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상19장 ---엘리야... 갈멜산에서부터 이스르엘 입구까지 뛰어보니..어떠니!!..승리감에 도취됨은 잠깐이지만 고통스런 삶의 진지함은 길게만 느껴진단다..(생색내기는 사탄 충만한 자아가 주장하는바, 자기자랑일뿐이요, 자기연민이니, 나의 신실-진실한 종, 나와 하나인 네게 합당치 않다) 너는 오직 겸손-온유-신실함의 참 믿음으로 나 여호와 안에 머물러, 사랑과 순종의 사람, Q경외하는 네가 맡은 역할/사명과 여호와 누림만 충실히 하도록 하자, 그것으로 충분하단다!!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해 계획한 바를 다 이루기까지는 결코 쉬지않을것이고 친히 임마누엘로서 함께 하며 다 이루리니, 내가 명하는 그대로만 해다오!!...상황이 어떻든지, 어찌 전개되어 가든지에 무관하게!! 궁극적으로 그것은 네게 유익하기에!! 근원적 지혜의 나 여호와가 (대적으로하여금 그리하도록) 허락한것임을 잊지말고 참고 견뎌 버티기를 배우되 모든 순간마다 내 안에-내 품에 안겨 내 심장의 고동소리 들으며, 그 임재 안에 친밀한 교통의 대화로!! 거하도록 하거라 ......***진리형상의 생명 = 메시아 -->진리형상의 실제 = 예수...실제이신 예수의 내용 = 여호와 Q : 예수 바라보면 TUQ전부를 받는것임.... ***.사밧--샤파트 : 예수가 비춰진 만큼 실제가 되어 조성됨과 동시에 합당치않은것 처리받게 됨 의미 ---이 땅의 믿는이들외에는, 불신세상 자체가 (육이 가득차 있는바) 우상-사탄마귀 체계따라 [눈이 어두워져 있어서]영이 죽은 자들로서 살고 있음을 참되게 깨닫고 있는가? ---제아무리 탁월한 영성가라도!! 말씀의 나침반!!, 이것을 놓치면 길을 잃는법!! ..[406.곤한내영혼] [300.내맘이낙심되며], [384.나의갈길다가도록]..[425.주님의뜻을이루소서][430.주와같이길가는것] --전능하신주나의하나님은, 지금은엘리야때처럼, 주님의영광나타나셨네 창조의아버지(주영광여기임하네) 내눈주의영광을보네(주의영광이곳에가득해)...우리는주의움직이는교회
...[[호렙에로의 도피 여정]]((이스르엘에는, 상아로 만든 아합왕의 별궁이 있었고, 이세벨도 거기 머무르고 있었다....나봇의 포도원도 거기 있었다, 그 남서쪽에 므깃도가 있다)) 아마, 엘리야는 이스르엘에 잠시 있는 동안에 이세벨의 저주 섞인 경고를 접했던 것 같고, 엘리야의 기대와는 완전히 상반되었던 듯 하다.. [극도의 낙망감, 우울, 공포, 공황감에 사로잡혀 압도되어 자기연민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나머지] Q께 여쭙지 않고, 브엘세바까지 160km 직행(다급하게 천리행군처럼 도피했다면 4-5일 경과?), 이어서 호렙산까지 350km의 도피 여정(천리행군으로는 보통10일 길이지만...40주40야 걸리고 있음)을 택하고 있다(아마도 이전에 미리 호렙산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리라), 그 도중에 브엘세바에 사환을 두고서, 광야로 진입하여 하룻길 간 다음, 기진하여 로뎀나무 아래 앉아 누워 *(아무 짝에도 쓸모 없으니...)죽여 주옵소서* 부르짖고 기진하여 쓰러져 누워 자는 중에, (이것은 옛 사람의 죽음 경험이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는 자는 복 되도다.... 이제는 주님 패러다임으로 사는 새 사람, Q 아들의 패러다임으로 살기를 선택하고 주님 이끄심 따라 발걸음 옮기도록 하라.... 옐리야가 경험한 바, 그분은 이미 곁에 계셔서 한번도 그를 떠난 적 없으신, 모든 필요 돌보시며, 위로하며 격려하는 여호와의 천사로 나타나고 있었다), JC의 어루만져 깨우심, 떡과 물 먹이시고 더불어 단잠 공급하심-눕워 쉼 경험 통해 기운 얻고 마침내 호렙에 이르러, (시내산 꼭대기에서 마지막40일 금식 중보기도중에 모세가 만난바 그분의 영광, 성분과 요소로 주입 받아, 거듭남 경험 안에서 참되게 그분 알고 사랑하며 동행하며 마음 알아드려 동행하기를 배웠던, 아가페이자 필레오, 다바르이자 다바크이신 주님과 그분의 사랑을 새로이 (=거듭남+성장성숙) 경험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교통 통해 갈 길, 곧 사명에 대한 새로운 각성 받고서 새로이 출발하여 맡겨진 바 나머지 과업 완수하고 있다..과업 완수 후 회리 바람에 들리워 승천하는데, 이것은 그의 몸이 구속, 곧 부활체로의 변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포인트!!, 거듭남은 JC의 모든 것으로, 오직 영광의 Q 현존과 임재로 적셔짐-씻겨짐 받으며, 점유 충만 안에서 변호 받음(아가페사랑과 빛에 달궆 받아 저절로 핓나며 빛 빛추며 그분의 임재 영광 반사 반영하며, 동시에 내주하시는 성령 따라 걷기 통해 날마다 네오스 카이노스 아나네오오 쉼모르포스를 살되, 예비해 두신 생명과 경건, 사랑 안에 하나 됨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 이룬 Q의 아들들인 지체로 이루는, 한 새 사람, 그리스도의 몸 교회의 비전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때 그 어떤 영적 전쟁조차도 이미 승리한 것을 알게 될 것, 아멘 ---------- ......[[로뎀나무(rothem..white broom tree).]]..성지와 아라비아의 거친 광야에서 자라는 관목인 래탐레타마(white broom)로 본다. 래탐레타마는 성지 전체에 걸쳐 있는 산지, 바위가 많은 곳, 협곡, 모래가 있는 곳, 특히 사해 근처, 길르앗, 갈멜 산, 시리아 광야, 페니키아 해안에서 자란다. .......왕상 19:4에 나오는, 이세벨에게서 도망치는 엘리야의 이야기에 나오는 로뎀나무에 대한 언급은, ‘광야’ 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황폐한 모습을 자세히 보여 준다. 시 120:4의 로템(rothem)에 대한 언급으로 학자들은 그 나무가 확실히 로뎀나무(broom)라는 결론을 내렸다. 로뎀나무의 줄기와 잎에 있는 기름이 불을 만들기 때문이다. . (건조시킨 잎과 줄기, 그 뿌리는 오래 타기때문에 [서민들이 빵 굽기 위해] 불쏘시개용으로 쓰임) ......관목보다 더 큰 덤불인 로뎀나무는 2미터 높이까지 자랄 수 있다. 로뎀나무에는 작은 가지가 많고 잎이 적으며 흰 꽃송이들이 산비탈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준다. .....지친 사람에게 쉼을 제공하는 그늘, 쉼과 안식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로뎀나무가 '보잘것 없음'과 '비참함'을 상징한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로뎀'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시궁창, 진흙탕'을 의미한다. 로뎀나무 아래서 햇빛을 피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비참한 신세를 상징하는 것었다. .....광야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햇빛을 저주를, 그늘은 은혜를 상징한다. 로뎀나무를 빗자루같이 뻗어 있어서 그늘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로뎀나무 그늘에서나마 쉬려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모습은 광야에서 가장 비참한 모습이었다.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라를 대신해 아브라함과 동침해서 아이를 가졌다. 사라가 아들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브라함을 닦달해서 얻은 결과였다. 하갈은 임신하자 스스로 안방마님 행세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라에게 약속의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쫓겨났다. 브엘세바에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는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광야에서 물이 떨어져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갈은 네게브 사막을 방황하다가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아래에 두고 통곡했다.(창21:14-16). 여기서 떨기나무로 번역된 나무는 로뎀나무를 말한다. 광야에서 오갈 데 없이 방황하는 비참한 상화에서 반드시 배경으로 등장하는 나무가 로뎀나무이기 때문이다. (대싸리 뿌리로 연명한 욥)......하나님을 잘 섬기고 많은 축복을 누렸던 욥은 사탄의 질시로 가족과 모든 부귀영화를 빼앗겼다. 욥은 자신의 비참한 신세를 한탄하면서 슬픈 노래를 불렀다. "떨기나무 가운데서 짠 나무도 꺾으며 대싸리 뿌리로 식물을 삼느니라"(욥30:4). 여기서 짠 나물로 번역된 나무는 광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금나무를 말한다. 소금나무는 이름처럼 잎사귀가 무척 짜다. 광야에서 사는 동물들은 이 나무의 잎사귀를 먹고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소금 성분을 공급 받는다. 그러나 소금 나무는 식용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대싸리 뿌리는 생긴 모양이 빗자루와 같은 로뎀나무의 별칭이다. 대싸리 뿌리 역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우리 부모 세대들은 보릿고개를 넘기려고 나무껍질과 풀뿌리를 캐서 먹었다지만, 대싸리 뿌리와 짠 나물은 그런 상황에서도 먹을 수 없는 식물인 것이다. 욥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 수 있는 구절이다. 로뎀나무는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상황을 상징한다. 로뎀나무는 시궁창이란 뜻이다. (로뎀나무 숯불).....광야의 날씨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 극심한 일교차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낮에는 태양 때문에 숨쉬기조차 어렵고 밤에는 반대로 극심한 추위로 고생해야 하는 곳이 바로 광야다. 광야의 날씨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40년 동안 광야의 지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광야에 텐트를 치고 양과 염소를 치며 원시적으로 살아가는 베두인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어떻게 광야의 밤을 견뎌 내는 것일까? 수천 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 온 베두인들이 광야의 추운 밤을 보내는 노하우는 바로 로뎀나무 숯불에 있다. 로뎀나무 숯불 위에 5~10센티 정도의 흙을 얹으면 베두인식 맥반석 찜질 침대가 된다. 그 위에 잠을 자면 따뜻한 광야의 밤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로뎀나무 숯불의 특징은 오래 타는 것이다. 겉으로 볼 때 다 탄 것 같아도 부지깽이로 속을 뒤집어 보면 여전히 그 밑에서 불씨가 타고 있다. 탈무드에는 로뎀나무 숯불에 관한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초막절에 로뎀나무 숯불이 타는 것을 보고 간 사람이 유월절에 돌아왔는데도 그 숯불은 여전히 타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그만큼 로뎀나무 숯불이 오래 탄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로뎀나무 숯불은 3일 정도 탄다고 하니 숯불의 왕자라고 할 만하다. 로뎀나무는 한국에 없는 나무이므로 한글성경에는 로뎀나무, 노가주나무, 싸리, 대싸리, 말라깽이 등으로 매우 혼란스럽게 번역되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섬기던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브엘세바 광야로 도망하여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며, 나무아래 누워 자다가 천사가 준 음식과 물을 마시고 힘을 내었다. 욥이 시험에 빠졌을 때에도 그를 조롱하던 사람 중에는 로뎀나무(대싸리 욥 30:4) 뿌리를 캐먹던 가난한 사람도 있었다. 로뎀나무의 뿌리는 가늘고 단단하여 음식이 될 수 없고, 맛도 쓰지만 가난한 유목민들은 그런 것까지 먹었던 것 같다. 로뎀나무는 네게브, 가이사랴 등의 모래밭에서 볼 수 있는데, 기후풍토가 좋은 아얄론 골짜기에서는 키도 크고 가지도 풍성한 로뎀나무를 볼 수 있다. 싸리나무처럼 땅에서부터 가느다란 가지들이 자라기 때문에 그늘이 빈약하지만 사막에서는 그나마 고마운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이다. 콩과의 관목으로 높이 2~3m이내이다. 잎은 바늘 모양으로 적으며, 꽃은 백색, 이른 봄에 핀다. 긴 타원형의 열매를 맺는다. 팔레스타인 등지의 사막의 구릉이나 암석지대, 특히 사해 부근에서 번성하고 그늘을 내며 크게 자란다. 구약성서에도 언급되는 식물로, 《열왕기상》19장 4~5절에 따르면 호렙산(山)으로 가는 도중 엘리야가 이 나무 아래서 쉬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로뎀나무 뿌리는 보통 숯불용으로 사용되었으며, 기근 때가 닥치면 구황작물로서 먹기도 했었다. (숯불, 횃불용도로) 아라비아에서는 오늘날에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카이로에서는 다른 어느 것보다 비싸게 팔린다. ---- @@떨기나무 hn...세네(명남)는 어원이 불분명하며, '떨기나무'를 의미한다. 이것은 아라비아어로 '산트 sant'라고 하는 이집트 아카시아로 알려져 있으며, 애굽 및 시내반도에 생육하는 가시 있는 낙엽 교목이라고 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회 나온다. 이 나무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위대한 사역을 위한 그의 선택한 종 모세를 부르기 위해 그 가운데 나타난 식물이다(출 3:2, 출 3:3, 출 3:4). 신 33:16에서 보면 모세는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는 자"의 계시를 결코 잊지 아니하였다.(참조: BDB; TWOT). ---- [[에셀나무...일명 소금 삼나무]]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창 21:33)” “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고 칠일을 금식하였더라(삼상 31:13)” 이같이 성경에 나오는 에셀나무를 보면 이스라엘 건조한 지역에 흔히 보이는 나무이거나 식수하는 나무였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에셀나무는 타마리스크(Tamarix)라는 나무인데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건조한 지역이 원산지인 나무로 세계적으로 50~60종이 있다. 이 Tamarix라는 이름은 고대 Tamaris 강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한다. ... 보통 18-20미터까지 자라며, 그 자란 높이에 비례적으로 좌우 옆으로 더 퍼지며 뿌리는 깊이-너비가 20-30미터까지 이르게 되며, 가장 큰 특징은 밤에 뿌리에서 흡수한 물이 아침 해가 떠오르면 영롱한 이슬이 되어서 반짝이며 햇볕 강한 한낮이 되면 물기가 증발하면서 주위보다 무려 10도까지도 내려가기 때문에 더위에 지친 나그네들에게는 훌륭한 쉼터가 되어준다. ... 에셀나무는 높이가 18-20m까지 자라는 상록관목 또는 교목으로서 나무 한그루에 잎이 많기에 빽빽한 덤불 모양을 이루어 그림자를 만든다. 이 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소금기가 많은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점이다. 에셀나무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가지고 있는데, 어린 가지들은 부드럽고 검붉은 갈색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껍질은 푸르스름한 자주색으로 변하고 깊은 고랑이 파인다. 얇은 가지에는 엽록소가 있어서 광합성 작용을 하며, 기공은 가지의 흠내에 숨겨져 있어서 수분 손실 과다를 방지한다. 잎은 서로 어긋나며 회녹색으로 향나무 잎처럼 바늘 같은 모양이고, 길이가 1~2mm이다. 잎이 때로는 하얀 소금 결정물로 덮여있는데,. 식물 내 조직에서 과도한 해로운 소금을 제거하기 위해 잎의 특수 땀샘에서 소금을 배설하기 때문에 소금기가 있는 땅에서도 잘 자라는 특징이 있다. ... 꽃은 분홍색 또는 흰색으로 3월에서 9월까지 가지 끝에서 작은 꽃이 자잘하게 모여 긴 이삭처럼 핀다. 꽃에는 5개의 작은 꽃받침과 5개의 흰 꽃잎이 있다. 암술머리에는 5개의 수술이 있다. 일부 종은 겨울 동안에도 꽃을 피우는 경향이 있어, 사람들이 보면 일년내내 꽃을 피우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 열매는 5mm 길이의 붉은 뾰족한 원뿔 모양으로, 바람에 의해 운반되는데, 수많은 작은 씨앗이 그 안에 들어있다. 씨앗은 젖은 토양에 떨어지면 쉽게 발아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몇 주 안에 생존력을 잃는다. 이스라엘 남부 해안지역과 네겝 황야에서 잘 자라며, 세계적으로는 아라비아사막과 북아프리카에까지 자란다. 혹한 조건에서도 상관없이 잘 자라며 시원한 그늘까지 제공해 주기때문에 과거 유대평원과 북부네겝의 주거지에 보면 이 나무의 흔적들이 보인다. 에셀나무는 건조한 지역에 자라는 나무답게 깊은 땅속에 있는 지하수를 흡수할 수 있는 긴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깊은 지하수에서 소금을 흡수하여 잎에 축적하여 표면 토양에 침전시켜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게 해로운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생존 경쟁을 해나가는듯하며,. 비가 많이 올 때 소금을 씻겨나가게 된다.
[믿는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여 사람들을 주께로 돌이키게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진실로, Q의 뜻을 따라 , 즉 <사람들을 얻는 것>이거나 사람들을 <천당 가게 하려 함>을 넘어서서, 세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의 건축을 위해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창출-산출해 냄에 있는가] ....만약 우리가 <진실로> 이렇게 하고 있다면, Q의 영원한 경륜 이룸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오늘, (이 땅을 걷되, 하늘에 속한 이기는 자로서) 우리 영은 날마다 하늘 시온에 이르고 시온을 갖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만약 그렇게 하지 않다면 Q은 그분의 경륜을 이루고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길을 얻지 못하실 것이다.. ....신약의 마지막 책은 이기는 자를 부르고 있음을 보게 되는데, (계2:7, 11, 17, 26, 3:5, 12, 21)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몸의 구속 입어 영광 가운데 산 채로 들림 받든지, 아니면 한 번 죽고 부활하여 부활체로 들림 받던지에 무관하게> 이 이기는 자들이야말로 하늘 시온이 되며(14:1), 이 시온은 새 예루살렘이 되기 위한 표준이 될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땅에) 새 예루살렘이 도래할 때에야 시온은 사라질 것인데, 이는 새 예루살렘 전체가 모든 이기는 믿는이들과 함께 새 땅의 (영원한) 시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 생활은 시온에 이를 그 때까지 계속 전진해 나아가야 한다. ....<회복 안에서의 교회 생활을 진지하게 실행함>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그 중심과 실제로 하는 Q의 경륜과 모든 이상을 보기 위해 힘써 수고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
===호렙 산의 엘리야 ....이스르엘에서 브엘세바까지 160km(수색대대의 천리행군 훈련시 하루 40km씩 행군하게 됨 :: 이 속도로는 4일 거리..아마도!!)...브엘세바광야에서 호렙산까지는 350km : 여기에 소요된 시간은 40주 사십야..(모세의 시내산 꼭대기의 40일간 금식-회개/중보의 기간과 매치시키고 있음을 곰곰이 묵상해보자!!) .....전신전력으로, 장기간 쉼없이, 주 섬김 사역에 올인했으나, 홀로 남았다는 고립감/무력감/절망감 엄습하여, 죽고싶은 마음 드는 그대에게!!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말라크=사자, 사신,메신저)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당장 죽이면 될터인데, 경고하고 있다 = 목적은*두려움에 스스로 사로잡혀있기에 함부로 할수없음 느낌, 또는 *협박하여 도망가게하려고??!..혼란-좌절-자포자기에 빠져들어 심정적 마비의 지옥 상태 지속--오도가도못하게 하려함이요, 그후에 손쓰려함이다...그토록 찾던이가 이제!! 스스로 나타났고, 아합도 그의 살해를 용인한 상태) *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그런데, 이런 말까지 하고는, 전혀 한마디도 안한듯이 후속행동 기미조차 없었다!! .......***바알우상 숭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극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개인의 개성-다양성-자율성만을 중시하고 내세우면서(타인의 입장-환경-존재 가치는 완전히 무시한채 끼리끼리 어울려 특권계층 그룹 만들어 고양하여 즐기며!! ).....찬조주 Q 없기에 절대이념이란 없다 하며, 기존의 모든 공동체의 지속적 유익 위한 공공선과 질서유지 개념에서조차 벗어나고자 하는바, 탈이념 중시하는 상대적 정치 이론, 그 궁극적 결론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가치, 곧 사탄마귀의 가치이니....이것이 [상호 인간 존중 넘어선, 특정 개인에 대해 초월적 지위 및 특권 허용/남용이라는] 해롭게 하며, 구역질나는, 사망의, 썩고 부패/타락한, 그 천부적 생명 가지 존중 바탕 위에 근본적 상호 공동선 이룸의 균형적 인간 가치 존중/보호 개념과는 전혀 무관한 천부적 생명 가치 무시--잔혹한 폭력적 경멸/잔멸로 집약됨 ===그 바탕에는 절대적 무신론이 버티고 있음...((맹점))..그 자신은 Q 계시지 않음은 증명하지도 못하면서 교묘히, Q 계신다는 것을 증명해보라 요구하고 있는바(절대적 무신론자 도킨스) 이는 분명히 억지임(--불가지론자 맥그라스의 반론적 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Q 존재 증명 제시못한다면 Q은 없음, 곧 질서-균형-통제의 기준이 되는 Q은 존재하지도 않고 결국 절대 이념은 없고!! 다만 ["내 인생은 내것"이라며!!, 개인 각자가 좋은대로 하면 그뿐이라는!! --일찌기 도스토예프스키가 예언한바 그대로!! - "내가 바로 신이다" = (창조시대부터!!) "내가 Q과 비기리라!!" 말해왔던 사탄, 그에게 기만당한바 사탄/마귀적 논리 그대로 답습/대표하며 제멋대로 권력 오남용하고 휘둘러 생명 잔멸/공동체 공멸 결정 서슴지 않음] 괴상하고도 빗나간!! 유아독존적 인권존중을 전면에 내세우는 바!!....타인의 피해와 공공 유익은 도외시한채] 개인의 개성-다양성-자율성만을 중시하며!! 절대이념이란 없다 하며, 기존의 모든 공동체의 지속적 유익 위한 공공선과 질서유지에 근간을 두는 사회계약적 개념조차 벗어나고자 하는바, 탈이념 중시하는 상대적 정치 이론, 이것이 [유아독존적 개인 인권 존중이란] 인권 개념으로 집약됨 ......포스트모더니즘의 궁극적 결과는 결국 "나만-우리만 좋으면 돼!!....나혼자 잘 먹고 잘살고 자기 좋을대로 살다가, 자살로 끝내버릴거야"라는 극단적 이기주의적 발상인바, 결국 동성애-이혼/불신결혼-가정파괴-생명 존중 사라지고 생명 잔멸을 우습게 여김의, 살인 자행을 밥먹듯하는 짐승 사회 ...반대하면"차별"로 몰아버림, 이는 가정-사회-공동체 해체 단계를 거쳐 망국적 낭떠러지행으로 나아갈뿐 ::: 동성애 합법화+(동성애가 죄임을 밝히는)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그 자체로서 기독교 신앙 말살 목적 법안임 ......보라!!, 아합과 이세벨의 금슬이 너무너무 좋은 상태여서(지금이 좋사오니!!)...자라면서 율법을 교육 받은 아합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바알숭배로 사는, Q의 율법 전혀 모르는 이세벨의 치마폭 뒤에 숨어버리고 대신 이세벨에게 낱낱이 고자질하여, 전적으로 갈멜산 사건 뒤처리를 맡기는 바, 이세벨은 막무가내로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이야말로!! 나라 전체 말아먹는 지극히 이기적인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바벨탑 사건의 가장 큰 핵심문제란... "교만??....이 아니라 참 핵심적 실상은 인권 제일주의의 오만!!, 곧 사람이-내가- 하나님 될 수 있어 하며!!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앉고자 함이니...Q 나라는 인권 최우선-제일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주 다스리네!!"에 있는 것임.. .......***동성애자는 [회개를 통해] 분명히 구원받을 수 있으되!!, 소도미!! 동성애 행위는 명백한 죄임을 [주 앞에서] 인정해야만 하며((여호사밧 왕은 남색하는자를 유다땅에서 완전히 근절/멸절/추방하였다!!--이것을 주님은 기뻐하셨다)), 만인 평등은 사상이로되 실생활에서 이루고자 함은 [주 앞에서 한 사람 한사람마다 모두 다 타락한 죄인이기에!!]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Q 믿음(참신앙)이 실지로 믿는이 한 사람 한사람마다 자신이 존재 근원이자 삶의 동력 바탕으로 삼는바 Q 믿는 신앙이야 말로 살아계신 Q, 그분의 존재증명이요 참된 믿음체계임을 증거하여야 할 바, 그 자신에게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생생한 간증 통하여 신앙생활의 능력을 나타내고 드러내야 함.. ......현시점에서!! 전도란, "교회로 오라" 초청함이 최우선순위가 아닐 수도 있음을 분명히 얼고 있어야 하리라...오히려 Q께서 자기에게 있게 하신바, 바로 참되게 믿는이 그가 있는 그 자리에서!! 참 신앙의 믿음체계의 생생한 능력으로 살아가며 빛으로 나타냄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신앙은 생생한 산 믿음체계임을 입증함과 동시에 그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현대적 상황에 맞게, 불신세상이 능히 받아들일 수 있는 합당한 이미지와 스토리로 [성경의 진리를] 재번역할 필요가 있음(예-메시지성경처럼)...여기에 더하여, 이미 고래로부터 그 땅에서 알려진바 성경진리에 합당한 이야기를 발굴해내어서 그 진리를 적용하여 생생한 생활진리로 전할 필요도 있음 .......이땅에서 잘살고 학력이 높을수록 인권이 왕노릇함(이세벨이 대표적)===>오직!! 이미지와 스토리로 성경 진리를 적용하며 살아냄 인해((말씀의 빛 아래서 자기 죄를 보며 회개하고 성령따라 삶의 간증) [딛3:1-5(5)...*1.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2.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3.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자기의 계획한 바 달성목표에서, 5%부족한 상태 그대로 두시는, 야속한 Q ::: "그토록 주께 대한 열심이 특심했는데, 이건 뭐지? 속상해, 섭섭해요!! 나 선지자 사역 그만둘래" ==>"광야에서는, 토라진 그대로.."나, 주님이 그냥 죽여 주세요 = (나 살고 싶어요) 의미"]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이하 9절까지 YHW의 말씀이 나타나고 있지 않음...주께 묻지 않음 인해!! 두려움에 사로잡혀!! 소명의 자리를 떠나버리고 있음]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1-2미터 크기로 자람...잔가지가 많아서,바람과 햇빛 차단은 잘됨]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자기만 홀로 세상에 있다 여기고!!, (남유다 여호사밧은 이미 이세벨-아합과 결혼동맹 맺은 상태) 절망감에!! 절대신앙 상실=소명 버림 결정 ::: 홀로서기의 절대신앙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는 말인가!!]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이세벨의 딸 아달랴는 여호사밧왕가에 시빚가서 결국 남유다왕가의 씨를 말려버리는 역할 맡게 된다 :: 즉, 엘리야의 브엘세바 광야 도망하던 때는 구속사상 가장 위기에 처한 시대가 열린 시점 직후의 영적 환경이었음 : 왕하11장까지 전개됨. .....***[남유다 여호사밧은 아합과의 결혼동맹으로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모친 이세벨처럼!! 바알-아세라의 극렬한 숭배자였음)) 아들 여호람과 맺어주었고, 여호람은 32세때 여호사밧의 뒤를 이어 등극, 8년만에 사망, 22세 된 그의 아들 아하시야를 예루살렘 백성들이 왕위에 옹립, 1년만에 [길르앗 라못 님시의 손자] 군대 장관 예후에게 북이스라엘 요람과 남유다 어하시야가 살해됨을 보고서, 아달랴가 유다왕의 자손들을 멸절하고 스스로 여왕이 되어 6년간 통치함((오직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1살난 조카 요아스를 그의 유모와 함께 자기 침실에 숨겨서 빼돌림))***.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야센..잠자다, 잠들다) 천사[말라크..여호와의 천사.JC :: 추적하시는 하나님 "나, 내게 너는 유일-독특한 내 소유이기에, 너 결코 포기못한다"]가 그를 어루만지며[내모습이대로 받으시는 Q --Q의 사람 그대가 그 어떤 경우라도(대개 큰 성취 이룬 후에) 때때로 참담함/절망감 느낄 때마다 (정신차리게 하시며!!) 정말 미안해 하신다..]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샤카브..누웠다..그러나 잠든 것 아님..잠들 수 없었음)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네 사명이 아직 다 끝나자 않았으니, 영육간 균형 회복해야 한다) 하는지라 .......절망감 느끼는 영적(영-혼) 곤핍은 바로 육적 곤핍 느낌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먼저 먹을 수 있게 공급하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350km정도 : 브엘세바-->호렙...도보로 군대보행속도는 10일내외..번민-갈등 겪으며/통해 걷고 있었다 --YHWH 앎 위해 생생한 체득 경험 위해 필요했던바!!, 모세의-3차례의(출32-34)- 40일 금식/중보에 비견하고 계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 ○엘리야가 그 곳 굴[출33:22..모세가 여호와의 영광 지나감 볼 때 숨겨주신 그 굴 :: 그러나 그곳은 모세의 자리였지, 지금 있어야 할바 엘리야의 자리는 아니!!라 하고 계심]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나는 너를 이리로 부르지 않았는데...??)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 정말 주님의 질투하시는 그 열정적 사랑으로 행한바!! 저는 (철저한) 집탕으로, 오로지 주께만 충성하며 !! 일편단심-전심전력으로 올인 하여 왔었는데.. (그동안의 노력 결과란.. 하나도 이루어진 것 없고...그래서 더 이상은 못할거 같네요..그냥 포기하고 싶어서 숨어 있습니다)] .......바로 요단 건너기전 시점,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민25:1-18), 모압의 꾀한바, 바알브올 사건, 즉 모압 딸들이 그들의 신(그모스)에게 제사드리는 제의에 이스라엘백성을 초대하여 범한바 이스라엘의 음행으로 인해 [여호와의 명령따라] 2만4천명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음행 위해 함께 장막으로 들어가고 있던 시므리-고스비를 목격하고서는!! Q의 질투심으로 창을 들어 한꺼번에 찔러죽인 바느하스처럼 특출한 열심을 발휘했음을 의미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아니다, 네 사명이 다 끝난거 아니니!!, 쩨쩨하게 굴 속에 숨지말고!! 말씀하시는YHWH 앞에 서서 말씀 들음으로!! 제대로 양육받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여호와의 움직임/영광 지나가심은 산하천지/지각변동으로 그대의 몸에 느껴질 수 있지만아직 ㄴ아갈 때가 아니요, 오직 기다릴바 "대망하는바 그분의 세미한 음성!! 그 음성 들려주사 대화 시작하시는!! 음성 들려오는 바로 그 영생의 순간에 주 임재 안으로 주 이름 부르며 나아가야 한다!! --, 전존재의 중심으로 부르며 기대하며 신뢰하며 사귐-교제/교통할 분!! 그분 임재 음성, 곧 목자이신 그분의 친절/다정한 그 속삭임!! 그 자체가 아니라면 참 실제를 놓치는 것이다!!) ......---바알의 신격은 다른 초기 농경 사회의 신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폭풍우와 비, 번개, 풍요/다산의 신이자 태양신이었다.--- ......한편!!, 모든 기적들을 포함한 자연력((바람/폭풍-눈비-지진-불)) 다스림의 초자연적 능력조차도!! 그 안에서 작동 원인이신분!! 모든 사건-환경-상황-형편-처지, 기록된 모든 말씀 안에 있는 정수!!, 곧 영생하시는 운행-일하시는 주님YHWH!!, 그분 자신의 세미한 음성을 분명하고도 확실하고도/뚜렷이 알아 듣도록, 그래서 임재안에서 하나인바 참 생명 삶 살도록 하기 위한, 인침의!! 예비과정일뿐이었다!!....즉, 외적으로 나타나는 표적-기적-이사 경험 그 자체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요 오직 자신의 전적인 죄인/전적인 타락한 죄인 됨 인정 + 영원유일무이/영생하시는 하나님, 십자가 대속 구주 JC 없이는 전적인 무의미/멸절/멸망뿐임을 깨닫고 자인하며 구주-하나님으로 주예수 이름 불러 믿고 영접함의, 복음 듣고 구주 믿음에 이르도록 하는 안내자 역할일뿐!! 13. 엘리야가 [주님 지나가심의 소리 느끼고 이제 굴어귀 안에서 밖으로 완전히 나아가 주님 임재 앞에 서고 있다!! 그는 그분이신것을 알고 있다.. 세미한=친밀한 음성의 임재 소리를!!]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굴 밖 어귀에 믿음으로 서야만!! 친밀하신 그분의, 목자의 음성!! 그 소리가 임하신다!!] 소리가 그에게 [뚜렷이/분명히...주님 자신임을!! ...착각이 아니고 주님자신이심을..확연히 알아채고 놓칠수 없도록 영혼의 존재중심에 인쳐 새겨주심!!---은혜위에 은혜러라!!--성장성숙에로 이끄시는, runing after의 진수!!---주님 임재의 행보, 그 나날 살기!! 가능하다!!]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여기서 뭐하니??..[주님 위해, 네자신과 다른이의 구원 위해] 너의 지고지선의 진복과 사랑받음 위해 마련한 계획에 따르면, 너는 지금 여기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여기 에 네가 있는바 이 길은 내가 예비한 마땅한 길이 아니고, 네 자신이 [자의적으로] 의도한 길일뿐이다...출33:12-추적하시는 Q 기억함).. ......(관계적 문제) 직장생활 트러블-->두렴/근심/염려--비교됨/불안정감......"말씀이 없어서".....돈이 더 필요하다면, 효율 높은 알바를 (한가지) 선택집중해서 일하고 , 나머지 시간을 말씀 듣기 위한 예배에 집중하고 말씀 나눔/묵상/기도 모임에 올인할 것!!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마음 중심과 입 그 자체조차, 시공초월하는 무한하신 주영광/주 임재 충만 통한 마음-입의, 깨달은 새로운 생명 말씀 채움 받은바를 그대로 아직 말해내지 못하고 있음!!)..**죄인됨 인해 당연히!! 죄인됨 자각 아래, 사함 받은 죄인의 자리에 앉아서 겸손과 온유의 리더십 발휘했어야 할바인데 스스로를 모르고, 오히려!! Q 자리에 앉아 있는바, 상아궁 지은 아합, 킹메이커 이세벨임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히!!, 그 어떤 기적이라도 각사람 하나하나를 참 구원에 이르게 할 수는 없고 오직 말씀=여호와의 세미한 음성=이 개인적으로 참되게 그 심령마다에 들려야만 진정한 구원 얻게됨을 깨닫는바!!, 오직갑자기 문득 전지전능하신 Q을 인지하고, 입에 손을 대며, 이 무슨 망발/생색냄인가,... 오 주여 용서하소서...저는 전적으로 Nothing-Nobody일뿐입니다..주님 자각!!..기적 그 자체는 사람을 결코 변화시키지 못한다!!...이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Q의 손길이 바로 "이세벨의 협박"일 수 있다--구속사적 해석--] .........[왕상19:9-12...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 [왕상19:13...So it was, when Elijah heard it, that he wrapped his face in his mantle and went out and stood in the entrance of the cave. Suddenly a voice came to him, and said,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힌네 엘 콜 아마르" = A voice, Suddenly a voice came to him, and said,...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서,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바로 그 때에, 그에게 소리가 들려 왔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 [출33:12-23...*12.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5.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출34:4-7...*4.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 *5.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6.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 [고후13:5...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른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5여러분은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 살피고 시험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입니다.///5 Test and evaluate yourselves to see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and living your lives as [committed] believers. Examine yourselves [not me]! Or do you not recognize this about yourselves [by an ongoing experience] that Jesus Christ is in you—unless indeed you fail the test and are rejected as counterfeit?//5 Examine yourselves as to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Test yourselves. Do you not know yourselves, that Jesus Christ is in you?—unless indeed you [b]are disqualified.//5 Examine yourselves as to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Test yourselves. Do you not know yourselves, that Jesus Christ is in you?—unless indeed you [b]are disqualified]] -----호렙굴_굴어귀밖_세미/온화/분명/순수순전온전완전친절한속식임음성/Q임재앞에섬_사명자엘리야_기름부어세움/7천남은자양육(새시대준비)----+ -----###엘리야에게 적용된 카이로스, 3단계---[로뎀나무아래]의 때((죽지않고 살기 위해 주님 손 의지함))==>(모세를...부모를!!..조상을!! 부적처럼 생각하여 의지하며)[호렙산 굴속에 숨어 거함]의 때 ==>개인적으로 한 사람 한사람마다!! 새롭게 하시는 Q 음성 듣기 위해 ==[굴 어귀, 그 밖에 나아가서 매일 묵상통해 주님 붙들어야 함]의 때==((그 자리에서 [영혼 구원의 소명/사명 수행 위해, 양육하시는 Q 추구))...[인생의 목적을 물으시는 주님!!, 과연 누구를 위함인지 무엇을 위해 살며, 무엇 해야 할지.... 금식하면서 주께 기도해보라!!, 일게 하실것이요, 그대로 따르라!!###---
15. ○여호와께서 [아마도!! 그 때!! 다 아시는!! 주님은 미소지으셨으리라]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데레크, 길(생각/태도/자세)]을 돌이켜(=슈브...회개하고, 주님 마음과 하나되어, 부활생명 능력의 성령 안에서 전혀 새로운 존재인바 마음 새롭게 결단하여 새로운 존재로 새로운 나날/역사 안으로 나아갈바!!)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주님의 대리통치자, 곧 나기드로 임명하는!!...::: 지금껏 현존하는 세상 왕/통치자마다 Q의 예정/작정하심 안에 통제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계심!!...그리스도인은 참되게 아버지께!! 묻는법 연습하라!!)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요단 동편 디셉에서, 또는 그릿시내에서 요단 건너 서편에 마주 보이는 성읍...므낫세에 속함..기드온300용사에게 패주하여 도망하는 미디안병사들이 경유한 평원지대] 사밧[-사파트..재판하다]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다짜고짜 권능의 겉옷 벗어 그에게 던짐!! 행동으로 묘사됨]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이른바, 7천배의 응답!!..Q의 경륜/역사를 면면히 이어나갈바 7*10*10*10의 충만 완전수]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19:15-18을 깊이 묵상하라...주님은 엘리야에게 영적 차원과 영역에 관한 시야를 넓혀주고 계셨다....(네가 이미 알 수도, 아니 모를 수도 있지만) 아벨므홀라에 가서 먼저 엘리사에게 기름부어(그에게 엘리야는 그가 줄곧 걸치고 있던 겉옷을 던지고 있다!!) 너 엘리야를 대신할 선지자가 되게 하고, 또..하사엘에게-, 예후에게- 기름부어 왕이 되게하고(새시대를 열라) 말씀하고 계셨다... "하사엘에게 기름부어"란 표현을 주목하라...엘리야에게 직접 주신 말씀은 마치"엘리야가 하사엘에게 기름부어 임명하게 될 것"이라고 그대로 읽을 수 있으나(그리 이해해서는 안된다..하심이다).. 실지로 하사엘에게 (직접) 통보하는이는 엘리사였다(왕하8:7-15)..."예후에게 기름부어"라는 귀절의 성취도 그러한데, 왕하9:1-13에는, 엘리사 선지자가 그의 제자들 중 하나를 불러서 기름병을 가지고 (길르앗 라못에) 가서 예후에게 기름붓게 하고 있다.. 주님은 엘리야와 엘리사, 그의 제자를 (영적으로 이어진!!) 한 생명 사람으로 보고계신다!!...놀라운 관점을 제시하는 보배로운 귀절이다!!... .....###엘리사(히 אלישע, 그 Ελισαίος 영 Elisha)### 엘은 '하나님', + 야샤(도움을 청하다, 구하다, 구원하다)를 합성어로 '엘리슈아'를 짧게 부르는 이름. 엘리슈아는 '간구의 하나님' ....엘리 + 예슈아(ישוע), 엘리사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 이제, <엘리야와 엘리사, 예수아(예수)>를 합하면 우리 신앙의 답이 나온다. 하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그들의 이름으로도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 ---거듭난, 참되게 믿는 그대에게 하나님(여호와, 예수)은 누구신가? 모든 문제의 해결이신분인가?..그분이 진정 그대의 하나님이신가? ---히브리어 우리말 번역으로 눈의 아들 모세의 시종으로 후계자가 되었던 "여호수아"는 히브리어로 '여슈아, 또는 여호슈아'는 "여호 + 슈아" 합성어로 "여호는 도움/구원이시다"란 뜻. ---히브리어 “예호슈아(יהושוע)를 신약성경(헬라어)에는 “이에수스(Ἰησοῦς) 라고 번역하였고, 영어로 Jesus, 우리말로 <예수>로 번역했다. 히브리어 사촌인 아람어로도 "예호슈아 또는 예슈아(יֵשׁוּעַ)이고, <Ιησούς, 예수스>이다(마1:21). 다른 곳에서는 예수아, 예수로 번역했다. ===그분이 그대의 하나님이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인데...그분 자신을 그대에게 나타내실 것이다....TUQ의 전존재의 모든것 부어지심 인한 말씀 하나님의 체현(몸으로 나타나심)이 예호와-예슈아-예수시다!! .....[역대하 23장]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의 행방 역대하 23장은 드디어 제칠 년에 이르자,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중심으로 하여 레위 사람들이 앞장서서 사악한 아달랴를 처단하고, 요아스를 남 유다의 왕으로 옹립하는데 성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참으로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이렇게 일이 순차적으로 풀리기까지 ‘육년’ 이라는 긴 기다림과 철저한 준비가 있었음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시의 상황은 아달랴가 남 유다에 이식한 바알 종교와 바알 지도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여호와 신앙을 믿는 지도자들은 드러나게 행동했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모두 잠적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달랴가 치정하던 그 때에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얼굴도 내 밀수 없는 살벌한 때였고, 어떠한 세력도 펼칠 수 없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동 시대에 북 이스라엘에는 여호와 신앙을 가진 선지자들을 향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이미 있었다. 그로 인해 엘리야는 호렙 산 어느 굴에 은둔한 채, 하나님께 이렇게 하소연하였다(왕상 19:14, 18절).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바알을 섬겼던 아합-이세벨의 박해와 핍박이 어찌나 컸던지, 엘리야 생각에는 생존한 하나님의 선지자라고는 자신 혼자였을 것이라 여겼을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칠천 명이 더 남아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남기셨던 것이다. 시대가 어두울 때, 신앙의 박해가 심할 때, 삶이 곤고하고 척박할 때, 그래서 믿는 사람보기가 드물다고 여겨질 때, 하나님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생각지도 않는 칠천 명을 남겨주신다. 왜 남기실까? 육년의 박해와 핍박 시기 속에서 이들을 준비시켜서 제칠 년의 때에 중요하게 사용하기 위함이다. 엘리야 외에 남은 칠천 명의 행방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역대기 저자는 그들의 행방을 역대하 23장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요아스를 왕으로 등극시키는데 주축을 이룬 이들이 바로 그 칠천 명이었다. 역대기에는 그들을 일컬어 ‘제사장들과 수종 드는 레위사람들과 유다 사람들 그리고 여호와 전의 직원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4,6,18절). 게다가 악한 아달랴를 처형하는데 앞장섰던 이들도 그 칠천 명이었다. 그 뿐 아니다. 바알 신당을 부수고, 바알 대제사장 맛단을 죽인 장본인들도 그 칠천 명이었고, 남 유다에 여호와 신앙이 재정립되는데 주력을 아끼지 않은 이들도 바로 그 칠천 명이었다. 하나님은 헛된 말이나 과장된 말을 결코 하시지 않으신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은 분명히 존재했었다. 다만 제칠 년이 되지 않았기에 그들은 묻혀 있었을 뿐이다. 때가 되자,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은 너무나 요긴하게 사용되었던 것이다. 시대가 암울하고 박해와 핍박이 여전한 육년 동안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칠천 명에 속하는 일이다. 제아무리 바알 종교가 득세하여 기득권을 행사한다할지라도 거기에 편승되어서는 안 된다. 독야청청(獨也靑靑)이라 하지 않았던가! 홀로 푸름을 자랑하듯, 시대가 어둡고 박해와 핍박이 심할수록 신앙의 절개를 더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 제칠 년이 되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그 칠천 명의 역할은 무궁하리라. 그 칠천 명 속에 우리가 포함되기를 소망한다. 주님! 어려운 때일수록 신앙에 더욱 신경 쓰게 하소서. 절대 다수가 바알에게 무릎 꿇는 시대 속에서 유일한 칠천 명에 속하는 복이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요긴한 도구로 쓰임 받게 하소서.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다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 @@사명/소명 따로 구원 따로?? (구원받았으면 됐지, 왜 사명/소명따라 고난받으라 강권/강요하는가??라는 ((세상적/사탄적/육적)) 빈정거림의 질문에 대해....주님 나라에는 그런 "따로~" 구원이란 결코 없다!! = 그것은 악한자의 궤계일뿐이다!!...구원 받는자마 곧바로 [거듭난 생명 그리스도를 사는] 사명자요 소명자로서 살도록, 그 열매를 기다리고 계심을 반드시 명심하라....[딤후1:7-9..*7.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7 For God did not give us a spirit of timidity or cowardice or fear, but [He has given us a spirit] of power and of love and of sound judgment and personal discipline [abilities that result in a calm, well-balanced mind and self-control]. 8 So do not be ashamed to testify about our Lord or about me His prisoner, but with me take your share of suffering for the gospel [continue to preach regardless of the circumstances], in accordance with the power of God [for His power is invincible],9 for He delivered us and saved us and called us with a holy calling [a calling that leads to a consecrated life—a life set apart—a life of purpose], not because of our works [or because of any personal merit—we could do nothing to earn this], but because of His own purpose and grace [His amazing, undeserved favor] which was granted to us in Christ Jesus before the world began [eternal ages ago], ] --------- 1 Kings 19. Amplified Bible ===Elijah Flees from Jezebel 1 Now Ahab told Jezebel all that Elijah had done, and how he had killed all the prophets [of Baal] with the sword. 2 Then Jezebel sent a messenger to Elijah, saying, “So may the gods do to me, and even more, if by this time tomorrow I do not make your [a]life like the life of one of them.” 3 And Elijah was afraid and arose and ran for his life, and he came to [b]Beersheba which belongs to Judah, and he left his servant there. 4 But he himself traveled a day’s journey into the wilderness, and he came and sat down under a juniper tree and asked [God] that he might die. He said, “It is enough; now, O Lord, take my life, for I am no better than my fathers.” 5 He lay down and slept under the juniper tree, and behold, an angel touched him and said to him, “Get up and eat.” 6 He looked, and by his head there was a bread cake baked on hot coal, and a pitcher of water. So he ate and drank and lay down again. 7 Then the angel of the Lord came again a second time and touched him and said, “Get up, and eat, for the journey is too long for you [without adequate sustenance].” 8 So he got up and ate and drank, and with the strength of that food he traveled forty days and nights to Horeb (Sinai), the mountain of God. ===Elijah at Horeb 9 There he came to a cave and spent the night in it; and behold,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and He said to him,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10 He said, “I have been very [c]zealous (impassioned) for the Lord God of hosts (armies) [proclaiming what is rightfully and uniquely His]; for the sons of Israel have abandoned (broken) Your covenant, torn down Your altars, and killed Your prophets with the sword. And I, only I, am left; and they seek to take away my life.” 11 So He said, “Go out and stand on the mountain before the Lord.” And behold, the Lord was passing by, and a great and powerful wind was tearing out the mountains and breaking the rocks in pieces before the Lord; but the Lord was not in the wind. And after the wind, [there was] an earthquak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earthquake. 12 After the earthquake, [there was] a fir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fire; and after the fire, [there was] the sound of a gentle blowing. 13 When Elijah heard the sound, he wrapped his face in his mantle (cloak) and went out and stood in the entrance of the cave. And behold, a voice came to him and said,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14 He said, “I have been very zealous for the Lord God of hosts (armies), because the sons of Israel have abandoned (broken) Your covenant, torn down Your altars and killed Your prophets with the sword. And I, only I, am left; and they seek to take away my life.” 15 The Lord [d]said to him, “Go, return on your way to the Wilderness of Damascus; and when you arrive, you shall anoint Hazael as king over Aram (Syria); 16 and you shall anoint Jehu the son of Nimshi as king over Israel; and anoint Elisha the son of Shaphat of [e]Abel-meholah as prophet in your place. 17 It shall come about that Jehu shall put to death whoever escapes from the sword of Hazael, and Elisha shall put to death whoever escapes the sword of Jehu. 18 Yet I will leave 7,000 [survivors] in Israel, all the knees that have not bowed down to Baal and every mouth that has not kissed him.” 19 So Elijah departed from there and found Elisha the son of Shaphat, while he was plowing with twelve pairs of oxen before him, and he with the twelfth. Elijah went over to him and threw his mantle (coat) on him. 20 He left the oxen and ran after Elijah and said, “Please let me kiss my father and mother [goodbye], then I will follow you.” And he said to him, “Go on back; for what have I done to [stop] you?” 21 So Elisha left him and went back. Then he took a pair of oxen and sacrificed them and boiled their meat with the implements of the oxen [as fuel], and gave the meat to the people, and they ate. Then he stood and followed Elijah, and served him. ===Footnotes 1 Kings 19:2 Lit soul. 1 Kings 19:3 Beersheba was about ninety miles south of Jezreel and was not part of Ahab’s kingdom. 1 Kings 19:10 Or jealous, i.e. intolerant of unfaithfulness. 1 Kings 19:15 God tells Elijah how to complete the destruction of the worship of Baal. First, Hazael was to be placed on the Aramean (Syrian) throne in order to attack Ahab. Second, when Ahab was weakened, Jehu was to seize his throne because he opposed the worship of Baal and was a powerful military man. Third, Elijah was to appoint Elisha as his successor, as the one who would, along with Jehu, strike down Baal’s remaining followers. 1 Kings 19:16 This city was located in the tribal territory of Manasseh in the Jordan River valley. ========= 열왕기상 19장 (개요) 앞 장에서는 우리가 엘리야를 이스르엘의 입구에 남겨 두었다. 그래서 그는 공중 앞에 드러났고, 모든 백성의 눈이 그에게 쏠리게 했다. 본 장에서는 그가 살아나기가 어렵게 되자, 다시금 도망쳐서 어두컴컴한 곳에 들어간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개심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성실과 변덕에 대한 형벌로 보아야 한다. 백성들이 듣고자 아니할 때에, 하나님이 그들의 선생들을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놓는다는 것은 공의로운 일이다. 이제 다음 사실을 살필 수가 있다. 1. 불구대천의 원수인 이세벨의 원한으로 인해, 엘리야가 배척당한다(1-3). 2. 추방 중에도, 언약의 벗인 하나님과 만나게 된다. (1)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를 먹이셨는가?(4-8) (2)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과 교제했으며 자신을 하나님께 나타내었는가?(9, 11-13)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불평을 들어주시고(10-14), 행할 바를 그에게 명하시고(15-17), 격려하셨는가?(18) 3. 엘리사가 합류함으로써, 엘리야가 추방에서 돌아왔을 때 어떻게 그 손이 강해졌는가?(19-21) =========== 위기에 처한 엘리야(왕상 19:1-8) 대부분 이런 상상을 할 것이다. 즉 그 백성이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그처럼 공개적이면서도 현명하게 나타난 것을 보았고, 엘리야와 바알 사이의 투쟁의 그처럼 분명한 결말을 보았고, 그것이 엘리야에게는 영예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당황이,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보편적인 만족이 돌아가게 되었고, 또 그들은 엘리야의 기도가 하늘에서 불과 물을 모두 내려오게 하는 것을 체험했고, 더구나 그 두 가지는 모두 그들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니, 불은 그들의 제물을 받아들이신 것을 뜻하고, 물은 “그들의 유업이 곤핍할 때에 새 기운을 주시는” 것임을 목격했기 때문에, 흔히 어느 누구라도 이제는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회심하고, 엘리야를 자기들의 지도자로, 하나님의 사자로 삼아, 그 후로는 그가 총리대신이 되어 그의 명령이 임금이나 나라 법과도 같이 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은 그와는 정반대여서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신 그를 멸시하여, 그를 존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돌보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아무 소용도 닿지 않게 했다. 오히려 이와 반대로 이스라엘 땅에는 큰 축복임이 틀림없는 그가, 이제는 구박을 받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Ⅰ. 아합은 이세벨을 부추겨 엘리야에게 몹시 성을 내게 했다. 생각건대, 이세벨은 국왕의 아내이지만 사실은 섭정을 하는 여왕이었을 것이다. 마치 후일 황태후가 되었을 때 오만한 여인이 되어 국왕과 그 왕국을 조정하여 마음대로 했던 때와 같았을 것이다. 아합의 양심으로는 엘리야를 핍박하려고 하지 않았으리라(누군가가 그가 이스라엘 사람의 혈통과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 자임을 상기시켜 주어서, 그것이 그의 행동의 자유를 억제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이세벨에게 엘리야가 행한 모든 것을 알려 주었다(1절). 그것은 그녀를 납득시킨 것이 아니라, 단지 격노케 했을 뿐이다. 아합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바를 이야기하지 않고, 마치 어떠한 주문이나 마력으로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불을 가져왔으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그 가운데 작용하지 아니한 것처럼, “엘리야”가 행한 바를 알려 주었다. 더욱이 그는 마치 그녀가 엘리야에게 노하기를 바라기라도 한 듯,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살해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아합은 어느 누구도 그 이름에 합당한 자가 없다는 듯이, 바알의 선지자들을 “그 선지자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의 마음은 그들 편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살해한 것을 엘리야의 범죄라고 악화시켰던 바, 그것은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살해한 보복이라는 것(18:4)을 주지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 본인들은 수치심이나 공포감 때문에 악행을 하지 못하면서도, 남을 선동하여 그런 일을 행하게 하는 자는, 마치 자진해서 그러한 짓을 행한 것처럼 그 책임을 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Ⅱ.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저주의 경고장을 보냈다(2절). 맹세코 24시간 내에 그를 [850명의 바알숭배 선지자 무리를 삽시간에 죽인 것처럼] 죽여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가 당장에 시행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오래지 않아 꼭 하리라는 결심이다. 육적인 마음은 그 마음을 오히려 회개시켜 하나님께 복종케 해야 할 것을 통해서도 다시금 하나님께 대해서 더 완악해지고 원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녀는 자기의 신들을 두고 맹세하고, 미친 자처럼 사납게 날뛰며, 하나님의 허락이라는 아무런 단서도 없이, 엘리야를 살해하지 아니하면 자기 자신이 저주받으리라고 장담했다. 잔인함과 담대함이 흔히 핍박자들에게서 서로 만난다(공존한다). “내가 쫓아가서, 탈취하리라”고 했다(출 15:9).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계획을 그에게 알려, 그로 하여금 도망갈 기회를 주게 된 것은 어찌된 일인지? 엘리야가 담대한 사람이어서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막강한 존재로 생각하여, 자기가 그를 도망가지 못하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는 그녀가 자신의 광포에 그처럼 이성을 잃게 된 데는 특별한 섭리라도 있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비록 그녀가 그의 목숨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았다 해도, 이 때에는 “모든 사람이 그를 선지자”, 그것도 위대한 선지자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서워” 감히 그의 일을 간섭하지 아니하려 했던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러한 전갈을 보낸 것은, 단순히 그에게 겁을 주어 당분간이라도 물러가게 함으로써, 엘리야가 자기의 일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것일수도 있다. 맹세와 저주를 포함한 그녀의 협박의 속셈은, 진정 자기가 그를 살해하리라는 의도를 밝힌 것이 아니라, 단지 그로 하여금 그런 사실을 믿게 하려고 함이었던 것뿐이다. 그녀가 그 이름을 두고 맹세한 그녀 자신의 신들은 그녀에게도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못했다. Ⅲ. [그런데, 왠일인지, 그토록 대담한 엘리야는] 이에 엘리야는 매우 놀라서,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마 밤중에) 도망하여 브엘세바에까지 이르렀다(3절). 우리는 이 일로 그를 칭찬해야 하겠는가? 결코 칭찬하지 않는다. 최근에 아합과 바알의 모든 선지자들과 대적했던 그 용기는 어디에?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여호와의 불이 강림할 때, 그의 제물을 드려 자기를 지키던 그 용기는 어디에 갔는가? 하늘과 땅,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주는 공포 사이에서도 용감하게 버티어 섰던 그가, 이제 교만하고도 정욕에 빠진 한 여인의 허약한 협박에 떨고 있는 것이다. “주여, 도대체 인간이 무엇입니까!” ...위대한 신앙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결같이 강인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이 중대한 시기에 자기가 이스라엘에게 크게 도움이 되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도망했다. 이전에 그에게 위협이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몸을 숨기라고 명했다(17:3). 따라서 그는 지금도 몸을 숨기는 것이 무방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Ⅳ. 그는 브엘세바를 떠나 이스르엘 사람들이 유리 방황했던, 저 황량하고도 광막한 광야를 향해 들어갔다. 브엘세바는 이스르엘에게는 매우 원거리에 있었다. 여호사밧과 같이 매우 선량한 왕이 다스리는 영토 내에 있었기 때문에, 그 곳에서는 안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같이 위험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는데도, 두려움이 그림자같이 쫓아가서 거기서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하룻길의 여행을 하여 사막(광야)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엘리야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보다 더 자유롭고 친밀한 하나님과의 친교를 위해 그 곳으로 들아갔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기 위해 산으로 올라갈 때, 그 종들을 산기슭에 남겨 두었고,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리스도께서 “그 제자들을 떠났던” 것처럼, 광야에서 은밀히 지내기 위해 엘리야도 자기의 사환을 브엘세바에 머물게 했다. 아마 그렇게 한 것은 자기 사환을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 사환은 아직 광야의 고생을 하기에는 젊고 약했다. 그런 고생을 시키는 것은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는 격이리라. 이같이 우리는 우리의 휘하에 있는 자들의 처지를 잘 생각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처지를 그렇게 생각해 주시기 때문이다. Ⅴ. 긴 여행에 몹시 피곤하게 된 그는 (졸릴 때의 어린애들이 그렇듯이) 보채면서 “죽기를 원하였다”(4절). “그는 죽기를 구하였다.” 그는 “자기의 생명을 위하여 죽기를 구하였다.” --정말, 아이러니칼한 표현이다. 선한 사람에게는 죽음이 곧 생명이 되기 때문이며, 육체의 사망은 영혼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죽기를 소원했던 이유는 아니다. 그것은 바울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듯, 은총에 대한 간절한 열망도 아니다. 욥의 소망처럼 자기의 타락을 바라는 욕정에 찬 소원이었다. 이러한 식으로 자진하여 죽고자 하는 자는 죽기에 적합한 처지가 못된 자다. 이세벨이 엘리야의 처형-죽음을 맹세한 바 있기 때문에, 그는 짜증이 나서 죽음을 찾아 헤매며 죽음을 간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특수한 뜻이 내재되어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그의 부드러운 자비는 위대하다―의 손에 의해서 죽기를 바란 것이지, 사람―그의 부드러운 자비는 잔인성이다―의 손에 의하여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그는 이세벨의 경고에 따라, 바알의 선지자처럼 죽기보다는 차라리 광야에서 죽기를 바랐다. 그것은 바알 숭배자들이 승리의 찬가를 부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만은 없도록 하고자 해서였다. 그들은 하나님 옹호자를 거꾸러뜨리고 나면, 자기들이 이스라엘 하나님보다 더 강하다고 자처할 자들이었다. 이제 그는 “이것으로 족합니다. 나는 할 만큼 행하였고, 견딜 만큼 견디어 냈습니다. 사는 것이 싫어졌습니다”라고 탄원한다. 저 세상에서 행복을 확보한 자는 머지않아 이 세상의 행복에 진력을 느낀다. 이제 그는,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이와 같은 곤고한 노역을 그들보다 더 잘 버텨 낼 만큼 낫지도 못하온데, 어찌하여 내 열조들보다 더 오래 이러한 고역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까?”라고 탄원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바로 “내 주 엘리야”란 말인가! 저 위대하고도 용감했던 정신이 이다지도 위축되었는가?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자신에게 버려두신 것이다. 그리하심은 엘리야가 담대하고 강인했던 것은, “여호와와 그 크신 권능이 그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요, 엘리야 자신은 “그의 열조나” 형제“보다 낫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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