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고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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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8장     424아버지여나의맘을 [620여기에모인우리]  His Name Is Wonderful!!


===우상에게 바친 제물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사랑은 덕을 세움이다!!...가진 바 유익한 지식을 자기만을 위함이 아니라 공동체 형제자매를 함께 배려함, 곧 오직 아가페적 사랑안에서 신중하게 배려-고려함 통해 바르게 쓰이도록 하라!!... 공동체의 모든 형제자매가 그 어떤 걸림/거리낌이 되지 않도록 서로 잘 배우고 충분한 이해와 깨달음에 도달할 때까지 참아주고 소통함의 절제와 온유의 정신따라 행함이 필요하다!!)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우상의 실체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그리스도신앙인에게는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으며, 하나님이 먹도록 허락하신 것들은 그대로 그 무엇이든지 감사함으로 먹고 마시는 것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림이 된다...곧 그 먹고 마시는 어떤 것도 중립적이지만 그것이 어떠하다 여기는 그 사람에게만 바로 그러한 것임!)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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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rinthians 8  Amplified Bible

==Take Care with Your Liberty

1 Now about food sacrificed to idols, we know that we all have knowledge [concerning this]. Knowledge [alone] makes [people self-righteously] arrogant, but love [that unselfishly seeks the best for others] builds up and encourages others to grow [in wisdom]. 희생제물로서 우상앞에 놓여졌던 것이었으나 먹는 음식으로 제공받을 때, [성숙한 믿는 자로서]우리 모두는 다 각자 어찌 해야 할 지 알고 있습니다., 지식이란 그 자체만으로는 자기의 의, 곧 교만을 이룰 뿐이지만 (상대방의 최선/유익을 추구하는 이타적인. 아가페적) 사랑은 상대방을 (신령한 지혜안에) 자라가도록 세워주며 격려해 줌을 기억합시다.

2 If anyone imagines that he knows and understands anything [of divine matters, without love], he has not yet known as he ought to know. 그 누구라도 사랑은 없으면서 거룩한 그 어떤 것을 알며 이해하고 있다 여긴다면 그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만 하는 것을 아직은 다 알지는 못하고 있음입니다.

3 But if anyone loves God [with awe-filled reverence, obedience and gratitude], he is known by Him [as His very own and is greatly loved].  그렇지만 누군가가 경외감으로 가득한 존숭-순종-감사로써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은 진실로 당신의 본성과 성품을 알게 하여 주시며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십니다.

4 In this matter, then, of eating food offered to idols, we know that an idol is nothing in the world [it has no real existence], and that there is no God but one. 그러므로, 우상에게 드려졌던 음식 먹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바는 우상은(참된 실체가 없기에)아무것도 아니며 신도 아니며 그저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 For even if there are so-called gods, whether in heaven or on earth, as indeed there are many gods and many lords,  

실지로 많은 신들과 많은 주가 있듯이, 하늘이든 땅이든 소위 신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더라도, 

6 yet for us there is but one God, the Father, [a]who is the source of all things, and we exist for Him; and one Lord, Jesus Christ, by whom are all things [that have been created], and we [believers exist and have life and have been redeemed] through Him. 우리에게는 모든 것의 유일한 근원이시며 그분을 위해 우리를 존재케하신 한분 아버지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는 그분을 통해 존재하며 생명을 받고 구속받는 바 한분인 주예수그리스도만 계십니다.

7 However, not all [believers] have this knowledge. But some, being accustomed [throughout their lives] to [thinking of] the idol until now [as real and living], still eat food [b]as if it were sacrificed to an idol; and because their conscience is weak, it is defiled (guilty, ashamed). 그러나, 믿는 이들이라 해서 모두가 동일하게 이 지식을 [충분하리만치 풍성부요충만한 정도로는]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들 가운데 몇몇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도 내내 자기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가운데서 우상이 [하나님이 그러하시듯] 영적 실상이요 살아 있는 것이라 여기고 있어서, 접대 위해 차려놓은 바 먹을 그 음식을 보면 마치 우상(영적 존재)에게 바쳐졌었기에, (그들의 양심적 분별지성이 연약하기 때문에) 더럽고 죄스럽고 부끄러운, 꺼림칙한 것으로 여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또한 우상의 신전에 차려 놓은 그 만찬을 먹는 자를 그렇게 판단-정죄할 수도 있습니다).

8 Now food will not commend us to God nor bring us close to Him; we are no worse off if we do not eat, nor are we better if we do eat. 

음식이란 우리를 하나님께 추천하거나 가까이 데려가지도 못하며, 그것을 먹지 않는다고 더 나빠지거나 먹는다고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9 Only be careful that this liberty of yours [this power to choose] does not somehow become a stumbling block [that is, a temptation to sin] to the weak [in conscience]. 오직 조심해야할 것은 그 음식을 어찌할지에 대한 [성숙한 지식이 있는 자의] 선택권(자유)이 양심이 [아직은, 성령따르는 양심적 분별지성이]연약한 이들에게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 (우상이란 아무것도 아니요, 무능하여 죽어 있고 그리스도신앙을 가진 이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도 없으며, 믿는 이를 돌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상신전 같은 그런 장소에서 우상에게 드려졌던 그런 음식을 허용하시겠나 등... 그런 이해가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수 있으며 또는 주님께 여쭘 통해 결정하는 심각한 고려없이 무턱대고 그냥 따라 함으로써 스스로 정죄하고 자책할 수도 있음)

10 For if someone sees you, a person having [c]knowledge, [d]eating in an idol’s temple, then if he is weak, will he not be encouraged to eat things sacrificed to idols [and violate his own convictions]?  그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중에 누군가가 우상신전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을 아직 연약한 양심을 가진 이가 보고서는, 마찬가지로 아무런 영적 이해[지식]도 없이 그리고 주저함없이 따라 행하게 된다면 그가 자기의 확신한 바를 위반하도록 조장한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

11 For through your knowledge (spiritual maturity) this weak man is ruined [that is, he suffers in his spiritual life], the brother for whom Christ died. 그것은 영적 지식이 좀 더 낫고 좀 더 성숙한 바 여러분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그 형제를 (그 형제로 하여금 영성생활중에 고통받게 함으로써) 더럽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2 And when you sin against the brothers and sisters in this way and wound their weak conscience [by confusing them], you sin against Christ. 

그리고 [그들을 혼란시킴으로써] 이런 방식으로 형제자매들을 죄 짓게 하며 그들의 약한 양심을 손상시키는 것은 다름아닌 그리스도께 죄짓는 것입니다.

13 Therefore, if [my eating a certain] food causes my brother to stumble (sin), I will not eat [such] meat ever again, so that I will not cause my brother to stumble. 그러므로 나로서는, 내가 그 어떤 음식을 먹는 것으로 인해 내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차라리 다시는 고기를 먹지않아서 내 형제를 넘어지게 하지는 않으렵니다.

==Footnotes

1 Corinthians 8:6 Lit from whom are all things.

1 Corinthians 8:7 In Paul’s viewpoint, meat sold at the market place (even if it had been used in idol worship) was permissible food because a pagan sacrifice was meaningless, and the meat itself could not be contaminated by any such ritual (cf Mark 7:19). Some who had accepted Christ worried that they were violating their new faith if they ate any meat without knowing its origin first-hand.

1 Corinthians 8:10 I.e. the knowledge that no harm can come from eating the meat, since in reality the sacrifice is meaningless (see note v 7). 

1 Corinthians 8:10 Lit reclining, i.e. the position in which people d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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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8장 (개요)

바울은 이 장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질문한 우상에게 바친 것을 먹는 일에 대하여 말한다.

Ⅰ. 그들의 지식에 대한 자랑과 교만을 경계한다(1-5).

Ⅱ. 우상의 허망함과 하나님의 유일하심과 그리스도의 증보자임을 증거한다(4-6).

Ⅲ. 우상의 제물은 먹을 수 있으나 약한 그리스도인 형제를 고려하여 거치는 것이 되어 죄를 지어 멸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을 가르친다(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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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없는 지식에 대하여(고전 8:1-3)

바울은 여기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에 대하여 언급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고린도 교인의 얼마가 회답을 요청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방인들 사이에 있을 때에 그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 속에서 살 때에 흔히 일어났던 문제이다. 

이 문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서 이방인들 사이에서는 제물로 잔치를 베풀고 친구도 초대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주로 신전에서 행하였다. 제물이 바쳐지는 곳이다(10절). 

잔치가 끝날 때 음식이 남으면 그것을 친구에게 나누어 주거나 제사장이 가지게 된다. 제사장은 때때로 이것을 시장에 팔았다(10:25 참고). 

아데니우스(Athenaeus:그리스의 작가)가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이 잔치는 거룩하고 종교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바치었다. 

우상에게 바치지 않고 개인의 식탁에서 고기를 먹으면 신성모독으로 생각했다(에이돌로뒤타 에스디에인). 

이런 환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우상 숭배자들 가운데서 살 때에 그와 같은 친척과 친구를 많이 가지고 그들과 알고 이웃으로 유지했기 때문에 그들의 식탁에서 먹어야 할 경우가 많았다. 

우상에 바쳐진 제물이 그들 앞에 놓일 때  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신전의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에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어떤 고린도 교인들은 먹고 참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상은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4절).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더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10장). 

이 생각이 옳다는 가정 하에서 다른 사람의 침해가 되도록 그들의 자유를 남용하지 말 것을 바울은 주장한다. 

바울은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 그런 자유를 책망한다(10장). 지식에 대한 자랑을 하는 태도에 대해서 책하는 말로써 말을 시작한다.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1절). 이처럼 말한 것 같다. 

"그런 자유를 가진 너희만이 그런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다. 삼가하며 주의하는 우리들도 너희만큼 우상은 허망하며 아무 것도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너희들이  가지는 자유가 무모하며, 합법적인 자유도 사랑으로 사용되어야 하고 연약한 형제의 손해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1절) 다음을 주목하자.

1. 교만한 지식보다 사랑의 우월. 

최대의 유익을 가져오는 것을 선택함이 가장 좋다. 지식이나 그 자랑은 사람의 마음을 부풀게 하고 바람을 넣어서 올라가게 한다. 

이것은 우리들 자신에게 무익하고 이웃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과 따뜻한 형제에 대한 배려는 형제의 유익과 덕을 위한다.

2. 자랑하는 지식보다 더 한 무지는 없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한 거라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가장 지식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무지와 인간 지식의 불완전함을 안다. 자기 스스로 지식이 있는 사람으로 뽐내는 사람은 올바르게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직도 마땅히 알아야 할 바 진리를 아는 것은 다른 것이다. 많이 알아도 우리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아무 유익이 없는 앎이 있다. 무엇을 알고 그것에 대하여 뽐내는 사람은 그들의 지식을 선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이나 남이 유익을 얻지 못하는 지식이다". 바울은 말한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에게 알리어진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아 알 바를 알게 된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사랑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며 그의 복지를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자기 자신을 허망하게 높이는 것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을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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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과 그의 제물(고전 8:4-6)

이 절에서 바울은 우상의 허망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의 아무 것도 아니며"즉 이 세상에는 우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원어에 있어서 표현방법은 생략법이다. 일반적인 의미는 우상은 신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우상이 "거짓" "허무" "거짓의 허무"로 불리어진다. 우상은 상상의 신들이다. 상상의 존재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더럽힐 능력이 없다. 하나님의 종이나 자녀가 먹지 못하도록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피조물의 성질을 변화시킬 능력이 이방인들의 우상에는 없다.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이방인의 우상은 신이 아니며 신으로 존경을 받을 수가 없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하나님의 유일성은 기독교에 있어서 기본적인 원리이다. 

이방의 신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니요 신성이 없고 참 신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불리어 질 뿐이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들은 잘못 불리어졌다. 

이방인들은 많은 신들을 가지고 있다. 하늘에 있는 높은 신들과 땅에 있는 만든 낮은 신들이 있다. 

땅의 신들은 하늘의 신들과 인간들의 중보를 하며 이 세상의 일들을 주관한다고 생각한다. 성서에서는 이들이 "바알"이라고 불리어진다. 

이들은 높고 낮은 신들이 있다. 여러 계급의 신이 있다.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다. 그러나 유명무실의 신들이다. 불리어지나 사실은 없다. 그들의 신과 증는 상상이다. 왜냐하면

1.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낳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라고 바울은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 나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한 하나님만 계심을 안다. 존재의 근원이며 전 세상의 통치이며 모든 것이 그에게서 낳았고 그를 위한다. 한 부분을 통치하시는 한 하나님이 아니고 한 계급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지배하신다. 

우리와 모든 것이 그에게서 낳은 바 되었고 그를 위하여 존재한다. 

여기에서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것은 삼위일체의 다른 위력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하여 피조된 만물이 하나님에 대해 일컫는 말이다. 

이 세상의 창조는  성부 혼자하심이 아님을 성서의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다. 

아버지로서 하나님 Fons et fundawentum Trimitis - 즉 하나님의 제일격이며 다른 격의 근원이 되는 아버지 하나님은 유일신을 대표한다. 

이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아버지라고 성서에서 불리어진다. 왜냐하면 "우월성"(katav ejxochv)과 신의 근원성(fons et prineipum)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 한 분이 계신다. 아들도 하나님이나 다른 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들과 성령을 포함한다.

2. 우리에게는 한 주가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많은 중보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방인들의 신과 다르다. 모든 사물이 창조되고 존재하며 우리의 모든 희망과 행복의 근원인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신령한 말씀이며 아들인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주와 그리스도로 만드셨다(행 2:36).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인간성과 중보에서 대표적인 이름 즉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다. 모든 무릎이 꿇고 주라고 고백해야 하는 이름이다. 

예수는 유일의 중보자이며 주이며 하나님과 죄인의 다리이며 세상 일을 주관하며 하나님에게 인간을 중보시키신다. 

이방인들의 중보자는 상상의 존재들이다. 참 다운 하나님과  참다운 중보자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임을 주목하자.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요 17:3)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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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형제를 실족시키는 일(고전 8:7-13)

바울은 고린도 교인의 일부의 의견을 인정한 후에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서 우상의 신전에 들어가 제물을 먹을 수 있다는 추론을 옳지 않다고 말한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그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이 일이 그와 같은 지식이 없는 약한 형제에게 미치는 불행을 강조한다.

Ⅰ. 그 당시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지식과 신념이 없렀음을 알린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우상에 대한 습관으로 즉 혼돈된 우상에 대한 존경으로 먹는다. 비록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참다운 신앙을 고백하였지만 옛 누룩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전에 섬기던 우상에 대한 기묘한 경의를 가지고 있다. 다음을 주목하자. 

연약한 신자는 가장 중대하고 명백한 진리를 알지 못한다. 그것이 곧 한 분 하나님과 한 분 중보자에 대한 것이다. 

이방 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교인들 중에는 그들의 신앙과 어긋나는 우상에 대한 경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상에 바쳐진 제물을 먹도록 요청을 받으면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경멸의 태도로 제물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즉 그들은 범법하고 우상 숭배 중에서 먹고 우상은 신이라는 생각으로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복음은 사람이 벙어리 우상에게 살아계시는 하나님에게 돌아오도록 한다. 

그들은 우상이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여 약한 것이다. 우상 숭배의 마음으로 제물을 먹으면 죄를 짓고 자신을 더럽히게 된다. 

이것이 바울의 의미하는 바이다. 우상의 제물로써 자기를 더럽히는 사람들은 약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겠으나 모든 사람들이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우상의 제물을 불결하게 만들 수 없음을 아는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약한 형제가 그들의 양심을 더럽히지 않도록 행동을 주의하여야 함을 주목하자.

Ⅱ. 바울은 먹고 마시는 그 자체가 덕이나 죄가 아니며 더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섭섭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8절). 

고린도 교인들 중에 얼마는 신전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자랑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먹는 것 자체는 무관한 것이다. 무엇을 먹는가는 거의 문제가 아니 된다.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정결하게 하거나 불결하게 하지 않는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도 다른 음식과 같이 양식이 될 수 있다. 먹거나 먹지 않는 것이 덕이 아니다. 음식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르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임을 주목하자. 이런 음식을 먹고 저런 음식을 삼가는 인간을 하나님 앞에 추천할 수 없다.

Ⅲ.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유의 남용을 경고한다. 

그들이 이 문제를 오해하고 우상의  신전에서 제물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 10장 20절에서 분명한 것 같다. 

비록 그렇게 먹을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용에 주의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형제에게 "거치는 것이 될 수 있다"(9절). 

그것이 우상 숭배로 되고 기독교에서 떠나 이방 종교로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떠한 사람이 더 좋은 지식을 가진 네가 우상의 신전에서 제물을 먹는 것을 본다면 그가 보통 음식이 아니고 제물로 먹으므로 우상 죄를 짓지 않겠는가. 어떠한 자유와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와 같이 걸림의 기회를 약한 형제에게 주면 안 된다". 바울은 두 가지 면으로 이 주의를 한다.

1.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었어도 약한 형제에게 위험을 주기 때문이다. 

형제의 걸림이 되고 그들의 영혼을 위험하게 하는 것은 합법적 것이라도 희생해야 한다(11절).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였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다음을 주목하자. 

그리스도께서 귀한 피로써 구한 형제는 귀하고 중하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멸망하지 않도록 하며 동정을 가졌다면 우리도 그에게 동정을 가지고 그를 위하여 모든 자유를 포기하고 걸림이 되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자기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보다 형제 멸망을 초래하는 사람은 예수의 정신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진 사람은 형제의 영적인 영원한 복지를 위하여 그를 슬프게 하거나 넘어지게 하는 것을 피할 것이다.

2. 형제에게 행한 상처는 그리스도에게 행한 상처가 된다. 

"이 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12절). 

형제에게 특히 약한 형제에게 행하는 상처가  그리스도에게 행한 상처가 된다는 것을 주목하자. 그들의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예수를 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그의 양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사 40:11)셨다. 

강한 그리스도인은 약한 형제를 괴롭히거나 넘어뜨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동정을 베푼  그 형제에게 동정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를 위하여 고통을 당한 그리스도에게 죄를 지을 것인가, 목숨을 버려 구원하려고 하는 그 형제를 우리가 방해할 것인가.

Ⅳ. 바울은 자기의 예를 제시한다(13절).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그가 결코 먹지 않으리라 말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자기를 파멸하여 무서운 죄를 범하는 것이다. 형제의 죄와 넘어짐을 막기 위하여 자살은 할 수 없다. 

선을 이루기 위하여 그런 죄를 범할 수가 없다. 먹어야 하지만 고기는 먹지 않아도 된다. 

형제에게 죄를 짓게 하는 것보다 일생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된다. 형제에게 죄를 짓게 하는 것보다 일생 고기를 먹지 않기를 원했다. 

바울은 형제의 영혼을 그렇게나 사랑하였기 때문에 자기의 자유를 포기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금하고 형제의 죄와 걸림을 피하기를 원했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는 그 자체가 무죄하더라도 형제에게 걸림이 되는 일은 주의하자. 

자유는 가치있는 것이다. 그러나 형제의 연약함 때문에 그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종종 있다. 

우리는 형제의 영혼의 파멸을 초래하면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를 위하여 우리의 구속자가 죽으셨다. 내가  하는 일을 하도록 하며 죄를 짓게 하면 아무리 합법적일 일이라도 걸림돌이 된다. 

남의 죄를 우리가 주의해야 한다면 우리 자신의 죄는 얼마나 주의 해야 하겠는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험하게 해서 안 된다면 우리 자신의 영혼을 파멸하지 않도록 얼마나 관심을 가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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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고전8:1-13)
오늘 말씀 1절에 보시면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하여” 라는 말입니다.
당시에 시장에서 나오는 고기들 중에서 신전에 제물로 바쳤다가 나온 고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에 대해서 고린도교회 안에서 두 가지 대립되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견해입니다. 또 하나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자들 대해서는 지식이 있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믿음이 강한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 자신은 지식이 있고,믿음이 강한 자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확실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것이 4-6절까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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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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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나무나 돌이나 금으로 우상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이 땅에서 참 신은 오직 하나님한분밖에 없으며, 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얼마든지 먹어도 된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가운데서 살펴 보자면 모두가 이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7절에 보시면 고린도교회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이 지식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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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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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린도교회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절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우상숭배 하는데 바쳐졌던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숭배에 동참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무엇이 정답이겠습니까?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는 것이 정답입니까? 아니면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이기에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답입니까? 
--이 문제는 사실 정답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말씀했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해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정답이 없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도 있고, 또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는 “아디아포라” 라고 해서 “규정할 수 없는 진리”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교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아디라포라의 문제입니다. 즉 이럴 수도 있고, 또 저럴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십계명에 나오는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은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명확하게 말씀하지 않은 말씀은 이럴 수도 있고, 또 저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의 원리입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상의 제물을 먹든지, 아니면 먹지 않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탐욕을 위하여 먹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한다는 자도 만일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고집 때문에 절대 먹지 말아야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반대로 나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나의 개인적인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우상의 제물은 먹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 도 있는 문제 있어서 그것이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능합니다.
둘째는, 만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서로의 의견들에 대해서 절대 비판하지 말라는 원리입니다.(대개 상보적인 경우가 많습니다...그 순서를 따지지는 주께 듣도록 합시다..)
--즉, 나의 주장만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을 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절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가 당시 로마교회에도 있었습니다.
로마교회에서도 구약성경에서 금지하는 돼지고기와 같은 음식을 먹지 말아야할 것인가? 아니면 먹어야할 것인가를 두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믿음이 강한 자들은 구약의 율법은 완성되었기에 돼지고기는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 주장했고, 반대로 믿음이 약한 자들은 구약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고기는 절대 먹지 말아야하고, 체소만 먹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돼지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믿음이 강한 자들은 자신들만 옳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자라고 하면서 믿음이 약하여 채소만 먹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비난하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롬14:1. 믿음이 연약한 자(돼지고기를 먹지 말아야한다고 하는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돼지고기)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느니라 3. (돼지고기를) 먹는 자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자는 (돼지고기를)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여기서 “업신여긴다”는 말은 그 사람을 나의 눈 아래로 본다는 말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깔본다는 말입니다. 
또 여기서 비판한다는 말은 마치 그 사람이 지옥에 갈 사람처럼 정죄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서로의 다른 견해에 대해서 업신여거나 비판하지 말하고 하고 있습니까?
나와 서로 의견이 다른 자도 하나님께서 받으신 자이고, 예수님께서 받으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용납하신 형제들에 대해서 나의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업신여거나 비판한다면—그것은 그를 받으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그를 받으신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해서 나의 눈 아래로 보고 깔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또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 비판하고 비난하면 그것도 얼마나 큰 죄입니까? 우리가 이일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서 나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업신여기거나 지옥 갈 자처럼 비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하나님을 비판하는 자와 같습니다.
//또 오늘 본문 고린도 전서 8장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1. 그러면 네 지식(우상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우상제물을 먹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나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그 형제도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입니다. 그래서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그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비난한다면—그를 받으신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을 비판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또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그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도 있고, 또 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은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생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모두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서로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원리입니다. 또 두 번째는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서로의 다른 의견들에 대해서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3)마지막 세 번째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적 유익과 사랑의 원리입니다.
고전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라
//여기서 보면 모든 것이 가하나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라면 우상제물을 먹는 것이나 또 먹지 않은 모든 것이 다 옳은 것이고,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옳고, 저 것도 옳지만 그것이 모두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또 모든 것이 다 옳고 가능하지만, 그 모든 것이 공동체에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 세 번째 원리는 나의 유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의 원리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는 주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고린도교회에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상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제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하여, 이제 죽을 때까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우상에게 바쳐진 제물-고기)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여러분 이렇게 내가 아무리 옳다고 주장을 하지만, 나의 유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하여 나의 생각을 포기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3장 5절에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라고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복습해 보십시다.
첫째는 무슨 원리를 생각해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의 원리입니다.
둘째는, 서로 비판하지 말아야하는 원리입니다.
커텐을 달아야 할지에 대해서, 달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렇지 않은 분들을 비판하지 마시고, 또 커텐을 달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그렇지 않은 분들을 비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의 주장도 맞고, 당신의 주장도 맞습니다”라고 서로 해보십시다.
마지막 세 번째 제일 중요한 원리가 무엇입니까? 공동체적 유익과 사랑의 원리입니다.
커텐을 다느냐 마느냐의 판단 기준은 결코 나의 유익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해서 필요하다면 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해서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달지 않으면 됩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서로 위해주는 상호 사랑따라 생각하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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