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신실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12:24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존귀를 더하사 - 바울은 18절에서 언급한 대로 몸의 형성(形成)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되었다고 반복한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속성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몸의 조화도 완벽하다. 따라서 몸과 그 몸에 붙은 모든 지체들은 함께 존귀함을 얻는다. =====12:25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 본절은 하나님의 주체적인 행동으로 구성된 몸의 본절은 하나님의 주체적인 행동으로 구성된 몸의 지체들이 상호 대립 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력 관계임을 보여준다. 교회의 통일성이란 이러한 상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성도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한 몸으로 세우신 의도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참된 지체가 될 수 있다. =====12:26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 지체들은 서로 공동체의식과 공동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각각 독럽된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체적인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다. 바울은 이처럼 하나의 유기체로 지음받은 사람의 몸이 갖고 있는 특성을 설명하여 교회가 가져야 할 공동체성을 상기시키고 있다.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 본절은 12-26절과 28절 이하의 교량적인 역할을 한다. 이제까지 몸과 지체에 대하여 의인법을 사용해온 바울은 이제 28절 이하에서 다른 교회의 구성원에 대한 본격적인 지칭, 곧 '너희'를 사용한다. '너희는'(* , 휘메이스)은 일반적으로 고린도 교인을 뜻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교회에서 은사와 직임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편 '그리스도의 몸'(* ,소마 크리스투)은 교회 전체를 가리키지만, '각 부분'(* , 에크 메루스)은 '부분적으로'(in part)라는 의미로 각각의 구성원이 몸에 속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몸의 각 지체는 중요한 부분이라 하여 자신이 전체라고 주장할 수 없고 사소한 부분이라고 하여 전체에서 제외될 수 없다.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 '몇'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스 멘'(*)은 바울이 자신의 의도(意圖)대로 몇몇 직임과 은사들을 구분하여 설명하고자 함을 보여준다. 바울은 사도로부터 방언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람과 은사만 언급하고 기타 다양하고 일반적인 은사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있다. 사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톨루스'(* )는 '아포스텔로'(*, '보내다')에서 온 말로 초대 교회 당시에 이 직분을 가진 사람은 매우 중요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 직분을 맡으라는 직접적인 명령을 받았으며(눅 6:13;롬 1:1), 이 직분에 대한 신약성경의 언급을 살펴보면 이 외에도 4가지 특징을 갖는다. (1)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갈 1 : 15), (2) 교회에서 구별하여 따로 세웠고(행 13:1), (3) 전체 교회가 그를 사도로 인정하고(갈 2:7), (4) 사도의 표로 사도직이 확고하게 증명되었다(고후 12:12). 선지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페타스'(* , '대변자', '대리자')는 사람들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대변자를 가리킨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0절 주석을 참조하라. 교사 - 이들은 사도나 목사가 아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효과적으로 가르쳐서 교인들을 온전히 세우는 사람들이다(고전 14:30;엡 3:5). 교사의 사역은 사도들이나 예언자들과는 달리 한 지역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에는 필사본이 매우 귀중해서 교인들 모두가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교회에서 교사의 위치가 상당히 중요했다(Morris). 서로 돕는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틸렘프세이스'(* )는 '손을 거들어서 도움'의 의미로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행하는 모든 종류의 도움을 가리킨다. 본절에서는 교회와 연관지어 교회 안에서 베풀어지는 도움을 시사한다(Grosheide). 이는 포괄적으로 돕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외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가리킨다. 바울은 이 은사를 말할 때 집사(執事)들의 직무를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된다(Chrysostom, Hodge). 다스리는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베르네세이스'(' )는 '선장'이라는 의미로(행 27:11; 계 18:17) 배가 항해하기에 휘험한 모래톱 해안을 통과할 수 있도록 조종해 주는 사람을 가리킨다. 본절에서는 권위를 가지고 회중을 인도하는 자, 곧 치리하는 사람들(rulers)을 가리킨다. 이들은 고대 교회에서는 '세니오레스 플레비스'(Seniores Plebis, '평민 장로')라고 불리었으며 (Hodge), '다스리는 것'은 교회의 감독들이나 장로들에게 필요한 은사로 간주되었다(딤전 5:17). =====12:29,30 다 사도겠느냐...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 바울의 이 수사적인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 몸에 여러 지체가 존재하는 것과 같이 교회에서도 모두가 동일한 은사와 동일한 직임을 가진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2) 모두 다 동일한 은사를 갖기를 원하는 마음을 억제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은사를 감당해야 한다. (3) 은사는 우열을 비교하거나 대립 관계에서가 아니라 협조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교만하거나 그렇지 못한 자들이 시기하고 불만을 갖는 것은 교회의 건덕상 무익하다.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 '더욱 큰 은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 카리스마타 타 메이조나'(* )는 '더욱 탁월한 은사'라는 의미로 이는 은사들이 서로 상대적임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모든 은사들이 교회에 필수적인 요소들이라고 언급한 것과(21절ff.) 약간의 모순이 있는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잘못된 표준을 가지고 '탁월한 것'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수정해 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말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특별히 방언 은사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반해 바울이 언급하고자 하는 은사는 교회 전체에 유익을 주기에 제일 효율적이고 광범위한 힘을 지닌 것이었다. 다시 말해 고린도 교회는 은사의 효율성 보다는 매력적이고 대중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으나 바울은 모든 은사보다 뛰어난 은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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